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궁전 리리 이야기 1
이형진 글.그림 / 시공주니어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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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책 속엔 내 어린 동경이 숨어있다. 책을 펼칠 때마다 나타나는 새로운 세계는 내게 경탄이라는 선물을 안겨주었다. 그래서 늘 기대를 가득 담은 채 책을 펴게 된다. 글과 그림이 어울어진 동화책을 본다는 건 대단한 기쁨이다. 글만도 아니며 그림만도 아닌 두 세계의 조화는 내 상상력을 거침없이 확장시킨다. 그 열려진 세상에 발을 디딜때 나는 또다른 내가 된다. 책 속에 빨려 들어간 나는 책 세상의 곳곳을 마음껏 즐기고 음미한다. 그 맛있고 황홀한 여정에 내 아이도 동참시키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맛보아야만 한다. 냠냠, 이 책은 무척 맛있구나.


오래전 부터 나는 우리나라에는 왜 앤서니 브라운이나 존 버닝햄, 데이빗 새논이나 마르쿠스 피스터 같은 작가들이 나오지 않는지에 대해 의아해했다. 글과 그림이 한 사람에게서 나온다는게 쉽지 않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이를 위해서는 두 부문을 동시에 다룰 수 있는 작가의 탁월한 재능이 전제되어야 하고 문화적인 토양 또한 무시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그 때가 오기를 기다렸다. 기쁘게도 그런 조짐이 보이더니 좋은 책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호백과 이억배, 권윤덕과 조은수, 백희나가 등장했다. 그 대열에 이형진이 오래전 합류했다는 것을 나는 최근에서야 알았다.

나는 이형진을 그림으로 먼저 만났다. 그의 그림에는 위트가 있었고 순간 순간의 상황이 기막히리만큼 정확히 표현되어 있었다. 그의 그림이 들어가 있으면 어떤 책이든 글이 살아나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들의 장난기어린 모습이 사랑스레 표현된 그림을 보노라면 뭔가 모를 풍성함이 전해졌다. 그래서 이형진이란 이름은 내 안에 소중한 기억처럼 남아 있었다.

                                          

아기였던 어린 딸이 이제 스스로 글을 읽을수 있을 무렵, 나는 이형진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어린 딸과 함께 그의 그림이 들어간 글을 읽고 또 읽으며 깔깔거렸던 시간들은 내 삶까지도 포근하게 만들었다. 딸은 그림속의 모습을 따라하며 나를 웃겼다. 그런데 이번에 이형진이 자신의 이름으로 책을 냈단다. 내 가족의 일인양 기뻤다. 알고보니 그는 이미 자신의 이름으로 책을 몇 권이나 낸 작가였는데...... 나만 몰랐었던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내 기쁨이 반감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 자신의 것으로만 온전히 채운 책은 어떤 책일까? '돼지 궁전'을 받게 된 날은 고대하던 소식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그렇게 내게 설레는 날이었다.

                                   

 

책을 펼쳤다. 그 안에는 이형진의 다부진 결의가 보였다. 세상을 꿈처럼 달콤하게만 그리지 않겠다는 그의 의지는 면면에 드러나 있었다. 많고 많은 동물 중 돼지를 택한 것도 그랬다. 또한 결손가정의 어린 아이를 주인공으로 택하여 어른들의 시선에 완전히 노출시킨 것도 그랬다. 그는 무모하리만큼 용감했고 삶에 정면도전하겠다는 자신의 의지를 굳건히 보여주었다.  

                           

자신을 지킬 수 없는 어린아이가 말의 횡포 속에 던져졌을 때 나올 수 있는 자구책이란 가면 밖에 없었다. 그 가면 속에 자신을 숨긴 어린 리리의 모습이 애처로웠다. 그러나 리리의 가면은 얼굴만 가릴 뿐 리리 자신까지 덮을 수는 없었다. 리리는 외할머니네서 사귄 유일한 친구인 수미의 할머니를 통해 가면을 벗게 되는 전기를 맞게 된다. 수미 할머니의 이중성은 리리가 자신을 똑바로 보게 되는 거울이 되었다. 비록 자신이 골칫덩어리라는 말을 듣지만 그것은 자신의 환경탓이지 리리의 잘못은 아니었다. 리리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봐주지 못하는 어른들에게 이제 자신을 감추지 않고 보여주리라 마음먹는다. 리리가 벗어던진 가면은 리리의 아픈 삶이었고 이제 리리는 자신의 얼굴로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 보리라 다짐한다.

