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왜 전쟁을 멈추지 못하는가 - 트럼프와 1조 달러 전쟁 기계의 야망
윌리엄 D. 하텅.벤 프리먼 지음, 백우진 옮김 / 부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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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이스라엘은 2월 28일 이란을 공습했다. 도널드 트럼프는 이란의 미사일과 핵시설이 미국에 ‘임박한 위협’을 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불과 8개월 전 이란의 핵 능력을 “완전히 파괴했다”라고 선언한 바 있다. 무엇이 달라졌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그는 또 이란이 개발 중인 장거리 미사일이 곧 미국 본토에 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올해 초 미 정보당국은 이란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확보하려면 최소 10년은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뉴욕타임스 역시 이번 공습이 즉각적 위협에 대한 대응이라기보다 정책적 선택에 가까웠다고 분석했다.


“나는 전쟁광을 몰아낼 것이다. 그들은 늘 전쟁하고 싶어 한다. 왜 그럴까? 미사일 한 기는 200만 달러다.” 대선 후보 시절 트럼프는 이렇게 말했다. 또한 “끝없는 전쟁을 끝내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대통령에 당선된 뒤 그는 군산복합체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단 1년 만에 천억 달러 이상 국방 예산을 증액하겠다는 계획도 내놓았다.


조 바이든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했지만 ‘테러와의 전쟁’을 끝내지 않았다. 가자지구 전쟁을 수행하는 이스라엘에 무기와 군사 원조를 확대했고,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원했다. 군수업체와 그 종사자를 “민주주의의 병기창”이라 칭찬하기도 했다.


두 사람은 여러 면에서 대비되지만, 공통점이 있다. 1조 달러에 육박하는 미국의 전쟁 기계를 지탱해왔다는 점이다.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대부분 미국 대통령은 전쟁 경제 앞에서 모순을 반복해왔다. 평화를 말하면서 군비를 확대하는 방식이다.


1961년 1월 17일, 퇴임을 사흘 앞둔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는 군산복합체의 위험을 경고했다. 군부와 산업체가 상호 의존하며 민주주의를 잠식할 수 있다는 우려였다. 그는 국가 방위가 아니라 이익을 위해 새로운 전쟁 방식을 고안하는 집단의 등장을 경계했다.


그 경고는 여전히 유효하다. 미국은 거의 1조 달러 규모의 전쟁 기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성과는 점점 줄어든다. 국방 예산의 절반 이상은 군 인건비가 아니라 민간 기업으로 흘러간다.


같은 자원을 교육, 의료, 사회 인프라에 투입했다면 어땠을까. 미국 사회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재정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미뤄온 변화가 가능했을지 모른다.


군수 산업 내부에서도 갈등이 있다. 신기술 기업이 기존 대기업, 예컨대 록히드 마틴의 몫을 잠식할 것인지, 아니면 국방 예산을 대폭 늘려 모두를 만족시킬 것인지의 문제다. 당분간은 후자에 무게가 실린다.


미국은 왜 그렇게 많은 무기를 판매할까. 정부는 동맹의 안정을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미국산 무기는 불안을 줄이기보다 증폭한 사례가 적지 않다. 미국은 독재 정권에도 수천억 달러 규모의 무기를 판매해왔다.


트럼프는 사우디아라비아 무기 판매 계약이 미국 일자리 50만 개를 지탱한다고 주장했다. ‘무기 수출은 곧 일자리’라는 구호는 빠르게 확산됐다.


의회 역시 군수 로비의 중심이다. 종종 국방부 요청보다 더 많은 예산과 무기 구매를 밀어붙였다. 영향력은 정치권에만 머물지 않는다. 할리우드, 게임 산업, 스포츠, 대학까지 확장된다.


2019년 개봉한 캡틴 마블은 미 공군과 긴밀히 협력한 대표적 사례다. 1986년의 탑건은 군비 확장을 정당화하는 문화적 배경이 되었다는 평가도 있다. 냉전기 치솟던 군비는 스크린을 통해 미화되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투입된 에이브럼스 전차는 상당수가 파괴되었다. 그러나 이를 비판하기보다 옹호하는 목소리가 싱크탱크에서 반복된다. 후원 구조가 연구의 방향을 규정한다. 자기검열과 후원자 검열이 작동한다.


