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도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4
서머싯 몸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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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도날』 서머싯 몸 / 민음사

나름의 삶을 풍요롭게 살아간다는 것

 

 

 

 

 맨 앞장에 힌트를 주고 시작한다. '면도날'이라는 비유적인 제목의 유래를 유추하고 소설의 모든 이야기를 함축하는 구절이다. "면도날의 날카로운 칼날을 넘어서기는 어렵나니. 그러므로 현자가 이르노니, 구원으로 가는 길 역시 어려우리라. (카타 우파니샤드)"라는 명언. 소설에 등장하는 일상적인 이야기들에 비해 그 뜻은 무거워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을 겉돌고 있었다. 삶과 인간에 관한 이야기일까. '면도날'의 의미란 무엇일까.


  소설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사교계를 누비는 속물적인 인물도, 다분히 계산적이고 의식적으로 삶을 사는 상류층 인물도, 불운한 운명인지 하루아침에 뒤바뀐 삶을 살게 된 인물도, 마땅히 관습을 따라 살아가야 한다는 소신을 가진 인물도, 정말로 자유롭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 그 의미는 다르지만 - 살아가는 인물도 있다. 화자인 '몸' - 단순히 관찰자라고 하기엔 큰 역할을 하는 -이 그들과 교류하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의논을 하고 조언을 한다. 작가는 그 중, 앞에서 언급한 힌트와 관련된 인물을 역시 중점으로 다루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사실은 치열한 그만의 공부를 하면서 살아가는 '래리'라는 인물이다. 그는 소설 속 등장인물들 사이에서도 중심을 이루고 있으며 남다른 성향을 자랑한다. 전쟁이라는 삶의 전환점이 있었고 신을 찾아 떠난 여행에서 남다른 철학을 얻고 온 그와 작가 '몸'이 대화하는 마지막 장면은 이 책의 주축이자 가장 무게를 잡고 있는 부분이다.

 

 신이 어느 곳에 있는지,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넘어 실재에 대하여 고민했던 '래리'의 여정과, 그로 인해 쌓인 확고한 그의 인식은 존경스러울 정도로 가치 있어 보인다. 하지만 『면도날』이 특별한 것은, 그런 '래리'의 삶을 우선적으로 밀어붙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소설의 힌트에 의하면, 스스로의 삶에서 질문을 끝없이 구하고 그 고행으로 답을 얻은 '래리'는 '면도날의 날카로운 칼날을 넘어선' 것이다. 하지만 그 동경스러운 삶이 절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것만은 아닌 것. 작가는 비난하지 않고 특정한 삶을 유일한 것이라고 칭하지도 않는다. 의식적으로 물질을 추구했던 어떤 누군가의 삶도, 사람들과 어울림을 우선으로 삼았던 어떤 누군가의 삶도, 그들 자신에게는 최선이었고 어떤 이유로든 비난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어떤 인생도 추켜세우지는 않았지만, 가장 힘 있고도 반복해서 말하는 중요한 것은 있다. 바로 '자기 확신'과 '열정'이다. 사람들 누구나 다 각각의 방향이 있고 관점이 있지만, 그 나름의 삶을 멋지게 살아가는 방법은 역시나 이 두 가지와 관련이 있다. 내가 어떤 방향을 택하고, 어떤 것을 선택했든 다른 사람의 시선에 휩쓸리지 않고 뚜렷한 주관대로 살아간다면. 어떤 인생이라도 자기만의 확신이 있다면 그 자신에게는 풍요로운 인생이 아닐까. 어차피 끊임없이 변화하는 삶의 비행 속에서 영원하고 절대적인 행복이란 없으니까 말이다. 인생이란 어떻게 살아가야 되냐는 질문에 서머싯 몸은 이렇듯 담백하고 멋진 여정으로 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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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하고 있는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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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벽난로 선반 가장자리에 성냥을 그어 파이프에 불을 붙였다. 냄새가 고약한 구식 프랑스 유황성냥이었다. 그리고 이사벨 옆을 지나 창가로 걸어가 섰다. 그는 창밖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잠시 흐르는 침묵이 마치 영겁처럼 느껴졌다. 이사벨은 래리와 마주보고 서 있던 자리에 꼼짝 않고 서서, 벽난로 위에 걸려 있는 거울로 시선을 던졌다. 하지만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가슴이 미친듯이 뛰었고 불안함이 엄습해 왔다. 마침내 래리가 뒤로 돌아섰다."내가 제안하는 삶이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얼마나 더 풍성한지 설명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신적 세계를 추구하는 삶이 얼마나 즐겁고, 얼마나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는지 당신에게 알려 줄 수만 있다면.......

