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의 비밀 - 쿠바로 간 홀로코스트 난민 보림문학선 11
마가리타 엥글 지음, 김율희 옮김 / 보림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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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도 몇 번씩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소년이 있습니다. 가난한 연주가였던 부모는 소년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포기했고, 그 대가로 소년은 배를 탈 수 있었습니다. 미국도, 캐나다도 소년이 탄 배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선객이 유대인에 난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곳 쿠바에서도 이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소년은 다시 독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제 쿠바가 유일한 희망입니다. 그렇게 내일이 보이지 않는 불안 속에 소년은 하루 하루를 지냅니다. 소년의 이름은 다니엘입니다. 나이는 열세 살이구요.

 

'열대의 비밀'은 디아스포라의 숙명에 난민이라는 덧옷까지 입어야 했던 유대인의 삶을 있는 그대로 비춥니다. 보호막 없이 살아야 하는 이들의 설움은 우크라이나 출신의 유대인 노인인 다비드를 통해서도 드러납니다. 다비드는 아이스크림을 팔며 삽니다. 그는 여기서 잘 지내기 위해선 무더위와 언어, 외로움과 싸워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디를 가든 여전히 국외자일 수 밖에 없는 그는 과거에 얽매이지 않으려 합니다. 미래만 생각해야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한편 너무 이른 나이에 맞닥뜨리게 된 현실에 다니엘은 아직도 정신을 차릴 수 없습니다. 다니엘은 작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생존이 확실치 않은 부모를 떠올리며 지냅니다. 다니엘은 자신을 '고통스러운 기억과 희망이라는 부서질 듯한 파편 사이에서 길을 잃은 아이'로 규정합니다.

 

이들은 누군가의 호의가 없으면 목숨을 부지할 수 없습니다.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현지인 소녀 팔로마는 천사와 같습니다. 다니엘에게 팔로마는 쿠바와 자신을 이어주는 통로입니다.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힘이며, 공포와 분노 속에서 지탱케 하는 피난처입니다. 하지만 어쩌면 다니엘과 다비드, 그리고 팔로마의 도움을 기다리는 난민들이 있기에 팔로마가 자신을 지키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팔로마는 아직도 자신과 아빠를 버리고 다른 남자와 도망간 엄마 때문에 마음이 아픕니다. 게다가 불쌍한 난민을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돈벌이로 이용하는 아빠는 팔로마의 내밀한 부끄러이기도 하구요. 팔로마는 비둘기를 돌보고, 난민들을 도우며 어른보다 더 큰 용기와 사랑을 가진 사람이 됩니다. 팔로마는 불과 열두 살인데 말입니다.

 

