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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 문학에서 찾은 사랑해야 하는 이유 ㅣ 아우름 2
장영희 지음 / 샘터사 / 2014년 12월
평점 :
『사랑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장영희 / 샘터
그대들이 몸담고 있는 일상을 열렬히 사랑하라
"어떻게 보면 아주 큰 의미에서 모든 문학 작품은 다 연애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문학의 궁극적인 주제는 '우리가 어떻게 사랑하며 살아가는가'이니까요. 삶을 사랑하고, 신을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하고, 그리고 나 자신을 사랑하고......." (99p)
이 책을 읽고선, 수많은 문학작품이 결국엔 '사랑'으로 연결된다는 말에 살짝이 놀랐달까요. 사랑이면 이성 간의 사랑, 연애 소설만이 해당한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면 우리가 읽는 문학은 거의 사랑을 기본 소재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랑의 모습에 일종의 고통과 갈등의 장면이 포함되어 있을 수도 있고, 문학의 분위기가 달라지는 것이겠지요. 우리 삶에서도 '사랑'은 정말 많은 부분을 차지합니다. 남녀 간의 사랑을 포함하여 그보다 더 포괄적인 의미로서의 사랑은 많은 문학작품들처럼 다양한 이야기를 부르고,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문학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아마도 이것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문학은, 우리가 어떻게 사랑하며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것이라고요.
故 장영희 교수님의 에세이, 『사랑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에는 특히나 사랑 시들이 많습니다. 영문학자이기도 했던 작가님이니만큼 영시의 원문을 직접 싣기도 했는데, 직접 번역하신 그 시들이 어찌나 아름다웠던지요. "당신이 날 사랑해야 한다면 오직 사랑만을 위해 사랑해주세요." 하는 브라우닝의 시, "한 번도 사랑해 본 적 없는 것보다 사랑해 보고 잃는 것이 차라리 낫다는 것을" 하는 앨프리드 테니슨의 시는 오직 '사랑'에 귀 기울이지 않는 제 마음도 강하게 울려주었습니다. 그리고 동화 속의 사랑, 고전 속의 사랑, 다양한 사랑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작가가 불혹의 나이를 넘길 즈음 썼다는 글 한 귀퉁이에는 '삶을 관조하는 구경꾼으로 자리바꿈했다'라며 조금의 아쉬움을 내비치고 있는데, 그 아쉬움 속에는 뜨겁게 사랑했던 젊은 시절에 대한 묘한 그리움이 스며들어 있기도 하지요.
지금까지 읽은 수많은 책 중에서 어떤 책에선 뭘 배웠고, 또 어떤 책에선 뭘 배웠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겠지만, 책 속의 한 줄 한 줄이 인생에 무언가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문학이 나의 삶과 연관되고, 하나의 문학작품에서 또 다른 문학작품을 찾아가고, 그 작품을 읽은 많은 사람과 연결되었다는 것을 행복해하지만, 확실히 무엇을 배웠다고는 말을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하지만 책 속 한 구절을 빌려 말해보자면, 지금 몸담고 있는 일상을 조금이나마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아요.
작가는 말합니다. "그러므로 젊은이들이여, 당당하고 열정적으로 짝사랑하라. 사람을 사랑하고, 신을 사랑하고, 학문을 사랑하고, 진리를 사랑하고, 저 푸른 나무 저 높은 하늘을 사랑하고, 그대들이 몸담고 있는 일상을 열렬히 사랑하라. 사랑에 익숙지 않은 옹색한 마음이나 사랑에 '통달'한 게으른 마음들을 마음껏 비웃고 동정하며 열심히 사랑하라. 눈앞에 보이는 보상에 연연하여, 남의 눈에 들기 위해 자신을 버리는 사랑의 거지가 되지 말라." (155p)
사랑했던 날들, 무언가에 헌신했던 날들, 미친 듯이 갈구했던 날들, 비록 고통이 있더라도 온몸을 내던져 사랑을, 삶을, 일상을 보냈던 날들. 지금,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건 이런 게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저도, 무덤덤했던 지금까지의 삶을 반성하고, 조금 더 열렬히 많은 것을 사랑하는 인생을 살아야 하겠다고 다짐해봅니다.
- 다음 세대를 생각하는 인문교양 <아우름> 시리즈의 두번째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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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포터즈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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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가 한 사람의 가슴앓이를/ 멈추가 할 수 있다면,/ 나 헛되이 하는 것은 아니리./ 만약 내가 누군가의 아픔을/ 쓰다듬어 줄 수 있다면,/ 혹은 고통 하나를 가라앉힐 수 있다면,/ 혹은 기진맥진 지친 한 마리 울새를/ 둥지로 되돌아가게 할 수 있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것은 아니리. 내 홈페이지 대문에 걸려 있는 에밀리 디킨슨의 시입니다. 시인의 말처럼 손톱만큼이라도 내 존재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헛되이 사는 것은 아니겠지요. (47p)
연구실의 쪽창 밖으로 보이는 회색빛 하늘을 배경으로 저녁놀이 눈부십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죽음을 5분 남겨 두고 1분이라는 귀중한 시간을 쓰고자 했다는 자연도 이제는 서서히 새로운 생명의 시작을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제 내 삶도 중간을 넘어 내리막길을 가고 있지만 아직도 나는 눈물의 열정으로 대지를 사랑하지 못하고 내 마음의 싸움터에는 치열한 싸움만 계속되고 있습니다. 내게 남은 시간은 얼마일까요? 앞으로 나는 몇번이나 더 이 아름다운 저녁놀을 볼 수 있을까요? (115p)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을 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보는 세상은 이전과 다릅니다. 이른 봄에 피어나는 꽃들이 이렇게 키가 작았었나....... 여름날 밤하늘에 이토록 별이 많았었나....... 어쩌면 사랑은 시력을 찾는 일인지 모릅니다." <연애 소설> 이라는 영화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즉 사랑과 꿈을 잃어버린 세상은 아름다움을 보는 시력을 잃어버린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아름답던 장미가 괴기스럽게 보이고, 찬란하던 햇빛이 생경하고, 하늘조차 낯설어 보이는 이상한 세상입니다.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여자를 사랑한 개츠비의 종말은 그래서 더욱 비참하고 슬픕니다. (119p)
따지고 보면 누구의 삶이든 그 나름대로 다 극적이고 파란만장합니다. 누가 이야기하는가, 무엇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하는가, 그리고 왜 이야기하는가에 따라 아주 평범한 사람의 일생도, 겉으로 보기에 지리멸렬한 삶도 용감무쌍한 무용담의 소재가 될 수 있습니다. 누구나 각자의 삶에서는 자신에게 주어진 싸움을 용감하게 치러 내는 영웅들이니까요. 삶의 진실을 아버지의 입을 통해 단도직입적으로 듣고자 하는 아들, 하지만 끝내 농담으로 일관하는 아버지. 죽음의 순간에도 아버지는 유머와 위트가 넘칩니다. 이는 어쩌면 아버지가 삶이라는 불가해한 것을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지도 모릅니다. 삶이란 재미있고 가볍기보다는 심각하고 무거운 것이지만, 그것에 접근하는 방식마저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12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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