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시간 오늘의 젊은 작가 5
박솔뫼 지음 / 민음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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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시간』 박솔뫼 / 민음사

시곗바늘처럼 고요하게 도는 청춘의 시간

 

 

 청춘의 시작, 그 시기를 정확히 언급할 수는 없지만, 어렴풋이 짐작한 나의 그때는 아프지도, 파란만장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언제 이 시간을 다 보내고 어른이 되어서 재밌는 삶을 살까 하는 생각을 하며 울상을 짓기는 했다. 표로 짜인 시간, 입이 닳도록 외우고 다녔던 시간의 목록들, 수능을 앞둔 1,2년 사이에 자유롭게 주어진 시간을 또 시간과 분 단위로 조각내어 종이에 적어 붙여놓곤 했던 책상 위. 그때 그 시간은 정말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는데, 구르는 수레바퀴에 깔려 그저 멈춰있을 것만 같았는데, 이렇게 또 지나왔다.

  무기력하게 보냈던 지난날들 틈에서 소리 죽이며 환호했던 건 뭐가 있었을까. 지금은 고물이 돼버려 제값 주고 팔지도 못할 mp3 속의 음악이었다. 무언가에 크게 열광해본 기억이 흐릿하고, 좋아하는 건 있었지만 미쳐있는 것도 없었던 내게 음악도 최고랄 것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정말 지루했던 수험생의 나날 속에서 나는 좋아하는 가수 세명을 추렸다. 그리고 매일 가던 집 앞의 독서실 책상에 포스트잇을 붙였다. "콘서트 꼭 가자."라고. 무언의 다짐이었다. 하지만 그 확고했던 다짐은 점차 흐려졌고, 그 열망은 어느새 흘러가는 시간 속에 없어져 버렸다.

 

 네 주인공 '우나'와 '우미', '배정' 그리고 '나'는 그저 별다를 것 없는 청춘을 보낸다. 학교를 그만두거나, 비자가 없어서 아직 한국인이 아니거나, 재수에 삼수를 거치고 있는 시간을 보내는 그들. 특별한 케이스라고 여겨지지만, 무의미하고 공허한 '도시의 시간'을 걸어간다. 우나가 유일하게 미쳐있던, 아빠가 좋아하던 기억의 '제니 준 스미스',1954년 태어나 '돌핀'이라는 앨범을 발표했던 가수는 『도시의 시간』 속에서 오직 흐르고 있고 위로가 되는 시간 같기도 하지만, 종적을 감춘 그 가수의 기록을 찾아가는 우나의 삶 또한 무의미하다. 시간은 돌고 돌고, 그들이 사는 '도시의 시간'은 유독 더 느리게 돈다.

 

 "나는 아이러니가 싫어. 그러니까 나는 아이러니라고 하는 것이 싫다." (28p)

  '우나'는 왜 그토록 '아이러니'가 싫다고 말했을까. 흔적이 없는 것을 억지로 찾아내야 했던 아이러니, 시간은 흘러가지만 크게 변화하는 것이 없는 아이러니, 점으로 연결되었던 '나'와 '배정' 그리고 '우나'와 '우미'의 언젠가는 떨어질 수밖에 없는 간격의 아이러니일까. 『도시의 시간』은 참 아이러니한 소설이다. 소설 속 그들은 재수 학원을 가고, 침대에 누워 진심 어린 대화를 하기도 하고, 좋아하는 것을 설렘과 함께 읊고 있지만, 불안함과 모호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파릇파릇하고 생기 넘치는 청춘들은 여기 없다. 소설 속 주인공, 특별함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그들은 항상 그랬던 대로 단조롭게 살아가겠다는 것이 아이러니, 그리고 청춘인 우리도 별반 다를 것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을 거라는 아이러니다.

 

 박솔뫼 작가의 글은 아무도 없는 방의 시곗바늘처럼 고요하게 울린다. 어느새 한 바퀴를 지나가 있는 분침과 초침처럼, 『도시의 시간』도 참 조용히 흘러간다. "익숙하지 않다"는 느낌이 처음이었고, 강하게 들었다. 하지만 자꾸만 되돌려 읽게 되는 게 어쩔 수 없다. 이야기에 집중하지 않고, 그들의 대화와 감정을 깊게 음미하며 읽는다. 낯설지만, 왠지 모르게 나쁘지 않은 기분으로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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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지원받은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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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에 등을 기대고 준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가끔 준이 아주 가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우리는 바람이 뭔지 알았고 비도 알았으니까. 마음도 알고 있다. 슬픔과 우울도 알고 있다. 그건 우리가 가만히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많은 마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는 많은 것을 알았다. 우리는 슬프지 않아도 슬픔을 알고 있다. 기쁠 때에도 우울을 볼 수 있다. 우리가 가만히 앉아 있을 때면 우리 앞으로 많은 소리들이 찾아왔다. 우리는 많은 것을 보게 되었고 그래서 우리는 준이 불렀던 것이 어떤 것인지 잘 아는 기분이 되었다. 동시에 우리는 아득함도 알았고 먼 곳도 알았다. (22p)