1939년 6월부터 1942년 4월까지 이들의 이야기는 계속 됩니다. 피를 말리는 일들이 많았지만 그 시간 속에서 다니엘은 마침내 희망이라는 단어를 씁니다. 노래를 만들기도 하구요. 이제 그의 노래 속엔 부모님의 이야기가 들어갑니다. 또한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어린 난민 소년에게는 쿠바에서 사는 법도 가르쳐 줍니다. 팔로마와 다비드가 그랬던 것처럼요. 그리 많은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난민들이 쿠바에 정착하게 되었구요. 이제 다니엘은 '음악에 어울린다면 삶의 어떤 부분이든 노랫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지독한 불신과 절망이 사람에게서 기인됐습니다. 달콤한 희망도 사람이 불러왔구요. 이웃이 폭도가 되는 상상도 못할 일들을 겪고, 바로 옆에서 할아버지의 죽음을 보았던 다니엘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웃음을 가져다 준 건 12세 소녀였고, 나이 많은 할아버지였습니다. 다니엘의 공포를 이해하며 조금이라도 아픔을 나누려는 시도가 한 소년을 살렸습니다. 그리고 그 노력은 일 년 후 다니엘과 같은 한 소년을 삶으로 이끕니다. 셋의 공통분모는 쿠바라는 장소에서 만났다는 것 하나였습니다. 그 하나만으로도 작은 평화를 만들어냅니다. 자신의 것을 나누고 함께 했을 때 삶보다 죽음이 더 가까운 누군가를 살려냈습니다. 나누는 아름다움이 얼마나 큰 힘인지를 느끼게 합니다. 마음만 먹으면 한 시간이면 읽어낼 책이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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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안의 거짓말
김형국 지음 / 포이에마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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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나가건 나가지 않건 간에 예전엔 교회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가 있었다. 기독교인을 예수쟁이라 부르면서도 종교인이니 일반인보다야 낫지 않겠나 하는 기대를 했다. 기독교인이 가진 삶의 양식엔 다 동의할 수 없어도 제대로 믿어보려는 모습을 보고 호의적인 반응도 보였다. 그랬기에 기독교가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젠 달라도 너무 많이 달라졌다. 교회에 대한 호의보다는 질타와 비난이 앞서고, 믿는다는 사람들조차 교회를 떠나는 경우마저 생겼다. 한때 무섭도록 성장하던 한국 교회는 이제 가파른 하향세를 보이고 있고, 한국 교회에 적신호가 켜진지는 꽤 되었다. 한국 교회의 오늘이 이리 된데는 여러 원인이 있다. 그러나 주된 요인은 바른 신학의 부재에서 기인한다. 성경의 진리에 근거하지 않은 많은 생각들이 한국 교회를 지배하고 있었고, 이를 묵인한 결과 교회는 뿌리까지 흔들리게 되었다. 기복적 신앙은 하나님의 축복이란 미명하에 널리 퍼졌고, 건강한 회의는 불신이란 이름으로 억압되었다. 그 결과 한국 교회는 성장했고 세계가 주목할만한 대형교회도 등장했지만, 이미 교회는 기형적인 모습으로 병들고 말았다.

 

이런 문제를 목사 김형국은 다룬다. 그는 한국 교회에서 통용되는 잘못된 이야기들을 거짓말로 규정한후 문제점을 드러낸다. 총 3부, 12장으로 나뉜 이 책은 자주 듣지만 크게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 이야기들로 시작한다. 1부는 '구원과 믿음에 대한 거짓말'이란 테마로 신앙의 가장 중요한 신학적 주제를 다루고 있다. 1장 '예수 믿으면 복 받아요'에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복과 하나님이 주고자 하는 복이 얼마나 다른지를 일러준다. 2장 '일단 믿어 보세요'에서는 건강한 회의에 대해 설명한다. 그간 일반 교회에서회의를 불신으로 여겨 질문을 봉쇄한 경우가 많았는데, 김형국 목사는 회의가 왜 필요하고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전한다. 3장 '믿고 기도하면 응답받아요'에서는 무엇을 믿느냐가 아니라 누구를 믿느냐를 자세히 설명하고, 4장 '구원의 확신 있으세요?'에서는 구원이 우리의 체험이나 자기 확신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내용에 근거함을 알려준다.

 

2부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거짓말'은 기독교인의 삶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의문을 상기해준다. 5장 '믿음은 좋은데 왜 저래'에서는 믿음이 좋은데 우리 삶이 변하지 않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임을 확언한다. 비록 시간은 걸리지만 크리스천이라면 삶이 변하지 않을 수 없다며 그 말 차제는 성립할 수 없는 말이라 단언한다. 6장 '제가 아직 덜 죽어서요'에서는 성숙이 우리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와의 연합으로 되는 것임을 알려준다. 7장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해서'에서는 이 말이 우리의 합리화를 위해 쓰이는 말이 아니라, 마음이 원하니 육체도 따른다는 고백으로 바꿔야 할 말임을 드러낸다. 8장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에서는 이 말이 우리가 세상적 성공을 이뤘을 때 하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는 모든 일에서 쓸 수 있는 말이라 설명한다.

