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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오지 않는 것들 - 최영미 시집 ㅣ 이미 1
최영미 지음 / 이미출판사 / 2019년 6월
평점 :
누군가 잃어버린 작은 개가 길가에서 처참한 사체로 발견된 사진을 봤다. 머리만 집중적으로 훼손되어 길에는 피가 흘렀다. 주인이 개의 억울한 죽음을 파헤치고자 본 CCTV에는 오토바이를 타고 온 남자 두 명이 개의 머리를 집중적으로 차고, 결국엔 죽이고, 박수까지 치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고 한다. 국민 청원이 열렸지만 확실한 해답이 나올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인간이 어디까지고 잔인해질 수 있는지 하루하루 시험하게 되는, 믿기 힘든 뉴스들은 계속해서 흘러나오고, 흘러나올 것이다.
차라리 귀를 닫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종종 생각한다. 사람들의 지나친 관여와 악담은 어떤 ‘약자’를 죽이고, 수그러드는 듯하다가도 금세 다시 타겟을 찾는다. 권력은 국가 위에 군림하고 그들의 이익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한다. “인간에겐 희망이 없어요.” 수많은 범죄를 목격하는 이수정 교수의 발언을 캡처해 돌아다니는 ‘짤’을 보고는 조금도 과하다 생각하지 않았다.
빛의 속도로 분노와 적의를 실어 나르는 우리는 / 누구를 가슴속에서 완전히 지우고도 / 흔적을 남기지 않는 기술을 아는 우리는 // 지우개를 발명하고 / 사랑과 증오를 오려붙이고 / 마음에 들지 않는 댓글은 차단하고 / 아무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고 / 심심해서, 라고 말하는 인류는 (97쪽, <쓰는 인류>)
환멸로 쓰인 시. 이 책의 모든 시가 그렇다고는 할 수 없으나, 아무튼 이 구절에서 나는 세상에 대한 불만을 느꼈던 많은 일들을 생각하게 된 것 같다. 시집의 처음도 아마 그랬으리라. 등단 이후, 오랜 시간 동안 참아온 일들을 터뜨리고, 문단을 세차게 흔들어 놓은 시인의 하루는 너무나 고단했을 것이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시 <괴물>과 ‘미투’ 이후, 최영미 시인은 1인 출판사를 차렸다. 새 시집을 출간하려 했지만, 제안을 넣은 여러 출판사들에게 답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단 권력을 노골적으로 비판한 그의 이름을 부담스러워했다고 시인은 밝혔다. “그럼 내가 내야겠네.” 시인은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 당찬 해답을 냈다. 그의 인터뷰 기사(링크)에는 그렇게 자기 손으로 신작을 만든 일련의 과정이 간단히 드러나 있었다.
이미 존재하는 언어로 / 존재하지 않는 깊이를 표현하려는 / 욕망에서 시가 탄생했다 / 징그럽게 늙지 않는 얼굴들 / 깊이 없는 이름들, 검색어가 점령한 서울 / 새로운 기술에 열광하는 전염병을 피해 / 바빌로니아를 발굴하려는 욕망으로 / 시가 뚱뚱해졌다. (62쪽, <깊은 곳을 본 사람>)
요즘의 시대에 최영미의 시를 읽는다는 건, 낯설고도 재미있는 일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최영미의 시는 너무도 솔직하기 때문이다. 더 아름답고 더 깊이 있고 더 아리송해지려 노력하는 듯한 시들의 모임 속에서 오히려 뚜렷한 개성을 드러낸다. 직접적인 언어들로 감정을 전달한다. 시가 달아나 떠오르지 않는 순간을, 어머니의 병간호를 하는 지난한 일상을, 법원에서 소장을 받은 모욕적인 기억을, 스스로 출판과 경영을 하며 겪은 새로운 경험들을, 시인은 쓴다.
허공에 색을 덧칠한 언어들 / 말이 말을 낳고 / 은유가 은유를 복제하는 / 요사스러운 말의 잔치에 질려, 나무를 보고 / 눈을 떴다 감았다 / 초록에 굶주린 몸이 도서관을 나온다 / 시 따위는 읽고 쓰지 않아도 좋으니 / 시원하게 트인, 푸른 것들이 보이는 / 자그만 창문을 갖고 싶다 / 담쟁이넝쿨처럼 얽힌 절망과 희망을 색칠할 (85쪽, <꿈의 창문>)
허무와 현실 앞에서 지나친 꾸밈 따위는 어떤 소용도 없다고, 시인은 말하는 듯하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고 말하던 그의 솔직함과 당당함은 아직도 살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