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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화폐 전쟁에서는 금(金)이 은(銀)을 눌렀다. 은은 금보다 매장량이 적어 희소성이 높지만 수요량은 금이 많다. 금값이 더 나간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은값 상승률은 600%를 넘었고 조짐이 수상하다. 은은 금에 비해 산업 분야에서도 활용도가 높다. '뛰는 금 위에 나는 은' '금도끼 팔고 은도끼 사라'는 말까지 나온다. 은에 대한 재평가다.

이 책(원제 'Secret of Silver')은 그 은을 렌즈 삼아 역사를 들여다본다. 제목 그대로 비사(秘史)에 가깝다. 중국 경제경영 전문가인 저자는 흥미로운 질문으로 이야기 궤짝을 연다. 은의 제국이었던 중국은 왜 산업혁명의 특급열차에 올라타지 못했을까? 세계 최초로 지폐를 사용할 만큼 선진적이었던 중국 금융제도는 왜 쇠퇴했을까? 이른바 '은의 저주'는 실제 존재했을까?

명나 라는 1375년 대명통행보초(大明通行寶鈔)라는 지폐를 발행하고 금과 은을 화폐로 쓰지 말도록 하는 금은령(禁銀令)을 내렸다. 지폐 발행은 고도로 발달한 상품 경제와 부족한 귀금속 자원, 두 뿌리에서 나왔다. 화폐 공급량이 왕성한 경제를 따라잡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백성은 상태에 따라 가치가 출렁거리는 지폐를 인정하지 않았고 은을 계속 거래했다.

지구 반대편에서는 이탈리아 반도에 모인 금과 은이 배를 타고 동양으로 가 향료, 비단과 교환됐다. "금과 은에 대한 유럽의 갈망이 대항해 시대와 신대륙 발견을 낳았다"고 저자는 말한다. 하지만 명나라는 은 기근을 해소하려는 국제무역이 잇달아 실패하고 자금성이 불타자 서양 원정을 중단하고 문을 걸어 잠그는 쇄국을 선택했다.

유 럽은 신대륙을 정복하면서 금과 은을 약탈했다. 특히 스페인은 라틴아메리카에서 '달의 눈물'이라 불렀던 은을 300년간 1억㎏이나 캐 실어날랐다. 이로써 유럽의 은 기근은 사라지고 글로벌 무역 시대가 열렸다. 중국은 찻잎, 비단, 도자기를 수출하며 은만 요구했기 때문에 라틴아메리카 은의 종착지는 사실상 중국이었다.

그런데 중국에 들어온 은은 나갈 줄을 몰랐다. 비상시를 대비해 은을 땅속에 묻어두는 풍속 때문이었다.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한다'는 그레셤의 법칙대로 순도가 떨어지는 은화나 동전만 유통됐다. 한편 스페인 경제는 식민지에서 약탈한 은 때문에 물가가 폭등하며 벼랑 끝으로 몰렸다. 스페인과 중국은 막대한 은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고 산업혁명이라는 절호의 기회를 날려버린 것이다. '은의 저주'다.

은을 쌓아놓기만 한 청나라의 행동은 아편전쟁의 빌미가 됐다. 식민 패권주의를 지키려 했던 영국을 필두로 서방에는 금본위제가 시행된다. 19세기 들어 골드러시가 일어나고 낮은 등급의 금광석에서 금을 추출하는 방법이 발명되자 은은 화폐 역사에서 퇴장할 운명을 맞는다.

이 책에는 명나라부터 2차 세계대전까지 은의 역사가 정리되어 있다. 1900년 프랭크 바움이 발표한 동화 '오즈의 마법사'를 두고 "은의 화폐 기능을 회복시켜야 한다는 당시 미국 서민들의 소망을 담았다"고 해석한 대목이 흥미롭다. 도로시는 은 구두를 선물로 받았고 노란 벽돌 길은 금본위제를 암시하며 오즈(Oz)는 금은의 중량 단위인 온스의 약칭이라는 것이다.

미 국의 양적 완화로 달러 가치가 떨어지면서 은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수요가 늘면 값이 오르고 값이 오르면 싸우게 된다'는 게 동서고금의 진리. 세계를 한 핏줄로 이어줬던 은은 다시 화폐의 역할을 맡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 흐름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 편집이 아쉽지만 쉽고 명쾌한 책이다. 역사라는 무대에서 이야기의 방향을 결정했던 은의 드라마틱한 고백으로도 읽힌다.



모로코 항구 도시 탕헤르에서 관광객에게 방심은 금물이다. 이슬람 상술의 대명사인 이곳 상인들은 '흥정의 귀재'. 마지드는 이곳에서도 전설로 불린다. 형형색색의 담요와 양탄자, 실크 셔츠와 드레스가 잔뜩 쌓인 그의 가게 방명록엔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과 자크 시라크 전 프랑스 대통령의 서명이 있다. 록스타와 호텔 경영자들도 그에게서 물건을 사갔다. 비결이 뭘까. "장사꾼은 모든 사람을 유심히 봅니다. 손님이 어떤 물건을 보는지 관찰하지만 절대 귀찮게 하지 않지요." 손님을 읽어내 '동기'를 간파하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것.

저 널리스트 출신인 저자는 "하버드 경영대학원에 입학했더니 장사의 기술을 가르쳐주는 세일즈 과목이 없어 어리둥절했다". 세일즈는 비즈니스의 최전선에서 벌어지는 가장 치열한 전투인데도 말이다. 그는 세계를 돌아다니며 위대한 장사꾼들을 찾아 세일즈 기법을 들었다. 스토리텔링으로 고객 마음을 움직이는 홈쇼핑, 일본 보험 판매왕의 인맥 관리술, "아무에게나 팔지 않는다"는 신념으로 고객을 안달나게 하는 미술상의 노하우…. 고객을 끌어당기고 거래를 성사시키는 각종 장사 기법이 페이지마다 생생하다.

애 플은 고객의 충성심을 넘어 '신앙심'을 자극하는 종교적 마케팅을 펼친다. 고(故) 스티브 잡스는 "마치 종교지도자 같은 카리스마로" 신제품을 출시할 때마다 그를 숭배하는 사람들 앞에서 선보였다. 달라이 라마도 세일즈에 능하다. 때로는 빙그레 웃으면서 행복 철학을 설파하고, 때로는 티베트에 대한 중국의 폭정을 방관하는 세상을 향해 불같이 화를 낸다. "청중에 맞게 메시지를 전달,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일종의 청중 맞춤형 판매 방식"이다.

발품 끝에 내린 저자의 결론. "위대한 세일즈맨은 제각각의 모습으로 드러났다. 공통점은? 손님에게 거절당해도 굴하지 않는 회복 탄력성과 낙관주의, 자신의 세일즈 능력에 발동을 거는 간절한 욕구였다." 무엇을 왜 팔아야 하는지 내용과 목적은 달라도, 모두 스스로 팔고자 하는 강한 '욕구'를 추동력으로 세일즈의 달인이 됐다는 얘기다.