 

3부 '교회에 대한 거짓말'은 교회에 대한 사람들의 오해를 걷어내고 참모습을 보여준다. 9장 '지상의 교회는 어차피 완전하지 않아'에서는 지상 교회의 불완전함을 변명삼지 말고 교회 공동체를 잘 세워 나갈 것을 촉구한다. 10장 '사람을 왜 봐, 하나님 보고 다녀야지'에서는 사람들의 치부와 위선에 주목하기보다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는 말을 한 바울처럼, 예수를 닮아가는 삶으로의 전환을 요구한다. 11장 '그 교회 부흥하네'에서는 부흥을 교인의 숫자와 교회 규모로 보지말고, 하나님이 개입하시는 교회가 되도록 작은 일에 늘 충성하기를 권면한다. 12장 '난 평신도니까'에서는 평신도라는 말로 책임을 회피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역할을 잘 감당하는 성도가 되기를 격려한다.

 

김형국 목사의 12가지 이야기는 한국 교회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신학적으로 이렇게까지 무지하다는 사실이 부끄럽고,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이렇게 모른다는 사실이 죄송스럽다. 그러나 환부를 드러내는 자만이 병을 고치고, 부끄러움을 아는 자만이 발전할 수 있다. 우리의 아픔을 드러냄은 병을 고치고 건강케 되고자 함이며, 세속화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려는 자정의 몸부림이다. 교회를 향한 비난이 있다는 것은 아직도 기대를 한다는 뜻일 터다. 또한 적신호가 켜졌다는 것은 청신호로 바꾸라는 하나님의 경고이자 기회다. 세상은 말로 신앙을 표하길 원치 않는다. 기독교가 진리에 기반한다면, 그 진리가 믿는 자를 바꾸는 삶의 처소임을 증명하길 원한다. 그 기대에의 부응은 누구를 위함이라기보다 우리 자신을 위함이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때라 했다. 아직도 늦지 않았다. 어서 돌이켜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삶으로 진리를 증명하는 그 지난한 길에, 이 책이 작은 촛불이 되길 기대한다. 나 또한 그 대열에 있기를 소망하며 책을 덮는다.

 

사진 출처: http://blog.naver.com/byshad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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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욤비 - 한국에서 난민으로 살아가기
욤비 토나.박진숙 지음 / 이후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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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술의 달인 화교가 아시아권에서 정착하지 못한 유일한 나라가 한국이라는 말이 있다. 동남아권에서 화교가 각 나라의 상권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과 비교해 보면 과히 틀린 말도 아닌 듯하다. 이는 이민족에 대한 우리의 배타성이 어느 정도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화교 자체의 현금동원력과 GDP(국내총생산) 세계 2위의 중국을 모국으로 둔 그들이 이정도라면, 동남아나 아프리카에서 온 피부색 다른 외국인은 말할 것도 없다. 그들이 받은 설움과 차별은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니 말이다.

 

인정하기 껄그럽지만 외국인 근로자에 대해 우리는 그리 대해 왔다. 돈벌러 왔다며 우습게 여겼고 불법 취업이라며 의도적으로 홀대하거나 박대했다. 한때 우리도 달러를 벌고자 독일로, 베트남의 전쟁터로, 중동으로 나간 적이 있음을 잊은 것 같은 행태였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도 나라를 잃고 중국의 만주로,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톡으로, 하와이로, 일본으로 가지 않았던가. 설사 그런 아픔을 겪지 않았다해도 타인의 형편을 헤아릴 수 있는 마음이 우리에게 있을텐데, 해도 너무했다.

 

이 책은 우리의 야박함을 몸으로 겪은 이방인 욤비 토나의 자서전이다. 욤비 토나는 자국인 콩고민주공화국의 정치적 박해로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온 난민이다. 한국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던 그가 우리나라에 오게 된 건 2002년이다. 연고라고는 중국에서 알게 된 이웃국 콩고인을 통해 주소지만 아는 실낱같은 인연뿐이었다. 조국을 탈출해 나왔으니 그에겐 동포도 경계의 대상이었다. 뼈까지 시려오는 고독과 두려움을, 그는 하루빨리 자리잡아 가족을 데려오겠다는 마음 하나로 버텼다.

