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언덕
한나 얀젠 지음, 박종대 옮김 / 비룡소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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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쯤이면 아프리카를 비극이란 단어와 결부시지키 않고 떠올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사람을 무섭게 흔드는 모든 것이 아프리카에 있었다. 내전과 살상, 기아와 에이즈. 그 중에서도 가장 잔혹한 비극은 인간이 같은 인간을 무차별로 죽이는 일이었다. 학살은 과연 인간이 어느 선까지 내려앉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선명한 척도였다. 그러므로 그 선을 넘어서면 안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선을 넘어서는 일이 1994년 르완다에서 생겼다. 어제까지만 해도 함께 웃고 마음을 나누던 이웃이 하루 사이에 살륙자로 돌변했다. 후투족에 의한 투치족 대학살은 인종 청소라 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인명 피해를 냈다. 그해 4월부터 7월까지 100일 동안 80만명의 투치족이 죽었다. 투치족의 75%가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그 절망의 시간을 잔이란 여자 아이가 겪었다. 가족은 다 죽고 잔만 살아남았다. 대학살이 일어났을 때 잔은 8살이었다. 잔에게는 깔끔한 성격의 엄마와 진중한 성격의 아빠, 그리고 친구같은 오빠와 떼쟁이 여동생이 있었다. 집에는 집안 일을 도와주는 사람들이 몇 있었고, 그들은 후투족이었다. 잔은 종족이 다르다는 것이 누군가를 죽이고 죽임을 당할 만큼 엄청난 일이라는 걸 몰랐다. 잔은 가족과 함께 하는 삶이 영원할 줄 알았다. 그런데 대통령이 암살됐다는 소식이 들리던 날부터 설명할 수 없는 심상찮은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 불온한 기운은 삽시간에 후투족 사람들을 휘감았고 살해자와 피살자로 두 부족을 나누고 말았다.


비극의 날이 왔다. 가족들은 다른 사람들처럼 피난을 가기로 했다.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속속 모이기 시작했다. 벌써 학살이 시작됐던가? 여자 아이가 달려왔다. 가까이 가보니 두개골이 갈라져 있었다. 이제 피를 보는 일이 흔한 일이 되고 있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잔은 엄마를 잃고 만다. 엄마의 참혹한 죽음을 잔은 근처에서 목격했다. 죽음의 빗금에서 빠져나온 사람은 살았고,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은 죽었다. 빠져나오고도 도망가다 붙잡힌 사람 또한 죽었다. 누가 누구를 지켜줄 수 있는 상황이 못 됐다. 알아서 살아야했다. 다행스럽게도 잔은 다시 아빠와 오빠를 만났지만 아빠는 얼마 못 가 끌려갔고 진과 함께 숨었던 오빠는 끌려가다 잔 앞에서 처참하게 죽임을 당했다. 여동생은 엄마가 죽임을 당하던 비슷한 시간, 다른 곳에서 이미 죽었다.


아무도 믿을 사람이 없었다. 믿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잔은 알았다. 죽음보다 더 두려웠던 시간이 지나고 투치족 반군이 진입하면서 잔의 목숨은 사선에서 비껴가게 됐다. 그런데 그때부터 마음이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반군으로부터 분에 넘치는 보살핌을 받았지만 잔은 말까지 잃어버리고 만다. 그러다 아는 언니를 만나게 되고 잔은 독일에 있는 이모를 떠올린다.


이 책은 잔이 독일의 한 가정에 입양되고 난 후, 독일인 엄마와 나눈 이야기들을 엄마가 소설로 만든 책이다. 엄마이자 작가인 한나 얀젠은 잔의 슬픔을 통해 르완다의 아픔을 가감없이 드러냈다. 르완다의 비극이 일어난지 벌써 18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적잖은 세월이 흘렀건만 살아남은 자는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흔적처럼 가지고 있다. 누구도 잔의 마음 속에 새겨진 고통을 지우개로 지우듯 지워낼 수 없었다. 그러나 잔이 자신의 깊은 상처를 말하고 그 시간들을 돌아볼 때 이미 희망의 싹은 돋아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따스한 손길을 내미는 사람이 있을 때 인간의 상처는 아물기 시작한다. 잔에게 독일인 엄마가 있듯이, 이 책은 내게 너도 잔같은 누군가에게 한나가 되면 어떻겠냐고 말하고 있다.  

