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미리 보는 의대 신경학 강의
안승철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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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세이건, 리처드 도킨스, 최재천. 모두 과학의 대중화에 앞장 섰던 과학자들이다. 학문적 성취만으로도 이들은 이미 큰 일을 이뤘지만, 과학과의 친근성을 위해 대중에게 다가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과학이라면 절래절래 고개를 젓는 나도 삼십여 년 전 칼 세이건이 진행한 '코스모스'를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다. 이들의 역할은 얼마나 지대했는가.

이와 같은 노력은 과학뿐만 아니라 각 분야에서 다방면으로 이뤄지고 있는데, 요즘 의학계는 젊은 의사들이 단독으로 혹은 몇몇이 모여 어렵고 딱딱한 의학 지식을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는 방송을 하며 대중과의 거리를 좁히고 있다. 그런데 이보다 더 획기적인 방식으로 다가가는 의학자가 있다. 실제 의대에서 강의하는 신경학에 대한 내용을 의대를 희망하는 중고생과 학부모, 재학중인 의대생을 위해 만화로 그린 단국대 의대의 안승철 교수가 바로 그이다.

직접 그렸다지만 처음부터 그리려 했던 것은 아니었다. 좋은 만화가를 섭외해 함께 하려 했지만, 전문적인 내용을 그림으로 구현하기가 쉽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똥손이라는 자평에도 불구하고 그릴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초보이다 보니 속도를 낼 수 없어 하루에 한 페이지만 작업했고, 그런 시간을 265일이나 가진 후 나오게 됐으니 책에 대한 애정은 각별할 터이다. 화자인 뇌 박사의 입을 통해 그는 없는 것 빼놓고 다 있다고 자랑했다.

“ "책상이나 문에 발가락을 찧었을 때 어떻게 하면 덜 아플까요?” 신경학에는 ‘문 조절 이론(Gate control theory)’이라는 학설이 있다. 촉각신경과 통각신경이 공통의 최종 경로(송출신경)를 거치기 때문에 촉각이 통각을 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아픈 부위를 어루만지고 입으로 호호 불면 통증이 줄어든다.
기억, 언어, 감각 등등, 이 책은 채 2킬로그램이 안 되지만 신비롭기 그지없는 장기, 뇌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는지를 보여준다. 만화 컷마다 뇌의 해부도, 신경이 이어진 경로 등이 세세하게 그려져 있어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쉽다. 뇌를 이해하고, 그리하여 우리 몸과 정신의 작용을 더 깊이 헤아릴 수 있게 해주는, 저자가 의도했던 대로 쉽고 재미있는 만화책이다." 출판사 소개 글

요즘 최고로 핫한 분야가 신경학이란다. 인공지능이 4차 산업의 스타로 떠오르면서 신경학도 함께 각광을 받고 있는데 , 오늘날에는 이미 입는 로봇과 뇌파만으로도 로봇팔을 조종하는 단계에까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단다. 그러나 아직도 공학적인 방식이 어떤 생물학적 메커니즘으로 이뤄지는지 완벽하게 알지 못하고 있고, 여러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음에도 신경학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란다.

과학의 대중화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과학과 친해졌던 것처럼, 의학의 대중화를 통해 우리 자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예전 엔돌핀 박사라는 의사 분과 웃음의 전도사라는 교수를 통해 우리 몸에 대해 더 잘 알게 되고 아는 만큼 삶이 풍성해졌던 것처럼, 저자의 책을 통해 신경학을 전공하겠다는 희망자가 많이 나오길 바란다. 아는 만큼 자신과 이웃을 이해하며 그만큼 더 행복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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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집 청소
김완 지음 / 김영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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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눈에 띄는 책 한 권을 발견했다. 득달같이 달려가 관련 정보를 보긴 했지만 더 이상 읽을 순 없었다.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였다, 더 이상 읽지 않은 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뒷걸음질쳤지만 이유는 빤 했다. 두려웠기 때문이다. 요즘 자주 접하는 이야기다. 쓸쓸하고도 가난한 죽음, 고독사에 관한 발화였다.