아이러니는 옷을 잘 입은 사람이, 그러니까 남자가. 남자가 수트를 입었어. 잘 입은 남자가, 바지에 뭔가 묻은 거야. 바지에 크림 같은 게 묻어서 그걸 하루 종일 고민하는 거야. 검은 바지에 흰 크림이 묻으면 잘 지워도 자국이 남잖아. 멀리서 보면 보이지 않지만 책상에 앉아서 일을 하다가도 무릎을 내려다보면 흰 얼룩이 보이는 거야. 보통은 그렇다. 아닌가? 그렇지? 보통은 그렇다. 그런데 그 사람은 부족한 게 없다. 좋은 사람이다. 그런데도 그 얼룩을 하루 종일 고민하는 거야 옷을 잘 입은 채로. 멋있는 사람이다. 나무랄 데가 없다. 그런데 자꾸 고민을 해. (...) 그런 모습이 아이러니야. 나는 아이러니가 싫어. 정말 싫어. 옷 잘 입은 사람이 크림에 대해 고민하는 게 너무 싫어. 혐오하고 경멸하고 경원시하는 쪽이다. 가끔씩 그게 너무 역겹다고 생각해. 그럴 때면 그 사람을 큰 크림 통에 집어넣었다 빼는 생각을 해. 그럼 그게 아이러니가 아니고 뭐가 되지? 그건 잘 알지 못해. (28p)

시간은 흐르고 나는 지금처럼 살아갈 것이다. 지금 같은 대학생이 직장인이 될 것이다. 그마저도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날 것이다. 그 이후는 알 수 없다. 되는 것 없이 변하는 것 없이 완성되는 것도 나아지는 것도 없고 깨닫고 나아지는 것도 없고 깨닫고 나아가는 것도 없다. 그것만은 꼭 그렇게 될 것이다. 그걸 깨닫고 앞을 보아도 이것 봐. 대구타워에 올라서도 빛나는 불빛 사이 건물들 건물들 매연과 건물들이었지? 반짝이는 야경을 걷어 내면 똑같은 건물들 건물들일 거야. 도서관 휴게실에 나와도 그대로지. 내 마음을 지금의 풍경이 증명하고 있었다. 비둘기는 순간 참새 떼들처럼 동시에 날아올랐다. (46p)

"나는 커다란 들판, 벌판이 좋아. 구르고 굴러도 끝이 보이지 않는 들판. 구를 때는 풀 냄새가 나고 한참을 구르다 주저 앉으면 고요해 새소리도 들리지 않아. 그런데 기다리다 보면 바람 소리가 나는 커다란 먼 곳. 풀, 바다가 좋고 범고래가 좋아 돌고래가 좋아. 큰곰이 좋아. 알래스카 갈색곰 북극곰 코끼리 사자 호랑이. 물이 어는 것 녹는 것. 내가 모르는 커다란 것. 그런 걸 알고 있어. 들판, 벌판, 바람 소리, 바다와 고래, 비, 아주 오랫동안 온 시간동안 하나를 생각해. 달, 부들개지가 좋아. 산에 내리는 비, 바다에 내리는 비, 멀어진 사람을 생각하고, 멀리 뻗어 있는 길과 가로수, 거기에 해가 쨍쨍 내리는 것 비가 종일 내리는 것 다음 날 해가 다시 쨍쨍하고 밤이 되면 달이 내려오는 것, 아주 먼 곳에 있는 사람, 내 속에 들어와서 나와 같이 숨 쉬는 사람. 내가 절대로 모르는 시간. 그렇지만 이미 알고 있는 것이 좋아." (83p)

언젠가 나는 흰 벽이 푸르게 변하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나에게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나는 더 나은 인간이 되지 못했고 더 나아가지도 못했다. 또한 더 나은 인간이 어떤 것인지 한 발짝 다음의 세계가 밝은지 어두운지 알지도 못한다. 알고 싶지도 않다. 나는 벽에 대고 우나 우나 하고 말해 보았다. 꼭 우는 사람 같다. 알고 있는 것은, 어떤 여름날 누군가는 자꾸만 허벅지에 감기는 원피스 자락을 떼어 내고 매번 헤매는 길을 다시 또 걷는다는 것이다. 아무도 길에 없을 때 내가 눈에 보이지 않을 때 누구도 누구를 찾지 않을 때 나는 문을 열었다. 그때 문을 열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매번 여름이고 매번 헤매며 길을 나선다. 그곳에서는, 그 길 위에서는 매번. 그렇게 그 사람은 계속 길을 걸으며 그렇게 반복되는 시간은 시간대로 스스로 자기 자신을 살고 있다. (17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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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저하는 근본주의자 민음사 모던 클래식 60
모신 하미드 지음, 왕은철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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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저하는 근본주의자』 모신 하미드 / 민음사

