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김승욱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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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여 쪽이라는 방대한 분량보다, 이 책에 붙은 여러 수식어가 오히려 약간의 두려움을 갖게 했다. 빨간책방 강력 추천, 전미도서상 수상작, 그리고 미국의 대표 작가라고 할 수 있는 '조이스 캐롤 오츠'의 이름까지. 그러나 그 두려움보다 호기심이 더 컸기에, 이 책을 읽고야 말았다.

 

어떻게 이 책을 말해야 할까. 두꺼운 책의 위풍당당함이야 감수하고 읽어나가긴 했으나, 책은 '이야기적으로' 내게 흥미를 주진 못했다. 페이지가 술술 넘어간다는 혹자의 말을 믿을 수 없었고, 초반이 가장 힘들다는 혹자의 말도 나와는 반대였다. 오히려 초반보다 후반부, 더 흥미로운 서술이 가득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쉴 새 없이 박아놓은 머릿속의 글들로 지쳐있을 때였다) 마지막 페이지를 어떻게 덮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끝내고 나서, 이 책이 '역사소설'이라고 불리기도 한다는 것을 알았다. 폭력으로 얼룩진 격동의 세계에 있었던 그들, '로레타', '모린', '줄스' 그들의 삶은 책 속에 쓰인 대로 "갑자기 풍선이 위로 부풀어 오르는 (341쪽)" 것처럼 갈피를 잡을 수 없이 파격이기만 해서, 책 속의 그들을 따라가기가 무척 힘이 들었다. 이해할 수 없지만, 고개를 끄덕이고, 이루어질 수 없을 것만 같은 상황에 의아한 감정을 계속 품었다.

 

그러나 '이야기적'으로 불만만 늘어놓아선 안 될 것이, 소설은 문학적으로는 황홀한 경험을 선사한다.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던 사건들과 시점 변화, 순간순간 멈칫하게 하는 수많은 구절은 '조이스 캐롤 오츠'라는 이름의 명성이 어떻게 얻어졌는지 알 수 있게 했다.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중반부쯤 나오는 '모린'의 편지다. 작가인 '조이스 캐롤 오츠'가 이 책에 관한 영감을 얻었던 실제 경험 (편지의 수신), 그리고 큰 상처를 받았던 '모린'이 깨어나는 이 부분은 현실과 환상이 교차하는 아주 짜릿한 부분이다. 그들(them)이라는 범주 안에 포함되지 않아 자신을 이해할 수 없다는 식으로, 냉소적인 말들을 던지는 '모린'의 모습은 묘하게 소름이 끼치기도 한다. 텍스트 안에서도, 바깥에서도 '현실'과 '환상'이 줄타기하고 있는 듯 상상이 되는 부분이랄까.

 

하지만 모린, 너도 '그 사람들' 중 하나가 아니야?

 

사랑을 갈구하고, 충동적인 선택을 반복하고, 집착하고, 끝끝내 살아가고, 때로는 사악하기까지 했던 '그들'은 그 이후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그들'이라는 범주에서 벗어나기로 한 '모린'은 행복했을까? 끊어질듯 아슬아슬한 줄이라도 부여잡고 각박한 인생을 살아가야 했던 그들의 모습을, 언젠가 다시 천천히 읽어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129쪽,
나중에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언뜻언뜻 기억했다. 마치 화면이 뚝뚝 끊기는 옛날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그 웃기는 영화에 나오는, 웃기는 옷을 입은 사람들은 고통도 고뇌도 느끼지 못했다. 저렇게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들이 어떻게 인간일 수 있을까? 줄스 웬들은 과연 아이였던 적이 있을까? 정말로 아이였을까? 다른 사람들과 같은 의미의 아이였던 적이 있을까? 그런데 아이였던 적이란 과연 무슨 의미지? 예전 아이였을 때의 줄스가 그의 골격 안에 아직도 존재한다는 뜻일까?

