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엘레지 읻다 시인선 2
에드나 세인트 빈센트 밀레이 지음, 최승자 옮김 / 읻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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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언어로 쓰인 ‘시’를 번역한다는 건 어떤 문학보다 더 어려울 것이라 생각된다. 시를 잘 몰라도 짐작할 수 있다. 시인의 시선과, 초점이 맞춰진 순간과, 행간의 리듬을 파악하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테니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 건 이 책이 최승자 시인의 번역이었으며, 작가와 텍스트와 번역가로 이어지는 흐름을 오랜만에 깊이 느껴보았기 때문이다. 낯선 시인의 시를 익숙한 시인이 이어준다. 게다가 둘의 ‘케미’가 너무 좋다는 게 느껴진다. 조금 든든한 기분이 든다.

빈센트 밀레이라는 이름은 낯설었지만 알고 보니 다른 시 모음집에서 그의 시 한편을 마주친 적이 있었고, 한국에서도 일부 암송되는 시가 있었다. 한국의 여성 시인이 자신의 책에서 시를 거론한 적도 있었다. 이리도 낯설고도 가까웠던 빈센트 밀레이는 20세기 미국의 대표 시인이자 여성 최초의 시 부문 퓰리처상 수상자였으며, 생전엔 자유를 갈망하는 페미니스트와 보헤미안의 삶을 살았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시가 페미니즘 색채를 띤 것은 아닌데, 오히려 시에서 계속 반복되는 언어들은 슬픔과 죽음에 가까우며 전체적인 이미지는 고요하고 웅장하다.

인생은 그 자체가

빈 술잔, 주단 깔리지 않은 층계.
해마다, 이 언덕 아래로,
사월이 재잘거리며, 꽃 뿌리며
백치처럼 오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 18쪽, <봄>


죽음과 허무, 슬픔의 언어들이 많이 보인다. 그러나 시는 죽음의 고통이나 어두운 부분에 대해 깊게 집중하는 것 보다도, 언젠가 찾아오게 될 죽음을 통해 삶을 각성시키는 듯한 몸짓으로 느껴진다.
“삶은 계속되어야 해. 정확히 그 이유는 잊었지만” <비가>라는 시 속의 문장으로 이 몸짓을 설명할 수 있을까. 상실과 고독과 슬픔을 부르짖으면서도 마음이 이끄는 대로 어디론가 나아가야 하는 시인이다. 이유 모를, 삶에 대한 의지는 계속된다. 거의 안간힘에 가까운.

아무 의미 없는 것들이 어느 순간 많은 의미를 품게 되는 순간이 있다. 삶의 모호함 속에서 스쳐지나가는 아름답고 사소한 것들이 서서히 쌓이고 쌓인다. 의지는 아마도 그렇게 생겨나는 것이 아닐까. 시인의 경우엔 사소한 무언가가 어떤 것이었을까.
지금, 이 계절에 읽기 좋은 시집이다. 차가움과 따뜻함이 함께 느껴지니 신기하고 몽롱한 기분. 그래서 이상하게 반복해서 읽게 된다. 곱씹을 수록 더욱 차갑고 뜨거워진다.

 


 

● 12쪽, <슬픔>
사람들은 옷을 차려입고 시내로 간다.
나는 내 의자에 앉는다.
나의 모든 생각들은 느리고 갈색이다.
서 있거나 앉아 있거나
아무래도 좋다. 어떤 가운을 걸치든
혹은 어떤 구두를 신든.

● 89쪽, <죽음>
아늑하고 고요하게 누운 채로,
만일 내가
그 속에 앉아서
주의 깊게 듣고 엿보는
감각할 수 있는 나를 가진
감각할 수 없는 물질일 수 있다면,
나는 죽는다는 것과
흥정을 시작할 수도 있으리라.

● 104쪽, <눈 속의 수사슴>
눈 속의 수사슴을 무릎 꿇게 하고 가지 쳐진 그의 뿔을 꿇게 하는
죽음이란 얼마나 이상한 것이냐.
지금쯤엔 아마도 일 마일 떨어진 곳에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눈의 깃털을 떨어뜨려 제 무게를 조금씩 없애는 묵직한 독미나리 숲 아래서,
그 암사슴의 눈으로 주의 깊게 본다면,
얼마나 이상한 것이냐, 삶이란.