불편한 소재와 알레고리로 세계를 비판하다

 

 

  단지 제목이 마음에 들었을 뿐인데, 엄청난 책을 고른 것 같습니다. 파키스탄에서 태어났지만 미국 사회에 한참이나 거주했던 작가의 『주저하는 근본주의자』는 다분히 정치적 색깔이 짙은 소설입니다. 초반부쯤에서는 파키스탄인 '찬게즈'가 프린스턴 대학교를 졸업하고, 언더우스 샘슨이라는 미국 회사에 들어가게 되는 모습으로써 마치 주변인처럼 맴돌며 생활하는 이민자의 모습을 묘사하는 내용인가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중간이 돼서 문득 등장하는 '9.11 테러'를 통해 심상치 않은 작가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게 되지요.

 

  주인공은 '9.11 테러' 소식을 접하고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짓습니다. 혐오스러운 인격 장애자라고? No! 그는 "모든 것의 상징성에 빠져들었다."라고 말합니다. 끔찍한 사건의 피해자와 사고의 규모를 생각하지 않은 채, "누군가가 그렇게 가시적으로 미국의 무릎을 꿇렸다는 사실"에 은연중에 통쾌감이 들었던 거죠. 그는 미국인과 파키스탄인, 그 중간의 딜레마 속에서 방황했지만 그를 통해 자의식의 방향을 잡게 됩니다. 먹고살기 위해서, 학벌과 명예로서 미국 사회에 살아남아있지만, 중간에 거쳐있는 박쥐와도 같은, 주인공이 바로 그런 존재였던 겁니다.

  '주저하는 근본주의자'는 이런 주인공의 모습을 확실하게 축약시킨 제목입니다. 이슬람의 종교적 근본주의와 그 세력들을 떠오르게 하는 '근본주의자'라는 단어가 있지만, '주저하다'라는 단어는 어느 정도 그 공격적인 성향을 환기시켜주고 있는 동시에, 제3세계에 속한 나라들에 대한 이분법적 시각을, 나라의 이름으로 이미지가 연상되는 무서운 흑백 논리를 비판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거대한 강대국인 미국 중심의 사고가 세계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아주 용감하게 비판하고 있는 소설이지요. 

 

  참으로 흥미로운 책입니다. 무거운 주제 하에서 작가는 뜬금없이 '에리카'라는 여자와의 사랑 이야기를 중간의 심어놓지요. 이들의 사랑은 답답할 정도로 진지합니다. 에리카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고, 서로 묘하게 끌리면서도 끝까지 가까워지지 못 합니다. 특히나 9.11테러 이후에는 에리카의 심적인 고통이 더욱 격해지지요. 물론 그들 러브 스토리에 말랑말랑하고 로맨스적인 묘사가 들어가 있지만, 저는 다음에 오는 문장에 잠시 멈칫했습니다. "자신의 테두리가 어떤 관계에 의해 흐릿해지고 침범당하면, 되돌리는 일이 늘 가능하게 아니라는 사실"이다,라고 작가는 그들의 사랑을 이야기하는데, 야릇한 기분이 들더군요. 작가가 이들의 사랑 또한 아무 의미 없이 집어넣지 않았다는 생각이죠. 이 러브스토리는 즉, 세계정세를 빗댄 알레고리와도 같았습니다. 우리의 세계는 왜 이 상태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작가의 한탄인 것 같았습니다.

​(옮긴이의 말에 의하면, 에리카와 찬게스는 이름 또한 알레고리로서 존재하는 것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 Amerika와 chingiz Khan. )

 

  사건의 나열도 아닌, 대화가 이어지는 것도 아닌, 독백체의 이 소설은 일단 주인공이 극 중에 있는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내보여줍니다. "-했어요."라는 다분히 친절한 말투인데, 묘한 긴장감이 느껴지는 것은 소설의 첫 부분부터 등장하는 암시에 있습니다. '당신'이라고 지칭하는 그에게 주인공은 "어떤 임무를 띠고 있는 것 같다."라고 이야기하기도 하고, 9.11 테러를 이야기할 때는 "혐오스러워하고 있다."라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그 '당신'이 미국인 인건 틀림없는데, 그가 왜 거기에 앉아 있는지, 왜 주인공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있는지, 혹시 그를 암살시키는 명령을 받고 온 자는 아닌지 - 주인공은 정치적 발언과 시위를 반복하는 교수로 부임하고 있음 -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끝까지 은근한 긴장감을 놓을 수가 없게 되네요. 

