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향고양이의 눈물을 마시다 - 나의 선택이 세계 동물에게 미치는 영향 동물권리선언 시리즈 7
이형주 지음 / 책공장더불어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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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쩔 수 없다는 말로 위안하기엔 인간은 너무 먼 길을 와버린 것 같다. 지구라는 행성을 입맛대로 바꿔온 인간은 다른 동물들의 삶에 너무도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다. 식생활은 물론, 과도한 개발로 인한 서식지 파괴, 로드킬 등 수없이 많은 문제들이 동물을 위협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와 특히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인간의 쾌락을 위해 희생되는 동물들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목적은 다양하다. 대량 생산, 놀이, 체험, 전통문화, 패션, 건강, 실험... 다양한 이유들에 따라 희생되는 동물의 종과 수도 다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일부 판매자나 기업은 소비하는 사람들을 만족시키고 더 편리하게 동물들을 '다루기 위해' 온갖 방법을 고안한다. 그 과정에서 번번이 학대가 일어난다. 그러나 단지 돈벌이에 혈안이 되어 있는 기업만의 문제일까? 가장 먼저는 '소비자'라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 자주 외면하거나 깊이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사향고양이의 눈물을 마시다>는 이런 소비자들의 작은 선택이 어떤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지 알려주는 책이다.

 

쇼 동물이나 모피 동물, 케이지 사육의 문제들은 미디어를 통하여 여러 번 접한 적이 있으나, 이렇게 다양한 이유로 고통받는 동물들이 있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강한 맹수를 특정 공간에 가둬서 사냥하는 '통조림 사냥', 피를 토하며 죽어가는 소를 보고 열광하는 스포츠 '투우', 야생에서 포획되는 순간 폐사 가능성이 6배 높아진다는 '수족관 돌고래', 죽을 때까지 배에 연결된 호스로 쓸개즙을 채취당하는 '사육 곰', 지느러미가 잘려 바다에 그냥 버려지는 '상어'등 인간의 과도한 욕심으로 인해 희생당하는 동물들이 허다했다.

 

저자는 이렇듯 큰 범위로 퍼져있는 동물학대산업을 막기 위하여 한 명 한 명의 도움이 필요하다 말한다. 지나친 스트레스로 정형행동을 보이는 동물을 아이에게 보여주기보다는 '진실'을 들려주며, 여행을 할 땐 동물학대산업이 포함되어 있는지 확인하고, 당장 모든 것을 끊을 수 없지만 소비를 할 때 인간을 위해 희생하는 동물들을 한 번쯤 생각해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덧붙여 저자는 동물 복지에 힘쓰고 있는 '파리 동물원'의 사례를 소개하기도 한다. 동물의 습성에 따라 다양하게 꾸려진 서식지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관람객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동물을 보려면 하루 종일 기다려야 하는 쇠창살 없는 동물원의 모습은 인간에 의해 서식지를 파괴당한 동물들을 위한 진정한 '보호소' 혹은 '동물원'이 아닐까.

 

사실, 이 책에 대해 읽고 글을 쓰기 전 많이 망설였다. 겨울옷을 마련할 때마다 모피동물의 털 (앙고라, 라쿤, 오리털 등)이 포함되어 있는지를 확인하고 동물 실험을 하지 않은 제품을 찾아보지만, 여전히 고기를 먹고 있는 나는 과연 떳떳한가 하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한 블로그 (링크) 에서 이런 '모 아니면 도'와 같은 생각이 오히려 동물 보호와 관련된 발전을 막는 매개체라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따지면 ㅇㅇ가 더 불쌍해", "그럼 넌 채소만 먹어"와 같은 말들은 실천의지를 없애버리는 사고방식이라고 한다. 완벽한 실천은 무의미하다는 사고방식은 더 많은 무분별한 동물 소비와 동물 학대를 부르고 발전 가능성을 멈춰버리게 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오늘 단 한 가지의 실천만이라도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의 일상은 선택의 연속이다. 무엇을 먹고 쓰고 구매할 것인지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그런데 내 선택으로 지구 저편에 있는 동물에게 고통이 주는 산업이 유지될 수도 있다. 그러니 이제는 선택할 때 더 싼 가격이나 지금 당장의 편의가 아니라 다른 생명을 위한 선택을 하는 건 어떨까. 잠깐의 시간을 들이거나 조그만 불편을 감수한 내 선택이 수많은 생명을 살리는 결과를 가져온다니 어깨가 무거우면서도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181쪽)