두어 달 전 어떤 프로그램에서 특수청소전문가가 출연해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홀로 세상을 떠난 이의 집을 청소하는 것이 그의 주된 일이라고 했다. 커다란 눈에는 온갖 것을 담아버린 사람의 슬픔과 안타까움, 눌러놓은 분노와 환멸이 어려있었다. 아무도 없이 홀로 죽은 이의 극한까지 간 외로움과 그들이 혹여 남겼을 얼마의 돈을 놓고 가족이 벌이는 추악함에 자신도 모르게 입은 상처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죽은 자의 집 청소』는 누군가 홀로 죽었을 때 자신의 일이 시작된다는 또 다른 한 특수청소전문가의 단상록이다. 혼자 죽어간 자의 흔적을 지우는 것이 그의 일이다. 흔적에는 죽은 이가 남긴 부패의 냄새와 육체의 조각들, 초대받지 않은 생명체도 들어있다. 그가 만나는 수많은 죽음은 각기 다른 이야기를 전하지만 홀로 맞이한 고독한 죽음이라는데는 변함이 없다.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알면 다 빠져나가요. 절대로 그 건물에 사는 누구도 알게 해선 안 됩니다." 22쪽

생전에도 죽은 이들은 누군가와 관계를 맺지 않았다. 자신을 유배한 채 있는 듯 없는 듯 숨어 살았다. 떠나고 난 후 누군가에게 보여질 자리를 생각하고는 집 안을 정리하고, 때로는 자신의 죽음에 들어갈 비용마저 계산해야했다. 이들의 죽음은 별 연관도 없는 사람들에 의해 발견되었고, 혹시라도 뒤따를지 모를 경제적 부담을 생각하는 가족에 의해 또 한번 버려졌다. 이들은 생전에 살았던 것처럼 그렇게 사라졌다.

죽음의 순간조차도 쓸쓸하기만 했던 사람의 마지막 잔재를 담당해야하는 사람은 무슨 운명을 타고난 것일까? 저자 김완은 자신은 누군가의 삶의 흔적을 지우는 일로 자신의 삶을 살 뿐이고, 그들은 살기 위해 그들 나름의 방식을 선택했으며, 운명을 맞이한 순간까지 죽을힘을 다해 자신의 삶을 살았을 뿐이라 말한다. 그들의 애처롭고 고독한 죽음의 과정 또한 하나의 삶이었다며 담담히 순응한다.

"이 집을 치우며 지독한 고독을 보았다면 그것은 결국, 내 관념 속의 해묵은 고독을 다시금 바라본 것이다. 이 죽음에서 고통과 절망을 보았다면, 여태껏 손 놓지 못하고 품어온 내 인생의 고통과 절망을 꺼내어 이 지하의 끔찍한 상황에 투사한 것일 뿐이다. 젊은 나이에 미쳐서 스스로 돌보지도 못하고 죽어버린 한 불행한 남자를 보았다면, 마치 인생의 보물인 양 부질없이 간직해 온 내 과거의 불행함을 그 남자에게 그대로 전가하고는, 나는 결백하답시고 시치미 떼고 있을 뿐이다. 나는 언제나 나 자신을 바라보듯 타인과 세상을 바라보는 것 같다. 그것이 내가 이 지하 방에 관해 알게 된 유일한 진실이다." 101쪽

고독사는 이제 저만치 떨어진 누군가의 문제가 아니라 이 시대의 우리들이 직면해야 될 문제가 됐다. 예전엔 홀로 사는 노인들이 맞닥뜨려야 할 슬픈 미래이자 현실이었지만 요즘엔 나이나 소득과 상관 없이 일어나는 범시대적 현상이다. 이는 1인 가구의 증가 때문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9년 우리나라의 1인 가구수는 이미 600만을 넘어섰다. 이제 고독사는 외롭고 쓸쓸한 죽음이 아니라 관계망에서 떨어져 나간 이들의 고립사이다.