그건 정말 끝없는 즐거움이고, 말로 형언하기 힘든 행복이야. 그것에 비유할 수 있는 것이 하나 있어. 바로 홀로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날 때의 기분이지. 높디높은 저 위에서, 사방이 온통 무한한 공간뿐인 곳에서 날고 있을 때 말이야. 그럼 끝없는 공간에 취하게 돼. 그때 느끼는 흥분이란, 세상 그 어떤 권력과 영예를 준다 해도 바꾸고 싶지 않지. 얼마 전에 데카르트를 읽었어. 그 평온함, 품격, 명석함이란!"

그때 이사벨이 한사코 말해야겠다는 투로 끼어들었다. "하지만 래리, 그거 알아? 당신은 나한테 맞지도 않는 삶을 요구하고 있어. 내가 관심도 없고, 또 관심을 갖고 싶지도 않은 삶 말이야. 난 그저 평범한 여자일 뿐이라구. 몇 번이나 말해야 알겠어? 난 이제 겨우 스무 살이야. 10년 후면 늙어버릴 거고. 지금 시간이 있을 때 삶을 즐기고 싶어. 아, 래리, 난 당신을 너무나 사랑해. 하지만 당신이 말하는 삶은 시시해.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을거야.(...)" (125p) ​

"래리가 은행 털 계획을 짜기 위해서 그리스어를 공부한다는 말씀은 아니겠죠?" 나도 역시 웃었다.

"물론 아니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어떤 일을 하고자 하는 열망에 너무 강하게 사로잡혀서 자기 자신도 스스로를 어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야.

그들은 어떻게든 그 일을 하지 않을 수가 없지. 그 열망을 충족시키려면 다른 모든 걸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는 거고."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까지도 말이에요?" "물론이지."

"그렇다면 단순한 이기주의에 불과한 것 아닐까요?" "글쎄, 나도 잘 모르겠군."

"래리가 죽은 옛날 언어들을 배워서 뭐하려고 그럴까요?"

"어떤 사람들은 다른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고 지식 그 자체를 갈망하기도 해. 그건 멸시당해야 하는 욕망은 아니야."

"하지만 아무 데도 쓸 곳이 없는 지식을 얻어서 뭐해요?"

"꼭 그런 건 아니야. 안다는 것 자체에서 만족을 느끼기도 하니까. 화가가 그림을 그리는 일 자체에서 만족을 느끼는 것처럼.

그리고 그건 뭔가 더 심오한 것으로 나아가기 위한 하나의 단계일 수도 있고." (148p)

"난 단지 자기 확신이 얼마나 강력한 열정이 될 수 있는지 알려 주고 싶었을 뿐이야. 정욕도, 굶주림도 그 옆에서는 아주 하찮은 것이 되어 버리지. 자기 확신에 사로잡히면 그것으로 자신의 성격을 완전히 단정 짓게 되고, 그로 인해 스스로를 파멸로 몰고 갈 수도 있어. 그 확신의 대상은 중요하지 않아.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일 수도 있지. 어쨌든 그것은 그 어떤 술보다도 중독성이 강하고, 그 어떤 사랑보다도 사람을 지치게 만들고, 또 그 어떤 악덕보다도 강력하고 매혹적이야. 사람은 자신을 희생시키는 순간 하나님보다 훨씬 더 위대한 존재가 되지. 왜냐면 전지전능한 하나님도 자신을 희생시키진 못했으니까." (348p)