물건이든 믿음이든 우리는 모두 무언가를 사고판다. 식당 종업원은 손님에게 요리를 팔고, 의사는 환자에게 치료 행위를, 기자는 데스크에게 새로운 기사의 아이디어를 판다. 세일즈 능력이란 결국 상대를 움직이고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삶의 기술. 그러니 저자의 결론을 곧바로 각자의 인생에 대입해도 좋겠다.



아무리 잘되는 사업이라도 정체기가 온다. 앞으로 나아갈 수도 멈출 수도 없는 상황에서 경영자들은 '이 위기만 넘기면'이라는 소망을 붙들고 하루하루를 버틴다. 미국 컴퓨터 기업 올멕의 경영자 마이크 미칼로위츠도 그랬다. 설립 4년 만에 거의 100만달러 매출을 기록할 정도로 성장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비용은 많이 들고 현금은 전혀 돌지 않았다. 그때 그의 멘토인 사업가 프랭크가 말했다. 사업을 키우고 싶으면 "고객을 해고하라"고.

미 칼로위츠가 본인 경험을 바탕으로 사업을 키우는 방법을 담은 책 '펌프킨 플랜'을 펴냈다. 현재 컨설팅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그는 불량 고객을 줄이고 우수 고객에게 집중하는 것이 사업을 크게 키울 수 있는 비법이라고 말한다. 모든 고객에게 집중하다 보면 우수 고객을 챙길 시간이 없기 때문에 차라리 나쁜 고객은 없는 게 낫다는 것이다. 우수 고객, 최고 고객은 사업 원칙을 공유하며 성장할 수 있지만 수만 늘리려는 나쁜 고객은 영양분만 빨아 갈 뿐이라고 주장한다.

책 제목은 거대 호박을 키워낸 농부의 농사 비법에서 착안한 것이다. 그는 한 지역신문에서 본 500㎏짜리 초대형 호박을 키운 농부 이야기를 보고 불량 고객을 제거하는 법을 대형 호박을 키우는 법에 비유한 '펌프킨 플랜(pumpkin plan)'을 구상했다. 농부는 더 튼튼하고 빨리 크는 호박을 파악하고 그보다 덜 유망한 호박은 모두 제거해 대형 호박 단 하나만을 키웠다. 평범한 호박은 언제나 잊히지만 거대한 호박은 지역신문에도 실리는 '전설'이 된다는 점이 그가 펌프킨 플랜을 사업에 도입하게 된 이유다.

따라서 책은 '사업을 시작하는 법'이 아니라 '시작한 사업을 키우는 법'에 초점을 맞춘다. 금융업, 항공업, IT기업 등 그가 상담한 다양한 사례를 동원해 케이스에 따라 펌프킨 플랜을 적용한 방법을 소개한다.

저 자는 사업가들이 '그렇게만 된다면' 병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한다. '한 건만 따내면' '큰 고객 한 명만 잡으면' 하는 식으로 사업을 일군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사업 전략을 유지한 채 '그렇게만 된다면'이라고 생각하는 건 사업이 내리막길을 걷는 것을 방관하는 것과 다름없다. 사업 전략을 바꾸지 않으면 실패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안 되는 일은 종양처럼 잘라내야 한다는 것이다.

저 자는 어떻게 고객을 제거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을 위해 고객을 해고하는 방법까지 알려준다. 책에는 고객을 평가할 수 있는 항목이 적힌 고객평가표가 수록돼 있는데 그는 이 표를 이용해 우수 고객과 그렇지 않은 고객을 파악하라고 말한다. 그 후 불량 고객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를 제거하고 우수 고객이라 할 수 있는 스타들을 우선시하며, 전체적으로 가격을 올려버리라고 조언한다.

우 수 고객을 편애하는 과정에서 그 고객에게 질문을 던져 그들 희망사항을 알아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대형 항공사와 경쟁이 되지 않는 작은 항공사로서는 '한시적 할인을 할 때만 당신 항공사를 이용하는 고객'이 불량 고객이고 '급한 회의가 생겼는데 다른 항공사들이 모두 만석일 때만 당신 항공사를 이용하는 막바지 고객'이 우수 고객이라고 그는 조언한다. 그는 우수 고객에게 비행기 탑승까지 걸리는 시간을 반으로 줄이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와이파이 공유기 등을 설치하는 서비스로 우수 고객을 키워 내라고 말한다. 고객이 '열혈 추종자'가 되면 거대 호박을 키워낼 수 있다고 그는 설명한다.



기자는 얼굴에 철판 한 장쯤은 깔아야만 할 수 있는 직업이다. 경제에 대해 문외한인 내가 경제팀에 배치됐을 때, 딱 이런 생각이었다. 실제론 아무 것도 모르지만, 뭔가를 좀 아는 척 하며 취재원을 만났고 기사를 썼다. 그러나 얼굴에 깔아놓은 철판이 양심의 가책까지 잠재우지는 못했다. '내가 실제론 경제에 무지하다는 걸 언제까지 숨기고 살 거냐?'

"저, 알고 보면 경제에 대해 백지랍니다"라고 양심 선언할 용기는 없었다. '무식이 들통 나기 전에 빨리 지식을 채워넣자' 싶었다. 결국 틈틈이 경제에 관한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얄팍한 계산은 여전했다. 기초부터 차근차근 공부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대신, 일종의 요점 정리 핸드북을 찾아다녔다. '한권으로 읽는~', '쉽게 쓴~' 유의 제목을 단 책을 구해 읽기 시작했는데, 영 요령부득이었다.

처음엔 내가 무식해서, 이해력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꼭 그래서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책 자체가 부실하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복잡한 경제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이를 위한 기초 지식을 잘 설명해주는 책은 드물다. 수요는 넘치는데, 공급은 모자라는 상황. 그러니 너도 나도 책을 낸다. '이 책 한 권만 읽으면 경제를 보는 눈이 훤히 뚫려!'

'이 약 한번만 잡숴봐, 만병통치약이야. 무슨 병이든 싹 나아버려'라고 외치는 떠돌이 약장수와 닮았다. 그러나 이런 만병통치약 잘못 먹으면, 없던 병도 생긴다. 마찬가지다. 어설프게 찍어낸 책으로 공부하면 명료했던 지식도 흐릿해진다. 특히나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이런 책이 대거 쏟아졌다. 조악한 음모론을 얼기설기 엮어서 '경제 문맹의 눈을 뜨게 해준다'며 광고한다. 여기에 속으면 안 된다. 이런 음모론 서적 외에도 위험한 경제 입문서는 많다. 저자 자신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내용을 그냥 '긁어다 붙이는(Copy & Paste)' 식으로 낸 책이 서점엔 흔하다. 사실 관계가 틀렸거나,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 경우도 많다. 지식이 얕은 저자가 시장 경험에만 의존해서 무리한 논지를 펴는 경제 전망서도 넘쳐난다. 또 어려운 경제 이론을 쉽게 풀어쓴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어려운 이야기는 그냥 건너 뛴 것에 불과한 책도 많다. 어려운 걸 쉽게 풀어 설명하는 것과 쉬운 이야기만 하는 건 전혀 다르다.

