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의 집 청소
김완 지음 / 김영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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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눈에 띄는 책 한 권을 발견했다. 득달같이 달려가 관련 정보를 보긴 했지만 더 이상 읽을 순 없었다.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였다, 더 이상 읽지 않은 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뒷걸음질쳤지만 이유는 빤 했다. 두려웠기 때문이다. 요즘 자주 접하는 이야기다. 쓸쓸하고도 가난한 죽음, 고독사에 관한 발화였다.

두어 달 전 어떤 프로그램에서 특수청소전문가가 출연해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홀로 세상을 떠난 이의 집을 청소하는 것이 그의 주된 일이라고 했다. 커다란 눈에는 온갖 것을 담아버린 사람의 슬픔과 안타까움, 눌러놓은 분노와 환멸이 어려있었다. 아무도 없이 홀로 죽은 이의 극한까지 간 외로움과 그들이 혹여 남겼을 얼마의 돈을 놓고 가족이 벌이는 추악함에 자신도 모르게 입은 상처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죽은 자의 집 청소』는 누군가 홀로 죽었을 때 자신의 일이 시작된다는 또 다른 한 특수청소전문가의 단상록이다. 혼자 죽어간 자의 흔적을 지우는 것이 그의 일이다. 흔적에는 죽은 이가 남긴 부패의 냄새와 육체의 조각들, 초대받지 않은 생명체도 들어있다. 그가 만나는 수많은 죽음은 각기 다른 이야기를 전하지만 홀로 맞이한 고독한 죽음이라는데는 변함이 없다.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알면 다 빠져나가요. 절대로 그 건물에 사는 누구도 알게 해선 안 됩니다." 22쪽

생전에도 죽은 이들은 누군가와 관계를 맺지 않았다. 자신을 유배한 채 있는 듯 없는 듯 숨어 살았다. 떠나고 난 후 누군가에게 보여질 자리를 생각하고는 집 안을 정리하고, 때로는 자신의 죽음에 들어갈 비용마저 계산해야했다. 이들의 죽음은 별 연관도 없는 사람들에 의해 발견되었고, 혹시라도 뒤따를지 모를 경제적 부담을 생각하는 가족에 의해 또 한번 버려졌다. 이들은 생전에 살았던 것처럼 그렇게 사라졌다.

죽음의 순간조차도 쓸쓸하기만 했던 사람의 마지막 잔재를 담당해야하는 사람은 무슨 운명을 타고난 것일까? 저자 김완은 자신은 누군가의 삶의 흔적을 지우는 일로 자신의 삶을 살 뿐이고, 그들은 살기 위해 그들 나름의 방식을 선택했으며, 운명을 맞이한 순간까지 죽을힘을 다해 자신의 삶을 살았을 뿐이라 말한다. 그들의 애처롭고 고독한 죽음의 과정 또한 하나의 삶이었다며 담담히 순응한다.

"이 집을 치우며 지독한 고독을 보았다면 그것은 결국, 내 관념 속의 해묵은 고독을 다시금 바라본 것이다. 이 죽음에서 고통과 절망을 보았다면, 여태껏 손 놓지 못하고 품어온 내 인생의 고통과 절망을 꺼내어 이 지하의 끔찍한 상황에 투사한 것일 뿐이다. 젊은 나이에 미쳐서 스스로 돌보지도 못하고 죽어버린 한 불행한 남자를 보았다면, 마치 인생의 보물인 양 부질없이 간직해 온 내 과거의 불행함을 그 남자에게 그대로 전가하고는, 나는 결백하답시고 시치미 떼고 있을 뿐이다. 나는 언제나 나 자신을 바라보듯 타인과 세상을 바라보는 것 같다. 그것이 내가 이 지하 방에 관해 알게 된 유일한 진실이다." 101쪽

고독사는 이제 저만치 떨어진 누군가의 문제가 아니라 이 시대의 우리들이 직면해야 될 문제가 됐다. 예전엔 홀로 사는 노인들이 맞닥뜨려야 할 슬픈 미래이자 현실이었지만 요즘엔 나이나 소득과 상관 없이 일어나는 범시대적 현상이다. 이는 1인 가구의 증가 때문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9년 우리나라의 1인 가구수는 이미 600만을 넘어섰다. 이제 고독사는 외롭고 쓸쓸한 죽음이 아니라 관계망에서 떨어져 나간 이들의 고립사이다.

살아있는 자에게 죽음은 언제나 생경하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균등하며 엄정하다. 이 책은 낯설기만한 죽음이 언젠가 내게 올 것을 나직하게 전하며 죽음이라는 화두를 통해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게 한다. 또한 어떤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현재가 더없이 소중한 내 삶임을 자각하게 한다. 흔적 없이 사라져간 이들의 고단하고 슬픈 이야기가 생의 덧없음과 비감에 머물지 않고 아픈 숙제가 되기를 조용히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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