 

사진출처: http://kk1234ang.egloos.com/2835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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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노스케 이야기 오늘의 일본문학 7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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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자리

기억의 한 켠에서 먼지에 쌓인 시간들이 기지개를 켜기 시작할 때, 우리는 이미 나이 들어 있다. 세월의 지층에 눌려있던 시간들은 자신의 때가 되자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커져가는 기억속에 발을 담그려니 어쩌면 함몰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몰려온다. 차라리 기억의 회로를 차단하는게 낫지 않을까? 그러나 그 기억이야말로 추억이며, 추억은 세상의 어떤 재화로도 살 수 없다며 나지막히 말하는 소리가 있다. 그 소리의 주인공은 세상사에 발맞추지 못하는 사람이므로 무시해도 그만이겠다. 그런데 그 울림은 커져만 간다.



청춘의 자락과 삶의 이면

'요노스케 이야기'의 작가 요시다 슈이치는 대학 신입생인 요노스케를 통해 80년대 일본의 청춘들과 버블 경제하의 주변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모든 것이 뜻대로 될 것 같지만 실제 이루어지는 것은 거의 없던 그 시절의 이야기들은 생의 이면을 비추고 있다. 겉으론 희희낙낙하며 재미있게 사는 듯하지만 그들의 삶은 생의 무게에 짓눌려 허덕이고 있는 중이다.

'요노스케 이야기'는 요노스케와 그를 회상하는 친구들의 이야기로 교차 진행된다. 나중에 게이가 되는 동성애자 친구, 멋모르던 시절 사고를 쳐버려 20살에 부모라는 이름을 달게된 어린 학생 부부, 부잣집 딸로 태어나 평범한 일상을 무엇보다 동경하는 여자 친구, 미모를 바탕으로 동경에 나와 부잣집 자제들과 어울리며 자신을 파는 여자등 등장인물들의 사연은 평범하지 않다.

파릇파릇해야 할 인생의 황금기에 부모가 돼버려 학교를 자퇴하고는 직장인이 된 친구의 이야기는 가슴 짠하다. 비록 졸지에 부모는 되었지만 그들은 자신에게 부과된 의무를 받아들이고 하루 아침에 생활 전선에 뛰어드는 삶을 살게 된다. 요노스케는 그들의 시작에 큰 돈은 아니지만 자신이 모아 둔 돈을 빌려주며 격려한다. 요노스케는 늘 그랬다. 그런 따뜻함을 사람들은 좋아했다.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들만이 줄 수 있는 온기였기에 사람들을 그를 떠올리며 웃음 짓는 것이다.


가슴이 말하는대로

세상의 가장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 그 보이지 않는 것들이 우리 삶을 주관함에도 우리는 보이는 것에만 몰두해 정작 소유하고 있어야 할 것들을 방기한채 그렇게 살고 있다. 보이는 것의 유혹은 어찌 그리 매혹적이던지 우리는 몰입하게 되고 그런 생의 모조품에 속아 넘어가 버린다. 그 결과 인간답게 살지도 못하면서 잘 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그래서 요시다 슈이치는 사회적 인간으로는 가장 부적격자인 요노스케를 주인공으로 소개하여 자신의 입으로 삼았는지 모른다.

대단한 사람이 되지 않고도 사람들의 뇌리에 깊게 남아있는 사람이 요노스케란 사실은 좀 놀랍다. 세상에 내놓을만한 무엇을 그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단지 그는 가슴이 말하는 대로 행동하고 살았을 뿐이다. 요시다 슈이치는 세상사에 시달리고 지친 우리들에게 지극히 평범하고 어리숙한 한 사람을 통해 자그만한 안락을 준다. 이 삭막하고 각박한 세상에 유일한 안식이 결국은 사람이라는 것을 요시다 슈이치는 알고 있는 듯했다.