스 스로 경제 문외한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런 종류의 책은 안 읽는 게 좋다. 머릿속에 엉뚱한 개념이 들어서서 혼란만 생길 가능성이 농후하다. 기자가 이런저런 시행착오 끝에 내린 결론은, 경제학과 신입생이 읽는 전공 교재였다. 조금 딱딱하지만, 기초 교재부터 차분히 읽어나가는 게 오히려 빠른 방법이다. 물론 주류 경제학 교재가 지닌 이데올로기적 편향도 있다. 그러나 이걸 경계하느라 기초 지식을 등한시 하는 것은 옳은 태도가 아니다.

고대의 수학자 유클리드는 "기하학을 배우는데 왕도(王道)는 없다"고 했다. 다른 모든 지식 역시 마찬가지다. 지름길은 없다. 어려운 내용은 어렵게 공부하는 게 옳다. 땀 흘리지 않고 돈을 벌려 하면 안 되듯, 어려운 걸 쉽게 배우려고 하면 안 된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떠오르는 기억이 많았다. 예컨대 자연과학 분야에도 '어려운 걸 쉽게 알려준다'며 꼬드기는 책이 흔하다. 그런데 이런 책을 잘못 골라서 읽은 사람들 중에는 황당한 오해를 안고 지내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철학의 '상대주의'와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비슷한 개념이라고 착각하는 식이다. 저명한 학자의 글에서 이런 오해의 흔적을 발견할 때마다 당혹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나 역시 경제 분야에 대해 같은 방식의 실수를 저질렀을 수 있겠구나'라는 반성을 했다.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어려운 물리이론을 초보자가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끔 쉽게 설명하는 능력으로 유명했다. 그러나 그건 그가 진정한 천재, 진짜 고수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당연히 이런 천재, 고수는 흔치 않다. 당신이 읽는 책의 저자가 리처드 파인만 수준의 천재일 가능성은 아주 희박하다는 말이다. 어려운 내용이라면 충분한 시간을 들여 골똘히 생각하며 익혀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한 뒤로, 출판사에서 급히 기획해서 찍어낸 경제 교양서는 잘 읽지 않게 됐다. 물론 주변에 권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이번에 예외가 생겼다. 최근 출간된 <만화로 보는 경제학의 거의 모든 것>(마이클 굿윈 지음, 댄 버 그림, 김남수 옮김, 다른 펴냄)이다. 제목만 보면 이 책이야말로 전형적인 떠돌이 약장수의 '만병통치약' 느낌이다. '경제학의 거의 모든 것'을 어떻게 한 권짜리 만화로 담아낸다는 말인가. 이쯤 되면 거의 사기라는 의심도 든다. 그래서 처음엔 서평 청탁을 거절하려 했다. 그런데 마음이 돌아선 건 내가 만화를 워낙 좋아한 탓이다. 만화라면 일단 덮어놓고 탐내는 버릇이 오래 전부터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을 때는 또 한 번 생각이 바뀌었다. '어려운 걸 쉽게 설명한다는 책이 꼭 나쁜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이다.

거창한 제목과 달리, 불필요한 욕심이나 허세를 부리지 않는 게 이 책의 미덕이다. 가격이론이나 IS-LM 곡선처럼 경제학 입문서라면 반드시 담아야 할 내용이 이 책에는 없다. 이런 내용을 만화책 한 권으로 공부하긴 무리다. 대신 이 책은 대학의 경제학 교재를 파고들다보면 오히려 놓치기 쉬운, 그러나 꼭 알아야 할 내용에 집중한다. "자본주의 탄생에서 세계 금융 위기까지 경제는 어떻게 작동해 왔는가"라는 부제가 이 책이 다루는 내용이다. 한마디로, 일종의 역사책이다. 그리고 앞서 이야기한 '약장수 경제학' 책과 달리, 논지가 일관돼 있고 내용도 알차다.

취재를 하면서 경제이론과 실물경제에 두루 정통한 전문가라고 소개받아 만났는데, 의외로 과거 역사에서 여러 차례 발생한 금융 공황에 대해서는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를 자주 경험했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또 다른 공황의 가능성에 대한 불안이 높을 때였다. 그런데 과거 공황의 역사에 대해 관심 없는 경제 전문가라니, 기자 입장에선 당황스러웠다. 수리모델에 치중하느라 경제의 역사, 경제사상의 역사에 대해선 소홀한 경제학 교육의 폐해다. 지금이 위기가 아니라면, 경제가 마치 정교한 기계처럼 움직이는 때라면, 경제사나 경제 사상에 대한 지식은 그저 장식품일 수 있다. 그러나 인류 역사에서 경제가 기계장치처럼 움직인 적은 없다. 늘 위기였거나, 아니면 위기를 잉태한 상황이었다. 경제학 커리큘럼이 기계공학 커리큘럼과 달라야 하는 이유다.

경제학 입문자에게 경제사, 경제 사상 공부를 추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자본주의 경제사에 대한 입문서로서 이 책이 지닌 미덕은 '균형 감각'이다. 예컨대 저자는 (흔히 '경제학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애덤 스미스에 대해 소개하는 대목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 국부론>에서 우리가 가장 많이 잊은 교훈이 이것이다. '자본가를 경계하라'. 이 내용은 애덤 스미스의 말 그대로 읽어보는 게 좋겠다. '자본가가 내놓은 새로운 법률이나 상업 규제안을 항상 주의 깊게 들어야 한다. 그리고 오랫동안 심사숙고하고 실험한 후에 자본가의 법률이나 상업규제를 적용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공공의 이익을 도모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자본가들에게 농락당하고 지배될 것이다.'"

시장만능주의를 옹호하는 경제 전문가가 애덤 스미스의 후계자를 자처하는 경우를 본다. 그러나 그들은 도덕철학 교수였던 애덤 스미스가 "상인과 제조업자의 비열한 약탈과 독점정신"에 대해 얼마나 분개했는지에 대해선 침묵한다. 그리고 이 책은 전문가가 종종 저지르는 이런 왜곡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차분히 일깨워준다.

세 상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독학으로 경제학을 공부했다는 저자가 이 책의 결론에서 "핵심은 민주주의"라고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경제는 결국 우리가 먹고사는 문제이며, 따라서 소수 전문가들에게만 맡겨두기엔 너무 중요한 문제라는 것. 저자는 "경제는 잘 작동되고 있을 때에도 심각한 결함이 나타났다" 라고 말한다. 우리가 시장에서 흔히 보는 환경 파괴, 무리한 노동 등이 대표적인 예다. 그리고 저자는 "이 결함을 고치려면 경제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우리 스스로 물어봐야 합니다. 어떤 일자리를 원하는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라고 이야기 한다. 저자가 준비한 답변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것은 우리뿐"이라는 것. 경제정책 당국자나 금융 실무자가 아닌 보통 시민이 자본주의 경제의 역사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 경제학 비전공자인 저자가 경제사 입문서를 쓴 이유 역시 그래서다.