살아있는 자에게 죽음은 언제나 생경하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균등하며 엄정하다. 이 책은 낯설기만한 죽음이 언젠가 내게 올 것을 나직하게 전하며 죽음이라는 화두를 통해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게 한다. 또한 어떤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현재가 더없이 소중한 내 삶임을 자각하게 한다. 흔적 없이 사라져간 이들의 고단하고 슬픈 이야기가 생의 덧없음과 비감에 머물지 않고 아픈 숙제가 되기를 조용히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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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감사합니다 - 감사로 세상을 헤쳐 나간 사람들의 가슴 찡한 이야기
김준수 지음 / 밀라드(구 북센)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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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깊어갑니다. 가을의 품 안에서 지난 시간을 되돌아봅니다. 그 속에서 옛 시간은 추억으로 치환되고, 그 풍요와 고요의 힘으로 저는 다시 새롭게 됩니다. 이런 가을에 책 한 권과 조우합니다. 삶이 어떻게 철학이 되는지를 알려주는 책입니다. 대단한 비법이 있지 않습니다. 심지어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하려면 결코 쉽지 않은 것이 문제라면 문제인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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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질 끈다구요? 이제 그만 알려드릴까요? 책 제목이 답입니다. 『그래도 감사합니다』 근데 뭔가 심상치 않습니다. '그래도'라니요? 그렇게 할 수 없음에도 해야 한다는 말인가요? 그 말이 계속 귓가를 맴돕니다. 책을 읽어 갑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넬슨 만델라 남아공 대통령, 이태석 신부, 장영희 교수, 헬렌 켈러, 오드리 헵번, 에이브러햄 링컨, 장기려 박사 등. 지금은 지상에 없는 이들이 감사로 빚어낸 삶을 그림처럼 펼쳐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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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감옥에 있는 동안 신께 늘 감사를 드렸습니다. 하늘을 보면서도 감사하고, 땅을 보면서도 감사했습니다. 음식을 먹으면서도, 물을 마시면서도 감사했지요. 강제 노동을 나갈 때면 다른 죄수들은 원망스러운 마음으로 끌려갔지만, 나는 감옥보다 넓은 자연으로 나갈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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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년의 수감 생활을 한 후 출옥한 만델라에게, 한 기자가 그토록 건강한 이유를 묻자 만델라는 이처럼 대답합니다. 만델라도 수감 초에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가 있었고 견딜 수 없어 신에게 항변합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신은 용서를 원했고 만델라는 생각을 바꾸어 모든 상황에 감사하기로 마음 먹습니다. 그러자 마음에 평안이 오면서 백인들을 용서하게 되었고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게 됩니다. 환경은 동일했지만 마음은 지옥에서 천국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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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희 교수의 이야기도 놀랍기는 매한가지입니다.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미국 유학길에 올라 각고의 노력 끝에 박사 학위 논문을 전동타자기로 완성하지만, 심사를 앞두고 논문 뭉치가 들어있는 가방을 도둑 맞습니다. 6 년의 세월이 일시에 날라가 버리자 그녀는 기절해 버립니다. 그러나 스스로를 다독이고 다시 쓴 후 1년 만에 더 좋은 논문을 완성합니다. 그녀는 논문 헌사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 논문 원고를 훔쳐 가서 내게 삶에서 가장 중요한 교훈, 다시 시작하는 법을 가르쳐 준 도둑에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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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는 잇닿은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풍성하게 합니다. 감사가 덧입혀지면 삶의 고통과 질곡이 한 사람을 빚어내는 배경으로 전환 됩니다. 상처는 보기 싫은 흉터가 아니라 생존의 훈장이 됩니다. 모든 것이 빛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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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순을 바라보는 이어령 교수의 글도 가슴을 적십니다. 