● 126쪽, <당티브 곶>
나는 뭍보다는 바다 편인지라, 밤에 폭풍우에 세차게 채찍질당했던 나의 부루퉁한 마음은 그렇게 빨리는 가라앉지 않는다.
내가 하는 일들 속으로, 둔중한 울림과 함께
바다는 철썩철썩 밀려왓다
물러간다.
잔잔한 낮에 내 곁에 있을 때조차도 심란해진 지중해는 묵직한 큰 파도와 함께,
새들이 재잘대는 해변으로 기울어져 부딪친다.




● 130쪽, <유년은 아무도 죽지 않는 왕국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죽은 살들과 함께 식탁에 앉는 것이다.
그들은 듣지도 않고 말하지도 않으며, 차를 마시지도 않는다.
생전에는 차가 낙이라고 말했으면서도.
(…)
너의 차는 이젠 차갑게 식었다.
너는 그것을 선 채로 마시고
그리고 집에서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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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크러시 1 - 삶을 개척해나간 여자들 걸크러시 1
페넬로프 바지외 지음, 정혜경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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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역사는 강자에 의해 일방적으로 쓰여진다. 중요한 사람, 정말로 역사에 길이 남아 두고두고 이름이 불려야 할 사람……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을 닦아준 사람들의 이름은 역사를 기록하는 후세들을 통해 분류된다. 누구나 어릴 때 위인전 한 권씩은 읽었을 것이다. 한국을 벗어나 세계의 많은 위인들을 만나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는 인식하지 못했던 이상한 점이 있다. 여성 위인들의 이름은 다 어디로 갔던 걸까. 인생의 모토로 삼는 여성 위인을 찾고 싶지만, 워낙 손에 꼽을 만큼 한정되어 있어서 남성 위인을 고르거나 겹치는 인물들을 고르기 일쑤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재미로 외우던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의 가사에는 여자의 이름이 단 네 명뿐이란 걸 이제야 알았다. 아, 그때는 진짜 모르고 즐겁게도 불렀다. 훌륭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도 물론 있었겠으나, 여성이 뭔가 해보려고 하면 행동 제약을 걸어버리는 시대상황 때문이라고 말하는 게 옳을 것이다.

 

<걸크러시>는 프랑스에서 많은 사랑을 받은 웹툰이다. 남성 우선적인 사회에서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고 사회에 반항하며 목소리를 높였던 여자들의 삶을 짤막한 에피소드 형식으로 다뤘다. 1권과 2권을 합하여 총 30명의 여자들이 등장하는데, 국적도, 직업도, 나이도 다른 여자들의 공통점은 세상의 편견에 맞서 주체적으로 삶을 살아갔다는 점이다. 왕, 전사와 탐험가, 부인과 의사, 독재정권에 맞선 운동가, 화가, 노벨 평화상 수상자 등 자신의 위치에서 다양한 일을 했던 여자들이 있었다. 꿈을 이루기 전부터 걸림돌로 작용하는 많은 사회적 제약뿐만 아니라 끔찍한 폭력과 억압 또한 존재했지만,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을 떠올려보자면 여성 수영복을 최초로 만들어낸 '애넷 캘러먼'이다. 당시 빅토리아 시대의 엄숙주의는 호주에도 영향을 끼쳤고, 여자들은 대낮에 수영도 하지 못할뿐더러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불편한 옷을 입고 물속에서 헤엄을 쳐야 했다. 애넷은 물속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수영복을 만들었고, 뒤이어 올 누드 수중 연기로 영화계에 위대한 도전을, 여성들의 몸과 건강을 위해 끊임없이 권유하고 노력했다. 또한 강력한 페미니스트 운동을 이끌었던 노벨 평화상 수상자 '리마 보위',  아테네 여성들이 의술을 배울 수 있는 첫걸음을 뗀 부인과 의사 '아그노디스'도 강한 인상을 남겼다.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일을 한 여자들도, 뚜렷한 정점을 찍지는 않았으나 자신이 하고자 하는 길을 당당하고 자신 있게 걸었던 여자들의 모습도 있었다. 그러나 책에서 주목할 점은 아마도 업적의 중요도보다는 자신의 일과 소신을 꿋꿋하게 지키며 살아갔던 그들의 삶의 양식일 것이다. 어려운 사회적 상황에 대항하고,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이끌어나갈 수 있는 힘. 책 속의 여자들의 행동과 언어들을 통해 '할 수 있다'는 용기까지 얻을 수 있었다. 또한, 단 한 가지로 규정될 수 없는 '페미니즘'의 다양한 모습들을 여자들의 삶을 통해 엿볼 수 있었다.