"저는 이 세상이 완전한 존재의 본질이 현시된 것이라면 어째서 그토록 혐오스러울 수 있느냐고 물었어요. 얼마나 혐오스러우면 인간이 신 앞에서 세울 수 있는 정당한 목적이 오로지 그 삶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이 될 수 있느냐고 말이죠. 가네샤 씨는 이 세상에서 느끼는 만족은 덧없는 것이며, 오직 무한한 존재만이 지속적인 행복을 줄 수 있다고 대답하더군요. 하지만 끝없이 존속한다고 해서 좋은 것이 더 좋아지지는 않으며 하얀 것이 더 하얘지지는 않죠. 새벽에 아름다웠던 장미가 정오에 그 아름다움을 잃는다고 해도 그것이 새벽에 가졌던 아름다움은 실제로 존재했던 거잖아요. 이 세상에서 영원한 것은 없어요. 그러니 무언가에게 영원한 존속을 요구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겠죠. 하지만 그것이 존재할 때 그 안에서 기쁨을 취하지 않는 것은 훨씬 더 어리석은 거예요. 변화가 존재의 본질이라면 그것을 우리 철학의 전제로 삼는 것이 현명하죠. 똑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순 없어요. 강물은 끊임없이 흐르니까. 하지만 다른 강물에 들어가도 그것 역시 시원하고 상쾌한 건 틀림없어요." (459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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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주인공은 모두 길을 떠날까? - 옛이야기 속 집 떠난 소년들이 말하는 나 자신으로 살기 아우름 3
신동흔 지음 / 샘터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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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주인공은 모두 길을 떠날까?』 신동흔 / 샘터

옛날 이야기 속의 참된 교훈, 나 자신으로 살기

 

 

 

 

 무조건 유쾌하고 즐거운 책들보다는 파란만장하게 고난도 겪는 책들이 끌리고, 조언을 주는 방법이라면 위로보다 채찍으로 가르침을 주는 책들을 좋아한다. 편안함에 안주해있기를 좋아하는 성격 탓이다. 그나마 책 읽는 것을 좋아하니, 문장으로 맞는 채찍은 즐겁고 효과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이 책도 그랬다. 작가의 이름부터가 생소했지만, 여태껏 보지 못한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잔뜩 숨겨져 있었고,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는 나의 마음을 조금 흔들어놓았다.

 

  다음 세대를 위한 '아우름' 시리즈의 세번째 책은 옛날 이야기에서 찾는 삶의 의미를 말하고 있다. 옛이야기는 참 재밌지 않은가. 어린이 동화책에서 나오는 것들도, 다른 사람에게서 듣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도. 그래서 나는 더 자라서도 전래동화를 읽어보고 싶어 기웃기웃했던 것 같다. 이전까지만 해도, 많은 이야기의 교훈인 '권선징악'만을 생각했을 뿐, 그런 이야기들에 별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일단 그럴 필요성을 못 느꼈고, 단지 재밌게 보는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랬으니 이 책에서 작가가 엮어놓은 "집 떠난 소년들이 말하는 나 자신으로 살기"를 보고 눈이 번쩍 뜨였을지도 모르겠다. 난쟁이 집을 만나 정말 천진하게도 침대에 드러누워 잠을 청하는 '백설공주' 이야기에, 작은 몸을 가지고 어떻게 세상을 살아갈까 두렵기만 하겠지만, 아주 스펙타클한 인생을 사는 '주먹이' 이야기에, 귀신이 되어 원수를 갚는 '장화홍련' 이야기에 이렇듯 큰 뜻이 숨어 있었는지 누가 알았겠는가!

 

  작가가 친절하게 구연해주는 이야기가 어찌나 재미있는지 이것을 다 말로 전할 수는 없지만, <아버지 유물>이라는 이야기를 하나만 뽑아내 본다. 언뜻 보면 별것 아닌 것으로 여겨지는 세 개의 유산 - 지팡이, 맷돌, 장구 - 을 가지고 떠났던 삼 형제는 그 물건 하나만 가지고 각자 성공을 업은 채 돌아온다. 첫째는 지팡이로 여우를 때려잡아 사례금을 받고, 둘째는 맷돌을 갈아 도깨비들을 달아나게 하고, 막내는 장구를 쳐 호랑이를 춤추게 한다. 작가는 이들이 가지고 떠난 유산을 비유적으로 풀어내는데, 지팡이는 '여행'으로, 맷돌은 '노동'으로, 장구는 '예술'을 가리킨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교훈을 주는 이 이야기는 작가를 통해 멋진 말로 변신한다. "나는 왜 이렇게 가진 게 없느냐고 앉아서 불평하고 한탄하는 대신 아무거라도 가지고서 훌쩍 길을 나서면 성공할 수 있다"고.