앞서 소개한 애덤 스미스의 경우처럼, 경제 전문가가 자신의 이해관계 또는 편견 때문에 종종 왜곡해서 전하는 경제 상식은 지금처럼 불안정한 경제 상황에서 전염병 바이러스만큼이나 위험하다. 이에 대한 항체가 없는 경제학 입문자라면, 이 책은 효과 좋은 '백신' 주사가 될 수 있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인기를 끌면서 많은 기업들이 모바일 마케팅 차원에서 주목하는 기법 중 하나가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이다. 이 기법은 비디오 게임의 특성을 활용해 이용자의 체험을 유도하고 관심을 높이는 것이다. SNS인 포스퀘어는 관광지나 레스토랑 등 특정 장소를 먼저 이용하는 사람에게 일종의 훈장같은 배지를 부여하고 점수를 쌓을 수 있게 한다. 이용자에게 미션을 부여해 성취를 통한 심리적 즐거움을 주고 단계별로 적절한 보상을 줌으로써 적극적인 구매와 참여를 유도하는 대표적인 모바일 마케팅 사례다.

《마케팅 키워드 101》은 게이미피케이션과 같은 최신 트렌드부터 일반 경영이론에 이르기까지 마케팅 전반을 101개 키워드로 정리한 경영지침서다. 고려대 경영대 마케팅 전공 교수인 저자는 마케팅 이론과 개념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각 키워드를 최근 이슈화됐거나 관심을 모은 사례를 들어가며 간략하면서도 알기 쉽게 설명한다.

또 마케팅 부서 담당자나 소규모 점포를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이 활용할 수 있는 지침까지 제시한다. 게이미피케이션을 마케팅에 도입할 경우 전통적인 광고에서 즐겨 사용하는 스토리텔링 기법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흥미로운 얘깃거리로 소비자를 끌어들이고, 게임 형식으로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면 마케팅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노베이터와 얼리어댑터를 구별해 설명한 부분도 흥미롭다. 이노베이터는 신제품 출시 시점부터 구매하는 시기로 따졌을 때 2.5% 안에 드는 소비자, 얼리어댑터는 2.5% 이후 16% 이내에 드는 소비자다. 이노베이터는 열광적으로 빨리 구매하지만 입소문에는 인색하고 얼리어댑터는 일반 소비자보다 일찍 구매하면서 이용 경험을 알리는 데 적극적이다. 따라서 기업 입장에서는 이노베이터보다 얼리어댑터가 더 가치가 높은 고객이라는 설명이다.

이 책은 저자가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3분 라디오 MBA’란 제목으로 진행한 130여편의 방송 콘텐츠를 재구성한 것이다. 힐링, 꽃중년, 체리 피커(혜택만 빼먹는 얌체 고객) 등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시사용어부터 시장 분석과 기업경영 전략, 브랜드 관리, 소비자 심리와 고객 관리, 시장조사와 타깃 설정, 가격 결정, 광고와 프로모션, 유통·서비스업에 이르는 방대한 콘텐츠를 담고 있다.

총 8장으로 이뤄진 이 책은 마케팅 전반을 체계적으로 다룬 이론서는 아니지만 장별로 키워드를 중심으로 짜임새있게 구성돼 있어 해당 부문이나 산업에 대한 흐름을 파악할 수 있게 해 준다.

6 장에서는 준거가격과 세트메뉴 가격, 가격 할인, 미끼 상품, 무한 리필, 쿠폰, 리베이트 등의 키워드를 엮어 가격을 결정하는 여러 가지 요인과 이를 마케팅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유기적으로 설명한다. 유통·서비스업과 관련된 키워드를 묶은 마지막 장에서는 PB(유통업체 자체 상표)와 카테고리 킬러, 회원제 창고형 클럽, 드러그스토어 등을 통해 국내 유통업계의 최신 트렌드를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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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07 09: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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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모털리티 - 나이가 사라진 시대의 등장
캐서린 메이어 지음, 황덕창 옮김 / 퍼플카우콘텐츠그룹 / 2013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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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섭’이라는 말을 번역, 전파한 최재천은 “사람이 쉽게 쥘 수 있는 말을 만드는 것은 대단히 성공적인 전략”이라 한다. 새로운 단어를 만들고 개념을 설명하는 것은 참 편한 ‘성공적인 전략’이다. 저자 캐서린 매이어는 “죽을 때까지 나이를 잊고 살아가는 현상”을 ‘어모털리티Amortality’라 만들었다. ‘어모털리티’한 종속,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같은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어모털족’이라 부른다.

책에서 말하는 ‘어모털족’에 관해 자세히 살펴보자. 개념을 파악하는 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저자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오늘날 나이는 유동적이다 못해 혼란스러운 것이 되었다.” 나이에 대한 개념과 정의를 가장 혼란스럽게 만든 것은 “나이를 잊고 사는 사람의 수가 크게, 그리고 빠르게 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자신의 행동이 나이에 어울리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의문을 갖지 않는다.” 또한 “인생의 모든 선택이 나이와 상관없이 계속 열려 있다고 생각하며, 또한 그렇게 행동한다.” 이들이 바로 ‘어모털족’이다. 즉 “10대 후반부터 죽을 때까지 똑같은 방식으로 똑같은 수준을 유지하며 살아가고, 거의 대체로 똑같은 일을 하고 소비하는” 사람이다.

‘어모털리티’는 이미 확실하게 존재하는 현상이다. 하지만 많은 부분은 알려지지 않았으며 단지 일부만이 이해되고 있을 뿐이다. 보통 나이를 더 의식하게 됨으로써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나이에 대한 분별이 사라짐으로써 더 강하게 나타난다. 저자의 주장으로는 ‘어모털리티’는 극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임계점에 다다랐고, 모든 세대에 걸쳐서 빠르게 확산해 있다. 하나의 신드롬이자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어모털리티라는 유행병은 그 영향을 살펴보면 대체로 양성이지만 위험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며 특정한 경우에는 악성이 되기도 한다. 삶 전체에 걸쳐서, 정확히 말하면 그 삶이 생기를 가지고 있는 동안에 걸쳐서, 될 수 있는 한 길게, 똑같은 방식으로 살아가는 경향이 점점 늘어가는 현상을 뜻한다. 또한 ‘어머탈리티’는 삶 전체에 걸쳐서, 정확히 말하면 그 삶이 생기를 가지고 있는 동안에 걸쳐서, 될 수 있는 한 길게, 똑같은 방식으로 살아가는 경향이 점점 늘어가는 현상을 뜻한다.