   『주저하는 근본주의자』 는 무겁고 불편한 소재와는 달리 책이 꽤 얇습니다. 하지만 160페이지라는 가벼운 분량 안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을 아주 깔끔하게 드러내고 있다고 느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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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을 타면 보통 내 피부는 색상 범위에서 중간쯤에 속했어요. 거리에서는 관광객들이 나한테 길을 물었어요. 나는 사 년 반을 살았지만 미국인이었던 적은 없어요. 그러나 나는 바로 뉴요커였어요. 뭐라고요? 내 목소리가 커진다고요? 당신 말이 맞아요. 그 도시를 생각하면 감상적이 되곤 해요. 아직도 좋은 감정이 남아있는 곳이죠. 불과 팔 개월밖에 살지 않고 그 곳을 떠난 상황을 고려하면 대단한 거죠.

분명히, 내가 초기에 뉴욕에 대해 흥분했던 것은 상당수, 언더우드샘슨에 대한 흥분과 관련있었어요. 나는 첫 출근을 한 날 느꼈던 경외감을 아직도 기억해요. 그들의 사무실은 도시 중앙에 있는 건물의 41층과 42층에 있었어요. 라호르에 있는 두 건물을 합한 것보다 더 높았죠. 전에 비행기를 타고 히말라야에 간 적이 있었지만, 나는 그들의 로비에서 바라보이는 막강한 전망, 극적 효과에는 전혀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 있었어요. 나는 그곳이 파키스탄과는 다른 세계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내 발을 지탱하고 있는 것은 기술적으로 가장 진보한 인류 문명의 성취였어요. (34p)

나는 비교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뉴욕이 라호르보다 더 부유한 것을 받아들이는 건 그래도 괜찮았지만, 마닐라도 그렇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건 힘들었어요. 나는 내가 장거리 선수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어깨 너머로 흘깃 보고, 자기보다 앞서 가는 친구가 선두가 아니라 뒤처진 이들 중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기 전까진 자신이 그다지 형편없지 않다고 생각하는 장거리 선수 말이죠. 어쩌면 바로 그런 이유에서 나는 마닐라에서 내가 전에 하지 않던 행동을 했는지도 몰라요. 품위가 허락하는 한, 더 미국인처럼 행동하고 또 말하려 했던 거죠. 우리와 같이 일하는 필리핀인들은 나의 미국인 동료들을 우러러보고 그들을 글로벌 비즈니스의 상위 계층이라고 본능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어요. 나는 그들이 나도 그렇게 존경해 주기를 바랐어요. (60p)

나는 생각해 보았어요. 당신에게 이미 얘기한 것처럼, 나는 가난하게 자라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일종의 동경을 품고 자랐지요. 내 경우에는 내 가족이 결코 갖지 못했던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졌다가 잃어버린 것에 대한 동경이었죠. 우리 친척 중 일부는 집 없는 사람들이 복권에 매달리는 것처럼 상상 속 기억에 매달렸어요. 노스탤지어가 그들의 마약이었던 거죠. 내 유년 시절은 그 중독의 결과였던 거고요. 무익한 빚, 유산을 둘러싼 다툼, 이상한 알코올중독이나 자살 등처럼 말이죠. 이런 점에서 짐과 나는 사실 비슷했어요. 그는 과자 가게 밖에서 자랐고, 나는 문이 닫히고 있을 때, 문지방에서 자란 거죠. (66p)

짐이 말을 이었어요. "경제는 동물이야. 발전하지. 처음에는 근육을 필요로 했지. 그런데 나눠 줄 수 있는 모든 피가 뇌로 몰려 가고 있었어. 그곳이 내가 있고 싶었던 곳이야. 재정 말이야. 기획 업무. 그게 자네가 있는 곳이고. 자네는 인류가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 몸의 일부에서 나온 피야. 꼬리뼈지. 나처럼 말이야. 우리는 쇠퇴해가던 곳에서 나온 거지." 나는 타이어를 교체하고 트렁크를 닫고 문을 열었어요. 그가 내 옆에 앉아 안전벨트를 하고 우리가 방금 나온 어두운 건물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어요. "사람들 대부분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변화에 저항하지. 힘은 변화되는 데서 나오는 법이야." (8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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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전혜린 에세이 1
전혜린 지음 / 민서출판사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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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전혜린 / 민서출판

 그녀를 끈질기게 사로잡은 존재에의 갈망은, 그리움은...

 

 

 

 50년대, 그리고 60년대, 그리고 그 이후에까지 질곡의 역사와 함께 했던 청춘들의 우상이 있었다. 그 수많은 사람들 중 '전혜린'이 있었다.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서울대학에 입학하고 자신이 갈망했던 문학을 찾아 독일 유학을 했고, 독일의 문학을 우리에게 멋진 문장으로 넘겨주었던 능력자였다. 그 당시 보통 사람이라면 상상할 수 없었던 '엘리트 코스'를 거친 지성인이었고, 서른의 어린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에 '불꽃처럼' 살다 갔다는 이야기가 따라붙었다. 나는 그녀를 『압록강이 흐른다』의 번역가로 처음 알았고, 독문학을 공부한 덕에 가끔씩 그녀의 이름을 듣곤 했다. 천재라고 불리는 그녀의 글이 궁금했고, 넘쳤던 그의 자의식을 알고 싶었다.