 

+ 덧, 한국이란 작은 땅에서 여성으로 이름을 떨쳤던 인물들도 더 찾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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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 - 묵묵하고 먹먹한 우리 삶의 노선도
허혁 지음 / 수오서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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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기사님들에 대해선 좋은 기억도 나쁜 기억도 크게 없다. 늘 나쁜 기억이 좋은 기억보다 선명하게 남지만 크게 거슬리는 기억이 없는 걸 보면, 꽤나 무감각하게 타고 다녔던 모양이다. 그런데 최근에 이 책을 읽게 된 이유가 있는데, 늦은 밤에 장거리를 이동하는 버스를 탔던 날이었다. 어둑하게 조명을 최소한으로 한 버스가 고속도로를 지나고 정류장이 있는 시내로 들어오니 벨소리가 끊임없이 울리기 시작했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각각 다른 사람들이 한 정거장에 두 번 울리는 일도 반복되었다. 버스 기사님은 하소연이 섞인 짜증을 내다가 ‘벨 좀 한 번씩 누르라’고 호통을 쳤다. 기사님의 업무 환경을 생각하면 소리 때문에 미치겠다는 말도 수긍이 가는데, 먼 거리를 이동하는 승객들이 정류장을 지나칠까 걱정되는 마음으로 누르는 것도 나쁜 마음이 아니란 걸 알기에 상황 자체가 너무 어려웠다. 고요 속에서 불편한 냉기가 감돌았다.

 

이전에 알고 있던 책이지만 이 사건 때문에 다시금 급하게 책을 찾아보았다. 버스 기사님들의 업무와 생활 반경, 감정들이 궁금했다.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는 실제 전주에서 시내버스를 운전하고 있는 입사 5년 차 기사님이 쓴 에세이다. 전주는 특히 버스 대수에 비해 노선이 많고, 승객들의 불편함 호소도 많은 지역이라 한다. 물론 지역에 상관없이 버스기사들의 악명 높은 업무 환경은 여기도 비슷한 수준인 듯 보인다.

 

저자는 하루 열여덟 시간씩 버스를 몰다 보면 착한 기사와 비열한 기사의 마음을 순식간에 왔다 갔다 한다고 말한다. 사소한 일에도 짜증을 참을 수 없고, 표정 관리가 격하게 힘들어진다. 끼니와 생리적 욕구 또한 신경 쓰기 힘들고, 연료 충전과 버스 청소 등 해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업무를 넘어, 일상까지 버스의 속도로 달려야 하는 셈이다. 고작해야 한 시간 이하로 이동하는 일이 대다수인 시내버스 승객들은 수시로 일어나는 도로 위의 아찔한 상황과 기사들의 고충을 알 턱이 없다. 악의가 아니라 그냥 무심하게 지나가거나, 왜 내가 탑승한 시간에 기사가 불쾌감을 표출하는지 의아할 뿐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게 된다면 마음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을 것이다. 짜증 나고 당황스러운 상황들을 적나라하게 꺼내놓고, 가끔은 툴툴거리며 당부하는 저자의 글은 재미있고 통쾌하다. 제대로 솔직해서 좋다.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한다는 저자의 말처럼, 책을 보는 느낌도 비슷하다. 읽다 보면 어느새 덜컹거리는 우리 동네 시내버스에 올라 있는 듯하다. 나는 정류장에서 버스가 오는 것을 살피고 티가 나는 수신호를 주고, 조금 더 세심하게 주변과 운전석을 살피고, 대답이 없어도 눈치 보지 않고 감사 인사를 전할 수 있을 것 같다.