 

  수많은 사람을 통해 가다듬어진 옛날 이야기는 이렇듯 자연스럽게 의미를 전달하면서 교훈을 주고 있다. 작가가 매혹된 옛날 이야기는 "무엇보다도 삶의 진실을 오롯이 담아낸 이야기"이며, 이것은 "기술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밑바닥으로부터 흘러나와 응축되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가장 훌륭한 방법이 있다면 '이야기를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작가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세상에 흐르는 세상을 꿈꾼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자신이 만들어가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나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 그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다.

 

- 다음 세대를 생각하는 인문교양 <아우름> 시리즈의 세번째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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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심봉사는 그 상황에서 주저앉지 않고 일어섭니다. 우는 아기를 안고 밖으로 나가 더듬더듬 마을을 다니며 아낙들에게 동냥젖을 얻어서 어린 딸을 키우지요. 아이가 배불러 웃으면 좋아라 어르면서 얼른 자라 엄마처럼 크라고 덕담도 많이 해줍니다. 그렇게 일 년 삼백 예순 날을 한결같이 움직여서 딸을 예쁘고 착한 아이로 보란 듯이 키워낸 아버지가 심봉사였습니다. 요즘 같으면 그야말로 `장한 아버지 상`을 받을 만한 일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심봉사의 일은 하나의 극적인 변화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방 안에 머물러서 보살핌만 받는 무능한 존재에서 한 생명을 키우는 존재로 탈바꿈한 일이었으니까 말이에요. 그런 변화가 어떻게 가능했느냐 하면 심봉사가 아이를 안고서 길로 나섰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불가능한 일 같았지만, 무작정 밖으로 나서고 나니까 마침내 길을 찾아낼 수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고 보면 바깥세상으로 나서는 일은 아이들한테만이 아니라 모두한테 다 필요한 일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78p)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꼭 그러합니다. 품 안의 자식이란 뜰 안의 화초일 뿐, 그를 통해 자기 삶이 펼쳐지지는 않습니다. 자식은 부모와 다른 세계로 나아가 그들 자신의 길을 찾아내야 합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삶을 실현하는 일일 뿐 아니라, 그들을 세상에 낸 부모의 존재를 확장하고 실현시키는 일이 됩니다. 요컨대 길 떠난 자신의 비극적 죽음을 전하는 이 이야기는 `그러므로 떠나지 않는 것이 낫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렇더라도 떠나는 것이 답이다`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 우리의 결론입니다. (88p)

중요한 건 세상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세상이 크고 무섭다고 숨어서 피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건 마치 주먹이가 아버지 호주머니 속에 갇혀 잇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편하고 안전할지 모르지만, 지루하고 따분한 일이지요. 또 작은 주머니 속이니까 꽤나 어둡고 답답할 거예요. 맞습니다. 주머니 속이라고 꼭 안전한 것도 아니에요. 그 속에 가만히 웅크리고 있다 보면 오히려 큰 병이 날지도 몰라요. 누가 주머니를 짓누르거나 꽁꽁 봉하면 그 속에서 찌그러지거나 질식할 수도 있지요. 기억나나요? `집`이 지니는 빛과 그림자, 저 주머니가 꼭 집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99p)

길 떠남과 돌아옴은, 또는 떠남과 머무름은 서로 뗄 수 없는 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떠남만 있고 돌아옴이나 머무름이 없다면 그건 무척 스산하고 고단한 일이겠지요. 떠날 때는 떠나고 돌아올 때는 돌아오는 것이, 머물 때는 머무는 것이 인생사의 순리라 할 수 있습니다. 낮에는 길을 떠나도 밤에는 머물러 쉬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지요. 움직이지 않고 내내 머무르는 게 함정이 되는 것처럼, 뿌리 뽑힌 상태로 끝없이 떠도는 것도 하나의 함정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14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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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 문학에서 찾은 사랑해야 하는 이유 아우름 2
장영희 지음 / 샘터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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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장영희 / 샘터

 그대들이 몸담고 있는 일상을 열렬히 사랑하라

 

 

 