197쪽,
이제 그는 성당에 나가지 않았다. 시내의 성당들이 지나가는 그를 붙잡고 늘어지는 것 같았다. 우울한 유혹. 바닷속에서 헤엄치는 사람들을 신비로운 물살로, 비밀, 보상,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특별한 지식에 대한 약속으로 꾀어들인다는 전설 속의 거대한 동굴 같았다. 줄스는 개이치 않았다. 아버지도 그런 일에 신경 쓴 적이 없었다. 그 안에는 분노가 없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아버지의 얼굴은 두개골 위에 하얀 피부가 팽팽하게 덮여 있는, 매끈한 공백이었다. 그것이 아버지였다.

341쪽,
그는 자신이 육체라는 늪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어 몸부림치는 순수한 영혼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육체라는 지구, 중력의 힘, 죽음과 씨름하는 영혼이라고 생각했다. 평생 동안 그는 자신을 이렇게 보았다. 믿을 수 없을 만큼 황폐한 순간들, 예를 들어 사우스웨스트 일대에서 설치고 다닐 때나 병원 침대에 누워 다시 살아나려고 애쓰고 있을 때에만 자신을 향해 한숨을 내쉬며 이런 생각을 했다. `내 인생은 미친놈이 상상한 이야기 같구나!`

449쪽,
모린의 몸의 조각들, 축축하고 따뜻한 그 조각들이 짝을 맞춰서 덩치 큰 그녀의 몸이 된다. 변장이다. 그녀는 불편한 잠을 잔다. 듣고 싶지 않은 소리가 들릴까 봐 신경을 곤두세운다. 텔레비전의 단조로운 소리 너머로 새로운 소리들이 들린다. 바깥의 소리들, 계단에서 이야기하는 사람들, 밖에 있는 사람들……. 아주 많은 사람들……. 따뜻한 날씨로 창문들이 열리고 사람들이 밖으로 나온다. 그녀는 본의 아니게 귀를 기울인다. 호기심과 수줍음과 약간의 분노, 두려움으로 귀를 기울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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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을 건너며 NFF (New Face of Fiction)
카릴 필립스 지음, 안지현 옮김 / 시공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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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FF (New Face of Fiction) 라는 시공사의 문학 시리즈의 이름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 소설에 정말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소설이었다. 한 권의 책, 한 편의 장편소설에, 인물과 형식이 다른 네 개의 이야기가 들어 있으면서도 조화롭지 못하거나 생뚱맞지 않았다. 문체 또한, 아름다웠다. 그리고, 여러 개의 악장이 모여 하나의 교향곡이 이루어지듯, 이야기는 작가가 말하는 하나의 메시지를 통해 강하고 아름다운 한 편의 장편소설로 탄생되어 있었다.

 

절박한 어리석음이었다. 흉년이었다. 나는 아이들을 팔아넘겼다. (11쪽)

 

전혀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이 네 편의 이야기는 미국 대륙 곳곳으로 흩어진 흑인 디아스포라의 역사를 짐작할 수 있는 '서문'과 공통으로 연결된다. 그리고 강 건너, 미국 남부 혹은 또 다른 어떤 곳으로 도피하고 떠나야만 했던 그들의 흔적을 추적한다. 작가는 그들의 삶을 그저 '보이는 대로' 추적하고 잔잔한 문체로 전해주며, 그 속에 품은 '경고'나 '물음'을 찾아내는 것은 오로지 독자의 몫이다.