 

  어쨌든 하고 싶은 말은, 세상은 비범한 사람들을 참 일찍도 데려간다는 것이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죽은 그녀에 대한 평가는 '친일파의 후손', '짧은 삶으로 인해 과대평가된 천재라는 호칭' 등으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이미 세상에 없는 그녀를 만나볼 길은 2권 남짓의 유고집 밖에는 없다. 전혜린의 글은 삶의 광기와 그녀의 의지가 어려있다고는 하나, 생각보다는 따뜻한 글들도 채워져있었다. 그리고 그 글은 역시 평범하지만은 않다.

 

  춥고 어두운 날씨에 처음 발을 디딘 그날, 막막한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우연처럼 갔던 그곳의 처음은 설레지만 슬펐으리라. 일기 같은 그녀의 글들이, 뮌헨의 도시 '슈바빙'에 탐닉하고 괴로운 추억을 상기하고, 자신과 달리 자유로운 독일 사람들을 보는 그녀의 시선은 안으로, 그녀의 중심으로 파고들었으리라. 삶과 사랑, 어딘지 모르게 마음속 깊게 자리 잡은 그리움을 그녀는 불확실한 삶의 길 속에서 끝없이 묻고 물었던 것 같다. 글의 깊이로는 상상하지 못한 어린 나이의 청춘에, 남들보다 더욱 깊고 깊은 공상으로 갈증을 채웠을 것이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속에는 그녀가 어떻게 살았는지, 살기 위해 어떤 고심을 했는지, 삶을 끊고자 했던 욕망과 고독도 어찌나 깊었는지 어느 정도 직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다. 그녀의 죽음에 온갖 썰이 있기는 하지만, 나는 왠지 그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게 아닐까 생각한다. 삶에 대한 고민이 너무 많아서, 생에 오히려 집착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러나 그녀의 죽음은 어쩔 수 없이 너무나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헤세의 수채화를 좋아했다는 그녀의 글이, 하나밖에 없던 그녀의 딸에 대한 모성과 희열이 너무나 깊게 느껴져서.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속에 줄곧 등장하는 '그리움'이란 단어가, 독일어로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이자 헤세가 무척이나 많이 사용했던 이 단어가 책 속을 한참을 머무르게 한다. 누구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을 법한 그녀의 풍족한 삶에서, 그녀가 그렇게 그리워하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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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안개를 들이마시면서 나는 새파란 하늘을 그리워했다. 감나무와 대추나무를 꿈에 그렸다. 사실로 내가 그리워한 것은 황색 그림자였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감상이나 미학적인 어떤 음탄이 아니었다. 그것은 색이 있는 민족의 환영, 그들의 비극이 내 속에 담겨져 있고 그들의 대표자로 내가 여기에서 간주되고 있는 그러한 절실한 비전이었다. 걷잡을 수 없는 공포였다고 해도 좋다. 강의실 내에 교수의 방언과 노령에 의한 발음의 불명료 그리고 생활 필수품점 속에 진열되어 있는 셀로판지에 담긴 이탈리아 쌀 그 어디서나 비전은 나를 따랐다. (22p)


나는 혼자 살고 싶었다. 내 일생을 바치고 싶었다. 자유롭게......

대학생이 된 후에도 나는 그런 결심을 되풀이했었다. 그러나 운명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곳으로 우리를 데리고 간다. 우리의 의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자유롭지는 않다. 우리가 생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생이 우리를 형성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기치 않았던, 때로는 소망치 않는 방향과 형식 속에 생이 형성해 놓는다.

논리의 수미가 일관된 생을 우리는 희구한다. 그러나 생의 테제와 안티 테제는 논리에서처럼 당연한 일의적 단계를 밟지 않는다. 그러기에는 생은 너무나 혼돈적이고 어두운 밤의 측면과 꿈과 동경 등으로 가득 차 있다. 작은 우연이 일생을 결정하기도 한다. 인간은 유리알처럼 맑게, 성실하고 무관심하게 살기에는 슬픔, 약함, 그리움, 향수를 너무 많이 그의 영혼 속에 담고 있다. (31p)

그리움과 먼 곳으로 훌훌 떠나 버리고 싶은 갈망, 바하마의 싯구처럼 `식탁을 털고 나부끼는 머리를 하고` 아무 곳으로나 떠나고 싶은 것이다. 먼 곳에의 그리움 (Fernweh)! 모르는 얼굴과 마음과 언어 사이에서 혼자이고 싶은 마음! 텅 빈 위와 향수를 안고 돌로 포장된 음습한 길을 거닐고 싶은 욕망, 아무튼 낯익은 곳이 아닌 다른 곳, 모르는 곳에 존재하고 싶은 욕구가 항상 나에게는 있다. (144p)


가장 뜨거웠던 사랑도 `시간`에는 이기지 못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뒤늦게나마 알게 된다. 그리고 우리를 옭아맨 거미줄을 통탄한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결혼하고 애를 낳았다면...... 물론 셰익스피어는 그런 스토리를 쓸 만큼 바보는 아니었고, 그 자신의 결혼 생활도 그러기에는 너무나 불행했고 리얼리스틱했었다.