그에게는 사랑하는 딸 이민아 목사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믿음이라는 가장 큰 선물을 전해 주고 암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딸을 잃은 후 그가 얼마나 고통스러워했는지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를 읽고 알았습니다. 냉정해 보이는 그에게 그토록 절절한 사랑과 깊은 그리움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딸이 원하는 것은 슬픔이 아니기에 다시금 마음을 다잡고 모든 것을 감사로 수용하며 그도 암과 싸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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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할 일들이 아직도 많아요. 예수님에게 생명이 있다는 것을 알리려고요. 나는 그저 찢기고 때묻은 주님의 옷 끝자락, 질질 끌려서 흙 묻은 주님의 옷 끝자락을 잡아드리는 마음으로 남은 삶을 살고 싶어요. 이건 딸 덕분이죠. 민아야, 아빠 잘할게. 고맙다, 내 딸 민아야.” 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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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는 갈라지고 터진 부분을 봉합해주고 새 살이 돋게 합니다. 자신이 안쓰럽게 느껴질 때도 허무에 빠지지 않게 하며 건강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또한 슬픔마저 그대로 머물게 하지 않고 어제를 오늘과 연잇게 하며 내일을 만드는 징검다리가 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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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감사합니다』에는 이외에도 감사의 인생을 현재 진행형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음주 운전자가 일으킨 교통사고로 그토록 고운 얼굴을 잃고서도 원망하지 않으며 감사로 자신의 인생을 일으켜 세운 이지선 교수와, 전투기의 추락으로 하루 아침에 부인과 아이 둘, 장모님까지 네 명의 가족을 잃었지만 조종사를 원망하지 않고 용서한 윤동주씨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또한 그 어떤 존재감 없이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온 베트남 축구의 영웅 박항서 감독의 이야기와 장애를 가진 자녀를 어엿한 청년 성악가로 키워낸 조영애씨의 감사행전도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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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는 평범하고 보잘것없어 때로 허망해지는 삶도 각기 다른 작품으로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감사 앞에서는 자신의 나약함을 숨기지 않아도 됩니다. 오히려 다른 이의 도움으로 서는 것을 통해 타인도 그 감사의 축제에 참여케 합니다. 성과 없는 삶에 반발하고 싶을 때 감사해 보세요. 하찮게 생각되던 일들이 반짝반짝 빛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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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라는 한 장의 풍경 사진을 찍기 위해 우리는 이 땅에 잠시 머뭅니다. 아무리 지나쳐도 결코 과하지 않은 감사의 볕 아래 제 오래된 슬픔과 상처난 욕망과 쓰라린 절망을 말립니다. 당신도 내밀한 아픔과 고통스런 감정을 말리시면 좋겠습니다. 동화처럼 맑고 순전한 가을이 익어가는 그 한복판에 우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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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란 무엇인가
김영민 지음 / 어크로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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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 글이 구리다면 표현법 때문이 아니라 진부한 생각 때문이다. 생각의 게으름이 상투성과 피상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했고, 그러다보니 간간이 자기복제까지 하면서 먼지가 풀풀 나는 글을 쓰게 됐다. 낡고 해진 글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보기 좋게 차려진 음식에 손이 가듯 맛깔스럽게 쓰인 글은 읽는 이의 구미를 당긴다. 그러나 독자보다 작가가 더 많다는 요즘에도 자신만의 강고한 세계 위에 뚜렷한 색을 가진 작가를 찾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물론 글을 잘 쓰는 작가는 지금도 많다. 달리 작가겠는가. 그러나 예민할 정도의 섬세함과 적확하고 감.각.적.인 글을 쓰는 작가를 찾자면 시간이 조금 걸린다. 그런 류의 작가로 서울대 김영민 교수를 꼽고 싶다. 만일 그의 글이 이토록 흡입력이 있지 않았다면, 아직도 문장과 문장을 이어주는 것이 의식이 아닌 접속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내가, 독후감도 아니고 서평은 더더욱 아닌 조각 글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깔끔한 글에 무언가를 덧붙이는 것이 실은 무의미하고 군더더기라고 생각하니까.