  "어떻게 보면 아주 큰 의미에서 모든 문학 작품은 다 연애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문학의 궁극적인 주제는 '우리가 어떻게 사랑하며 살아가는가'이니까요. 삶을 사랑하고, 신을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하고, 그리고 나 자신을 사랑하고......." (99p)

 

 이 책을 읽고선, 수많은 문학작품이 결국엔 '사랑'으로 연결된다는 말에 살짝이 놀랐달까요. 사랑이면 이성 간의 사랑, 연애 소설만이 해당한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면 우리가 읽는 문학은 거의 사랑을 기본 소재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랑의 모습에 일종의 고통과 갈등의 장면이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고, 문학의 분위기가 달라지는 것이겠지요. 우리 삶에서도 '사랑'은 정말 많은 부분을 차지합니다. 남녀 간의 사랑을 포함하여 그보다 더 포괄적인 의미로서의 사랑은 많은 문학작품들처럼 다양한 이야기를 부르고,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문학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아마도 이것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문학은, 우리가 어떻게 사랑하며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것이라고요.

 

  故 장영희 교수님의 에세이, 『사랑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에는 특히나 사랑 시들이 많습니다. 영문학자이기도 했던 작가님이니만큼 영시의 원문을 직접 싣기도 했는데, 직접 번역하신 그 시들이 어찌나 아름다웠던지요. "당신이 날 사랑해야 한다면 오직 사랑만을 위해 사랑해주세요." 하는 브라우닝의 시, "한 번도 사랑해 본 적 없는 것보다 사랑해 보고 잃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것을" 하는 앨프리드 테니슨의 시는 오직 '사랑'에 귀 기울이지 않는 제 마음도 강하게 울려주었습니다. 그리고 동화 속의 사랑, 고전 속의 사랑, 다양한 사랑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작가가 불혹의 나이를 넘길 즈음 썼다는 글 한 귀퉁이에는 '삶을 관조하는 구경꾼으로 자리바꿈했다'라며 조금의 아쉬움을 내비치고 있는데, 그 아쉬움 속에는 뜨겁게 사랑했던 젊은 시절에 대한 묘한 그리움이 스며들어 있기도 하지요.

 

  지금까지 읽은 수많은 책 중에서 어떤 책에선 뭘 배웠고, 또 어떤 책에선 뭘 배웠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겠지만, 책 속의 한 줄 한 줄이 인생에 무언가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문학이 나의 삶과 연관되고, 하나의 문학작품에서 또 다른 문학작품을 찾아가고, 그 작품을 읽은 많은 사람과 연결되었다는 것을 행복해하지만, 확실히 무엇을 배웠다고는 말을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하지만 책 속 한 구절을 빌려 말해보자면, 지금 몸담고 있는 일상을 조금이나마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아요.

 작가는 말합니다. "그러므로 젊은이들이여, 당당하고 열정적으로 짝사랑하라. 사람을 사랑하고, 신을 사랑하고, 학문을 사랑하고, 진리를 사랑하고, 저 푸른 나무 저 높은 하늘을 사랑하고, 그대들이 몸담고 있는 일상을 열렬히 사랑하라. 사랑에 익숙지 않은 옹색한 마음이나 사랑에 '통달'한 게으른 마음들을 마음껏 비웃고 동정하며 열심히 사랑하라. 눈앞에 보이는 보상에 연연하여, 남의 눈에 들기 위해 자신을 버리는 사랑의 거지가 되지 말라." (155p)

 사랑했던 날들, 무언가에 헌신했던 날들, 미친 듯이 갈구했던 날들, 비록 고통이 있더라도 온몸을 내던져 사랑을, 삶을, 일상을 보냈던 날들. 지금,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건 이런 게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저도, 무덤덤했던 지금까지의 삶을 반성하고, 조금 더 열렬히 많은 것을 사랑하는 인생을 살아야 하겠다고 다짐해봅니다. ​

 

- 다음 세대를 생각하는 인문교양 <아우름> 시리즈의 두번째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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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가 한 사람의 가슴앓이를/ 멈추가 할 수 있다면,/ 나 헛되이 하는 것은 아니리./ 만약 내가 누군가의 아픔을/ 쓰다듬어 줄 수 있다면,/ 혹은 고통 하나를 가라앉힐 수 있다면,/ 혹은 기진맥진 지친 한 마리 울새를/ 둥지로 되돌아가게 할 수 있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것은 아니리.