저자는 “나이를 잊고자 하는 상태로서, 이와 같은 상태에 있는 사람은 사춘기부터 무덤에 이르기까지 똑같은 방식으로 행동한다.”라는 ‘어모털리티’의 정의에 대해 가장 중요한 특징을 빠졌다고 말한다. 바로 어모털족은 “무덤이 바로 뒤에까지 와서 하품하기 전까지는 죽음이란 존재를 무시해버린다”는 것이다. 이는 “나이에 어울리는 행실에 대한 규범이나 제한은 더는 (적어도 어모털족에게는)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전통’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뿌리가 깊지 않으면 쉽게 전복되곤 한다.

아동기, 청소년기, 성인기와 같은 인생의 각 단계를 설명하는 개념이 생성하고 소멸하는 과정에서도 나이와 노화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급격한 변화를 겪어왔다. 10대란 개념은 1944년까지도 나타나지 않았다. 1944년에 미국의 마케팅 종사자가 14세에서 18세까지의 연령층을 가리키는 이름을 상품에 갖다 붙이면서 돈을 챙겼다. 또 성인기라는 말은 1870년에 《옥스포드 영어사전》에 포함되었다. 인간의 생을 구분하여 명명한 시기가 별 의미없으며, 필요에 때문에 생겨난 개념이다.

지금 황혼, 또는 은퇴 이후를 구분하여 뒷방 늙은이 취급하는 게 온당한가. 저자도 말하지만 내가 스무 살 무렵이었을 때는 오십이 넘은 사람은 정말로 늙은 사람으로 보였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어모털족에게 은퇴는 결코 매력있는 제안이 아니다. 2050년까지 인류 가운데 ⅕ 은 60세 또는 그 이상이 될 것이다. 지금의 인생 단계를 그때도 적용할 수 있을까? 물론 아니다.

어모털족은 지금의 사고에서 바라본다면 이상한 족속이지만 인간의 편의상 구분이 이제는 바뀌어야 하고 그 과정 중이기에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어모털족이 존재 여부를 말하기보다는 노령화하는 현상을 당연시해야 한다. 먼저 ‘노령화’라는 말부터 바꾸어야 한다. 늙었다는 것은 상대적이다. 무엇보다 늙었다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은 것을 마치 정당한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

저자의 ‘어모털족’, ‘어모털리티’라는 개념을 이해하기보다는 사회적 현상이고 세계가 노령화 사회로 변하는 게 아니라 전보다 좀 더 오래 살 뿐이다. 개인으로서는 앞으로 많이 남은 삶 또는 생을 어떻게 보낼지를 고민해야 한다. 기업은 지금까지 연령대에 맞춘 마케팅은 다시 점검해야 한다. 저자는 이를 “각 라이프스타일을 분석해서 기업 활동이나 마케팅에 적용했던 각종 이론과 데이터가 더는 유효하지 않다는 것”이라 말한다. “소비자는 더는 나이로 분류되지 않는다. 자신이 원하는 나이에 머물러 사는 사람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소비”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어모털족’의 존재를 인정하든 아니든 지금 사는 인류는 백 년 전의 인류보다 오래 살고 있으며, 백 년 후 인류는 지금의 인류보다 더 오래 살 것이다. 잣대는 항상 바뀌었고 앞으로도 바뀔 것이다. 어제의 잣대로 오늘을 평가하지 말며, 오늘의 잣대로 내일을 비유하지 마라.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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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25 10: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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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미래는 쉽게 오지 않는다 - 성장이 멈춘 세계, 나와 내 아이는 어떤 하루를 살고 있을까
요르겐 랜더스 지음, 김태훈 옮김 / 생각연구소 / 2013년 1월
평점 :
절판


앞으로 40년 후를 예측(?)한다. 미래에 관한 불확실성은 인간을 불안하게 만든다.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에 관한 불안감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하지만 누가 지금까지 인류가 진화한 세월보다 더 복잡하고 변화무쌍한 세상이 될 미래를 누가 예측할 수 있을까? 답은 누구도 주지 못한다. 예측한 미래가 도래하기 전까지는 누구도 ‘틀렸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다’.

지금부터 2052년까지 아주 많은 일이 일어날 것이므로 과학적 의미에서, 이를테면 세부적인 영역에서 그 결과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 이 책에는 내 근거 있는 짐작이 담겨 있다. 물론 내 짐작은 ‘과학적 진실’은 아니다. 미래의 영역에 그런 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도 내 짐작은 정제된 판단, 정통한 판단이다. 비록 증명할 수 없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내가 옳다고 확신한다. 2052년이 가까워지기 전까지는 내가 틀렸다는 것도 증명할 수 없다.

‘과학적 진실’이 아니며 ‘정확히 예측할 수 없’는 ‘짐작’에 불과(?)한 내용을 읽고 그 내용에 맞추어야 하는지 의구심이 든다. 저자는 “앞으로 40년에 대한 내 예측은 시나리오 분석이 아니다. 일어나야 할 일을 기술한 것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내가 일어날 거라고 믿는 것에 대한 근거 있는 짐작”이라 말한다. 단지 ‘짐작’이다. 저자의 겸손한 말이다.

미래를 예측하는 책은 많다. 하지만 같은 방향을 예측하지 않는다. 서로 상충하는 내용이 많다. 중국이 미국을 넘어 세계 최강국이 될 거라는 예측이 있는가 하면 중국의 한계를 말하기도 한다. 물론 받아드리는 사람의 몫이지만 혼란스럽기는 나뿐이 아니다. 이를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떤 방향으로 확실히 믿을 이유가 있다면 그에 따른 결정이 이뤄질 거라고 예측하는 것은 타당하다.”

나의 불손한(?) 의구심에 저자는 “예측은 가능한가?”라며 친절하게 이야기한다. “일반적으로 짐작보다는 ‘예측’이 더 신뢰성이 있다.”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 “합리적인 사람은 미래를 내다볼 때 근거 없는 짐작보다 근거 있는 예측을 선호한다. 짐작은 정보가 부족한 사람이 하는 것이다.” 저자 자신도 합리적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짐작’이나 ‘예측’할 수 없다면 그저 읽을 수밖에. “내가 2052년까지 일어날 것으로 짐작하는 세계적 변화의 기대하고 근거 있는 윤곽을 따르고 있다. 나는 내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수치를 활용하고 있지만 가장 신뢰성 높은 측면은 일반적인 추세 혹은 경향이다.”