아는 것은 아담 이래의 비극이고 데카르트 이래의 불행 의식이다. 우리는 낙원서처럼 단 둘만의 행복을 쫓기에는 너무나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아무리 아름답거나 현명한 애인도 시간이라는 숙적을 물리치지는 못하고 있다. 이러한 시간성 밑에 내던져져 있는 인간의 상황이 인간의 비극의 요소를 이루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이다. (212p)


방법

격정적으로 사는 것 - 지치도록 일하고 노력하고 열기 있게 생활하고 많이 사랑하고, 아무튼 뜨겁게 사는 것, 그 외에는 방법이 없다.

산다는 일은 그렇게도 끔찍한 일,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만큼 더 나는 생을 사랑한다.

집착한다. (32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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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다르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8
헤르만 헤세 지음, 박병덕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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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다르타』 헤르만 헤세 / 민음사

 삶의 지혜를 찾는 영적 성장의 체험

 

 

 

  헤세의 작품들을 좋아하지만, 사람 '헤르만 헤세'도 참 좋아한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겠지만 말이다. 그는 아름답고도 서정적인 말들을 쏟아내는가 하면, 폭주하는 듯이 날카로운 말들을 내놓고, 깨달음이 깊은 글들을 창조해낸다. 색감이 참 따뜻한 그림도 그린다. 유약한 학자 느낌이 나는 얼굴에, 지루하지 않고 따분하지 않는 다양한 소재로 작품을 써낸다. 이성과 감성, 둘 다 넘치고 넘쳐 보이는 작가 헤르만 헤세, 그에게는 정신적인 고통으로 치료를 받던 안타까운 시간이 있었는데 그의 시간을 지켜주었던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싯다르타』 는 동양에 대한 헤세의 관심이 투영된 책이며, 성장 소설이고, 그에겐 '수양'과도 같은 책이었다.

 

  실제로 부처의 본명이 '싯다르타' 였지만  우리에게 잘 알려진 '부처'의 생애를 다룬 소설이 아니라 (그러나 소설의 중간, 고타마 싯다르타를 만나기도 한다) 부처와 이름이 같은, 바라문의 아들 '싯다르타'의 성장 소설이다. 그는 인도에서 가장 높은 계급을 가지고 있었으며, 부모님의 바람은 그가 학자가 되는 것이었지만 싯다르타는 조금 다른 길을 선택한다. 자아의 근원을 찾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사문 - 떠돌이 승 - 의 삶을 가기로 결정한 것이다. 아버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끊임없이 자신의 뜻을 무언으로 전달하여 결국 사문이 된다. 그런 그의 곁을 항상 지키고 있었던 것은 친구인 '고빈다'. 그 둘은 세상에 있는 신성한 가치와 깨달음을 찾아 서로 문답을 하며 길을 떠난다.

 

  세상 속으로 걸어들어간 그에게 어찌 역경이 없었겠으나,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역경을 맞이하게 된다. 스승과 교리의 가르침으로는 진정한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는 주장 하에, 싯다르타는 사문 행렬에서 빠져나오고, 사랑하는 여자와 부유한 상인을 만나 세속적인 욕망을 안게 된다. 일종의 유희였고, 돌이킬 수 없는 실수였지만, 그는 시간이 흐른 후 그 모두가 '윤회'였고 모든 것을 버리고 새로 시작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또 다른 현인, 뱃사공을 만난다.

 