 

무심코 지나치던 누군가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는 건 나에게도 큰 도움이 되는 일이다. 상황을 모르니까 그냥 지나치고, 이유를 모르니까 억울하다 (서로 시비를 걸고 싸우는 건 보통의 일이 아니라는 전제를 두고). 내가 하는 사소한 행동이 배려가 될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다. 또한 승객과 기사 사이의 일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해결돼야 할 일들이 있을 것이다. 육체와 감정을 넘나드는 노동 현실의 개선을 넘어 저자가 전하고 싶은 말은 “우리 삶 전반의 속도가 조금 더 낮아졌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많은 의미를 담은 말이다.

 

● 22쪽,
윤리적 판단을 하기 시작하면 바로 운전대 놔야 한다.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상황이라도 그러려니 하며 무심하게 빠져나갈 수 있어야 운전을 계속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사람인지라 서서히 화는 쌓인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가던 길이 막히면 화가 나게 되어 있다고 한다. 운전할 때 유독 짜증이 심해지는 것이 인격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 76쪽,
외진 도청 앞에서 목이 빠져라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던 가난한 승객들에게는 양심이 준 선물이다. 시간이 되어도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 잔뜩 열이 받아 있는 승객이 화를 풀 길은 지금 눈앞에 보이는 기사밖에 없다. "어이 기사, 이 버스 몇 시 차여. 여기서 얼마를 기다렸는지 알어?" 눈물 나서 대꾸도 하기 싫다. 대꾸도 않는다고 또 시비다. 앞차를 빼먹은 동료도, 항의하는 승객도 그 어떤 누구도 잘못이 없다. 모두가 자기 입장에서는 옳고 자기 인식 수준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다. 삶이 징그럽게 외롭고 고독한 대목이다.

● 79쪽,
산다는 건 리듬을 타는 일이다. 그 리듬으로 한 사회의 성숙도를 알 수 있다고 본다. 저상버스가 휠체어 탄 승객을 싣기 위해 리프트를 펴는 잠시 동안에도 ‘빵빵‘ 거리며 도로가 난리가 난다. 버스만 바꿔서 될 일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속도가 지금보다 확실히 낮아져야 한다.



● 116쪽,
시간에 대한 삶의 태도가 제각각인 시내버스에는 운행 정시성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현실은 간단치 않다. 적폐기사와 공정기사, 적폐승객과 공정승객이 마구 뒤섞여 있어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난감할 때가 많다. 항상 타는 시간에 버스를 탈 수 있어야 삶의 질이 높아진다. 기사의 운전습관이나 도로 사정에 따라 운행 중간지점부터는 10분 이상 차이가 날 수 있다. 버스가 많은 노선은 그러려니 할 수 있는데 버스가 귀한 노선은 한 번 놓치면 몇 시간이라 대단히 민감한 사안이다.

● 160쪽,
버스기사는 운전원이면서 동시에 승무원이고 청소원이다. 운전은 기본이고 승무원의 역할이 더 강조되고 있다. 운전하려고 취업했지 스튜어디스 하려고 온 것 아니다. 당신 같으면 하루 세 번 이상 혼자 사무실 청소 다 하고 수시로 민원인들 상대하가며 생명을 담보한 주 업무는 한시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언제나 친절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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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러브 디스 파트
틸리 월든 지음, 이예원 옮김 / 미디어창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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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먹은 보랏빛의 표지 그림을 보자마자 어떤 정보도 없이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흔하디흔한 첫사랑의 추억을 다룬 그래픽 노블이라는 단편적인 정보만 가지고 따로 책 소개를 찾아보지 않은 채 책을 펼쳐 보았다. 의외로 분량은 적었다. 아이들의 그림책이 생각날 정도로 글밥도 많지 않았다. 여백이 많다는 건 무수한 설명과 해석의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뜻이고, 열려 있는 이야기를 싫어하는 독자라면 조금 당황스러울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책의 분량만큼이나 짧은 시간 동안 마지막까지 읽고 난 뒤의 느낌은 정말 묘- 했다. 어, 도대체 이게 뭘까. 신기하고 이상하다.