저자는 이런 한계(?)에 불구하고 왜 이 책을 썼을까?” 미래의 일을 기술하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나는 이 책을 인류의 행동을 촉구하기 위해 썼다.”라고 말한다. 저자의 ‘짐작’이든 ‘예측’이든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점은 ‘행동을 촉구’하는 것이다. 이를 저자는 “행동을 촉구하기 위한 예측”으로 설명한다. “내 예측은 조율한 정치적 행동에 대해 폭넓은 지지를 촉발할 정도로 지구적 환경 재난을 알리는 역할을 할 것이다. 지구적 환경 재난은 절대 갑작스럽게 다가오지 않는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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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25 10: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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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인생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당신의 인생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 하버드 마지막 강의, 마지막 질문
클레이튼 M. 크리스텐슨 외 지음, 이진원 옮김, 이호욱 감수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인생을 ‘평가’한다는 말은 그 내용을 차치하고 먼저 거부감을 느낀다. 영업 실적을 평가하듯이 인생을 정량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 아니 해야 하는가? 저자는 튼튼한 이론으로 무장한 경제, 경영이론으로 인생을 ‘평가’하려 한다. 거부감을 안고 시작한 책은 점점 호감으로 바뀌었다.

왜 인생을 평가해야 하는가? 잘잘못을 따지기 위함이 아니다. 인생 중간 점검은 위기 닥쳐서가 아니라 살면서 때때로 해야 한다. “그늘이 필요할 때 나무를 심을” 수는 없지 않은가. ‘평가’라는 말에 거부감을 갖지 말고 내 인생을 돌아보면 지나온 문제보다도 앞으로 닥칠 ‘위험’을 피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이 든다.

“내일을 위해 오늘이 불행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내일의 행복에 현재 내 가족이 불행을 느낀다면 안 된다. 저자는 이를 좀 더 간명하게 전한다. “인생이란 나처럼 ‘생명이 위태로운 병에 걸렸을 때’가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매일’ 중요”하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선택을 한다. 그중에서도 직장 또는 일에 관련된 선택을 많이 한다. 이 회사 좋을까, 저 회사가 좋을까? 많은 고민을 하든 단순하게 선택하든 후회는 남는다. 이때 저자의 “당신이 고용된 이유는 어떤 일 때문인가”라는 조언을 기억한다면 선택을 좀 더 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선택 후 후회를 줄일 수 있다.

저자는 강력한 이론으로 무장하기를 권한다. 저자가 제시한 몇 가지 이론 중에서 꼭 필요한 이론이 있다. 이안 맥밀런과 리타 맥그래스의 “발견지향기획(Discovery-Driven Planning)”이다. 이것은 경영이론이지만 인생에 접목해도 손색없다. (물론 저자도 그러하기에 이것을 책에서 예로 들었겠지만)

시간은 한정적이므로 모든 기회에 도전할 수 없다. 어떤 기회가 정말 ‘기회’인지를 판단하기 위해 “발견지향기획”을 활용할 수 있다. 단순히 “전략이 효과를 보게 하려면 무엇이 사실로 판명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바꾸어보면 된다. 같은 질문을 다르게 표현하면 “이 예측이 맞으려면 사실로 입증되어야 할 가장 중요한 가정은 무엇이고, 우리가 그 가정이 맞는지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적절한 질문을 던지면 일반적으로 대답을 얻는다.

‘자기계발서’에 거부감을 가져 이 책 읽기를 주저한다면 많은 것을 놓치게 될 것이다. 반대로 유명한 경영학자의 책이라 많은 기대를 하면 실망도 크다. 단지 ‘참아라’, ‘간절히 소망하라’, ‘내일을 위해 오늘은 참아라.’라는 식의 책은 아니라는 게 정말 다행이고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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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 항구 도시 탕헤르에서 관광객에게 방심은 금물이다. 이슬람 상술의 대명사인 이곳 상인들은 '흥정의 귀재'. 마지드는 이곳에서도 전설로 불린다. 형형색색의 담요와 양탄자, 실크 셔츠와 드레스가 잔뜩 쌓인 그의 가게 방명록엔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과 자크 시라크 전 프랑스 대통령의 서명이 있다. 록스타와 호텔 경영자들도 그에게서 물건을 사갔다. 비결이 뭘까. "장사꾼은 모든 사람을 유심히 봅니다. 손님이 어떤 물건을 보는지 관찰하지만 절대 귀찮게 하지 않지요." 손님을 읽어내 '동기'를 간파하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것.

저 널리스트 출신인 저자는 "하버드 경영대학원에 입학했더니 장사의 기술을 가르쳐주는 세일즈 과목이 없어 어리둥절했다". 세일즈는 비즈니스의 최전선에서 벌어지는 가장 치열한 전투인데도 말이다. 그는 세계를 돌아다니며 위대한 장사꾼들을 찾아 세일즈 기법을 들었다. 스토리텔링으로 고객 마음을 움직이는 홈쇼핑, 일본 보험 판매왕의 인맥 관리술, "아무에게나 팔지 않는다"는 신념으로 고객을 안달나게 하는 미술상의 노하우…. 고객을 끌어당기고 거래를 성사시키는 각종 장사 기법이 페이지마다 생생하다.

애 플은 고객의 충성심을 넘어 '신앙심'을 자극하는 종교적 마케팅을 펼친다. 고(故) 스티브 잡스는 "마치 종교지도자 같은 카리스마로" 신제품을 출시할 때마다 그를 숭배하는 사람들 앞에서 선보였다. 달라이 라마도 세일즈에 능하다. 때로는 빙그레 웃으면서 행복 철학을 설파하고, 때로는 티베트에 대한 중국의 폭정을 방관하는 세상을 향해 불같이 화를 낸다. "청중에 맞게 메시지를 전달,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일종의 청중 맞춤형 판매 방식"이다.

발품 끝에 내린 저자의 결론. "위대한 세일즈맨은 제각각의 모습으로 드러났다. 공통점은? 손님에게 거절당해도 굴하지 않는 회복 탄력성과 낙관주의, 자신의 세일즈 능력에 발동을 거는 간절한 욕구였다." 무엇을 왜 팔아야 하는지 내용과 목적은 달라도, 모두 스스로 팔고자 하는 강한 '욕구'를 추동력으로 세일즈의 달인이 됐다는 얘기다.

물건이든 믿음이든 우리는 모두 무언가를 사고판다. 식당 종업원은 손님에게 요리를 팔고, 의사는 환자에게 치료 행위를, 기자는 데스크에게 새로운 기사의 아이디어를 판다. 세일즈 능력이란 결국 상대를 움직이고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삶의 기술. 그러니 저자의 결론을 곧바로 각자의 인생에 대입해도 좋겠다.



1995년 미국의 광고회사 치아트데이의 소유주는 회사를 옴니콘에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정리해고가 임박했음을 한 치아트데이 런던사무소의 앤디 로는 런던의 직원을 규합해 모두 회사를 떠나버렸다. 요청을 받은 고객사도 그들을 따랐다. 회사는 텅 비었다. 결국 옴니콘은 런던사무소를 단 1달러만 받고 로와 동료에게 넘겼다.

여기서 책은 질문을 던진다. 애당초 회사의 ‘소유주’라고 불렸던 이들은 회사의 무엇을 ‘소유’하고 있었던 것일까. 책상 몇 개 혹은 서류뭉치들? 사람이 떠난 회사가 1달러의 가치밖에 안됐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흔히 주주가 주식회사의 소유주라고 생각하지만, 단지 주식을 사들인 만큼의 돈을 냈다는 이유로 절대적인 영향력을 갖는 것이 올바른 일일까.

