엄마에게 보림 창작 그림책
서진선 글.그림 / 보림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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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역사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의 삶을 생각해 볼 때가 있다. 어찌 할 수 없는 역사의 힘 앞에 무력하게 당하는 사람들을 떠올릴 때면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느낌을 받곤 한다. 잠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이런대 하물며 직접 겪는 사람들의 아픔이 어느 정도일런지, 나로선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다. 이런 슬픔 가운데서도 가장 견디기 힘든 게 가족간의 이별일 것이다. 같은 하늘 아래 있으면서도 부모와 자식이, 그리고 부부가 만나지 못한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비극이다. '엄마에게'는 그런 슬픈 가족사를 전하고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은 한국의 슈바이처라 불렸던 장기려 선생의 아들 장가용이다. 어린 아이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이산의 아픔은 전쟁의 참상만큼이나 처절하다. 갑자기 일어나게 된 전쟁 탓에 잠시만 떨어져 있자는 그 말이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는 아들과의 영원한 이별이, 남편과 아내에게는 살아서 다시 못 보게 될 줄은, 어린 아들에게는 50년이 지나서야 엄마를 만나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어쩌면 누구도 몰랐기에 잠시의 이산을 택했을 것이다. 알았다면 그 어떤 고통을 겪더라도 결코 택하지 않았을 테니까.

 

 

전쟁으로 어린 화자와 아빠는 둘이서만 피난을 가게 된다. 원래는 엄마가 아이들을 데리고 피난을 가기로 했다. 그런데 어느 만큼 가다 아빠의 옷보따리를 가지고 왔다는 걸 깨닫게 된다. 한겨울에 옷없이 견디게 될 아빠가 안타까워 아이는 옷을 가져다주고 오겠다 한다. 집에 들어서자 할머니는 아빠와 잠시 피난가 있으라며 아빠의 병원 버스에 둘을 태운다. 한참을 가다 엄마와 동생들을 보게 되지만 태우게 되면 피난민들 때문에 위험한 상황이 될까봐 태우지 못하고 가게 된다. 이 잠깐의 순간이 마지막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부산에 다다르자 아빠는 천막 병원을 만들어 환자들을 돌보고, 아이는 엄마를 그리워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게 된다. 엄마가 만들어주셨던 만둣국과 엄마가 좋아하셨던 노래 봉선화를 떠올릴 때마다 아이는 말할 수 없는 그리움에 젖는다. 나중 세월이 흘러 엄마에게 소포가 온다. 피난을 가다 동생들이 얼어 죽을 것 같아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며, 엄마는 사진과 봉선화 씨앗 그리고 엄마가 부른 봉선화 노래를 테이프에 담아 보내셨다. 그날 아빠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숨죽여 우셨다. 아빠는 북에 있는 가족을 그리워하며 평생을 홀로 사셨고, 1995년 그토록 그리워하던 엄마와의 만남을 하늘에서 기약하며 세상을 뜨셨다.

 

가슴이 먹먹했다. 부모와 자식이 그토록 서로를 그리워하며 떨어져 살아야하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기막힌 일이다. 이에는 미치지도 못하는 아주 잠시지만, 내게도 이 비슷한 경험이 있다. 딸이 어릴 때 두 번 잃어버린 적이 있다. 몇 분도 안되는 사이 없어진 아이를 찾느라 동네를 헤집고 돌아다녔던 그 시간 동안 난 잠시 죽었었다. 아니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갖가지 감정들이 일어났고 감당할 수 없는 두려움에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불과 한두 시간 남짓이었지만 내가 살아온 생애보다 더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아이와 엄마에겐 다시 만나기까지 50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아이는 잘 커서 후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다는 국립대 의대를 나와 의사가 되었고 2,000년에는 그토록 그리워하던 엄마도 만났다. 엄마는 삼십대의 고운 아낙에서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있었고, 아이 또한 육십이 훌쩍 넘은 할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엄마와 만난 시간은 다 합쳐도 네 시간이 채 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때 아이는 아니 장기용은,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가슴으로는 많이 울었다고 했다. 이젠 그조차 이 세상에 없다. 이미 돌아가신지 6년이나 되었으니까. 역사에 의해 희생된 이 가족의 아픔을 누가 위로해줄 수 있을까. 그러나 이 가족의 아픔을 개인사가 아닌 우리의 역사로 끌어안을때 아이는 천상에서 엄마 아빠와 함께 행복한 웃음을 지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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