 

콩고에서 욤비 토나는 비록 작지만 왕가의 자손이었다. 국립대를 나와 콩고비밀정보국에서 일하던 엘리트였고, 정보국에서 일하면서부터는 경제적 어려움 없이 지내던 특권계층이었다. 그러던 중 임무 수행에서 알게된 정권의 비리를 야당에 전달하려다 발각돼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 목숨마저 위태로워질 상황에서 탈출하게 된 것이다. 한국말도 못하는 그가 삭막하기 짝이 없는 이국의 도심에서, 그 막막한 순간들을 어떻게 헤쳐왔을지 가슴이 짠해진다.

욤비 토나는 불법체류자들이 거치는 모든 과정을 몸으로 겪었다. 인쇄, 사료, 직물공장을 비롯 각종 공장들을 전전했고, 숱하게 월급을 떼였으며,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을 들었고, 때론 일을 못한다며 맞기도 했다. 탈장으로 쓰러지기도 했고, 기계에 팔이 끼는 등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는 시간들을 보내야했다. 그럼에도 고된 일상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부치는 돈으로 가족이 생계를 꾸려간다는 기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플 수도 없었고 아파서도 안되는 모진 시간 속에서도 그는 난민 신청을 꾸준히 했다. 일하다 말고 인터뷰하러 가느라 사장의 눈총도 받고 같이 일하는 공원에게 미안하기도 했지만, 한국에 온 이유가 이였기에 수십 차례라도 응해야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늘 불허처분이었고 나중엔 이의신청 또한 기각되었다. 마침내 그를 도와주던 난민센터의 한국인 친구가 콩고에 가서 심문기록을 비롯 관련 자료를 가져왔지만 난민 신청은 또 불허되었다. 마지막 법무부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드디어 승소판결을 받아 2008년 2월 욤비 토나는 난민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러자 그렇게 그리워하던 가족도 데려올 수 있었다. 어릴 때 헤어져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아빠지만 아이들은 반가워했다. 자랄 때 곁에 없던 아빠지만 자신들을 위해 애쓴 것을 안 것일까, 아이들은 착했고 한국에서도 잘 적응했다. 이곳에 올 때 셋이었던 아이는 이제 넷이 되었고, 아이들은 그보다 더 한국말을 잘 한다. 욤비 토나는 그간 난민구호단체와 인권운동단체, NGO 및 대학에서 난민과 관련된 활동을 꾸준히 해왔다. 이제 그는 한국에서 난민관련 전문가이다. 그의 이런 노력들이 인정을 받아 이번 학기부터는 광주대 자율융복합전공학부 조교수로 강단에 서게 되었다.

 

사진 출처: 동아일보

 

때론 '깜둥이', 때론 '새끼야'라며 인격적 모독을 당하고, 그럼에도 대꾸 한 번 못한채 참아야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그러나 분노하기보다 자신의 인격적 성숙을 위한 질료로 삼았고, 비록 떠나왔지만 언젠가 돌아가야 할 모국을 위한 배움의 시간으로 인식하고 달려왔다. 일자리를 얻어 돈을 벌어야 하지 않겠냐는 친구들에게 왜 난민은 더 나은 삶을 꿈꾸면 안 되며, 배움의 열망을 충족시킬 수 없느냐고 묻고 싶었던 그였다. 그런 그가 화교들도 정착하지 못했다는 이 땅에 보통 사람보다 몇 배의 어려움을 갖고도 자신의 자리를 잡았다. 그래서 욤비 토나의 발걸음은 이제 한 개인사에 머물지 않는다. 그의 작은 성취들은 이 땅에 거주하는 난민에게 어두움을 밝히는 빛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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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의 위증 1 - 사건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29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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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불행은 우리 안에 선과 악이 함께 있다는데 기인한다. 불완전한 인간 속에 병립 불가한 두 가치가 같이 있기에, 인간은 숙명처럼 불안을 달고 살아야 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악이 나쁘다는 걸 알고 있다. 악한 짓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악은 대개 저 깊숙한 곳에 숨겨지거나 눌려져 있다. 그러니 인간이 악을 저지를 때는 나쁜 짓임을 몰라서가 아니라, 자신이 다룰 수 있는 한계치를 벗어났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악은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사람을 불안케 하고, 불쾌하게 하며 위험하게 만든다. 그러나 무엇보다 조심해야 할 것은 악이 감당할 수 없는 마력으로 사람을 휘어감는다는 점이다.