어른들의 시선에 홀로 던져진 어린 리리의 이야기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생각없이 던지는 어른들의 말에 상처 입은 어린 리리가 안스럽다. 버림받은 환경만으로도 충분히 힘든 아이일텐데 더하여 어른들의 따가운 시선까지 견뎌야하는 리리가 너무 측은하다. 그러나 리리는 당차게도 자신을 더이상 가두지 않으리라 마음먹고 스스로에게 용기를 불어넣는다. 그리고는 마음껏 눈물을 흘린 다음 큰 숨을 쉬며 가만히 중얼거린다. 리리의 중얼거리는 소리에 내 귀가 쫑긋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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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 2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 2
신경림 지음 / 우리교육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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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도 돌보지 않는 길가의 꽃들이 내 어릴 적에는 제법 많았다. 그런 꽃 중의 하나가 채송화였다. 채송화는 예쁜 꽃이라기 보다는 작고 초라한 꽃이다. 초등학교 5학년 무렵 집에서 떨어져 있는 동네의 학원을 다니게 되었다. 오가는 길에 군데군데 채송화가 피어 있었다. 그 동네는 집마다 담 밑에 채송화를 심었다. 어린 마음에도 너무 작고 낮게 핀 꽃이 안돼 보였다. 그러나 초라함과는 별도로 앙증맞게 피어있는 그 느낌이 괜시리 좋아 학원 가는 길에 가만히 주저앉아 채송화를 보았던 기억이 있다. 지루한 길 위의 내게 채송화는 길동무가 되어 주었다.

 

내게 채송화는 작고 초라한 것들의 대명사다. 그런데 너무도 하찮아서 눈물이 핑 돌 것 같은 그 짠함이 어떤 빼어난 것보다 마음을 어루만질 때가 있다. 보잘 것 없는 초라함이 마음을 깊이 움직이는 경험은 자연의 소박함 속에서만 맛볼 수 있다. 얼마 전 신경림 시인의 '시인을 찾아서 2편'을 통해 그런 시인을 만났다. 이미 고전이 된 시를 위주로 선정했던 1편과 달리, 2편은 1960년대부터 90년대에 이르는 시인을 찾아 그들의 시를 소개하고 있다. 시인들 가운데는 친숙한 사람도 있고 처음 알게 된 시인도 있었다. 김지하 시인을 시작으로 정희성, 김종길, 도종환, 조태일, 강은교, 고은, 이성부, 이해인, 정호승, 김용택, 안도현등 23명의 시인이 신경림의 초대를 받았다.

 

이 시선집을 통해 서정춘 시인을 만나게 됐다. 신경림은 서정춘을 '균열이 심한 물사발 혹은 마디 굵은 대' 같다고 표현하며 그와의 첫 만남을 소개했다. 1970년대 초 신경림이 한 출판사에서 임시직으로 교정일을 하고 있을 때, 서정춘 또한 출판사와 인쇄소를 오가며 임시일용직으로 잔일을 하고 있었다. 허름한 옷에 구부정한 그를 보고 신경림은 시인이라고 생각조차 못했는데, 두 달여의 일을 마치고 갖게 된 회식자리에서 사장이 서정춘을 시인으로 소개했단다. 그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초라한 자리의 일을 서정춘은 30년간 성심 성의껏 다하고 그 출판사에서 정년 퇴직했단다.

 

 

신경림은 그가 시집을 냈을 때 해설을 써주기도 하면서 그와의 인연을 오래도록 이어왔단다. 나는 처음 그의 시를 보고 단박에 좋아져 버렸다. 특히 그의 '30년 전'이란 시를 봤을 때는 울컥 울음이 솟아올랐다.