내 홈페이지 대문에 걸려 있는 에밀리 디킨슨의 시입니다. 시인의 말처럼 손톱만큼이라도 내 존재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헛되이 사는 것은 아니겠지요. (47p)

연구실의 쪽창 밖으로 보이는 회색빛 하늘을 배경으로 저녁놀이 눈부십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죽음을 5분 남겨 두고 1분이라는 귀중한 시간을 쓰고자 했다는 자연도 이제는 서서히 새로운 생명의 시작을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제 내 삶도 중간을 넘어 내리막길을 가고 있지만 아직도 나는 눈물의 열정으로 대지를 사랑하지 못하고 내 마음의 싸움터에는 치열한 싸움만 계속되고 있습니다. 내게 남은 시간은 얼마일까요? 앞으로 나는 몇번이나 더 이 아름다운 저녁놀을 볼 수 있을까요? (115p)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을 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보는 세상은 이전과 다릅니다. 이른 봄에 피어나는 꽃들이 이렇게 키가 작았었나....... 여름날 밤하늘에 이토록 별이 많았었나....... 어쩌면 사랑은 시력을 찾는 일인지 모릅니다." <연애 소설> 이라는 영화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즉 사랑과 꿈을 잃어버린 세상은 아름다움을 보는 시력을 잃어버린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아름답던 장미가 괴기스럽게 보이고, 찬란하던 햇빛이 생경하고, 하늘조차 낯설어 보이는 이상한 세상입니다.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여자를 사랑한 개츠비의 종말은 그래서 더욱 비참하고 슬픕니다. (119p)

따지고 보면 누구의 삶이든 그 나름대로 다 극적이고 파란만장합니다. 누가 이야기하는가, 무엇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하는가, 그리고 왜 이야기하는가에 따라 아주 평범한 사람의 일생도, 겉으로 보기에 지리멸렬한 삶도 용감무쌍한 무용담의 소재가 될 수 있습니다. 누구나 각자의 삶에서는 자신에게 주어진 싸움을 용감하게 치러 내는 영웅들이니까요. 삶의 진실을 아버지의 입을 통해 단도직입적으로 듣고자 하는 아들, 하지만 끝내 농담으로 일관하는 아버지. 죽음의 순간에도 아버지는 유머와 위트가 넘칩니다. 이는 어쩌면 아버지가 삶이라는 불가해한 것을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지도 모릅니다. 삶이란 재미있고 가볍기보다는 심각하고 무거운 것이지만, 그것에 접근하는 방식마저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12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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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은 없다 -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생명 이야기 아우름 1
최재천 지음 / 샘터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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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은 없다』 최재천 / 샘터

 자연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이유, 알면 사랑한다

 

 

  최재천 박사에 대해서 처음 알게 된 것은 한 강연회를 통해서였다. 과학자, 생태학자, 이화여대의 석좌교수 등의 다양한 타이틀 중, 과학이라면 너무도 지겨운 것으로 생각했던 나의 관심을 끌 소지는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그리고 그때는 동물에 대해 각별한 마음도 없었다.) 그런 그에게 갑자기 큰 관심이 생겼던 것은 '시인의 마음을 가진 과학자'라고 자신을 표현하는 문구에서였다. 시인이 되고 싶은 꿈을 가졌었지만, 어떻게 하다 보니 생물학을 공부하고 있었다던 최재천 박사. 그래서 그런지 그의 강의는 왠지 모르게 새로웠고, 따뜻하게 들렸고, 과학이라는 주제 안에서도 낯설고 지루하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통섭의 식탁』이라는 저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그가 말하는 모든 것들은 '통섭'으로 연결된다. 뼛속까지 문과생인 내가 그의 저서를 읽게 된 것도 '통섭'의 역할이었고, "알면 사랑한다."라고 말하는 그의 주장도 '통섭'으로부터 나온 것이며, 『손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은 없다.』 또한, 이 세상의 통섭을 꿈꾸는 마음이 담겨있다.
 