 

악은 또한 은근하면서도 주도면밀하다. 아무도 몰래 다가와서는 결정적 순간 인간을 낚아챈다. 악에게 포획되면 누구나 스스로의 힘으로 빠져나오기 힘들다. 그럼에도 인간은 자신이 악을 다룰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즐기다 결국 악의 노예가 되어 일을 저지르고 만다. 악이 무서운 건 단지 악으로 머물지 않고 반드시 행동으로 나가게 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이 치명적 약점을 미야베 미유키는 다룬다. 그녀는 일본 미스터리소설의 여왕답게 차근차근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어린 소년의 자살이란 슬프고도 충격적인 사고를 기점으로 인간 속에 내재한 악이 어떻게 증식하는지, 아이들과 학교라는 작은 공간을 통해 해부하듯 상세히 그려낸다.

 

1990년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 고바야시 슈조는 전화 부스 안의 한 소년을 보며 불안함을 느낀다. 소년은 부스를 나와 보도 위를 걸어갔지만, 고바야시 슈조는 소년을 돕지 못했다는 초조함으로 어쩔 줄 모른다. 전화부스 안의 소년은 다음날 아침 조토 제3중학교 뒷문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죽은 소년은 이미 한 달 전부터 학교에 나오지 않았고 소년, 가시와기 다큐야의 죽음은 자살로 처리된다. 소년은 반 아이들과도 교류가 없었고, 소년에 대한 아이들의 기억은 지극히 단편적이다. 소년의 죽음은 잊혀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소년의 죽음을 둘러싸고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소년이 학교의 불량배 패거리에게 살해됐다는 고발장이 날아든 것이다. 소년이 속했던 반의 반장과 학교장, 소년의 담임에게 고발장이 배달됐다. 간신히 수습했다고 생각했는데 일이 확산될 지경에 이르자 학교장은 반장의 아버지이자 경시청 소속의 형사인 후지노 다케시와 조토 경찰서의 청소년 담당 형사, 그리고 선생 몇 명과 이일을 수습하려 한다. 그러나 교장의 바람과는 달리 사건은 확산일로에 이르고 한 방송국에서 취재한다며 기자가 나와 소년의 집을 비롯해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다닌다.

 

소년의 죽음을 축으로 소년과 관계된 이들의 삶이 수면 위로 부상한다. 죽은 소년은 병약하고 얌전했지만 소년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차이가 난다. 소년의 부모와 형이 달랐고, 담임과 반 친구의 평이 달랐다. 소년은 겉으로 보여지는 것과 사뭇 달랐던 듯하다. 미야베 미유키는 소년만 주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연관된 아이들의 삶까지 추적한다. 아이들의 삶은 좋건 싫건 부모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고 또래 집단에서 일어난 일이 발화가 되어 사건은 점차 확대되고 만다. 미야베 미유키는 자살과 학교폭력을 전면에 배치해놓고 또다른 작업을 시작한다. 그 작업은 아프고 슬프며 내밀하게 드러난다.