 

 

 

56쪽,
매일 물웅덩이를 찾아 물을 먹는 코뿔소의 습성 때문에 코뿔소를 찾아내 죽이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경험 있는 밀렵꾼이라면 물웅덩이에서 기다렸다가 물을 먹는 코뿔소에 다가가 쓰러뜨리고 뿔을 제거하는 데 7분이면 충분하다. 일단 코뿔소의 무릎을 총으로 쏴 쓰러뜨린 후 아킬레스건과 척추를 칼로 잘라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 그러고는 도끼로 코의 뿌리부터 도려낸다. 코뿔소는 즉사하지 않은 상태에서 서서히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는다. 그러다 보니 종종 죽은 엄마나 아빠 코뿔소 곁을 떠나지 못하고 마음 아프게 울부짖는 아기 코뿔소가 함께 발견되기도 한다.



86쪽,
우리나라의 경우 동물이 관람객의 시선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이 아예 없는 사육장도 많다. 심지어 안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게 사방을 투명한 유리로 만든 사육장도 있다. 그나마 관람객에게 전시되는 외부 방사장과 내실이 분리되어 있는 동물원도 동물이 숨을 수 있는 공간으로 통하는 문을 잠가 동물들이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수 없도록 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106쪽,
잔인하게 포획된 어린 코끼리를 사람의 명령에 따르도록 길들이는 작업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비인도적이다. 코끼리가 사람을 두려워하도록 길들이기 위해 훈련사들은 새끼 코끼리를 자신의 몸보다도 작은 나무 상자에 구겨 넣어서 꼬박 일주일을 쇠꼬챙이로 찌르고, 매질을 하며 굶기고, 잠도 재우지 않는다. 이를 파잔phajaan 이라고 부른다.

129쪽,
어두침침한 창고의 문을 열면 곰의 크기보다 그다지 크지 않은 케이지가 몇 줄로 늘어서 있다. 몸을 굴리기도 힘들 정도로 협소한 케이지 안에는 가슴에 흰 초승달 문양이 새겨진 곰이 갇혀 있다. 산딸기, 머루 등 과일과 도토리를 좋아해 하루 종일 산을 누비며 먹이를 찾아 먹고, 높은 나무에 올라가 휴식을 취하는 습성이 있지만, 정작 이곳의 곰들은 케이지 안에서 태어나서 한 번도 쇠창살 밖으로 나가 본 적이 없다. 배에 뚫린 구멍에서는 사시사철 고름이 흘러나오지만 사람이 다가가면 자연스럽게 배를 철창에 갖다 댄다.

150쪽,
진정한 교육은 진실을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벨루가의 귀여운 미소 뒤에 숨겨진 슬픈 진실을 숨기고 겉모습만 보여 주는 것은 교육이 아니라 거짓일 뿐이다. 남은 벨라와 벨라가 담긴 푸른 수조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것보다 한때 그곳에 살았지만 어린 나이에 세상을 뜰 수밖에 없었던 벨로의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것이 훨씬 더 소중하고 값진 교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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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F/B1 일층, 지하 일층
김중혁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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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물컹물컹한 자의식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이 나라 문학판에 작가 김중혁이 버티고 있음은 하나의 축복이다" 책 뒤편에 적힌 문학평론가(김윤식)의 찬사는 다소 불편한 감은 있지만, 왠지 마구 부정할 수는 없는 말이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재미만 추구하면 시시하고, 너무 무겁기만 하면 부담스럽다. 그 중간을 타기가 무척 어려울 것 같은데 작가 김중혁의 소설들은 이 중간쯤을 교묘하고 재치 있게 머무르는 듯하다.