‘주주는 위험을 감수하고 투자한다. 기업은 주주 이익을 최대화해야 한다.’ 오늘날 자본주의의 신화에 가까운 공식이다. 그런데 ‘투자’라는 말은 거짓말에 가깝다. 대부분의 주주가 주식을 살 때 내는 자금은 또 다른 투기성 투자자에게 돌아갈 뿐이다. 아주 예외적으로 새로 발행한 주식을 사들였을 경우에는 기업에 직접 자금이 들어간다. 그 비중은 월가의 모든 주식거래 자금 중 1% 미만이다. 회사들이 자사주 매입에 쓴 돈을 빼면 오히려 적자다. 회사가 돈을 쏟아부어 주식시장을 지탱한 셈이다. 이렇게 보면 주주는 ‘투자자’라기보다 ‘투기꾼’이다. 주식을 사면서 회사의 주인이 된다는 생각을 과연 몇이나 할까. 물론 초기의 자본 투입은 있었을 터다. 그러나 오늘날 대차대조표에 등장하는 납입자본금은 언제 납입된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대차대조표에서 주주 몫의 이익은 ‘자기자본’으로 분명히 표기되는 반면 직원에게 지급되는 이익, 즉 임금은 비용으로 처리된다.

그 러니 비용절감이란 명목하에 노동자의 몫은 계속 줄어든다. 모건 스탠리의 경제학자 스티븐 로치는 1990년대 직원 생산성 향상은 임금 증가의 세 배였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노동생산성’은 얘기하지만 ‘주주생산성’에 대한 문제제기는 아무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주주이익 극대화라는 명목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수십년 된 공장의 문을 닫고 직원을 해고하는 게 일상화됐다. 환경오염 등 공동체에 해를 끼치는 것도 비용절감이란 이름으로 정당화된다. 1987~1997년 사이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300% 상승했지만 같은 기간 실질임금은 7% 하락했다.

평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역설해온 저자는 “진보적 기업가들의 자발적 움직임이 자본주의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가정친화적 정책을 발표했다가도 결국 구조조정의 물결에 휩쓸려 수만명을 해고하는 기업”을 목도하면서 좌절했다. 그는 자본주의의 폐해 하나하나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권력 분배 구조’의 문제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한다. 오늘날 세상은 정치적으로 민주화되었을지 몰라도 경제적으로는 귀족주의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부를 소유한 자만이 ‘귀족’의 특권을 누린다. 저자는 이를 인종이나 성차별과 같은 ‘빈부 차별’이라고 말한다. 민주주의는 그들 ‘귀족’이 지배하는 기업 내부로 들어오면 작동을 멈춘다. 종업원는 식민지의 국민이나 다름없으며, 심지어 전화나 e메일을 감시당하기도 한다. 저자는 “주식회사의 매출이 국내총생산(GDP)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최상위 부유층이 주식회사의 상당 부분을 소유하기 때문에 주식회사를 주주 이익에 부합하도록 운영한다는 것은 경제를 부유층에게 유리하도록 운영한다는 의미”라고 말한다.

‘경제귀족주의’에 대비해 ‘경제민주주의’를 역설하는 저자는 1776년 미국 독립혁명 시기의 사상가를 인용한다. “초창기 미국인들이 영국 왕실의 집중화된 권력과 싸웠다면, 오늘날 우리는 주식회사와 부유층의 집중화된 권력과 싸운다”는 생각에서다. 그는 “정부를 변혁하거나 폐지할 권리가 시민에게 있듯이 오늘날 세계를 지배하는 주식회사를 변혁하거나 폐지할 권리 역시 시민에게 있다”고 말한다.

책 은 부자나 주주를 적으로 삼아 공격하자고 말하지 않는다. 누구나 부를 얻고 싶어하고 그럴 권리는 존중해야 하지만 “부를 창출한 이에게 이익을 돌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제대로 된 의미의 시장경제이고, 효율성도 가장 높아진다. 재산권의 창시자라고 일컫는 존 로크는 “모든 자에게 그의 정직한 노고로 낳은 산물에 대한 권리를 주는 것이 정의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모두들 “자신만은 귀족이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체제는 유지된다.



경제가 어렵고 일자리가 부족할수록 창업의 열망은 커진다. 출범을 앞둔 박근혜 정부도 벤처기업 지원 등을 통한 ‘제2 창업혁명’을 내세우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신설된 법인은 7만4162개. 처음으로 7만개를 넘어섰다. 창업 지망생이 늘면서 그럴듯한 조언도 쏟아진다.

그런데도 막상 창업한 사람의 성공률은 낮다. 국내에서 창업 후 10년을 버티는 기업은 30% 남짓. 미국에서도 창업 기업의 25%는 1년 내에 사라지고 5년 후에는 45%만 살아남는다고 한다. 미국 하버드경영대학원(HBS)의 노암 와서먼 교수는 《창업자의 딜레마》에서 그 원인을 시장 상황 같은 외부 요인이 아니라 기업 내부에서 찾는다. “기업을 운영하는 것이 하나의 전쟁이라면 사상자는 대부분 아군의 포격이나 스스로 자초한 부상에 따른 결과”라는 것. 창업자와 신생 기업을 괴롭히는 것은 창업 전부터 성장하기까지 도처에서 불거지는 바로 ‘사람’의 문제이며 이 딜레마를 지혜롭게 해결하는 것이 성공의 관건이라는 얘기다.

저 자는 창업자와 신생 기업이 직면하는 딜레마를 조사하기 위해 2000년부터 10년 동안 미국에서 성공적으로 창업한 3,607개 기업의 창업자 9,900명을 직접 조사해 데이터베이스(DB)를 만들었다. 저자가 이 책에서 초점을 맞춘 것은 기술과 생명과학 분야의 신생 기업들이다.

저자는 자신이 구축한 DB와 40건에 가까운 사례연구를 통해 창업자가 처하는 딜레마를 8가지로 요약한다. 우선 창업 전에는 어느 시기에 창업할지 ‘경력 딜레마’를 겪는다. 창업을 결심한 뒤에도 딜레마는 꼬리를 문다. 혼자 시작할지 공동 창업자를 찾아야 할지의 ‘1인창업 대 공동창업 딜레마’, 공동 창업자로 누구를 끌어들일지의 ‘관계 딜레마’, 창업 팀원의 역할 분담에 관한 ‘역할 딜레마’, 지분을 비롯한 경제적 보상에 대한 ‘보상 딜레마’, 기업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창업팀의 역량이나 자원이 부족해 외부 인력과 자원을 투입할 때 나타나는 ‘채용 딜레마’와 ‘투자자 딜레마’, 기업의 발전을 위해 최고경영자(CEO)의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야 할 경우 생기는 ‘CEO의 직위승계 딜레마’까지.

