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공 위의 수학자
강석진 지음 / 문학동네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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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은 참 차가운 녀석이다.
푸근하고 정감도 있으면 좋으련만 어찌 그리 찬바람이 부는지.
이 녀석과 사귀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깍쟁이같은 녀석.
너에게 쉬크라는 말은 안 붙여줄거다.
내게도 자존심이 있으니까 말이야.

그런데 어떤 인연이 닿아서였는지 이 녀석의 매력에 끌려버렸다.
사귀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수학은 한 번 정을 줬다하면 이것 저것 다 주는 좋은 녀석이다.
알고보면 외로운 녀석.
사람들이 자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며 상처 꽤나 입은 모습을 보인다.

너무도 고독한 세월을 보냈다며 내게 하소연 한다.
매니아로는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고.
이제는 자신에게도 대중적 사랑이 필요하다며 눈물까지 글썽인다.
너 많이 힘들었구나.
그래, 내가 너의 좋은 이 되어줄게.
힘내.

이렇게 해서 나는 수학과 친해지게 되었다.
진입장벽이 높아서 그렇지 막힌 데만 뚫리면 수학은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다.
물론 내게는 어려울 때마다 쪼르르 달려갈 선생님이 계셔 부담없이 친해질 수 있었다.

수학이 주는 좋은 선물 중 하나는 명징함이다.
그 깔끔함이라니.
딱 떨어지는 그 맛에 한번 취하면 웬간해선 헤어나지 못한다.
세상 어디에 이런 시원한 맛이 있는가.

게다가 수학은 영원한 신뢰를 준다.
한 번 수학적으로 증명된 것은 세상이 변해도 바뀌지 않는다.
시간을 넘어서는 그 엄청난 신뢰성을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세기의 난제들이 풀리는 희열의 자리.
가설이나 추론이 법칙으로 증명될 때의 그 짜릿한 자리.
나도 참석해 보고 싶다.

그런 멋진 세계의 참 맛을 알기 원한다면 수학사나 주변부의 이야기로 시작하길 권한다.
부담도 없을 뿐더러 접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신기한 체험도 할 수 있다.
게다가 그 안내자가 수학이라는 골 아픈 친구였다니 놀랍지 않은가.

이 같은 새로운 관계 설정의 인도자로 강석진 만큼 적격인 사람이 없다.
강석진은 서울대 수학과를 나와 미국 예일대에서 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후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 전임 강사, 버클리 수리 과학 연구소 연구원,
노트르담 대학교 조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대 수리과학부 교수로 있다.
2002년 고등과학원 재직시 홍진과 공동으로 저작한 '양자 그룹과 결정 기저 소개'는
미국 수학회에 의해 MIT, 예일대, 위스콘신대의 대학원 교재로 채택됐으며,
2009년에는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을 수상했다.

'축구공위의 수학자'는 수학자인 그가 쓴 스포츠 에세이집이다.
따라서 수학에 대한 이야기는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러나 수학자가 보는 시선이 곳곳에 녹아있다.
쉽게 읽히고 재미도 있지만 읽고나면 가볍지 않은 감동도 있다.
이 책을 다 읽었다면 그가 쓴 2부를 읽고, 이어 깊이있는 책읽기로 들어가도 된다.
우리의 편견을 없앨 수만 있다면 세상은 넓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수학 책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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