 

 직접 발을 딛고, 냄새를 맡고, 벽을 만져봐야만 알 수 있는 도시의 느낌이 있다. 이쪽 동네는 저쪽 동네와 다르고, 각 동네에 사는 사람의 성향들도 다르다. 오래전 다른 곳으로 이사를 와서 십 년 동안 거닐지 못했던 나의 옛날 동네는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서고, 못 보던 간판들이 생겼다. 벽에 풀이 자라고, 도로도 변했다. 어딘지 모르게 세련되고 발전된 것 같다는 느낌과 아직도 예전 그대로의 공기가 남아 있다는 느낌이 혼재했다. 아마도 그 공기 속에 내 어린 시절의 삶이 담겨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도시의 골목 곳곳과, 그곳에 사는 제각기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김중혁의 소설들은 내가 거쳐간 도시의 풍경과 그 속의 이야기들을 떠올리게 한다. 어릴 적 동네 놀이터에 얽힌 믿거나 말거나 전설을 친구들과 속삭이던 모습을 추억하게 하는 ('냇가로 나와'), 도시의 변두리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벌어지는 일을 상상하거나 ('바질'), 미래의 좌절 ('3개의 식탁 3개의 담배')과 어떤 부정적인 상황 ('유리의 도시')을 그리기도 한다. 독특한 상상력 속에서 작가의 섬세한 시선이 돋보이는 작품도 있다. <1F/B1>은 수많은 건물들의 '사이'에 숨어 도시의 흐름을 관찰하고 돌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하여, <크라샤>는 마술이라는 소재를 통해 소멸과 기억에 대하여 이야기를 펼친다.

 

"내가 만들고 싶은 도시가 있었다. 모든 골목과 골목이 이어져있고, 미로와 대로의 구분이 모호하고, 골목을 돌아설 때마다 사람들이 깜짝 놀랄 만한 또 다른 풍경이 이어지며, 자신이 지나온 길을 되돌아가기도 쉽지 않을 정도로 무수히 많은 갈래길이 존재하는 도시를 만들고 싶었다. 도시의 외곽에는 바다가 있어,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다가 문득 코끝으로 비린내가 훅 끼치는 순간 파도가 자신에게 몰려드는 풍경을 사람들에게 선사하고 싶었다. (32쪽, C1+y = :[8]:)

 

 수록된 일곱 편의 소설들이 모두 재미있었지만, 특별히 좋았던 단편은 책의 맨 앞에 위치해 '이런 소설을 보여줄게'라고 말하는 듯한 <C1+y = :[8]:>라는 작품이었다.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아이들의 거칠고 원초적인 낙서를 따라가다 보면, 도시 속의 작은 도시 같은 보드빈터가 등장한다. 왁자지껄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바퀴자국이 섞인 도시 속 가장 후미지고 눈에 띄지 않는 곳, 숨겨진 골목길을 따라 새로운 장소를 발견하는 경험은 정글 속 못지않게 흥미롭다. 우리가 거닐지 못한 길, 가보지 못한 곳, 도시를 형성하는 작은 하나하나, 도시 속의 '사이'를 쫓는 작가의 섬세한 시선이 좋아서 그의 작품을 더 읽어보려 한다.

 

 

96쪽, 바질
좁은 골목을 걸어 경사가 작은 언덕을 올라가면 사방으로 또다른 골목길이 그물처럼 얽혀 있는 곳이었다. 박상훈은 하늘 위에서 골목들을 꼭 한 번 내려다보고 싶었다. 그물은 얼마나 넓은지, 얼마나 촘촘한지 보고 싶었다. 손가락으로 골목길을 따라 선을 그어보고 싶었다.

133쪽, 3개의 식탁, 3개의 담배
모든 곡선은 직선이야. 앞으로 나가기만 하면 돼.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안개가 더욱 짙어져 있었다.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시간은 충분했다. 오늘밤 안으로만, 아침이 되기 전까지만 모든 작업을 끝내면 됐다.