30년 전,

-1959년 가을-

 

어리고 , 배고픈 자식이 고향을 떴다

아가, 애비 말 잊지 마라

가서 배불리 먹고사는 곳

그곳이 고향이란다

 

균열

 

내 오십 사발의 물사발에

날이 갈수록 균열이 심하다

쩍쩍 줄금이 난 데를 불안한 듯

가느다란 실핏줄이 종횡무진 짜고 있다

아직 물 한 방울 새지 않는다

물사발의 균열이 모질게도 아름답다

 

봄, 파르티잔

 

꽃 그려 새 울려 놓고

지리산 골짜기로 떠났다는

소식

 

신경림은 그를 절창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는 시인이라고 했다. 나는 그가 사람들의 평가와 스스로의 인색한 평가에도 불구하고, 시라는 대의를 위해 자신을 무섭게 다구치며 걸어온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무섭도록 힘겨운 어린 시절을 보낸 후 이미 초라해져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도 그 상황에 쓸려가지 않고 꿋꿋이 시의 길을 걸어온 그를 통해 소박한 야생화의 아름다움과 자생력을 보는 듯 했다.

 

이어서 만난 시인은 김용택이었다. 예전 김용택의 글에서 그가 스무 살 이전까지 제대로 된 책의 세례를 받지 못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지나가는 책 장사에게서 책을 받아 그 때부터 책을 읽고 시를 썼다는 고백같은 글이었다. 이런 사실에 나는 어린아이처럼 고무됐다. 꾸준히 책을 읽으면 글도 잘 쓸 수 있구나 하며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하루

 

하루 종일 산만 보다 왔습니다

하루 종일 물만 보다 왔습니다

환하게 열리는 산

환하게 열리는 물

하루 종일 물만 보고 왔습니다

하루 종일 산만 보다가 왔습니다

 

그 여자네 집

 

가을이면 은행나무 은행잎이 노랗게 물드는 집

해가 저무는 날 먼데서도 내 눈에 가장 먼저 뜨이는 집

생각하면 그리웁고

바라보면 정다웠던 집

어디 갔다가 늦게 집에 가는 밤이면

불빛이, 따뜻한 불빛이 검은 산속에서 깜빡깜빡 살아 있는 집

그 불빛 아래 수를 놓으며 앉아 있을

그 여자의 까만 머릿결과 어깨를 생각만 해도

손길이 따뜻해져오는 집

.

.

중략

.

.

그 여자가 꽃 같은 열아홉살까지 살던 집

우리 동네 바로 위동네 가운데 고샅 첫집

내가 밖에서 집으로 갈 때

그 집 앞을 다 지나도록 그 여자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저절로 발걸음이 느려지는 그 여자네 집

지금은 아,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집

내 마음속에 지어진 집

눈 감으면 살구꽃이 바람에 하얗게 날리는 집

눈 내리고, 아, 눈이, 살구나무 실가지 사이로

목화송이 같은 눈이 사흘이나

내리던 집

그 여자네 집

언제나 그 어느 때나 내 마음이 먼저

있던 집

여자네

생각하면, 생각하면, 생.각. 을. 하. 면......

 

김용택이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풀어놓은 시들이다. 신경림은 '하루'를 향해 김용택의 게으르고 느린 미가 고스란히 담긴 시라 평하며 그의 삿됨 없음을 칭찬했다. '그 여자네 집'은 그의 삿됨 없음이 가장 잘 드러난 시이다. 아마 김용택은 그 여자를 짝사랑 한 것 같다. 눌러도 눌러지지 않고 끄려해도 꺼지지 않는 마음이 고스란히 읽혀진다. 얼마나 애타고 보고팠을지 너무도 명징히 그려진다. 밖에 나갔다 돌아와 그녀가 있을 거라는 상상만으로도 불이 지펴지는 그 마음이 서럽고 애잔하다. 참으로 뚝배기 같은 사랑이다. 어떤 채색도 하지 않은 사랑은 이뤄지지 않았기에 시로 쓰여질 수 있었다. 지난 날의 애틋했던 사랑은 아직도 그 안에 남아있다. 그래서 일회용 사랑이 넘실대는 이 시대에 태워도 태워도 남아있는 사랑의 참 의미를 전해주고 있다.

