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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크러시 1 - 삶을 개척해나간 여자들 ㅣ 걸크러시 1
페넬로프 바지외 지음, 정혜경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9월
평점 :
때때로 역사는 강자에 의해 일방적으로 쓰여진다. 중요한 사람, 정말로 역사에 길이 남아 두고두고 이름이 불려야 할 사람……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을 닦아준 사람들의 이름은 역사를 기록하는 후세들을 통해 분류된다. 누구나 어릴 때 위인전 한 권씩은 읽었을 것이다. 한국을 벗어나 세계의 많은 위인들을 만나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는 인식하지 못했던 이상한 점이 있다. 여성 위인들의 이름은 다 어디로 갔던 걸까. 인생의 모토로 삼는 여성 위인을 찾고 싶지만, 워낙 손에 꼽을 만큼 한정되어 있어서 남성 위인을 고르거나 겹치는 인물들을 고르기 일쑤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재미로 외우던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의 가사에는 여자의 이름이 단 네 명뿐이란 걸 이제야 알았다. 아, 그때는 진짜 모르고 즐겁게도 불렀다. 훌륭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도 물론 있었겠으나, 여성이 뭔가 해보려고 하면 행동 제약을 걸어버리는 시대상황 때문이라고 말하는 게 옳을 것이다.
<걸크러시>는 프랑스에서 많은 사랑을 받은 웹툰이다. 남성 우선적인 사회에서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고 사회에 반항하며 목소리를 높였던 여자들의 삶을 짤막한 에피소드 형식으로 다뤘다. 1권과 2권을 합하여 총 30명의 여자들이 등장하는데, 국적도, 직업도, 나이도 다른 여자들의 공통점은 세상의 편견에 맞서 주체적으로 삶을 살아갔다는 점이다. 왕, 전사와 탐험가, 부인과 의사, 독재정권에 맞선 운동가, 화가, 노벨 평화상 수상자 등 자신의 위치에서 다양한 일을 했던 여자들이 있었다. 꿈을 이루기 전부터 걸림돌로 작용하는 많은 사회적 제약뿐만 아니라 끔찍한 폭력과 억압 또한 존재했지만,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을 떠올려보자면 여성 수영복을 최초로 만들어낸 '애넷 캘러먼'이다. 당시 빅토리아 시대의 엄숙주의는 호주에도 영향을 끼쳤고, 여자들은 대낮에 수영도 하지 못할뿐더러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불편한 옷을 입고 물속에서 헤엄을 쳐야 했다. 애넷은 물속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수영복을 만들었고, 뒤이어 올 누드 수중 연기로 영화계에 위대한 도전을, 여성들의 몸과 건강을 위해 끊임없이 권유하고 노력했다. 또한 강력한 페미니스트 운동을 이끌었던 노벨 평화상 수상자 '리마 보위', 아테네 여성들이 의술을 배울 수 있는 첫걸음을 뗀 부인과 의사 '아그노디스'도 강한 인상을 남겼다.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일을 한 여자들도, 뚜렷한 정점을 찍지는 않았으나 자신이 하고자 하는 길을 당당하고 자신 있게 걸었던 여자들의 모습도 있었다. 그러나 책에서 주목할 점은 아마도 업적의 중요도보다는 자신의 일과 소신을 꿋꿋하게 지키며 살아갔던 그들의 삶의 양식일 것이다. 어려운 사회적 상황에 대항하고,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이끌어나갈 수 있는 힘. 책 속의 여자들의 행동과 언어들을 통해 '할 수 있다'는 용기까지 얻을 수 있었다. 또한, 단 한 가지로 규정될 수 없는 '페미니즘'의 다양한 모습들을 여자들의 삶을 통해 엿볼 수 있었다.
+ 덧, 한국이란 작은 땅에서 여성으로 이름을 떨쳤던 인물들도 더 찾아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