김영민은 이 책에서 공부한다는 것의 본질에 관해 말한다. 덧붙여 공부가 주는 효과와 정신의 척추 기립근을 세우는 구체적인 방법도 알려준다. 아무리 어려워도 아이들에게 들어가는 교육비만큼은 최후의 보루로 남겨두는 우리나라에서 공부함에 대한 논의가 이토록 활발하지 않은 것은 기이한 현상이다. 학생들도 공부하러 대학에 가는 것이 아니라 대학을 가려고 공부하는 것 같으니 기이하기는 마찬가지다.


"한국은 일찍부터 입시에 정열을 바친다는 점에서 교육열이 강한 나라이지만, 진정 무엇을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다는 점에서 교육에 냉담한 나라이기도 하다. 마치 부동산에 관심을 쏟으면서도, 그 부동산에서 어떻게 삶의 희로애락을 쌓아 올릴지에 대해서는 냉담한 것처럼, 사람들이 입시와 부동산에 초미의 관심을 보이는 것은 그것들이 계층 이동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10~11쪽 프롤로그)


오래도록 교육은 계층 이동의 사다리 역할을 해왔다. 요즘 개천에서 용이 나는 사례가 드물어 지는 건 계층의 고착화 때문이다. 사회 곳곳에서 보여지는 진입 장벽의 강화로 계층 상승이 어렵게 되었다. 오늘날 이토록 입시에 많은 것을 쏟아붇는 것도 막차가 될지도 모른다는 절박함 때문이다.


"이처럼 젊은 날 입시와 취업으로 환원되지 않는 어떤 공부를 할 기회를 박탈하는 것은 그 화려한 시간에 대한 모욕이 아닐까. 마치 날씨가 너무 좋은 날 경치가 아름다운 길을 돌아 보지 않고 바삐 지나치는 것이 그 시간에 대한 모욕인 것처럼." (12쪽 프롤로그)


성과를 위한 공부는 라면과 비슷하다. 라면이 일시적 허기는 면케해 주지만 영양식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유용함의 공부는 무용함의 공부를 포괄할 수 없다. 또 아무리 좋은 영양식조차도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다. 자신을 위해 공부하는 것이지 공부에 맞출 이유가 없는데 오늘날 우리 아이들은 공부에 눌려 살고 있으니 너무도 측은하다.


『공부란 무엇인가』는 5부로 나뉘어져 있다. 전반 1,2부에서는 공부를 하기 위해 갖춰야 할 여러 요소들과 공부를 하며 사는 삶이 어떠한지를 다루고 있다. 후반부에서는 지식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내가 한 공부를 다른 이에게 명확히 전달하기 위해 알고 체득해야 할 과정을 다룬다. 앞서 언급했듯 글은 쫄깃하고 탄성 가득하며, 공부를 통해 변화될 수 있는 지점에 도달하기까지 섬세하고도 주의 깊게 독자를 이끈다.


개성 뿜뿜하며 재치 가득한 김영민의 글은 대개 이런 식이다. "나는 왜 공부를 하는가? 그저 살기만 할 수가 없어서.", "공부란, 무용해 보이는 것에 대한 열정인 동시에 모호함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다." 그 중 제일 빵 터졌던 글은 " '설레다'와 '설레발'의 관계는 무얼까. 설사는 항문이 오열하는 것일까. 영어마을을 만들었던 것처럼 영어감옥을 만들면, 학부모들이 앞 다투어 자식들을 감옥에 보내지않을까." 등이다.