  세상의 모든 진리는 누군가에 의해서나 어떤 것에 의해서나 전달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석가모니는 종교의 '세존'이 되기까지, 교리에서 가르쳐줄 수 없는 그만의 깨달음을 얻었고 그로 인해 부처가 된 것이다. 헤세가 그만의 관심으로 엮어낸 불교 철학의 상징 속에서 우리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삶은 연속되는 성장의 길이며 어떤 것도 지속되지 않은 채 변화한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즉 산과 강 자연을 통해서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으며, 자아는 결국 자신을 비움으로써 발견하게 된다. 『싯다르타』는 이렇듯 헤세가 믿었던 불교 철학에 대한 책이며, 불교의 철학 중 '심우도'를 떠올리게도 한 책이며, 실제로 '고타마 싯다르타(부처 - 석가모니)'가 살았던 삶과 맥을 같이 하기도 한다. 하지만 불교를 빼놓고서라도, 책 속의 깨달음을 우리 삶에 대입할 수도 있다. 삶은 성장이며 성숙이며, 경험이고, 그 자체로 지혜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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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창조한 것은 정말로 프라야파티일까? 세상을 창조한 것은 유일자이자 단독자인 아트만이 아닐까? 신들도 너와 나와 마찬가지로 창조된, 시간에 예속되어 있는, 덧없는 피조물들은 아닐까? 그렇다면,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이 좋은 일이고, 올바른 일이고, 뜻있는 최고의 일일까? 제사를 지내고 숭배하여야 할 존재가 유일자인 아트만 말고 또 있을까? 그렇다면 아트만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으며, 그것은 도대체 어디에 살고 있으며 그것의 영원한 심장은 어디에서 고동치고 있는가? 그것은 각자가 자기 내면에 지니고 있는 가장 내적이자 불멸의 것 바로 자기 자신의 자아 속에서 고동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지만 이 자아, 가장 내적인 것, 이 궁극적인 것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가장 지혜로운 현인들은 그것이 살이나 뼈 속에 있는 것이 아니고, 생각 속에 있는 것도 의식 속에 있는 것도 아니라고 가르쳤다. 어디에, 그렇다면 그것은 도대체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그곳으로, 자아를 향하여, 나에게로, 아트만에게로 나아가는 어떤 다른 길, 애써 추구할 만한 보람이 있는 길이 있을까? 아, 그런데 슬프게도 아무도 이 길을 알려주지 않았으며, 그 길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니, 아버지도 스승인 현인들도, 그리고 제사를 지낼 때 부르는 신성한 노래들도 그 길을 알지 못하였던 것이다. (16p)

그리고 언젠가 또 한 번, 이 마을 저 마을을 다니면서 동료들과 스승들이 먹을 양식을 구걸하기 위하여 싯다르타가 고빈다와 함께 그 숲을 떠났을 때, 싯다르타가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 말이야, 고빈다, 우리가 올바른 길을 걷고는 있는 것일가? 우리가 도대체 인식에 접근하고는 있는 것일까? 우리가 도대체 해탈의 경지에 접근하고는 있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그러니까 윤회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상상하였던 우리가, 혹시 윤회의 수레바퀴를 벗어나지 못한 채 그 안에서 맴돌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고빈다가 말하였다. 「우리는 많은 것을 배웠어, 싯다르타, 그리고 아직도 배울 것이 많이 있네. 우리는 쳇바퀴처럼 맴돌도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는 위를 향하여 올라가고 있는 거야. 그 바퀴는 둥근 원이 아니라 나선형이고, 우리는 이미 많은 단계들을 거쳐온거야.」(33p)

싯다르타는 이미 그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숲속을 걷고 있었다. 그는 오직 한 가지 사실, 즉 자신이 이제는 되돌아갈 수 없으며, 자신이 여러 해 동안 영위해 온 생활이 이제는 다 지나가 버린 과거지사가 되었으며, 구역질이 날 정도까지 그 생활을 실컷 맛보고 남김없이 빨아 마셨다는 그 한 가지 사실만을 알 수 있었을 뿐, 다른 것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그가 꿈 속에서 보았던 새는 죽어 있었다. 그 새는 그의 마음속에서 죽어 있었다. 그는 윤회의 업보에 휘말려들어갔다. 마치 해면이 물을 가득 머금을 때까지 물을 흠뻑 빨아 들이듯, 그는 사방에서 구토와 죽음을 자신 속으로 빨아들였다. 그의 마음은 권태와 번민, 그리고 죽음으로 온통 가득 찼으며, 그를 유혹할 수 있는 것, 그를 기쁘게 해줄 수 잇는 것, 그를 위로해 줄 수 있는 것이 이 세상에는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자신에 대하여 아무것도 알게 되지 않기를, 안식을 얻기를, 죽기를 간절히 원하였다. (12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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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캐럴 인디고 아름다운 고전 시리즈 21
찰스 디킨스 지음, 홍정호 옮김, 규하 그림 / 인디고(글담)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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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캐럴』 찰스 디킨스 / 인디고

스크루지 영감에게 찾아온 크리스마스의 축복​

 


 

  나이가 어릴 때도, 이제 어느 정도 알 것 다 아는 (?) 나이에도 12월 25일이 다가오면 들뜬 마음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온종일 라디오에서 나오는 캐럴 음악에 마음이 설레지고, 반짝반짝한 불빛과 트리, 맛있는 음식과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그 하루의 시간은 참 행복한걸요. 어떻게 보면,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 하는 가사도 수긍이 가는 게, 25일에 붙여진 '크리스마스'라는 단어가 '행복해야 한다'는 주문을 걸어주는 게 아닐까 생각도 들어요. 우울하게 있던 지난날도 훌훌 털고 일어날 수 있는 크리스마스의 마법 말이죠.