 

김용택의 시가 투박하고 정직한 시였다면 이선관의 시는 소박하고 정겹다. 신경림은 그를 가리켜 '시를 가지고 세상의 불구를 바로 잡는 시인'이라 했다. 발음과 동작이 불편하다는 표현으로 보아 뇌성마비를 갖고 있는 듯 했다. 그러나 그는 누구보다 열린 마음과 선량한 눈, 그리고 얼굴 표정으로 자신의 소리를 전달하고 있었다. 

 

                      

 

만약 통일이 온다면 이렇게 왔으면 좋겠다

 

여보야

이불 같이 덮자

춥다

만약 통일이 온다면 이렇게

따뜻한 솜이불처럼

왔으면 좋겠다

 

맑고 고운 시다. '여보'라는 말이 없었다면 어린 아이가 썼다해도 믿겨질 정도다. 시인의 마음이 이 같을 것 같다. 한국에서 장애를 가지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나는 알고 있다. 예전에 장애자 관련 프로그램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장애아를 둔 엄마들의 마르지 않는 눈물과 아픔을 나는 3년이나 지켜 보았다. 모른 척해도 되련만 굳이 티를 내어, 안그래도 힘든 사람들을 더 힘들게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그래서 시인이 어떤 삶을 살았을지 짐작이 간다. 그런데 시인의 시는 부모의 따뜻한 배려와 보호속에서 자란 어린 아이처럼 상처 하나 느껴지지 않는다. 이런 마음을 갖기 위해 얼마나 힘든 나날을 보냈을까.

 

어머니 7

 

저 녀석들의 엄마가 제 울타리에서 뛰쳐나간 지가

어언 3년째가 됩니다

그 동안 앞으로도 그러하겠지만

두 아이에게

엄한 아버지가 되어야 하고

정이 많은 아버지가 되어야 하고

가루비누를 만지는 파출부가 되어야 하고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스승이 되어야 하고

서투른 주방장이 되어야 하고

몇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아침저녁 부엌에 들어갈 때마다

우리들 곁을 떠난 그 여자를 향해

씨발 X 씨발 X 하면서

미운 감정이 가실 줄 모랐지만

.

.

후략

 

자신과 어린 자식들을 두고 떠나버린 아내를 향해 쓴 시다. 그는 아내를 향해 육두문자를 쓴다. 그런데 뒤에 가서는 건강한 아이들을 낳아준 것만으로도 고마운 마음을 갖게 된다는 고백을 한다. 아내를 미워했지만 충분히 이해한다는 느낌이 시 안에 배어있다. 그래서 그의 시는 폭이 넓다. '어머니 7'의 전문을 읽고 싶어 인터넷 검색을 했는데 찾기가 힘들었다. 그 와중에 이선관 시인이 2005년에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의 시를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를 기리는 모임을 갖고 있다는 기사도 보게 됐다. 살아있는 자들이 시인을 향해 돌려드리는 향연이다.

 

시는 생을 향한 노래며, 사랑의 편지며, 내밀한 자기 고백이다. 그 시에 시인들의 삶과 자신의 삶을 얹어 신경림은 시인들의 세계를 풀어놓았다. 좋은 시를 향한 끝없는 열정과 자신만의 시를 위해 일생을 매달린 시에 나는 감동을 받았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이 세 시인은 기억에 남았다. 작고 하찮기에 누군가의 관심을 오랜 동안 끌지 못했고, 그랬기에 아픔이 무엇인지를 그들은 알았다. 그들은 남들이 자신을 알아주기를 감히 꿈꾸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들의 삶을 시어에 옮겼을 때 그 말들은 살아서 각자의 울림으로 소박한 꽃을 피웠다. 더러는 정직함으로, 더러는 애잔함으로, 더러는 따뜻함으로.