 

사진 출처: 나는 시시한 사람이다 http://www.cyworld.com/heebee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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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을 나온 암탉 (양장)
황선미 지음, 김환영 그림 / 사계절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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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한 부분을 강조하거나 예리하게 짚어주는 책은 많아도 삶 전체를 성찰하도록 만드는 책은 많지 않은 듯 하다. 삶의 전부를 과장이나 축소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글은 내 인생의 후반부도 결국 다르지 않을거라는 생각을 불러와 잠시 비감에 젖게 한다. 이런 삶의 모든 것을 동화작가 황선미가 글로 응축했다. 그녀의 대표작이자 애니메이션으로도 주목 받았던 '마당을 나온 암탉'은 2000년 출간 이후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다. 삶을 대하는 작가의 진지한 시선이 군더더기 없는 문장과 섬세한 심리묘사와 맞물려 어린이 뿐 아니라 함께 읽는 부모들에게도 깊은 감동을 주어서일 터다. 이제 '마당을 나온 암탉'은 스테디 셀러를 넘어 우리 동화의 고전이라 불려도 손색 없을 만큼 자신의 자리를 굳건히 하고 있다.

이 책의 장점은 교훈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음에도 교훈을 주겠다는 작가의 의도가 읽혀지지 않는다는데 있다. 참 고마운 일이다. 교훈이나 감동을 목적으로 쓰여진 책은 문학으로서 가치도 떨어뜨리지만 작위적인 느낌으로 인해 독자의 기분까지도 언찮게 한다. 교훈은 가슴이 반응하는 것이지 의미를 강조한다고 생기는 감정은 아니기 때문이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의 감동이 떠오른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책이 나왔다는 사실에 나는 흥분하고 말았다. 아동문학이 출현한지 불과 100년 남짓한데 이런 품격을 갖춘 동화가 나왔다니, 내 가슴이 뿌듯해졌다. 이제 우리 동화도 깊은 주제를 다룰수 있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생각에 가슴이 저려왔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해도 우리의 정서로 가득한 책과 외국 도서가 주는 맛이 같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마당을 나온 암탉'은 양계장에 있는 난용종 암탉이 알을 품어 병아리를 보겠다는 꿈을 꾸는데서 시작한다.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을 포기하지 않은 이 암탉의 이름은 잎싹이다. 잎싹은 비좁은 양계장에서 알만 낳고 품지도 못하는 자신의 처지가 너무 아파 몸이 상하게 되고 결국 폐계가 되어 구덩이에 버려진다. 거기서 나그네라 불리는 청둥오리의 도움을 받게 된 후 청둥오리와 뽀얀 오리 사이에 태어난 알을 맡게 된다. 청둥오리와 뽀얀 오리는 둘다 족제비에게 죽임을 당하고 잎싹은 아기 오리를 족제비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싶어 마당으로 간다. 잎싹의 등장으로 마당은 한바탕 난리가 벌어진다. 마당도 결코 안전한 곳이 아님을 주인부부의 얘기를 통해 깨달은 잎싹은 나그네의 마지막 부탁을 따라 저수지로 가게 된다.

잎싹은 닭이 오리를 키운다는 이유로 닭과 오리 양측으로부터 비난을 받는다. 그러나 비난은 잎싹의 의지를 오히려 불타게 했다. 초록머리를 노리며 늘 주위를 맴도는 족제비의 위협에 잎싹은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지만 초록머리를 지켜야겠다는 생각에 피곤함도 잊고 행복해한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초록머리는 자신과 엄마가 다르다는 사실에 힘들어하고, 오리족 우두머리의 방문으로 깊은 고민에 빠진다. 초록머리는 무리에 끼고 싶다는 마음을 이기지 못해 마당으로 가게 되고 거기서 주인여자의 손에 붙잡힌다. 주인부부는 살이 통통하게 찐 초록머리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묶어두고 기회가 되면 날개를 자를 계획을 갖고 있다. 잎싹은 기회를 틈타 혼신의 힘을 다해 초록머리를 구해낸다.