 그는 묻는다. "생명이란 무엇일까요?" 그리고 또 묻는다. "인간은 동물일까요?" 인간이 동물이라는 사실에 부정하는 사람이 아직도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인간은, 동물이다. 다른 동물들에 비해 조금 더 특별하지만 역시 동물이다. 하지만 그의 말에 의하면 "자연계에서 두뇌가 제일 뛰어난 동물인 것은 맞지만, 현명하지 못한 동물"이다. '공생'하지 못하고 자기 멋대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생명은 자연스럽게 종마다 손을 잡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자연의 경쟁 속에서 살아남은 생명은 모두 짝을 짓고 살아간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이 자연의 일부임을 깨닫지 못한 채 탯줄과도 같은 자연을 하루하루 파괴하고 있다. 공생할 수 없는 삶의 끝은 무엇일까, 최재천 박사를 포함한 많은 생물학자가 가장 고민하고 있는 문제다.

 

  책 속에는 생명을 경시하는 우리가 다르게 생각할 방법과 인간도 자연의 일부임을 일깨워주는 내용이 나와 있다. 그리고 뒤쪽에는 시인의 꿈을 가지던 시골의 한 아이가 어떻게 생명과학을 공부하고, 동물행동학을 연구하는 과학자가 되어있는지를 이야기해주기도 한다. 뜻밖의 길이었지만, 좋아하는 일을 평생 할 수 있어 행복해 보이는 최재천 박사. 그리고 단순히 재미만을 위한 공부라고 여겨질 수 있지만, 어느 학문보다 '기다림'을 요구하는 학문이라는 '동물 행동학'. 더불어 살아가는 삶과 공생에 관한 마음을 세상의 많은 사람이 모두 깨우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알면 사랑한다."라고 끊임없이 말하는 그 마음이 언젠가는 정말 많은 이들에게 전달되었으면 좋겠다.

 

 

 -  다음 세대를 생각하는 인문교양 <아우름> 시리즈의 첫번째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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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포터즈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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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로운 시대가 오면 아무도 탈락하지 않고, 도태되지 않을 수 있는데, 우리는 왜 지금까지 금메달이 아니면, 1등이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하며 살았을까요? 이 모든 것은 `적자` 생존이 아니라 `최적자` 생존이라고 우리가 다윈을 곡해한 데서 벌어진 일입니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다윈이 자연을 이렇게 설명한 것으로 알았습니다. 자연의 생존 경쟁은 치열합니다. 자원은 유한한데 그것을 원하는 존재들은 많으니까 경쟁이 불가피합니다. 우리 모두 경쟁하며 삽니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의 정원은 정해져 있고, 거기에 들어가려면 경쟁해서 이겨야 합니다. 하지만 경쟁에서 이기는 방법이 그저 남을 짓밟고 제거하는 것일까요?

생태학자들도 자연은 무서운 곳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경쟁과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의 미움, 질시, 권모술수가 우리 삶을 지배하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10여 년 전부터 새롭게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이젠 자연도 사랑, 희생, 화해, 평화 등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팽팽하게 경쟁만 하면서 손해 보지 않으려 하는 사회에서 서로 도우며 함께 잘 사는 방법을 터득한 생물이 뜻밖에 많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이지요. (58p)

이 지구 생태계에서 무게와 수로 가장 막강한 두 생물 집단이 어떻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요? 진화의 역사에서 어느 순간에 곤충과 현화식물은 꽃가루받이라는 공생 관계를 만들면서 양쪽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듯 자연계의 가장 기가 막힌 성공 사례 하나만 보아도, 경쟁에서 이기는 방법이 무조건 서로 물고 뜯고 상대를 제거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와 손을 잡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자연계의 모든 동식물을 다 뒤져 보면 손을 잡지 않고 살아남은 동식물은 없습니다. 꽃과 벌, 개미와 진딧물, 과일과 먼 곳에 가서 그 씨를 배설해 주는 동물처럼 살아남은 모든 생물들은 짝이 있습니다. 손을 잡고 있습니다. (59p)

세상이 변했습니다. 세상 문제가 모두 복합적으로 얽혀 있어서 여러 분야가 함께 풀지 않으면 실마리조차 찾을 수 없습니다.