179쪽, 1F/B1
일층과 이층 사이, 이층과 삼층 사이, 삼층과 사층 사이… … 저는 그 표지판들을 볼 때마다 우리의 처지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특히 숫자와 숫자 사이에 있는 슬래시 기호(/)를 볼 때마다 우리의 처지가 딱 저렇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사람들은 각자의 층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지만 우리는 언제나 끼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곳도 저곳도 아닌, 그저 사이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273쪽, 크라샤
그러나 나는 분명히 안다. 소멸된 것들은 되살아날 수 없다. 그리고 찢어진 것들은 절대 다시 붙지 않는다. 나는 삶과 마술을 때때로 바꾸고 싶어진다. 화장지가 붙는 대신 어머니가 되살아나는 장면을, 스카프가 비둘기로 변하는 대신 돈으로 변하는 장면을, 꿈꾼다. 그러나 그렇게 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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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그래피 매거진 9 김범수 - 김범수 편 - 만들다
김범수.스리체어스 편집부 지음 / 스리체어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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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이나 기술 따위를 들여 목적하는 사물을 이룬다'라는 '만들다'의 사전적 개념은 이미 확장된지 오래다. 디지털 시대로 들어선 지금은 하루에도 수없이 새롭게 '만들어진' 것들을 접한다. 스마트폰을 포함한 디지털 기기 등 사물에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웹사이트와 어플리케이션 등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런데 정보의 양만큼이나 무한한 '새로운 것들' 사이에서, 시대를 앞선 것들을 구상하고 개발하는 사람이 있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이 책의 표지에 처음에 '만들다'와 '김범수'라는 이름이 매치된 것을 보고 어떤 것도 떠오르지 않았는데, 책 초반부터 등장하는 카카오와 카카오 프렌즈 사진들을 보고 그제야 알았다. 하루 종일, 어쩌면 모든 일상을 장악하고 있는 것들 중 하나가 카카오 (그 이외의 것들 : 내 휴대폰 케이스..)인데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이 부끄러웠다. 바이오그래피 매거진 9호의 주인공은 기업가 '김범수'이다. 8.5호부터 달라진 판형과 형식으로 인물에 대해 상세하게 전달한다. 김범수의 삶과 강연에서 했던 이야기, 인터뷰, 미래와 현재에 관한 세계적인 인물의 대담과 인터뷰 등이 수록되어 있었다.

 

 

 

 

 

현 카카오 의장인 김범수가 한 일들을 나열하면, 감탄이 쏟아진다. PC 통신 '유니텔' 개발에 참여하였으며 국내 최초의 게임 포털 '한게임'을 설립하기도 했다. 이후 네이버컴 등과 합병하여 NHN이 되었고, 온전히 '만드는 사람'이고 싶었던 그가 회사를 나와 만든 것이 바로 카카오톡이었다. 당시 스마트폰 메신저가 하나둘 등장할 때였는데 카카오톡은 빠른 시장 선점을 목표로 큰 성공을 이루었다. '그의 창업 규모를 상장 기업에 국한하면 용례가 거의 없는(146쪽)' 수준이라고 한다.

 

 김범수 의장이 한국의 대표 벤처 창업가가 되기까지의 일들을 책으로 읽으면서, 그의 성공 비결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세상에 필요한 것을 정확하게 캐치해내는 능력이 일단 우선적이었지만, 매번 위기와 고비를 겪을 때마다, 그리고 새로운 사업을 생각할 때마다 큰 역할을 한 것은 바로 '결단력'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결단력'은 어쩌면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그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사업 성공 확률이 그렇게 높지 않기 때문에 일단 실패를 염두에 놓고 시작해야 돼요. 비가역적인지 아닌지를 곰곰이 따져야 해요. 한번 했다가 다시는 재기할 수 없다면 정말 신중히 결정해야 해요. 한번 했다가 이건 아닌 것 같아서 빨리 돌아오면 그건 손해가 아니라 큰 경험이죠. 그런 의미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말이에요." (217쪽)

 

 

 

 