아이젠하워는 말했다.  

“군비 확충은 돈만 드는 일이 아니다. 노동자의 땀, 과학자의 두뇌, 어린이의 희망도 소모된다.”


이미 새로운 전쟁 기계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끝없는 전쟁과 민주주의의 쇠퇴가 동시에 진행되는 시대다.


전쟁 기계의 영향력을 억제하는 길은 있다. 선거 자금 개혁, 회전문 인사 제한, 방산 로비의 투명화, 엔터테인먼트 산업과 군의 협력 공개, 국방 의존 경제 구조의 전환, 대화와 외교 중심의 세계관 수립.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미국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가.


냉정하게 말하면, 가능성은 크지 않다. 미국이 세계 질서의 중심에 서 있는 한, 전쟁 기계 역시 쉽게 멈추지 않을 것이다.


—미국은 왜 전쟁을 멈추지 못하는가 (트럼프와 1조 달러 전쟁 기계의 야망), 윌리엄 D. 하텅·벤 프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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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왜 전쟁을 멈추지 못하는가 - 트럼프와 1조 달러 전쟁 기계의 야망
윌리엄 D. 하텅.벤 프리먼 지음, 백우진 옮김 / 부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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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는 언제나 확대 재생산되고, 그 틈에서 무기는 팔린다. 최근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역시 같은 궤도 위에 있다. 안보를 명분으로 굴러가는 거대한 전쟁 체제, 그 초당적 공모 구조를 정면으로 파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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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싸우는가 - 싸울 수밖에 없다는 착각 그리고 해법
크리스토퍼 블랫먼 지음, 강주헌 옮김 / 김영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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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김건희에게 계엄령은 선택이 아니라 필연이었다.
그 이유를 설명해주는 책이 있다.
크리스토퍼 블렛먼, 『왜 싸우는가』.

“분쟁은 통치자에게 기회가 된다. 전쟁은 통치자에게 국고를 열어준다.”

이 한 문장은 전쟁과 권력의 역학을 압축한다.
대부분 전쟁을 파괴와 손실로 본다. 그러나 통치자의 눈에는 전쟁이 기회다. 위기를 빌미로 자원을 동원하고, 반대 세력을 제압하며, 권력을 공고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블렛먼은 말한다. 전쟁은 우발적 충돌이 아니라 계산의 산물이라고. 손해가 크더라도, 평시에는 얻을 수 없는 이익 때문에 권력자가 전쟁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계엄령도 마찬가지다. 법적으로 극히 제한되어 있지만, 역사는 보여준다. 위기와 불안은 언제나 권력자의 언어와 논리를 정당화하는 토양이었다. “국가를 지키기 위해 불가피하다”는 명분은 쉽게 꺼내 쓸 수 있다. 문제는 그 명분 뒤의 진짜 동기다.

이익이 있기에, 좀 더 큰 이익을 얻기위해 계엄령을 선택한 것이다.

그 비용은 시민이 감당한다.
전장에서 죽는 것은 통치자가 아니라 병사이고, 손실을 떠안는 것은 국민이다. 계엄령 역시 마찬가지다. 두려움과 혼란, 자유의 억압은 시민의 몫이다. 정작 권력자는 그 위기 속에서 권력을 강화하고, 지위를 지켜낼 수 있다.

그러나 분쟁의 비용은 더 이상 시민에게 전가되어서는 안 된다.
비용을 발생시킨 자, 위기를 기회로 삼은 자, 권력을 위해 분쟁을 선택한 자가 그 대가를 온전히 치러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정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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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에 비친 유럽 유럽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1
조셉 폰타나 지음, 김원중 옮김 / 새물결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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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은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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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의 사회학 - 한국 죽음기사의 의미구성
이완수 지음 / 시간의물레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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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부고 기사는 디지털 멀티미디어나 가상현실의 형태 등으로 해당 인물 의 일대기를 입체적으로 전하는 획기적인 방식을 취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방식이든 간에 나는 부고 기사가 이 책에서처럼 근본적인 역할을유 지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 사람의 생애를 돌이켜보고 그 삶의 틀을 만든 시대 를 조명하며, 그 인물의 인생이 현재 우리의 일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보여주는 역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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