 

다양한 행동과 사건에 ‘첫’이 붙으면 분위기는 확연하게 달라진다. 설렘과 두려움, 황홀함, 두근거리는 다양한 감정이 함께 들러붙어서 느낌은 오묘해진다. 책 속에는 두 명의 소녀가 등장하고, 사춘기 소녀들이 으레 주고받을만한 얘깃거리로 대뜸 첫 장면이 시작된다. 다소 충동적이거나 불안하고, 신중하고 세심한 소녀들의 마음이 한 장의 그림들로 표현된다. 둘이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도, 어떤 큰 사건도,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지 않다. 대신에 아주 일상적인 대화와 장면들만 뜨문뜨문 등장한다. 사랑인지 우정인지 확실치 않은 그들의 마음들과 걱정과 두려움, 감정들을 조각조각 하나씩 보여줄 뿐이다.

 

순서도 없고,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이 뜨문뜨문한 이야기가 꽤 어색하지 않게 다가왔는데, 나에게는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무수한 '처음'들을 기억하는 방식이 그대로 담겨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때로는 감정적으로 깊게 빠져들었던 상황을, 때로는 아무 의미 없이 던졌던 말들을, 때로는 그냥 같이 앉아 있던 일들을 무심코 떠올리듯이. 정말 내가 언젠가 겪었던 일들을 추억하고 연상하는 것처럼.

 

그러나 이 짧은 책이 불러오는 긴 여운과 남다른 분위기는, 단순히 ‘첫’이라는 단어 때문만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그건 아마도, 흐르지 않는데 책 속에서 계속해서 흐르고 있는 것 같은 ‘음악' 때문일 거라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책을 읽다 보면 마치 내 감정 그대로를 담은 듯한 음악 한 곡을 감상하는 것 같다. 그림과 음악과 대사, 그리고 따뜻하고 서툴고 공감되는 감정들. 어쩔 수 없이 빠져들 수밖에 없는 아름다운 조합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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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문 테이크아웃 10
최진영 지음, 변영근 그림 / 미메시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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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십 대였을 때,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어느 정도 생각이란 걸 할 수 있었을 때 했던 말이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자살을 왜 하는지 모르겠어. 그거 너무 무섭지 않아?" 누군가에게 툭 던졌던 그 말은, 생각해보면 생이 무척이나 행복해서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그 반대도 아니었으며, 단지 고통의 정도를 가늠할 수 없었던 어리숙함 때문이었다고 짐작할 수밖에 없다. 삶을 꾸역꾸역 이어나가야 하는 것이 죽음으로 향하는 순간의 고통이나 두려움보다 더 힘든 일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리곤 꽤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자살을 선택한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할 수 있었다. 내 곁엔 없지만 어딘가에 무수히 있는 그들. 그들을 필요로 했던 사람들, 곁에 있던 사람들을 왜 남겨두고 떠났냐고 무책임을 질책하는 말들은 얼마나 날카롭고 무의미한가.

 

'자살'하면 흔히 이유를 찾는다. 실제 상황에서도 그렇고, 픽션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람 사이의 관계, 사회의 폭력, 병 혹은 가난, 온갖 이유를 대어 설명한다. 그래야만 말이 된다. 관계없는 사람에겐 일종의 편의로 작용하고, 관계 깊은 사람에겐 오직 그 방법 밖에는 없기에 이유를 찾는 것에 매달린다. 소설 <비상문>에서 자살한 ‘신우’의 형인 화자도 그러한 이유에 대하여 끊임없이 되묻는다. 특별한 사건도 없었고 짐작이 되는 일도 없는데, 왜 동생은 삶을 끊어내길 선택했을까. 비상구를 지나 옥상으로 올라가 난간에서 잠깐 멈춘 9분 57초의 시간 동안 어떤 생각을 했을까. 떨어지기 전에는, 그 순간에는, 아니 그전의 모든 순간들 속에서는.