 

미야베 미유키는 "죽은 뒤에야 여러 가지를 알게 되는구나." 라며 말하는 같은 반 친구 마리코의 중얼거림을 통해 죽고난 뒤에야 관심을 얻게되는 소년의 측은한 처지를 나타낸다. 살아생전 소년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했다면 소년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그러나 소년의 형이 전하는 독백은 소름이 끼친다. '엄마에게 도움을 청하고, 두려움에 떨고, 울부짖고, 슬퍼하는 얼굴 바로 아래 그 엷은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형을 바라보는 눈에 그 냉혹함이 깃들어 있었다. 발버둥쳐봐야 소용없어. 내가 이겼으니까. 형이 진 거야. 히로유키는 때달았다. 진작 깨달았어야 하는 진실. 그가 설마설마하며 물러서고, 시선을 피하고, 그럼으로써 점점 더 자라도록 거들어버린 끔찍한 것, 이것이 녀석의 본성이다.'

 

하지만 아빠의 말은 또 다르다. "때로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였습니다. 어릴 때부터 허약했던 탓에 내면으로 깊이 파고드는 성격이 된 건지도 모릅니다.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저희로서는 괴로웠습니다. 좀 더 편하게 살아도 된다, 인생은 그 자체로 즐거운 거라고 부모 입장에서 몇 번이나 타일렀습니다. 그러나 그 말을 가닿지 않았습니다. 그 아이는 너무 순수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담임이 기억하는 죽은 소년은 이렇다. "형은 가출했어요. 가족이랑 잘 안 맞아서. 우리는 그런 집이에요." 누가 봐도 에미코가 어떻게 받아칠지 기대하는 표정이었다. 도발적이었다. 풋내기 선생님, 이런 집안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난 문제 있는 가정의 아이라고요.

 

14살 짜리 소년에게 보이는 다면적 모습은 소름이 끼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소년은 더 이상 자신을 둘러싼 상황을 통제할 수 없게 되자, 사람들에게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 사람이 되려 죽음을 택한다. 아이들 속에 내재한 악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고발장을 낸 아이는 자신이 저지른 일로 불거진 사태와 문제에 대해 아무런 가책도 느끼지 않는다. 그로 인해 친구가 죽자 그제서야 동요를 일으킨다. 이 아이들이 왜 이렇게 됐는지, 이렇게까지 해야하는지는 아직 설명이 부족하다. 그러나 그녀가 말하려는 건 단지 아이들의 악행 뿐만 아니라, 아이들을 통해 투영되는 어른들의 모습이다.

 

그녀는 불량배 패거리의 부모를 통해 아이들의 문제 행동을 진정으로 마주할 생각이 없는 부모와, 법을 어겨서라도 모든 걸 자신의 뜻대로 하려는 제멋대로이며 폭력적인 부모를 고발하고 있다. 또한 체면 지키기와 몸보신에 급급한 학교를 통해 교육적인 방법을 동원하기 보다 은폐하고 외면하려는 선생들의 기만적인 모습도 폭로한다. 진정으로 교육적 행동이 무엇인지를 생각했다면 아프지만 잘 마무리 되었을 문제가 점점 확산되어 학교를 흔들고, 아이들의 삶마저 뒤흔든 폭풍이 되고 말았다.

 

외면하고 싶지만 우리 모두에게는 악이 있다. 소설속의 누군가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안에 내재한 악의 문제를 도외시하고 선을 말한다는 건 위선적이다. 그래서 그녀가 이리 악의 문제를 집요하게 파헤치는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악과 악의에 주목하는 것은 회피한다고 될 문제가 아니기에 정면으로 마주치는 것이리라. 그를 통해 인간을 잘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일 터다. 지독하게도 질긴게 악이지만 그 악을 이기는 것 또한 인간 속에 내재한 선을 통해서만 가능하기에 악은 규명되어야 한다. 악이 드러남은 악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우리 안의 선을 더욱 살리고자 함이기 때문이다.