 

먼저, 강렬한 문장으로 시작되는 1부는 자신이 교육하고 지원하여 아프리카로 선교를 보낸 노예 '내시'를 찾아 나서는 주인 '에드워드'의 이야기다. 미국에서 얻은 기독교 신앙을 새롭게 창조된 땅에 뿌리내리려 했던 모순된 자신감을, 그로 인해 아프리카인이자 선교사였던 '내시'가 받은 상처와 병폐를 지적한다. 2부와 3부에 숨은 이야기는 가장 끔찍하다. 흑인 디아스포라의 역사를 가감 없이 보여주는 2부는 강 건너 지옥으로 떠나지 않기 위해 개척자로 향하다가 죽어갔던 마사의 이야기를 아주 생생한 증언으로 다룬다. 그리고 3부는 노예를 수송하고 '무역'했던 선박의 항해일지로, 아주 건조하게 당시의 (잔혹한) 일상을 전한다. 가장 분량이 많았던 4부는 언뜻 '흑인 디아스포라'와는 관계없는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2차 세계대전 당시 소외된 한 여성과 그가 사랑했던 흑인 병사와의 이야기를 통해 '흑인 디아스포라'에서 더욱 대상을 확대한 '버림받은 자'들에 대한 메시지로 목소리를 높인다.

 

버림받고, 뿔뿔이 흩어지고, 상처받고, 차별받고, 소외되었던 모든 사람에 대해 연민의 시선을 던지고 있는 소설 『강을 건너며』. 작가가 남겨놓은 어떤 '여지'와 관련해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나의 내시. 나의 마사. 나의 트레비스. 그들의 부서진 삶들"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또 다른 '내시', '마사', '트레비스'의 삶의 기록이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105쪽,
매디슨은 이 모든 질문을 빨아들인 후 뒤로 돌아 자신의 전 주인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에드워드의 얼굴 반쯤은 짙은 그림자 속에 가려져 있었고, 다른 한쪽은 춤추는 불길에 따라 그 색깔과 형태가 바뀌었다. 매디슨이 질문 세례를 받고 답을 하려고 하는 찰나에 에드워드는 침묵 속에서 자신의 손을 위로 올리고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매디슨의 손을 맞잡았다. 고향과 자신과 같은 사람들로부터 너무 멀게 느껴진다고 매디슨에게 부드럽게 속삭였고, 백인과 흑인을 포함하여 자신의 종족이 있는 곳에 있길 원한다고 말했다. 매디슨은 에드워드를 쳐다보며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점점 더 꽉 쥐어오는 손을 신호로 보고 매디슨은 '아니요'라고 답했다. 작은 오두막에 그 말이 퍼져 나갔고, 그 묵직함과 의도는 바깥에서 들려오는 자연의 소리를 압도했다.

 

118쪽,
이제 다시 그는 우리 쪽으로 몸짓을 한다. 내 목은 타 들어간다. 일라이자 메이는 몸을 뒤척이고 나는 아이의 손을 잡는다. 아이가 운다. 조용히 하라고 아이를 꼬집는다. 미안하지만, 아이를 위해 그렇게 한다. 경매인은 상인들을 향해 오라고 손짓한다. 그들은 처음엔 남자들을 구경한다. 상인 한 명이 막대기로 루카스의 알통을 찌른다. 상인이 남자를 사면, 강 아래로 데려간다. 죽음을 향해. 그 정도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집안일을 할 노예가 필요한 가족이나 번식할 처녀가 필요한 농부들은 건너편에 있는 우리를 보고 차례를 기다린다. 나는 번식하기엔 너무 늙었다.

 

183쪽,
사랑하는 당신, 나 역시 심한 역겨움을 느끼고 있다고 고백하오. 하지만 증오심이야말로 나의 자연스러운 열정을 설명하기엔 그 표현이 지나치게 과격한 듯하오. 왜냐하면 이런 식의 무역을 계속 마음껏 하면서 깊은 신앙심을 갖는다는 것이 가능하지 않듯, 실로 한 사람의 마음 안에 사랑과 증오심이 서로 싸우며 공존할 수는 없기 때문이오.