할 것 많고 볼 것 많은 세상에 이미 살만큼 살았고 급한 대로 늙을 만큼 늙었는데 학생 때도 안 했던 공부를 해야 한다니 애통하고 답답한 일이다. 그런 내 심정을 아는 듯 김영민은 이렇게 써 놓았다. "다독도 해야 하고 정독도 해야 한다니, 그걸 언제 다해요? 이 짧은 인생에 책만 읽다가 죽으란 말인가요?"


그래 놓고는 이런 말로 시치미를 뗀다. "공부에 매진해본 사람만이 제대로 쉴 수 있습니다. 당겨진 활시위만이 이완될 수 있듯이, 공부라는 긴장을 해본 사람만이 휴식이라는 이완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공부를 못하는 것은 부끄럽지 않지만, 공부를 안 해서 제대로 못 쉬는 것은 부끄럽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할수록 쉬는 일은 쉬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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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누 똥 쌌어? 북극곰 꿈나무 그림책 69
이서우 지음 / 북극곰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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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강아지가 천사같은 얼굴을 하고 쳐다보는 사진을 보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한번 만져보고 싶고 키워보고 싶은 마음마저 들게 하는 그런 사진 말입니다. 그런데 예쁜 것과 실제 키우는 것은 많이 다른지, 그렇게 사랑스런 강아지들도 키울 수 없게 되는 일을 만나게 되나봅니다.


주인에게 사랑을 많이 받은 것 같지만 어찌된 사연인지 누군가의 집 앞에 버려진 강아지가 있습니다. 주인은 케이지 안에 강아지를 둔 후 이런 편지를 남기고 사라집니다.


"누누는 칭찬을 좋아해요. 특히, 똥을 잘 싸면 온 가족이 크게 칭찬해 주세요!"



똥마저 예쁘게 봐 준 주인은 무슨 사정이 있었길래 강아지와 헤어져야 했을까요? 그 사연을 알 순 없지만 그런 사람이라면 필경 좋은 주인을 찾았을 테고, 이 집이 가장 적합하다 여긴 듯합니다.


이 집엔 다 큰 자녀들과 육십을 바라보는 듯한 부부가 있습니다. 눈썹이 올라간 북극곰같은 아버지는 뭔가 못마땅 듯한 느낌이구요, 갑작스레 나타난 강아지 누누로 엄마는 당황스러운 듯한 느낌입니다. 한데 누누는 오자마자 눈치 없게 응가를 하려하네요.


아버지는 TV만 보고 있구요, 다른 식구들은 숨 죽인채 누누를 지켜봅니다. 온 힘을 다하여 누누는 응가를 합니다. 마침내 두 덩어리의 똥이 떨어지자, 세상에나 기다렸다는듯 식구들이 환호성을 지릅니다.


어느새 누누는 가족이 되었고, 어디를 가든 응가를 합니다. 아들의 결혼식장에서도, 딸의 졸업식장에서도요. 그 때마다 축제같은 분위기가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구요.


이제 어른이 된 아이들은 자신들의 삶을 위해 부모 곁을 떠납니다. 그 때마다 누누는 함께 합니다. 언제 그렇게 세월이 흘렀는지 엄마는 고운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누누는 여전히 두 덩어리의 똥으로 엄마를 기쁘게 하구요.


그러던 어느날 생각지도 못하게 엄마가 쓰러집니다. 아버지의 간호도 무색하게 엄마는 세상을 떠나고 아버지 곁에는 누누만 남습니다. 한결같이 뚱한 아버지는 변함없이 TV만 봅니다. 그 아버지가 어느날 누누의 똥을 보고 춤을 춥니다.


강아지에게 주인은 절대적 환경과 같고, 전부와도 같습니다. 어떤 주인을 만나느냐에 따라 생이 달라지니까요. 주인에 따라 처지가 달라지는 강아지를 볼 때면 애처롭기 짝이 없습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어디 사람과 사람만의 일이겠습니까? 『누누 똥 쌌어?』는 반려동물 천만이라는 시대에 강아지라는 생명체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 어떤 삶인지 생각케 하는 그림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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