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에게는 손자가 없다 - 김경욱 소설집
김경욱 지음 / 창비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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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와 서사의 균형을 유지하며, 선지자적 예리함과 한 우물 파는 자의 우직함을 공존하기란 그리 쉽게 찾을 수 있는 작가의 자질은 아니다. 글을 쓴다고 다 작가가 아닌 것처럼, 작가라 해서 이런 자질을 다 겸비하진 않기 때문이다. 탄탄한 글, 몇 번을 되읽어도 헛점이 보이지 않는 글을 읽는 것은 독자인 내가 누릴 수 있는 기쁨이다. 또한 공들인 흔적이 느껴지는 글은 탐독하는 자의 시간을 빼앗지 않는다는 점에서 양심적이다. 그런 작가로 나는 김경욱을 꼽는다. 

 

김경욱은 논리적인 작가다. 그의 글은 질척대지 않으며 군더더기가 없다. 간결하고 정확한 글은 그의 의중을 명확히 전달한다. 하여 독자인 내가 모호함 때문에 고개를 갸우뚱거릴 일은 없다. 그렇게 똑부러질만큼 논리적이지만 건조하지 않은 글 또한 그의 글이 가진 특징이다. 그가 쓰는 문장은 오히려 시적이라 할만큼 은유적이며 때론 아름다움 마저 느끼게한다. 이렇게 논리가 서사를 뒷받침하고 서사가 논리에 힘입기 때문에 김경욱의 글은 견고하고 탄탄하다. 그래서 그의 글에 몰입할 수 있다.

 

이 책엔 표제작인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를 비롯해 총 9편의 글이 들어있다. 어느 하나 빠지지 않을 만큼 완성도가 높으며 진지하다. 등단 초기 문화적 징후에 민감한 글을 썼던 김경욱은 이제 자신의 관심사를 확장해 더 많은 삶을 껴앉고 있다. 그가 이 소설에서 보여주는 삶은 무겁고 우울하며, 비장하며 우스꽝스럽고, 다양하고 다단하며, 밀착하고 유리된다.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는 김경욱이 가장 심혈을 기울인 단편이다. 촘밀한 짜임새와 각 상황의 유기적 연결고리는 마치 추리소설을 보는 듯하다. 사내는 아들과 손녀와 함께 살고 있는 노인이다. 며느리는 아이를 낳자마자 죽었고, 살림살이 할 여자가 없는 집은 그래서 더 신산하다. 손톱 밑 가시처럼아프고 불쌍한 손녀가 같은 반 남자아이 셋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 일이 커지는 것이 골아픈 초등학교 교장은 신앙을 들먹이며 용서를 종용하고 위로금조의 보상금을 제시한다. 가해자는 만 열세 살이 안된 아이들이므로 형사책임을 물을 수도 없다. 교장이 제시한 금액은 사내가 쉽게 물리칠 수 있는 돈이 아니며 조만간 가스도, 수도도, 전기도 끊기게 생겼다. 하지만 사내는 응징(잘못을 깨우쳐 뉘우치도록 징계함)이란 사랑을 선택하고 사내의 응징은 안타깝게도 변죽만 울리는 해프닝으로 끝나고 만다.

 

해프닝이란 결말은 김경욱이 사태를 얼마나 냉철하게 보고 있는지를 드러낸다. 결말을 정의롭게 맺는 것은 동화속에서나 가능하지 우리네 삶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이 소설의 결말이 사내의 등에 업힌 손녀의 위로로 끝난 것은 다행스럽기만 하다. '수난이대'의 두 부자처럼 손녀가 들려준 노래는 사내에게 큰 힘이 되었을 것이며, 돈 앞에 굴복하지 않은 사내의 행동은 앞으로 험한 세상을 헤쳐나갈 손녀에게 소중한 유산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허리케인 조의 파란만장한 삶'은 대필작가인 내가 허리케인 조라는 노인의 자서전을 의뢰받으며 생기는 일을 그린다. 허리케인 조는 한때 승승장구하던 권투선수로, 라이벌인 무쇠주먹과의 시합 전날 계체량을 통과하지 못해 실격패를 당하는 비운을 맞는다. 운명의 그날 허리케인 조는 한계 체중에서 130그램이 더 나가게 되는데, 아무리 해도 130그램은 빠지지 않았다. 시합도 못해본 채 실격패를 당하고, 그의 권투인생은 내리막길을 걷는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뒤에도 허리케인 조는 그일을 잊지 못하고 가슴에 새기고 있었다. 어느날 대담 도중 허리케인 조가 한 통의 전화를 받더니 갑자기 나가 버리고 더이상 연락이 되지 않는다. 석 달쯤 뒤 나는 무쇠주먹의 유골함의 사라졌다는 소식을 뉴스를 통해 듣는다. 계체때 허리케인 조의 사과를 뺏어 먹던 무쇠주먹과 아무리 해도 줄어들지 않던 130그램의 비밀이 여기서 풀리는 듯하다.