 

그 옛날 공부하러 간다며 가방을 들고 타박타박 길을 걷던 나를 채송화는 한결 같은 소박함으로 반겨주었다. 주변에 다른 꽃들도 분명 있었을텐데 내 기억에 남아있는 꽃은 오로지 채송화 뿐이다. 챙겨주는 사람 없이도 채송화는 오무린 입을 스스로 벌렸고, 그 작은 꽃잎으로 주변을 환하게 비추었다. 나도 그 작은 잎의 하나가 되어 지금 있는 자리에서 소박한 생으로 꽃을 피우고 싶다. 그 시절의 채송화처럼.

 

사진 출처: http://blog.daum.net/weebal2004/15964109

사진 출처: 오 마이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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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공 위의 수학자
강석진 지음 / 문학동네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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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은 참 차가운 녀석이다.
푸근하고 정감도 있으면 좋으련만 어찌 그리 찬바람이 부는지.
이 녀석과 사귀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깍쟁이같은 녀석.
너에게 쉬크라는 말은 안 붙여줄거다.
내게도 자존심이 있으니까 말이야.

그런데 어떤 인연이 닿아서였는지 이 녀석의 매력에 끌려버렸다.
사귀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수학은 한 번 정을 줬다하면 이것 저것 다 주는 좋은 녀석이다.
알고보면 외로운 녀석.
사람들이 자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며 상처 꽤나 입은 모습을 보인다.

너무도 고독한 세월을 보냈다며 내게 하소연 한다.
매니아로는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고.
이제는 자신에게도 대중적 사랑이 필요하다며 눈물까지 글썽인다.
너 많이 힘들었구나.
그래, 내가 너의 좋은 이 되어줄게.
힘내.

이렇게 해서 나는 수학과 친해지게 되었다.
진입장벽이 높아서 그렇지 막힌 데만 뚫리면 수학은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다.
물론 내게는 어려울 때마다 쪼르르 달려갈 선생님이 계셔 부담없이 친해질 수 있었다.

수학이 주는 좋은 선물 중 하나는 명징함이다.
그 깔끔함이라니.
딱 떨어지는 그 맛에 한번 취하면 웬간해선 헤어나지 못한다.
세상 어디에 이런 시원한 맛이 있는가.

게다가 수학은 영원한 신뢰를 준다.
한 번 수학적으로 증명된 것은 세상이 변해도 바뀌지 않는다.
시간을 넘어서는 그 엄청난 신뢰성을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세기의 난제들이 풀리는 희열의 자리.
가설이나 추론이 법칙으로 증명될 때의 그 짜릿한 자리.
나도 참석해 보고 싶다.

그런 멋진 세계의 참 맛을 알기 원한다면 수학사나 주변부의 이야기로 시작하길 권한다.
부담도 없을 뿐더러 접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신기한 체험도 할 수 있다.
게다가 그 안내자가 수학이라는 골 아픈 친구였다니 놀랍지 않은가.

이 같은 새로운 관계 설정의 인도자로 강석진 만큼 적격인 사람이 없다.
강석진은 서울대 수학과를 나와 미국 예일대에서 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후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 전임 강사, 버클리 수리 과학 연구소 연구원,
노트르담 대학교 조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대 수리과학부 교수로 있다.
2002년 고등과학원 재직시 홍진과 공동으로 저작한 '양자 그룹과 결정 기저 소개'는
미국 수학회에 의해 MIT, 예일대, 위스콘신대의 대학원 교재로 채택됐으며,
2009년에는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을 수상했다.

'축구공위의 수학자'는 수학자인 그가 쓴 스포츠 에세이집이다.
따라서 수학에 대한 이야기는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러나 수학자가 보는 시선이 곳곳에 녹아있다.
쉽게 읽히고 재미도 있지만 읽고나면 가볍지 않은 감동도 있다.
이 책을 다 읽었다면 그가 쓴 2부를 읽고, 이어 깊이있는 책읽기로 들어가도 된다.
우리의 편견을 없앨 수만 있다면 세상은 넓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수학 책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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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우, 느낌 있다
하정우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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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사적인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은 우리가 이중적 삶을 살고 있다는 표지이다. 밖으로 보여지는 나와 실제 나의 간극이 클 수록 우리의 마음은 편하지 않다. 그런 삶의 양상 속에 사는 사람들이 배우일지 모른다. 사람들은 그들을 자신들이 그려놓은 틀에 맞추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배우 하정우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며 책 한 권을 들고 찾아왔다.