 "게임이 바뀌었다" 누구도 그에게 '게임이 바뀌었다'고 말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 역시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 청년이 맞은 현실과 비슷합니다. 열심히 공부해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발을 내딛는 순간 게임의 룰이 바뀐 것입니다. 세상 어디에서도 자신을 찾지 않는 현실을 발견합니다. (…) '직'이 아닌 '업'에 집중하십시오. 여러분이 할 수 있는, 나아가 잘할 수 있는 업을 찾아야 합니다." (스타트업 캠퍼스 총장 취임사를 바탕으로 발췌, 각색 80-90쪽)

 

 미국 실리콘 밸리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보고 감명을 받은 그는 현재 후배 인재 양성에 힘쓰는 멘토로써 자리하고 있으며, 또다시 새로운 '만들기'를 구상 중이라고 한다. 기업가로서 성공을 하였지만 10년 뒤 코딩을 배워 무엇인가 만들고 싶다는 그에게는 '개발자'라는 이름이 더 친숙한 것 같다. 사회적 기업과 '행복과 선택'에 대해서 말하는 그는 무척 인간적으로 느껴진다. 바이오그래피 매거진 9호의 인물로 김범수 의장을 선택한 것은 아주 탁월했다고 생각한다. 4차 산업이 대두되는 이 시대, AI에 대한 기대와 우려까지 담은 이 책은 무척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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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쇼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26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지음, 서은혜 옮김 / 민음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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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문학과 그리 친하지는 않지만, 주워들은 것은 많아 '아쿠타가와'라는 이름은 낯설지 않다. 일본 순수 문학을 창작하는 신인들에게 발판을 마련해주는 '아쿠타가와 상'이 바로 작가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비참한 현실과 신경쇠약으로 젊은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작가의 인생은 파란만장했다. 작품 해설을 보면 그가 죽기 전 남겼던 마지막 시구 이야기가 있는데, "자조, 콧물만 코끝에 살아남았네" (304쪽)라는 대목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마지막 이 시구와 『라쇼몬』이라는 책의 전체적인 느낌이 묘하게 어우러지는 것 같았다.

 

 촌철살인(寸鐵殺人)이란 말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수록된 열네 편의 소설들은 짧지만 정곡을 찌르고, 인간사의 비틀린 지점을 정확히 꿰뚫는다. 인간의 본성을 풍자하거나 ('코', '마죽'), 어떤 한 지점에서 몰려오는 불안 ('다네코의 우울', '꿈') 등을 그린다. 선과 악의 경계를 파헤치고 ('라쇼몬), 인생의 중요한 무언가를 제시하는 우화 ('거미줄', '두자춘')를 그리기도 한다. 가히 천재적이라 할만한 점은, 여섯 페이지 남짓한 짧은 단편에서부터 비교적 분량이 많은 단편까지 어느 하나 비슷한 이야기는 없으면서도, 무거운 주제를 희극과 비극, 환상과 현실을 넘나들며 특유의 분위기를 형성해 다룬다는 것이다. (이 분위기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나와는 안 맞는 것인데도 중독될 지경이었다.)

 

이는 몇몇 작품에서 절정에 달하면서 절대 잊히지 않을 인상을 남겨주었다. 예술적 욕망과 충돌한 가장 비극적이고 참혹한 장면을 다룬 <지옥변>은 '예술의 이상향'을 꿈꾸었던 그의 실제 마음이 담겨 있었다. 또한 일본의 상상 속 동물들의 세상을 통해 염세적인 시선을 드러낸 <갓파>에는 그가 가장 궁지에 몰렸을 때에 집필한 것으로, 모든 것을 털어놓은 듯한 자조적인 모습도 엿볼 수 있었다. 일본 고전 영화의 걸작으로 꼽히는 「라쇼몬」 (구로사와 아키라, 1950)의 원작이 되기도 한 <덤불 속>이라는 작품은 새로운 형식과 '중유(中有:이승과 저승 사이, 49재)'를 떠도는 인간의 모습을 새로운 형식으로 다룬 것인데, 생동감 있는 영화로 보고 싶은 마음이 진해지는 작품이다.