하나 이도 잠시 초록머리의 갈등은 갈수록 더하고 잎싹은 지켜볼 수 밖에 없음을 깨닫고 아파한다. 이제 초록머리의 마음은 멀리서 날아온 청둥오리 무리에 온통 빠져있다. 어느 누구도 초록머리를 반겨주지 않지만 초록머리는 홀대를 참아가며 청둥오리 무리에 끼게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무리에서 파수꾼으로 자리를 잡는다. 자신에게서 멀어진 초록머리로 인해 잎싹의 서운함과 섭섭함은 말 할수 없지만 초록머리가 가야할 길이기에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드디어 청둥오리들이 떠나는 날 잎싹은 초록머리와 마지막 인사를 하고 아무런 아쉬움없이 족제비의 먹이가 된다. 족제비 또한 어린 새끼를 둔 어미였기에 잎싹은 그 마음을 알았던 것이다.

황선미는 삶의 고달픔과 비참함, 각자에게 배당된 생의 몫, 진정한 사랑의 의미등 크고 작은 이야기를 얼개로 독자의 가슴을 두드린다. 이 책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그녀의 글이 가진 사실성이다. 자신이 살기 위해 누군가의 생명을 뺏어야 한다는 자연의 생존법을 황선미는 부인하지 않았다. 잎싹도 살기 위해서 살아있는 잠자리를 잡아먹어야 했고 청둥오리의 죽음으로 잎싹이 생명을 부지했다는 것 또한 미화하지 않고 들려주었다. 특히 초록머리가 늙고 마른 잎싹 곁에 남아있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간 것은 황선미가 얼마나 감정과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써내려갔는지를 유추케 한다. 더하여 잎싹이 그토록 진저리치며 피해다녔던 족제비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먹히게 되는 결말은 자연의 순리가 어떠한지를 냉정하게 보여준다. 그와 같은 결말은 작가의 절제된 감정과 결연한 의지가 발동되지 않고는 나오기 어려운 것이다.

'마당을 나온 암탉'엔 고뇌와 기쁨, 환희와 비통함이 때론 장중하고 때론 흥미롭게 쓰여져 있다. 황선미는 아이들에게도 있는 그대로의 삶을 직시하게 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스스로 생각하며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갈 수 있도록 아이들을 이끈다. 좋은 책은 독자를 성장케 한다는 말이 있다. 나는 그 표증을 '마당을 나온 암탉'을 통해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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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게는 손자가 없다 - 김경욱 소설집
김경욱 지음 / 창비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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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와 서사의 균형을 유지하며, 선지자적 예리함과 한 우물 파는 자의 우직함을 공존하기란 그리 쉽게 찾을 수 있는 작가의 자질은 아니다. 글을 쓴다고 다 작가가 아닌 것처럼, 작가라 해서 이런 자질을 다 겸비하진 않기 때문이다. 탄탄한 글, 몇 번을 되읽어도 헛점이 보이지 않는 글을 읽는 것은 독자인 내가 누릴 수 있는 기쁨이다. 또한 공들인 흔적이 느껴지는 글은 탐독하는 자의 시간을 빼앗지 않는다는 점에서 양심적이다. 그런 작가로 나는 김경욱을 꼽는다. 

 

김경욱은 논리적인 작가다. 그의 글은 질척대지 않으며 군더더기가 없다. 간결하고 정확한 글은 그의 의중을 명확히 전달한다. 하여 독자인 내가 모호함 때문에 고개를 갸우뚱거릴 일은 없다. 그렇게 똑부러질만큼 논리적이지만 건조하지 않은 글 또한 그의 글이 가진 특징이다. 그가 쓰는 문장은 오히려 시적이라 할만큼 은유적이며 때론 아름다움 마저 느끼게한다. 이렇게 논리가 서사를 뒷받침하고 서사가 논리에 힘입기 때문에 김경욱의 글은 견고하고 탄탄하다. 그래서 그의 글에 몰입할 수 있다.

