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을 나온 암탉 (양장)
황선미 지음, 김환영 그림 / 사계절 / 2000년 12월
평점 :
절판


삶의 한 부분을 강조하거나 예리하게 짚어주는 책은 많아도 삶 전체를 성찰하도록 만드는 책은 많지 않은 듯 하다. 삶의 전부를 과장이나 축소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글은 내 인생의 후반부도 결국 다르지 않을거라는 생각을 불러와 잠시 비감에 젖게 한다. 이런 삶의 모든 것을 동화작가 황선미가 글로 응축했다. 그녀의 대표작이자 애니메이션으로도 주목 받았던 '마당을 나온 암탉'은 2000년 출간 이후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다. 삶을 대하는 작가의 진지한 시선이 군더더기 없는 문장과 섬세한 심리묘사와 맞물려 어린이 뿐 아니라 함께 읽는 부모들에게도 깊은 감동을 주어서일 터다. 이제 '마당을 나온 암탉'은 스테디 셀러를 넘어 우리 동화의 고전이라 불려도 손색 없을 만큼 자신의 자리를 굳건히 하고 있다.

이 책의 장점은 교훈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음에도 교훈을 주겠다는 작가의 의도가 읽혀지지 않는다는데 있다. 참 고마운 일이다. 교훈이나 감동을 목적으로 쓰여진 책은 문학으로서 가치도 떨어뜨리지만 작위적인 느낌으로 인해 독자의 기분까지도 언찮게 한다. 교훈은 가슴이 반응하는 것이지 의미를 강조한다고 생기는 감정은 아니기 때문이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의 감동이 떠오른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책이 나왔다는 사실에 나는 흥분하고 말았다. 아동문학이 출현한지 불과 100년 남짓한데 이런 품격을 갖춘 동화가 나왔다니, 내 가슴이 뿌듯해졌다. 이제 우리 동화도 깊은 주제를 다룰수 있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생각에 가슴이 저려왔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해도 우리의 정서로 가득한 책과 외국 도서가 주는 맛이 같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마당을 나온 암탉'은 양계장에 있는 난용종 암탉이 알을 품어 병아리를 보겠다는 꿈을 꾸는데서 시작한다.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을 포기하지 않은 이 암탉의 이름은 잎싹이다. 잎싹은 비좁은 양계장에서 알만 낳고 품지도 못하는 자신의 처지가 너무 아파 몸이 상하게 되고 결국 폐계가 되어 구덩이에 버려진다. 거기서 나그네라 불리는 청둥오리의 도움을 받게 된 후 청둥오리와 뽀얀 오리 사이에 태어난 알을 맡게 된다. 청둥오리와 뽀얀 오리는 둘다 족제비에게 죽임을 당하고 잎싹은 아기 오리를 족제비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싶어 마당으로 간다. 잎싹의 등장으로 마당은 한바탕 난리가 벌어진다. 마당도 결코 안전한 곳이 아님을 주인부부의 얘기를 통해 깨달은 잎싹은 나그네의 마지막 부탁을 따라 저수지로 가게 된다.

잎싹은 닭이 오리를 키운다는 이유로 닭과 오리 양측으로부터 비난을 받는다. 그러나 비난은 잎싹의 의지를 오히려 불타게 했다. 초록머리를 노리며 늘 주위를 맴도는 족제비의 위협에 잎싹은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지만 초록머리를 지켜야겠다는 생각에 피곤함도 잊고 행복해한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초록머리는 자신과 엄마가 다르다는 사실에 힘들어하고, 오리족 우두머리의 방문으로 깊은 고민에 빠진다. 초록머리는 무리에 끼고 싶다는 마음을 이기지 못해 마당으로 가게 되고 거기서 주인여자의 손에 붙잡힌다. 주인부부는 살이 통통하게 찐 초록머리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묶어두고 기회가 되면 날개를 자를 계획을 갖고 있다. 잎싹은 기회를 틈타 혼신의 힘을 다해 초록머리를 구해낸다.

하나 이도 잠시 초록머리의 갈등은 갈수록 더하고 잎싹은 지켜볼 수 밖에 없음을 깨닫고 아파한다. 이제 초록머리의 마음은 멀리서 날아온 청둥오리 무리에 온통 빠져있다. 어느 누구도 초록머리를 반겨주지 않지만 초록머리는 홀대를 참아가며 청둥오리 무리에 끼게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무리에서 파수꾼으로 자리를 잡는다. 자신에게서 멀어진 초록머리로 인해 잎싹의 서운함과 섭섭함은 말 할수 없지만 초록머리가 가야할 길이기에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드디어 청둥오리들이 떠나는 날 잎싹은 초록머리와 마지막 인사를 하고 아무런 아쉬움없이 족제비의 먹이가 된다. 족제비 또한 어린 새끼를 둔 어미였기에 잎싹은 그 마음을 알았던 것이다.

황선미는 삶의 고달픔과 비참함, 각자에게 배당된 생의 몫, 진정한 사랑의 의미등 크고 작은 이야기를 얼개로 독자의 가슴을 두드린다. 이 책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그녀의 글이 가진 사실성이다. 자신이 살기 위해 누군가의 생명을 뺏어야 한다는 자연의 생존법을 황선미는 부인하지 않았다. 잎싹도 살기 위해서 살아있는 잠자리를 잡아먹어야 했고 청둥오리의 죽음으로 잎싹이 생명을 부지했다는 것 또한 미화하지 않고 들려주었다. 특히 초록머리가 늙고 마른 잎싹 곁에 남아있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간 것은 황선미가 얼마나 감정과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써내려갔는지를 유추케 한다. 더하여 잎싹이 그토록 진저리치며 피해다녔던 족제비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먹히게 되는 결말은 자연의 순리가 어떠한지를 냉정하게 보여준다. 그와 같은 결말은 작가의 절제된 감정과 결연한 의지가 발동되지 않고는 나오기 어려운 것이다.

'마당을 나온 암탉'엔 고뇌와 기쁨, 환희와 비통함이 때론 장중하고 때론 흥미롭게 쓰여져 있다. 황선미는 아이들에게도 있는 그대로의 삶을 직시하게 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스스로 생각하며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갈 수 있도록 아이들을 이끈다. 좋은 책은 독자를 성장케 한다는 말이 있다. 나는 그 표증을 '마당을 나온 암탉'을 통해 보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