저자는 방대한 자료 분석과 사례 연구를 통해 창업자에게 딜레마 대처법을 제시한다. 우선 창업자의 열정은 새 기업 설립에 필수적이지만 자칫 열정이 편향적으로 작용하면 자신을 겨눈 화살이 돼 돌아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 가령 창업 전망에 대한 지나친 믿음과 낙관을 바탕으로 가족과 친구를 직원이나 투자자로 끌어들이면 인간관계와 기업 모두를 해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창업 시기에 대해 저자는 “성공에 대한 의지가 있다면 때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회사에서 지위가 올라 고액 연봉을 받는 ‘황금수갑’을 차게 되면 창업 의지가 약해지거나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함께 창업할 사람으로는 과거 직장동료를 선택하는 것이 가장 안정적이라고 분석한다. 서로 장단점을 잘 알고 적당한 위계질서가 있으며 목표를 향한 열정도 공유하기 때문이다. 가족이나 친구는 동업 대상자에서 빼는 게 좋다. 그들과는 좌천시키거나 해고하는 등의 불편함을 감수하기 어려워서다.

창업 초기의 지분 분배도 중요하다. 저자는 각 구성원의 과거 기여도와 예상 기여도를 최대한 정확하게 반영하고 다른 사람들의 눈에 불공정해 보이지 않도록 각자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보상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충고한다.

창업자의 딜레마 가운데 가장 결정적인 것은 회사가 성장하면서 불가피하게 직면하는 투자 유치와 관련된 것이다. 인력이든 정보든 돈이든 외부 자원을 끌어들일 경우 지분이나 자리를 양보해야 하기 때문에 때로는 창업자 자신이 세운 회사를 떠나는 경우까지도 생각해야 한다는 것.

저 자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기업과 창업자들의 사례를 통해 이런 딜레마를 설명한다. 판도라의 창업자 팀 웨스터그렌, 통신업체 GTE에서 25년 동안 일하며 경력을 쌓은 뒤 메이저지를 창립한 배리 널스, 스마스틱스의 창업자 비베크 쿨러, 트위터의 CEO이자 PR회사 피드너버의 창업자였던 딕 코스톨로 등이 겪은 딜레마와 대처 과정이 책 전반에 걸쳐 상세하게 나와 있다.



가정용 커피 머신으로 유명한 네스프레소는 오히려 주요 대도시에 고급 커피숍을 차리고 ’매장 커피’를 파는 데 공을 들였다. 집에서 커피를 만들어 먹는 기계를 팔면서 거꾸로 커피숍 운영에 주력한 것. 언뜻 보면 ’앞뒤가 안 맞는’ 마케팅 전략이 효과를 본 이유는 뭘까.

미국 출신 마케팅 전문가인 로저 둘리는 신간 ’그들도 모르는 그들의 생각을 읽어라’에서 이러한 비합리적인 마케팅 전략이 잘 통하는 까닭을 신경과학 이론을 토대로 분석했다. 인간의 사고와 학습, 감정 가운데 95%는 무의식 상태에서 결정되기 때문에 마케팅도 구매자의 감정과 무의식적 욕구에 먼저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

네스프레소는 자체 연구 결과 소비자가 커피를 마시는 감각 경험의 60%가 매장 환경에 기인한다는 점을 알아채고 커피 향으로 가득 찬 매장을 차리는 데 주력했다.

저자는 광고 문구에 형용사를 많이 집어넣는 것도 효과적인 마케팅 전략이 된다고 귀띔했다. 기존 연구에 따르면 식당 메뉴에 적절한 형용사를 쓴 덕택에 매상이 27% 상승했다는 것. 비즈니스 미팅에서 잡담을 먼저 나누는 게 협상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2010년 발표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일정 금액의 돈을 나눠갖도록 하는 ’최후통첩’ 게임에서 참가자들이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나눈 경우 성공률이 83%로 껑충 뛰어올랐다. 이처럼 실제 사례를 토대로 기업에 마케팅 전략을 조언해주는 책이지만 소비자에겐 감정에 휩쓸린 ’비합리적 소비’를 가려내는 데 참고가 될 만하다.



2G, Wibro, 3G, Wifi, LTE…. 알파벳과 숫자의 알 수 없는 조화는 앞으로 또 어떤 생소한 속도의 용어를 만들어낼까. 기술과 사회는 ‘이유나 의미는 알 필요 없으니 더 빨라지라’고 강요한다. 패스트푸드와 스마트폰은 때론 우리 삶과 뇌로부터 진실을 분리시킨다.

이 책은 이러한 맹목적인 현대사회의 속도전에 반기를 든다. 순간적 직관에 몸을 맡기는 대신에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최대한 기다리라고 주장한다. 원제는 ‘기다림(Waiting)’이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단순히 ‘웰빙’이나 ‘힐링’을 위한 추상적 느림이 아니다. 철저히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느림의 가치를 역설한다. 중대한 의사결정에 있어 ‘어떻게’가 아니라 ‘언제’의 타이밍을 조언한다.

심 리학, 행동경제학, 신경과학, 법, 금융, 역사에 걸친 방대한 자료 수집과 전문가 인터뷰가 ‘느림’이라는 추상적 가치를 내세우는 책의 ‘골다공증’을 막는다. 아우구스티누스부터 워런 버핏까지 고금을 막론한 ‘늦춤의 달인’도 소개한다.

책이 전하는 예시는 구체적이다. 야구에서 타자에게는 공의 속도와 궤적을 파악하고 방망이를 휘두르는 데 0.2초가 주어진다. 훌륭한 타자는 이 짧은 시간을 생리학적으로 최대한 늦추는 데 성공한 사람들이다. ‘타이밍의 예술’인 코미디에서 코미디언들은 의도적인 멈춤을 통해 관중의 시간을 왜곡하고 긴장감을 최고조에 이르게 한 뒤 목적을 달성한다. 사과는 빨리 할수록 좋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실제로 사과하는 시점을 가능한 한 늦추는 것이 관계회복에 더 좋다. 진화 과정에서 동물처럼 생물학적 반응이 즉시적이었던 인류는 도태됐고 반응을 늦춰 안정성을 유지한 인류는 살아남았다.

샌디에이고대 법학·경제학 교수인 저자는 전작 ‘대파국’ ‘전염성 탐욕’을 통해 기만적이고 탐욕적인 자본주의의 심장 월스트리트의 안팎을 날카롭게 파헤쳐왔다.

책은 종종 하나 마나 한 당연한 이야기로 빠지기도 한다. 시간을 두고 읽기 못마땅한 독자라면 책의 정수만 기억해도 좋다. ‘잘못된 결정을 내린 순간을 후회한 적이 있다면 지금부터라도 그 순간을 CCTV로 찍어 멀리서 바라보듯 숙고하라. 최고의 순간까지 기다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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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06 14: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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