 

이 책엔 표제작인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를 비롯해 총 9편의 글이 들어있다. 어느 하나 빠지지 않을 만큼 완성도가 높으며 진지하다. 등단 초기 문화적 징후에 민감한 글을 썼던 김경욱은 이제 자신의 관심사를 확장해 더 많은 삶을 껴앉고 있다. 그가 이 소설에서 보여주는 삶은 무겁고 우울하며, 비장하며 우스꽝스럽고, 다양하고 다단하며, 밀착하고 유리된다.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는 김경욱이 가장 심혈을 기울인 단편이다. 촘밀한 짜임새와 각 상황의 유기적 연결고리는 마치 추리소설을 보는 듯하다. 사내는 아들과 손녀와 함께 살고 있는 노인이다. 며느리는 아이를 낳자마자 죽었고, 살림살이 할 여자가 없는 집은 그래서 더 신산하다. 손톱 밑 가시처럼아프고 불쌍한 손녀가 같은 반 남자아이 셋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 일이 커지는 것이 골아픈 초등학교 교장은 신앙을 들먹이며 용서를 종용하고 위로금조의 보상금을 제시한다. 가해자는 만 열세 살이 안된 아이들이므로 형사책임을 물을 수도 없다. 교장이 제시한 금액은 사내가 쉽게 물리칠 수 있는 돈이 아니며 조만간 가스도, 수도도, 전기도 끊기게 생겼다. 하지만 사내는 응징(잘못을 깨우쳐 뉘우치도록 징계함)이란 사랑을 선택하고 사내의 응징은 안타깝게도 변죽만 울리는 해프닝으로 끝나고 만다.

 

해프닝이란 결말은 김경욱이 사태를 얼마나 냉철하게 보고 있는지를 드러낸다. 결말을 정의롭게 맺는 것은 동화속에서나 가능하지 우리네 삶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이 소설의 결말이 사내의 등에 업힌 손녀의 위로로 끝난 것은 다행스럽기만 하다. '수난이대'의 두 부자처럼 손녀가 들려준 노래는 사내에게 큰 힘이 되었을 것이며, 돈 앞에 굴복하지 않은 사내의 행동은 앞으로 험한 세상을 헤쳐나갈 손녀에게 소중한 유산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허리케인 조의 파란만장한 삶'은 대필작가인 내가 허리케인 조라는 노인의 자서전을 의뢰받으며 생기는 일을 그린다. 허리케인 조는 한때 승승장구하던 권투선수로, 라이벌인 무쇠주먹과의 시합 전날 계체량을 통과하지 못해 실격패를 당하는 비운을 맞는다. 운명의 그날 허리케인 조는 한계 체중에서 130그램이 더 나가게 되는데, 아무리 해도 130그램은 빠지지 않았다. 시합도 못해본 채 실격패를 당하고, 그의 권투인생은 내리막길을 걷는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뒤에도 허리케인 조는 그일을 잊지 못하고 가슴에 새기고 있었다. 어느날 대담 도중 허리케인 조가 한 통의 전화를 받더니 갑자기 나가 버리고 더이상 연락이 되지 않는다. 석 달쯤 뒤 나는 무쇠주먹의 유골함의 사라졌다는 소식을 뉴스를 통해 듣는다. 계체때 허리케인 조의 사과를 뺏어 먹던 무쇠주먹과 아무리 해도 줄어들지 않던 130그램의 비밀이 여기서 풀리는 듯하다.