 

 그런데 이 마법이 절대 통하지 않는 사람이 있었지요. 바로 이름도 유명한 '스크루지' 영감입니다. 25일에 사람들이 신나서 모이는 걸 이해하지 못하고, 기부를 권하는 사람을 내쫓고, 유일하게 자신을 챙겨주며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고 싶다는 조카에게 핀잔을 주죠. 크리스마스에 온 마을에 즐거운 노래가 흐르고, 맛있는 음식이 놓인 식탁 앞에 옹기종기 모여 즐기는 크리스마스도 구두쇠 '스크루지' 영감에게는 한낱 사치일 뿐입니다. 그런 그에게 갑자기 유령이 찾아와 느닷없이 과거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현재, 미래의 모습을 보여주는 유령이 찾아옵니다.

 

 

 

 

  유령이 나타나 시간을 여행하는 풍경이 조금은 으스스하지만, 이 특별한 시간 여행은 영감에게 즐겁다기보다 조금은 가혹한 장면들을 비춰줍니다. 그 장면들이 가혹한 이유는 그의 삶이 각박하고 과거와는 다르게 변해왔기 때문이죠. 아무 이유 없이 심술만 부리는 것 같았던 '스크루지' 영감은 과거에 크리스마스를 즐기며 보내기도 했다는 사실을 시간 여행을 통해서 알게 되고, 지긋지긋한 크리스마스에도 자신을 생각하는 사람이 어딘가에 있다는 것을 보게 되고, 지금처럼 살게 된다면 미래에 어떻게 삶을 마감할지도 미리 알게 됩니다.

 

  '스크루지' 영감 자신도 잊고 있었던 즐거운 크리스마스의 추억을, 자신의 행동이 어떻든 믿고 기다려주는 소중한 사람들을, 행복한 시간을 짚어가는 여행. 그에게 이 시간 여행은 또 다른 의미의 '크리스마스의 축복'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축복을 보고, 과거를 함께 했던 수많은 크리스마스의 풍경과 소중한 사람을 떠올리고, 지금의 혹은 앞으로 올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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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명랑한 여행자들이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한 명 한 명 아이들의 얼굴을 보자 스크루지는 그들의 이름이 생생하게 기억났다. 그 아이들을 보면서 왜 그렇게 기뻤을까? 아이들이 스쳐 지나갈 때 차가운 스크루지의 눈에서는 왜 눈물이 났으며, 또 심장은 왜 그렇게 요동을 쳤을까? 아이들이 갈림길에서 헤어지면서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하는 작별 인사 소리에 스크루지의 가슴은 왜 기쁨이 차고 넘쳤을까? 스크루지에게 `메리 크리스마스`가 대체 무슨 상관이 있기에! 빌어먹을 크리스마스! 그동안 스크루지가 크리스마스에 무슨 덕을 봤다고! (71p)

우아! 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 부인은 구리 냄비에서 푸딩을 꺼냈다. 꼭 빨래하는 날 나는 냄새랑 비슷했다. 그렇다. 빨래 냄새였다. 옆집 빵가게에서 새어 나오는 것과 부엌과 맞붙어 있는 세탁소에서 나는 것이 섞인 듯한 그런 냄새! 그게 바로 푸딩의 냄새였다. 30초도 안 되어 크래치트 부인은 자랑스러운 미소를 지은 채 붉게 상기된 얼굴로 푸딩을 들고 들어왔다. 알록달록한 대포알처럼 탱탱한 푸딩에 브랜디를 조금 부어 불을 붙였고, 꼭대기에는 호랑가시나무로 장식했다.

"와! 근사한데!" 밥 크래치트는 우리가 결혼한 이후로 당신이 만든 푸딩 요리 중 단연 최고라고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부인은 이제야 마음이 놓인다고 말하면서, 사실 방금까지도 밀가루 양을 잘못 맞춘 것 같아 무척 걱정이 되었다고 말했다. 모두들 푸딩에 대해 한 마디씩 칭찬을 했지만, 누구 하나 푸딩이 다 같이 먹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하지 않았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크래치트 가족이라고 할 수 없으며, 그런 얘기를 넌지시 비추는 것만으로도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126p)



"유령님, 제가 유령님이 가리키는 곳으로 가기 전에 한 가지만 여쭙겠습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환영들이 미래에 반드시 일어나는 일들입니까, 아니면 일어날 수도 있는 일들입니까?" 유령은 아무 대답 없이 어느 한 무덤을 가리키고 있을 뿐이었다. 스크루지는 말을 이었다.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들을 보면 그 인생의 끝을 예견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계획한 길로 꾸준히 살아가다 보면 반드시 그 길의 끝에 도달하기 마련이고요. 하지만 그 길을 벗어나면 그 사람의 마지막 모습도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모든 환영들도 그럴 수 있는 것이라고 말씀해주십시오." 유령은 여전히 미동도 없었다. (19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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