 

"아뇨, 너무 우울해서 거꾸로 세상을 바라본 거예요. 그래봤자 마찬가지로군요." (259쪽, 갓파)
현실과 가장 가까운듯하면서도, 또 멀기도 한듯한 세계를 그려낸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인간의 내면과 부조리한 세계를 다뤄낸 (그리고 재밌기까지 한) 작품들 속에서 그 이름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25쪽, 마죽
물론 그는 그것을 누구에게도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아니 그 자신조차 그것이, 자신의 평생에 걸친 일관된 욕망이라고는 뚜렷하게 의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사실 바로 그것 때문에 살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였다. 인간은 간혹 충족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욕망을 위해 일생을 바쳐 버리기도 한다. 그것을 어리석다고 비웃는 자는 필경, 인생에 대한 방관자에 불과할 것이다.

48쪽, 라쇼몬
어떻게도 할 수 없는 일을 어떻게든 하기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릴 여유가 없다. 가리고 있다가는 담벼락 아래나 길바닥 위에서 굶어 죽을 뿐이다. 그리고 이 문 위로 실려 와 개처럼 버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뭐든지 가리지만 않는다면…… 하고 하인의 생각은 몇 번이나 똑같은 길을 오가던 끝에 마침내 이런 결론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 ‘않는다면‘이라는 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결국 ‘않는다면‘에 머무를 따름이었다.

89쪽, 엄마
도시코의 목소리에는 지금까지 없었던 격렬한 힘이 담겨 있었다. 사내는 와이셔츠 어깨와 조끼를, 이제는 가득 비치기 시작한 눈부신 햇살로 도금하면서 그 물음에 대해서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무언가가 앞을 턱 가로막고 있는 것처럼.

159쪽, 지옥변
요시히데의 그 얼굴을 저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우마차 쪽으로 달려가려던 그 사내는 불이 타오르는 것과 동시에 발을 멈추고 여전히 손을 내민 채 집어삼킬 듯한 눈초리로 차를 휘감은 화염을 빨려들 것처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온몸에 불빛이 비쳐 주름투성이의 추한 얼굴은 수염 터럭까지 똑똑히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 커다랗게 치켜뜬 눈이며, 찡그린 입술 언저리, 혹은 끊임없이 씰룩거리는 뺨 근육 등이 요시히데의 마음속에 끊임없이 오가고 있을 공포와 비통함과 경악을 역력하게 얼굴에 그려놓았습니다. 목이 잘리기 전의 도둑이라도, 아니면 시왕청에 끌려 나간 십억 오악 죄인이라도 그렇게 고통스러운 얼굴을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186쪽, 두자춘
큰 부자가 되면 듣기 좋은 소리를 하다가도 가난해지면 아는 척도 하지 않는 세상 사람들에 비하면 얼마나 고마운 마음입니까? 얼마나 애틋한 결심인가요? 두 장춘은 노인이 타일렀던 것도 잊어버리고 엎어질 듯 그 곁으로 달려가더니 두 손으로 빈사 상태인 말의 목을 끌어안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어머니." 하고 부르짖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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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잠깐 설웁다 문학동네 시인선 90
허은실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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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냥 좋아"라는 말이 시집에선 허용될 것만 같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좋다는 말 한마디로 충분하다 (때로는 어떻게 말할지 애매해서 쓰질 못하지만). 그러나 여느 때와 다르게 이렇듯 길게 써내리는 이유는 담고 싶은 문장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라고, 애써 핑계를 대본다.


 예전, 대학교 강의 시간에 여성적 글쓰기에 대해 잠깐 언급이 된 적이 있었다. 대표적인 작가도 이름만 붙여서 이야기되었다. 교양 수업이라서 깊게 들어가지 않았기에 그리 영향력 있게 다가오지 않았던 설명이었다. 이 시를 읽으면서 그때의 기억이 났다. 만약 지금이었다면 허은실이라는 이름을 붙였을 것이다. '밀도 있는 여성의 말', 여성이 온몸으로 부딪쳐 살아온 생애가 실려있는 시집이다. 어쩌면 여성만이 쓸 수 있는 시집인 것 같기도 한데, 시인이 하고 싶던 말이 아주 꼭꼭 담겼다. 은은하면서도 고요하면서도, 강하게  흘러나오는 언어들이 마음에 쏙 박혀온다.