 

 


배우는 일반인과는 뭔가 달라도 다른가 보다. 저 편안한 듯한 자세에도 치밀한 계산의 흔적이 보이니 말이다. 그가 펴낸 책이다. '하정우, 느낌있다.' 하정우에게 '느낌있다'는 말은 말로 표현되지 않는 어떤 좋은 것을 가리킬 때 쓰인다. 그러므로 이 제목은 '책을 읽으면 하정우에 대한 어떤 느낌이 생길 것'이라는 기대와 복선이 담고 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책을 읽으면 알게 되지만 막상 읽다보면 놀라게 된다. '이런 면이 하정우에게 있었단 말인가'하고 말이다.

이 책은 화가 하정우, 배우 하정우, 자연인 김성훈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고백하자면 이 책을 만나기 전까지 나는 하정우에 대해 알고 있는게 몇 없었다. 굳이 들자면 중견 탤런트 김용건의 아들이라는 것, 그가 출연한 영화들에 관객이 많이 들었다는 것, 자신만의 세계관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것 정도였다. 하정우를 알기 전 내 느낌을 그의 그림으로 표현하면 그는 이런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느껴지는 하정우는 이런 사람이다.


영화배우 하정우의 본체가 확연히 드러나는 그림이다. 본인도 그림의 제목을 'ME'라 했다. 시선을 먼 곳에 둔 채 자신을 결코 드러내지 않는 그의 단단한 모습이 느껴진다. 사람 좋은 웃음을 웃지만 자신이 정해놓은 지향점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의 느낌이 강하게 묻어난다.

 


그의 대본이다. 깜짝 놀랐다. 어쩌면 이렇게 용의주도하게 준비하고 연기 할 수 있단 말인가. 그의 연기가 이런 성실함과 노력에서 나왔던건가. 연기는 원래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이 아니던가. 이런 의문에 그는 자신은 무당이 아니라며 딱 잘라 답한다. 예술혼에 빙의되어 나오는 연기를 자신은 지양한다며 연기는 현장에서 순간적 감정으로 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니라는 자신의 연기관을 피력한다.


                                 

그에게 대본은 교과서다. 그렇다면 화가로서의 하정우는 어떨까. 그는 재미있는 화가다. 그의 그림은 무척 단순하며 귀엽다. 마치 어린애들이 그리는 그림처럼 기교도 없고 유쾌하다. 일부러 전문적 데생법을 배우지 않았다 할 만큼 그림에 대한 그의 주관은 뚜렷하다.

                      

그는 내면의 불덩어리를 표현하는 화가이기도하다. 그가 화가로 변신하게 된 것은 촬영을 마치고 온 후 가슴 속에 남아있던 불덩어리를 어찌할 수 없게 되면서부터였다 한다. 감독의 페르소나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던 자신만의 세계를 그림으로 토해내며 불덩어리를 식혔다 한다. 하정우, 대단하다.

                                           

그의 그림은 연기를 대하는 그의 자세를 나타낸다. 최근 광대를 주로 그리며 연기자인 자신을 하정우는 행복하게 지켜보고 있다. 그가 그리는 광대는 그래서 진짜 웃는다. 얼굴은 웃고 눈은 우는 광대가 아니다. 그의 행복한 광대를 보니 우리에게도 그 행복이 전염될 것 같다.

                                          

마지막으로 그가 전해주는 인간 김성훈의 이야기는 편안하다. 자연인 김성훈이 어떤 사람인지, 하정우에게 그 보호막이 왜 필요한지 담담하게 그는 서술한다. 배우이자 화가로 하정우가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인간 김성훈의 추억이 있어서였다며.