 

상대의 뼛가루를 먹더라도 자신의 염원을 풀려는 허리케인 조의 집념이 희극과 비극의 경계를 허문다. 한계 체중에 대한 허리케인 조의 집착은 때늦음 조차 망각했고, 자신의 인생을 담보물로 만들었다. 이미 끝나버린 게임을 수십년이나 가슴에 품은 후 마침내 뜻을 이룬 허리케인 조는 과연 행복했을까? 인생은 계속되는데 더이상 잡을 것이 없는 그는 앞으로 무엇을 잡고 살까? 희극적 비극을 보는 맛은 씁쓸했다.

 

김경욱의 재능은 어느 한 방면에만 치우치지 않았다. 그는 '러닝 맨'에서 열한번이나 최종 면접에 고배를 마신 주인공을 통해 강남족이 되고 싶은 도시인의 열망을 그려냈다. 그러나 그 꿈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강남에 사는 과외소녀와의 데이트 아닌 데이트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그들의 만남엔 음침하고 음산한 상징들이 계속 등장하고, 그 상징은 불길함을 내비친다. 갑자기 저버린 해와 불안하고 조급한 마음은 그의 현실과 현재적 상황을 암시한다. 결국 소녀는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고 자신을 쫓아오는 사람들을 피해 그는 장남감 같은 오리배의 페달을 밟는다. 그가 강을 건넜을까? 원하지만 가질 수 없기에 목마름은 더 간절하다. 그렇다면 갈증은 어떻게 해소해야 되나? 김경욱은 결말을 열어놓았다. 그러나 답은 비슷하게 내려질 것이다.

 

'99%'는 '러닝 맨'과 이란성 쌍둥이다. '러닝 맨'이 강남 추앙기라면 '99%'는 상위 1%를 꿈꾸는 현대인의 병리적 특성을 그리고 있는 관찰일지다. 광고회사에서 일 잘하는 직원이었던 나는 어느날 혜성처럼 나타난 스티브 김이라는 상사에게 적대감을 느낀다. 그가 아니었으면 일인자의 자리에서 밀려나지 않았을텐데 날이 갈수록 나의 고민은 심각해지고, 나는 그에게서 고등학교 동창인 김태만을 떠올린다. 나의 전학으로 만년 2위가 된 김태만은 나에게 적의를 품고 있었고, 나는 당시의 김태만처럼 스티브 김에게 적의를 품는다. 나는 스티브 김이 김태만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고 그의 꼬투리라도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있다. 스티브 김이 김태만이라는 확증은 그의 몸에 새겨진 문신만 확인하면 된다. 그러나 명민한 김경욱은 알려주지 않고 결말만 열어 놓는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질투가 결코 나의 힘이 되지 못함을 김경욱은 적시한다. 현실은 질투를 선의로 해석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1등만 인정하는 세상에서 2등이 되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는 웃을 수 만은 없는 이야기다. 선망 또한 버리라고 쉽게 말할 수 없다. 이 소설은 밀려난 사람의 소외감과 처지를 단순한 질투라고 치부할 수 없는 현대조직사회의 또다른 면을 세밀하게 그리고 있다.

 

김경욱은 9편의 단편에서 다층적이고 다의적인 삶의 모습을 차근차근 복기해냈다. 소설 안에 담긴 모든 이야기는 결국 어리석은 인간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들의 삶은 조악했고 자신의 삶마저 방기하했으며 어리석고 나약했다. 시간으로 지어진 집은 초라하고 보잘 것 없었으며 어설펐다. 그러니 제발 제대로 된 삶을 찾으라고 말하는 듯하다 느꼈다면 나는 이 책을 오독한 것일까? 이 책 어디도 인생을 잘 살아낸 사람을 찾기는 힘들다. 굳이 찾자면 주도면밀하게 계획해 놓고 해프닝으로 응징을 마감한 사내랄까? 그외에는 찾을 길이 없다. 이 소설의 모든 이야기는 현재 실패자 이거나 결국 실패자가 될 사람들을 다루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병리적 세상에서 병리적인 인간들의 모습을 통해 나를 찬찬히 들여다 보는 연습을 할 계획이다. 호기롭게 탐독으로 시작해 오독으로 마치고 만 이번 여정은 꽤 힘들었으나 제법 즐거웠다. 따라서 나는 다음에도 한 번 더 시도해 볼 예정이다. 어쩌면 그때는 오독으로 시작해 탐독으로 마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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