가야금의 명인 황병기 선생님이 첼리스트 장한나에게 덕담으로 들려준 우리 옛말이 있습니다. "우물을 깊이 파려거든 넓게 파라." 나는 21세기의 학문 중 어느 것도 다른 학문의 도움 없이 홀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진리의 심연에 이르려면 깊게 파야 하고, 그러자면 넓게 파기 시작해야 하는데 혼자서는 평생 동안 파도 표면조차 제대로 긁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예전 같은 만능 엔터테이너는 될 수 없어도, 적어도 자기 전공 분야 우물 옆 동네는 넘나들 정도의 소양은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넘나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통섭`입니다. (73p)

한참 원숭이들을 지켜보고 있는데, 어느 순간 내가 원숭이들을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저들이 나를 관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그들 입장에서 보면 웬 `털 없는 원숭이` 한 마리가 나타나 자기들의 담 안을 기웃거리고 있는 것일 테니까요. 우리는 늘 인간의 관점에서만 세상을 가늠합니다. 하지만 그때만큼은 동물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 순간이었습니다. (15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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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나그네 소년 장복이 - <열하일기> 박지원과 함께한 청나라 기행 샘터역사동화 4
김종광 지음, 김옥재 그림 / 샘터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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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의 나그네 소년 장복이』 김종광 글, 김옥재 그림 / 샘터

 '열하일기' 박지원과 함께한 청나라 기행


 

  참 재미있는 어린이 동화가 많습니다. 이번에는 역사 동화입니다. 최근 역사에 관심이 부쩍 많아져서 역사 관련 책들을 뒤적이고 싶어진 터라, 더욱 기대감을 가지고 읽게 되었네요. 『조선의 나그네 소년 장복이』는 박지원의 <열하일기>의 초반 여정을 토대로 재밌게 이야기를 재구성한 동화입니다. 20여 권이나 되는 많은 분량의 <열하일기>를 아주 조금이나마 맛보는 식이지만, 그 시대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열망과 호기심'이 잘 담겨있지요. 아이들의 시선에 맞춘 캐릭터 구성도 돋보입니다. '뚱선비'라고 불리는 '박지원', 아버지 대신 기행을 하게 된 나그네 소년 '장복이', 조선 당대의 유명한 인물들 (김홍도, 조수삼 백동수 등)도 등장합니다. 동화는 주인공 '장복이'가 쓰는 기행문의 형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열하일기>를 아이의 시선으로 축소해놓았다고나 할까요. (물론 상당한 부분이 작가의 창작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 귀여운 나그네 소년은 조선 사회의 모습도 그려내고, 생전 처음 보는 청나라의 이곳저곳을 보고 놀라워하며, 체면치레하지 않는 호탕한 뚱선비 '박지원'을 존경하면서 의아해 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밥그릇을 들고 쭈뼛쭈뼛 다가갔다. 뚱선비는 수저로 쌀밥을 퍽퍽 퍼서는 창대 그릇에 채워 주고, 내 그릇에도 채워 주었다. 뚱선비의 놋그릇에는 쌀밥이 한 수저쯤 남았다. (...) 이걸 진짜로 먹어도 된단 말인가? 양반이 손수 퍼 준 쌀밥을 종놈이 먹어도 되는 것일까? 괴짜 양반님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 괴짜인 줄은 몰랐다. (32p)"

 

 

 

  한양에서 평양, 압록강을 건너 중국으로 가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연경에 가기까지. 지금이야 다양한 방법으로 편안하게 많은 여행지를 볼 수 있지만, 수일에 걸친 나그넷길 끝에 놓여있는 목적지를 발견하는 기쁨은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 같아요. 게다가 신진 문물이 가득 차 있었던 세계의 다른 곳을 체험하는 보람이라니, <열하일기>는 정말 세상을 넓게 보는 시야와 용기로 가득 차있었을 것 같습니다. 엄청난 분량과 '고전이라는 두려움'에 <열하일기> 구경도 못 해본 저는, 아이들 책임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웃음을 띠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중간중간, 어려운 단어들의 해석도 나와 있어 꽤 어린아이들과 읽기에도 참 좋을 것 같네요.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용기를 불러일으키는 소년 장복이 이야기와 함께 재밌는 역사 공부 어떨까요? 

 

"나그넷길 동안 내 머릿속이 얼마나 알차졌는지 내 가슴이 얼마나 넓어졌는지, 아무도 몰라줘도 괜찮다. 무사히 연경에 닿고야 말았다는 기쁨과 보람만으로도 나는 세상을 다 가진 듯했다. (21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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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포터즈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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