 

"빛난다는 건 손실된다는 것(24쪽)" 물리 문제집에 쓰여 있던 법칙에 의미 부여를 하듯이, 화자는 수많은 단서들을 찾는다. 언젠가 '말했을지도 모를' 이유와 겉으로 드러나던 모든 사실들을 되짚어본다. 이를테면 부모님의 불화 같은 것들과 유독 예민하던 신우의 시선들과 그가 했던 모든 말들을 생각한다. 그러나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어쩌면 이유가 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상상하는 것은 아무 소용 없는 일이 아닐까. 삶도, 죽음도, 이유 없고 모르는 것 투성이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이 떠올랐다면 너무 식상한 것일까. 이 짧은 소설에서도 최진영 작가는 그동안의 소설들로 오랫동안 천착해 온 소설의 중심점을 드러낸다. "매우 사랑하면서도 겁내는 것이다. 이 삶을." 소설 끝에 실린 인터뷰에서 언급했듯, 그토록 어지러운 삶이라도 어떻게든 살아보자는 말이다. 설명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 속에서 설명하고 매달릴 수 있는 것들을 발견해보자고. 약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화자가 우울증 약을 복용하는 '서두진'씨와 '이재영'씨와 그다음의 누군가를 끊임없이 찾는 것처럼. 죽은 동생을 투영하며 끊임없이 '생'을 확인하는 것처럼.

 

표지와 내지를 온통 감싸고 있는 따뜻한 파란색의 이미지가 오랫동안 잔상처럼 남는다. 어두컴컴한 계단에 머무르는 비상구의 푸른빛처럼, 순간적으로 쨍하게 시리고 아프다가도 눈부시게 아름다워지는, 그런 소설이다.

 

 

 

 

● 16쪽,
사람마다 시력이 다르듯 존재의 어둡고 습한 부분을 유독 잘 보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남들은 찾지도 못하는 얼룩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남들은 듣고도 들은 줄 모르는 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람들. 감각이 그쪽으로 유별나게 발달한 사람들. 나는 신우가 그런 사람이었다고 믿는다.

● 17쪽,
신우가 죽어서 내 인생이 달라졌는가 생각해 볼 때가 있다. 모르겠다. 신우가 죽지 않은 삶을 내가 어찌 알겠는가. 우습게도, 그리고 끔찍하게도 나는 동생이 자살하지 않은 삶을 상상할 수 없다. 동생이 죽기 전으로 시간을 되돌려 어떤 식으로 상상해도 동생은 죽는다. 내가 화를 내거나 울거나 사정하면 동생은 죽지 않겠다고 나를 안심시키고 결국 죽는다. <최신우가 살아 있다면>이란 가정이 불가능할 정도로 신우의 죽음은 단단한 뼈처럼 내 삶에 고정되어 버렸다.

● 38쪽,
아니다. 신우는 너무 믿었다. 그 정의와 가치를 신뢰했기에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던 거다. 공평하지 않은 것에 공평함이란 단어를 쓰는 것, 기회도 아니면서 기회라는 팻말을 내거는 뻔뻔함에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던 거다. 나는 원래 그렇다고 체념하는 것들을 신우는 따지고 들었다.
그 누구도 완벽한 원을 그릴 수 없어. 똑같은 원을 그리는 사람도 있을 수 없고. 하나하나 다르다고.
나는 신우의 불만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 68쪽,
빛 같은 것? 빗물 같은 것? 신우는 다른 것이 되고 싶었나? 빛과 빗물은 무수하고 최신우는 하나뿐인데 어째서? 태양과 달은 낮과 밤에 보이지만 한 공간에 있다. 행복도 불행도 한 공간에 있고 그것이 유난히 잘 보이더라도, 우리는 굳이 그것을 보지 않아도 된다. 그것 아니라도 별은 무수히 많다. 세상은 점점 더러워지고 엉망진창이 될 것이다. 네가 어디 있고 내가 어디 있는지 모르도록 복잡해지고 어지러워질 것이다. 그게 우주의 법칙이니까. 그런 세상을 같이 살면 좋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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