 

자신을 드러내 보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 쉽잖은 작업을 하정우가 했다. 그 작업이 없었다면 하정우에 대한 이런 관심이 생겨날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하정우 안에 담겨진 많은 생각과 고민의 흔적들을 보니 하정우가 더 가깝게 느껴진다. '당신, 결코 느낌만 있는게 아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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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익은 세상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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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이 만들어내는 자리는 무겁다. 휘황찬란한 광채와 세련됨이 교차하며 빚어내는 그들의 변주는 문명의 변덕스러움을 기막히게 드러내며 우울함을 자아낸다. 인간을 위한 그 자리에 한 부류의 인간은 희생양이 되지만 그들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듯 취급된다. 그러므로 문명의 냉혹한 본질을 아는 사람은 적다. 본질을 안다손 치더라도 문명의 혜택을 맛보았다면, 수혜자의 자리를 빼앗길까 두려워 입을 다물게 된다. 이제 극소수만이 남는다. 그러나 진실을 아는 사람들은 그 자리를 벗어날 수 없고, 벗어난다 해도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사람은 찾기 힘들다. 그들은 불청객이기 때문이다.

그 불청객에 대한 이야기를 노작가 황석영이 들려준다. 이미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은 그들의 이야기를 굳이 들려주려는 의도는 무엇일까? 밀려난 난민들의 이야기는 대강 윤곽이 그려진다. 차라리 듣지 않는 것이 편할 것 같다. 진실은 도망갈 틈을 주지않고 구석으로 몰것이므로 애시당초 줄행랑을 치는 것이 상책이지 싶다. 황석영의 입을 통해 나오는 이야기는 날선 칼보다도 예리할 것이다. 들어야만 한다면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노작가의 글은 이제 전같지 않다. 목에 핏대도 서지 않았으며 서슬 푸른 소리도 있지 않다. 세월의 갖은 풍상을 견뎌낸 오래된 나무 같이, 황석영은 주목하지 않으면 있는지 조차 모를 조심스러움으로 다가오고 있을 뿐이다. 시간의 채찍과 아픔의 시간을 견딘 자의 낮춘 소리에 지나가던 행인마저도 귀를 귀울일 태세다. 그러므로 이 책은 할아버지의 전래 동화다. 할아버지의 입을 통해 예전의 서울은 지금과는 다른 모습으로 등장하고 새롭게 복원된다. 저잣거리의 뛰어난 무사였건만 한창 나이에 이방인으로 세계를 떠돌아야만 했던 할아버지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고 많은 장소 중 쓰레기섬을 택했을까? 쓰레기섬에서 건져갈 만한 것이 그의 표현대로 과연 있기는 한 걸까?

쓰레기섬 난지도. 난꽃과 영지 버섯이 자랐던 섬이며, 섬의 모양이 물에 떠있는 오리와 비슷해 오리섬, 압도로도 불렸던 섬이다. 꽃이 만개한 섬의 모습이 하도 예뻐 사람들은 꽃섬으로도 불렀다. 그런데 쓰레기 매립장으로 지정되면서부터 난지도는 사람들의 눈쌀을 찌푸리게 하는 섬이 되고 말았다. 난지도에 대한 아름답고 소중한 기억은 쓰레기 매립장이 되면서 사라지게 되었고 이제 그 섬은 있으나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섬이 되고 말았다. 

 

'낮익은 세상'은 그 쓰레기 섬에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주인공은 16살처럼 보이는 14살짜리 소년 딱부리다. 딱부리의 아버지는 삼청대에 끌려가 돌아올 기약도 없고 홀로 남게된 젊은 엄마는 생계를 위해 난지도행을 선택한다. 아버지의 친구인 아수라가 구역 책임자로 있는 곳에 딱부리와 엄마는 정착하게 되고, 쓰레기 냄새가 코를 찌르는 그곳에서 모자는 삶을 꾸려간다. 자연스레 아수라는 엄마와 같이 살게 되고 그의 아들 땜통은 딱부리의 동생이 된다.