 

상대의 뼛가루를 먹더라도 자신의 염원을 풀려는 허리케인 조의 집념이 희극과 비극의 경계를 허문다. 한계 체중에 대한 허리케인 조의 집착은 때늦음 조차 망각했고, 자신의 인생을 담보물로 만들었다. 이미 끝나버린 게임을 수십년이나 가슴에 품은 후 마침내 뜻을 이룬 허리케인 조는 과연 행복했을까? 인생은 계속되는데 더이상 잡을 것이 없는 그는 앞으로 무엇을 잡고 살까? 희극적 비극을 보는 맛은 씁쓸했다.

 

김경욱의 재능은 어느 한 방면에만 치우치지 않았다. 그는 '러닝 맨'에서 열한번이나 최종 면접에 고배를 마신 주인공을 통해 강남족이 되고 싶은 도시인의 열망을 그려냈다. 그러나 그 꿈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강남에 사는 과외소녀와의 데이트 아닌 데이트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그들의 만남엔 음침하고 음산한 상징들이 계속 등장하고, 그 상징은 불길함을 내비친다. 갑자기 저버린 해와 불안하고 조급한 마음은 그의 현실과 현재적 상황을 암시한다. 결국 소녀는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고 자신을 쫓아오는 사람들을 피해 그는 장남감 같은 오리배의 페달을 밟는다. 그가 강을 건넜을까? 원하지만 가질 수 없기에 목마름은 더 간절하다. 그렇다면 갈증은 어떻게 해소해야 되나? 김경욱은 결말을 열어놓았다. 그러나 답은 비슷하게 내려질 것이다.

 

'99%'는 '러닝 맨'과 이란성 쌍둥이다. '러닝 맨'이 강남 추앙기라면 '99%'는 상위 1%를 꿈꾸는 현대인의 병리적 특성을 그리고 있는 관찰일지다. 광고회사에서 일 잘하는 직원이었던 나는 어느날 혜성처럼 나타난 스티브 김이라는 상사에게 적대감을 느낀다. 그가 아니었으면 일인자의 자리에서 밀려나지 않았을텐데 날이 갈수록 나의 고민은 심각해지고, 나는 그에게서 고등학교 동창인 김태만을 떠올린다. 나의 전학으로 만년 2위가 된 김태만은 나에게 적의를 품고 있었고, 나는 당시의 김태만처럼 스티브 김에게 적의를 품는다. 나는 스티브 김이 김태만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고 그의 꼬투리라도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있다. 스티브 김이 김태만이라는 확증은 그의 몸에 새겨진 문신만 확인하면 된다. 그러나 명민한 김경욱은 알려주지 않고 결말만 열어 놓는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질투가 결코 나의 힘이 되지 못함을 김경욱은 적시한다. 현실은 질투를 선의로 해석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1등만 인정하는 세상에서 2등이 되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는 웃을 수 만은 없는 이야기다. 선망 또한 버리라고 쉽게 말할 수 없다. 이 소설은 밀려난 사람의 소외감과 처지를 단순한 질투라고 치부할 수 없는 현대조직사회의 또다른 면을 세밀하게 그리고 있다.

 