 

미야베 미유키의 글은 그래서 추리소설임에도 따스함이 있다. 피가 난무하고 사람이 잔혹하게 죽는 것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진실을 외면하고 진상을 덮었을 때 일어나는 결과를 차분하고도 자세히 그려낸다. 도피나 도망이 결코 답이 아님도, 누군가를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죄인지도 상세히 보여준다. 또한 맞부딪쳐야 할 때 뒷걸음치는 어리석음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도 낱낱이 드러낸다. 인간의 본질적 문제인 죄와 악을 사회의 부조리함 속에 잘 녹여낸 수작이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일까, 날카롭고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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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랑딸랑 딸랑곰 아기 그림책 나비잠
이상희 글, 서영아 그림 / 보림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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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랑딸랑'은 읽기만해도 방울 소리가 나는 듯한 느낌을 주는 말이다. 어감이 좋은 말은 반복해 들어도 물리지 않는다. '몽실몽실, 반짝반짝, 초롱초롱, 말랑말랑, 보슬보슬, 새근새근, 찰랑찰랑, 또르르, 뭉게뭉게.' 얼마나 고운 말들인가. 이렇게 경쾌한 어감을 가진 말이 내 곁에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상쾌해진다. 이런 말을 많이 듣고 자란다면 아이의 심성도 당연히 곱고 섬세해지지 않을까?

 

 

 

이렇게 귀여운 동화책을 보자니 우리 딸 어린 시절이 문득 떠오른다. 지금와 생각해 보면 세상에서 아이 키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없는데, 그 때는 마치 일을 사명이라도 되는 것처럼 여겼다. 당시 일 주일에 오 일은 친정에, 이틀은 내가 데리고 있었는데도, 오가는 시간을 제하면 실제 함께 하는 시간이 얼마 안돼서인지 그 시기는 흐릿하기만 하다. 유아용 책을 볼 때마다 예쁘고 앙증맞아 좋지만 왠지 모를 아쉬움이 남는 건 그래서인지도 모르겠다.

 

 

 

 

 

보기만해도 만져보고 싶은 느낌이 나는 이 책은 이상희가 지은 책이다. 따뜻하면서도 고운 느낌이 친근해 찾아봤더니, '고양이가 기다리는 계단'과 어른을 위한 동화 '깡통'의 저자 이상희란다. '깡통'을 읽고 얼마나 아련한 애상에 젖었으며 '고양이가 기다리는 계단'으로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나지 않았던가. 그녀의 책을 이렇게 만나다니.....마음이 마구 설레인다.

 

그녀의 감성을 잘 담은 이야기 속 아이들은 하나같이 귀엽고 진짜 아기 같다. 돼지도, 토끼도, 새도, 곰도, 집도, 하다못해 나무와 땅까지 아기같다. 귀여운 아기 곰이 친구네 집에 놀러는 길에 만게 된 친구들. 그 친구들이 아기곰을 따라가며 모두 서로의 친구가 된다는 내용이다. 마치 동요처럼 전달되는 '딸랑딸랑 딸랑곰'. 빠르면 생후 3개월부터 읽혀도 괜찮을 것 같다. 그냥 읽어주기만 해도 아이들이 종알종알 반응을 보일 텐데, 아~얼마나 귀여울까?

 

반복해서 읽어주는 걸 즐겨하는 아이들에게 이 책은 제격이다. 나도 딸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같이 읽자고 해야겠다. '엄마, 이런 아기 책을 읽으란 말이야?'하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같이 펴서 번갈아 가며 읽을 거다. 다 읽고 난 후 아이가 계속 읽자고 하면, 이 기회에 아이의 유아기로 돌아가 볼 계획이다. 그래서 남았던 아쉬움을 풀어낸 후 그 비었던 공간을 기쁘게 채울 거다. '딸랑딸랑, 딸랑딸랑' 이 말이 자꾸 입에서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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