"소풍이라 말하려 했는데 / 슬픔이 와 있다 (12쪽, 저녁의 호명)"
"익숙하던 것들이 먼저 배반하지 / 그러므로 어느 날 / 밥 냄새를 견딜 수 없게 되는 것 / 너의 멜로디를 참을 수 없게 되는 것 (50쪽, 입덧)"


 이토록 슬픔이 진하게 느껴지는 것도 희한한 일이다. 요즘 부쩍 무던하게 넘기곤 했던 페이지가 느즈막이 넘어간다. 한숨이 쉬어진다. 구름에 손이 닿을 것 같은 언덕에서 붉은빛이 돋았다가 어느새 어둑어둑해지는 석양을 닮았다. 저녁의 붉은 노을. 가슴이 벅차오르는 듯, 가장 행복했던 기억과 어떤 불안한 기억과 장면이 동시에 떠오르는 순간들. '한 생애의 후루룩'이라는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인생의 초입에 있는 나는 일상에서 벗어나 이 시집을 읽었을 느낌을 상상하는데도 그게 무엇인지 알 것만 같다.


"후루룩 입천장이 데이는 시절 / 어둑신한 부엌에 서서 달그락거리는 / 한 생애의 / 후루룩, (70쪽, 후루룩 - 최승자 시인에게)"


 '다 자라지도 않았는데 늙어가고 있'는 우리는, 매일 똑같은 장면과 비슷한 소음을 듣는 우리는, 사소하고 익숙한 것들에 다치고 뒹구는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며 견디고 있을까. 구수하게 흘러나오는 추억과 눈물이 핑 도는 어린 시절의 냄새 같은 것들, 그때는 떨쳐내고 싶었던 기억들. 설웁다고 말하며, 최승자를 떠올리는 시인 허은실에게서 깊은 아픔을 보다가, 제목에 붙여진 '잠깐'이라는 말에 안심을 한다. 그래, 우리는 잠깐, 잠깐씩 슬퍼하며 하루를 살아내고 있다. 잠깐, 정도라면 충분히 괜찮다. 어쩌면 이 수식어는 시인이 건네준 찰나의 위로인 것 같기도 하다.


 


20쪽, 바람이 부네, 누가 이름을 부르네
입안 가득 손톱이 차올라 / 뱉어내고 비워지지 않네 / 문을 긁다 빠진 손톱들 / 더러는 얼굴에 붙어 떨어지지 않네
숲은 수런수런 소문을 기르네 / 바람은 뼈마디를 건너 / 몸속에 신전을 짓고 / 바람에선 쇠맛이 나
어찌 오셨는지요 아흐레 아침 / 손금이 아파요 / 누가 여기다 슬픔을 슬어놓고 갔나요 / 내 혀가 말을 꾸미고 있어요

36쪽, 목 없는 나날
타인을 견디는 것과 / 외로움을 견디는 일 / 어떤 것이 더 난해한가
다 자라지도 않았는데 늙어가고 있다 / 그러나 감상은 단지 기후 같은 것
완전히 절망하지도 / 온전히 희망하지도 / 미안하지만 나의 모자여 / 나는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



47쪽, 당신의 연안
나는 당산나무 벌어진 가지 속에 / 돌 하나를 몰래 끼워둡니다 / 당신이 나무를 올려다보며 천천히 한 바퀴를 더 돕니다 /공전은 서로의 둘레를 걸어주는 일




58쪽, 이마
타인의 손에 이마를 맡기고 있을 때 / 나는 조금 선량해지는 것 같아 / 너의 양쪽 손으로 이어진 / 이마와 이마의 아득한 뒤편을 / 나는 눈을 감고 걸어가보았다
이마의 크기가 / 손바닥의 크기와 비슷한 이유를 / 알 것 같았다




84쪽, 바라나시
대답이란 날카로운 물음표 / 아가미를 꿰는 낚싯바늘이어서
가닿지 못할 음역을 / 더듬어볼 뿐
슬픔이라는 타관을 떠돌다 우리는 / 미아가 되어 / 어린 염소를 껴안고 / 오 미아미아 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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