김경욱은 9편의 단편에서 다층적이고 다의적인 삶의 모습을 차근차근 복기해냈다. 소설 안에 담긴 모든 이야기는 결국 어리석은 인간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들의 삶은 조악했고 자신의 삶마저 방기하했으며 어리석고 나약했다. 시간으로 지어진 집은 초라하고 보잘 것 없었으며 어설펐다. 그러니 제발 제대로 된 삶을 찾으라고 말하는 듯하다 느꼈다면 나는 이 책을 오독한 것일까? 이 책 어디도 인생을 잘 살아낸 사람을 찾기는 힘들다. 굳이 찾자면 주도면밀하게 계획해 놓고 해프닝으로 응징을 마감한 사내랄까? 그외에는 찾을 길이 없다. 이 소설의 모든 이야기는 현재 실패자 이거나 결국 실패자가 될 사람들을 다루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병리적 세상에서 병리적인 인간들의 모습을 통해 나를 찬찬히 들여다 보는 연습을 할 계획이다. 호기롭게 탐독으로 시작해 오독으로 마치고 만 이번 여정은 꽤 힘들었으나 제법 즐거웠다. 따라서 나는 다음에도 한 번 더 시도해 볼 예정이다. 어쩌면 그때는 오독으로 시작해 탐독으로 마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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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사랑하는 아이들아 (반양장) - 초등학교 국어교과서 수록도서 책읽는 가족 4
윤동주 지음, 신형건 엮음, 조경주 그림 / 푸른책들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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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윤동주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감정은 어쩌면 민족적 부채의식이 아닐지 모르겠다. 광복을 앞두고 일본의 한 감옥에서 생체실험의 대상으로 죽어갔다는 비감스런 역사적 사실과, 연희 전문을 나온 시인이었다는 점, 선하고 슬픈 듯한 인상과 스물 아홉이라는 나이가 빚는 감정은 우리의 설명을 불가케했다. 그의 삶을 생각하거나 그가 남긴 자아성찰적이고도 아름다운 시를 생각하면 가슴 한켠이 찡해지거나 먹먹해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아마 이런 느낌의 기저엔 그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미안함이 맞물려서일지 모른다. 그래서일까, 그를 주인공으로 하는 책들이 여전히 출간되고 있으며, 우리의 기억 속에서 그를 다시 살게 하고 있다. 이는 윤동주에 대한 우리의 지울 수 없는 사랑을 대변하는 것에 다름 아닐 터다.

 

그러나 비애로 연상되는 그의 생과는 달리 윤동주는 소박하면서도 밝은 동시를 꽤 썼다. 그가 그린 동시를 읽으면 슬픈 윤동주는 사라지고 장난기 많고 호기심 많은 윤동주가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오는 느낌을 받는다.  

 

햇빛.바람

 

손가락에 침 발라

쏘옥, 쏙, 쏙

장에 가는 엄마 내다보려

문풍지를

쏘옥, 쏙, 쏙

 

아침에 햇빛이 반짝,

 

손가락에 침 발라

쏘옥, 쏙, 쏙

장에 가는 엄마 돌아오나

문풍지를

쏘옥, 쏙, 쏙

 

저녁에 바람이 솔솔.

 

 

우리 아기는

아래 발치에서 코올코올

 

고양이는

부뚜막에서 가릉가릉

 

아기바람이

나뭇가지에 소올소올

 

아저씨 해님이

하늘 한가운데서 째앵째앵.

 

이런 동시 속에서도 윤동주는 시대적 아픔을 시 속에서 적시한다. 당위에서가 아닌 당시 우리 민족의 삶이 그랬기에 자연적으로 풀려나온 감정과 현실이기 때문이다.

 

고향 집-만주에서 부른

 

헌 짚신짝 끄을고

나 여기 왜 왔노

두만강을 건너서

쓸쓸한 이 땅에

 

남쪽 하늘 저 밑엔

따뜻한 내 고향

내 어머니 계신 곳

그리운 고향 집.

 

시대적 환경은 윤동주의 시 세계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운동주는 연희전문학교를 입학한 해까지 동시를 쓰고는 그 후로는 동시를 쓰지 않았다. 아니 쓸 수 없었을 것이다. 시대적 상황이 동시에 마음을 쏟을 수 있도록 놔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래의 두 시는 윤동주가 현실을 어떻게 보고 있으며 그럼에도 내일에 어떤 기대를 가졌는지를 알게 한다. 그런 기대를 가지지 않았다면 윤동주는 감옥에서 쓸쓸히 아픈 생을 마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을 조국에 던졌기에 우리의 가슴 속에서 영원히 살 수 있게 되었다.

 

내일은 없다-어린 마음이 물은

 

내일 내일 하기에

물었더니

밤을 자고 동틀 때

내일이라고

 

새날을 찾던 나는

잠을 자고 돌아보니

그 때는 내일이 아니라

오늘이더라

 

동무여!

내일은 없나니

............

 

새로운 길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건너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사진 출처: http://www.cyworld.com/heebee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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