'낯익은 세상'은 글의 구성이 단순하며 평이한 서술로 쉽게 읽힌다. 작가의 표현대로 감동을 위한 장치를 넣지 않았다는 말이 실감날 만큼 잔잔하고 덤덤하다. 만약 감동에도 어떤 장치가 필요하다면 그건 순간적 감정의 고양일 뿐이다. 작가는 그런 치졸한 방식을 선택하지 않았고 우리 또한 그런 방식에 감동을 받을 만큼 어리석지 않다. 그러나 우리의 감정이 덧없고 하찮을망정 잠깐의 순간마저도 이제는 쉽게 오지 않는다. 그만큼 우리는 무디어졌고 무관심해졌으며 약아졌다.

'낯익은 세상'에는 다의적으로 해석되는 요소들이 몇 몇 있다. 우선 '낯익은' 이란 3음절은 낯익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강조하게 위해 반의적으로 쓰이고 있다. 아무런 희망도 없는 삶이라는 듯 매일 같이 벌어지는 싸움질과 술판, 도박과 밀약등이 낯익다면 그 세계는 어떤 세계일까? 하루도 조용하지 않은 날들 속에서 아이들은 세상에 대한 환멸과 위악만을 배울 뿐이다. 그러나 작가는 낯익으면 안되는 이 세상에 우리가 너무 익숙해져 있으며 깊숙이 개입돼 있다는 사실도 동시에 알려준다. 그렇다. 우리는 이런 이율배반적인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 '쓰레기'는 '낯익은' 것을 두드러지게 하는 중심 제재다. '쓰레기'는 근대 도시의 욕망과 산업화가 만들어낸 부산물이며, 세계 어디를 가도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뒤안길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소재다. '쓰레기'는 쓰레기 같은 세상과 그에 빌붙어 사는 인간들을 조명하는 망원경이기도 하다. 그런 곳에서 쓰레기 더미를 뒤져야 살 수 있는 사람들이 벌이는 갖가지 형태의 삶의 모습은 감추고 싶을 뿐이다. 도시의 위정자들에게 그들은 실제 있어도 있는 것이 아니며 감춰도 명분이 서는 그런 대상에 불과하다.

'쓰레기'는 말만 들어도 시큼한 냄새와 더불어 고개를 돌리게 하는 단어다. 그러나 나는 쓰레기장 난지도에서 서러웠으나 아름다웠던 지난 날을 보았고, 덧붙여 누추한 현실을 보았으며, 멋지게 위장된 미래를 보았다. 위용이 너무도 당당해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 같고 영구할 것 같지만, 때가 되면 무너지고마는 미래 말이다. 그러나 미래가 어떨지언정 또 언제 다가올지언정 나는 쓰레기 더미 위의 삶에서 희망을 읽는다. 그뿐 아니라 비루한 현실의 자리에서 절망의 노래가 희망의 노래로 바뀌는 변곡점 또한 발견한다.

 

자기 남편도 기다리지 못해 다른 남자의 동거녀가 되었던 딱부리의 엄마가 교도소에 들어가 언제 나올지 모르는 동거남의 자식을 괄시하지 않은 데서 희망의 싹을 보았다. 게다가 웬간한 어른보다도 영악한 딱부리가 쓰레기 더미에서 주운 금붙이를 만물상 할아버지에게 주는 모습을 보고 박수라도 치고 싶었다. 특히 딱부리가 땜통을 가슴으로 품어주는 이야기를 보면서는 가슴이 뭉클해졌다. 낮고 질퍽한 삶의 자리에서 희망을 보는 것은 감격적인 경험이었다. 

우리의 희망은 현대 문명이 주는 편리함과 안락을 통한 향유에 있지 않다. 그 희망은 때론 보잘 것 없고 하찮으며 가치를 매길 수도 없는 마음 자리에서만 나온다. 언제든 변할 수 있고 가장 믿을 수 없는 그 마음 자리를 나는, 실날 같은 희망으로 붙잡으려 한다. 때론 뒤통수를 맞더라도 그 희망을 버리지 않겠다는 다짐이야말로 이 책이 내게 주는 선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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