 

215쪽,
그는 서른 하고도 일곱의 나이였다. 그들이 내가 있는 걸 잊고 끄덕거릴 때가 난 좋았다. 하지만 그들은 랜을 보면 고개를 돌렸다. 그들이 나에게 말해주지 않는 그 무언가가 있는지 난 궁금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랜과 나는 한 몸이어야만 하니까, 세상에 대항해 한 팀이 되어야 하니까. 남자와 부인. 그이와 나. 내가 그들 편을 들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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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그래프 Monograph No.3 손열음
스리체어스 편집부 엮음 / 스리체어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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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스리체어스 출판사에서 출간되는 인물 평전의 두 가지 버전 중, 비교적 젊은 멘토를 선정하는 『모노그래프』는 『바이오그래피 매거진』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면이 있다. 표지에 적힌 '해시태그'부터 선정되는 인물까지 핫트렌드와 젊은 감각을 내세운 것이 보이지만, 그렇다고 막 가볍지만은 않다. 누군가의 삶을 다뤄내는 손짓은 조심스럽고, 다양한 분야의 멘토들을 선정하기에 독자들에게 기본 지식 또한 전해주려 애쓴 흔적이 보인다.

 

『모노그래프』 3호의 인물 특성상, 기본 지식은 그 인물을 이해하는 데 아주 효과적인 장치가 된다. 피아니스트를 알기 위하여 그들이 연주하는 곡의 작곡자들을 아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기에 이 책에서는 초반부터 모차르트, 베토벤, 리스트 등 작곡자들의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클래식을 좋아하고 즐겨 듣는 사람이 아니라면, 평소에 이런 내용을 접할 기회는 많지 않을 것이지만 한 페이지에 (그들의 인생에 비하면) 짤막하게 요약된 글들 속에 흥미로운 에피소드들이 많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그리고 뒤이어 등장한 재미있는 코너는 '클래식 에티켓'이다. 클래식 콘서트에서의 아주 기본적인 매너들과 사소하지만 누구에게 물어보기 민망한 궁금증까지 다룬다. 책 속의 당연한 절차일지도 모를 클래식 에티켓을 모두 읽고 나면, 이제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음악 속으로 깊이 들어갈 차례다.

 

클래식에 관심이 없다 보니 '손열음'이라는 이름도 어깨너머로 들어봤을 뿐이었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동안 나의 무심함이 살짝 미워졌다. 검색 한번, 유투브의 동영상 한번 클릭하면 수두룩하게 쏟아지는 그의 영상들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영상 하나를 눌러보았다. 지휘자가 손열음의 힘 있는 연주에 맞춰 따라가는 듯한 모습이 신기했다. 덧글 창에는 칭찬 일색이었다. 감동에 감동이라고.

 

『모노그래프』가 끌어내고 있는 그의 이야기 속에는 음악 천재로 주목받았던 그의 어린 시절부터, 준우승을 차지한 차이콥스키 콩쿠르까지의 오랜 과정이 담겨 있다. 절대음감, 초등학교 때 나갔던 국제 콩쿠르, 그리고 수상, 결코 잊을 수 없는 스승들의 이름까지. 전혀 다른 세상이라 여겼던 클래식 연주자의 삶에 신기한 감동을 할 무렵, 어떤 구절이 마음을 끈다.

 

"손열음은 공항 입국 심사대에서 직업을 물으면 '콘서트 피아니스트'라고 답한다.
'음악가'라고 하면 추가 질문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클래식 연주자를 딴 세상 사람처럼 생각하지만 똑같이 땀 흘리며 살아가는 직업인이다. (61p)"

 

 

인터뷰에서는 그 사람의 성격과 인성이 짧은 한마디에도 전해져오는데, 손열음의 인터뷰 또한 그렇다. 의외의 성격이 눈길을 잡는다. "야심도 없고, 고집도 없고, 경쟁심도 없는데 어떻게 최고가 될 수 있었을까." 에디터님의 말처럼 의아했지만, 솔직하면서도 무던한 말투가 읽기에도 받아들이기에도 편안하다. 한국의 클래식, 음악가들, 연주할 때의 감각 등 음악에 관한 진지한 이야기도 함께하지만, 좋아하는 술이나 요리, 휴가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들도 있다. 클래식 연주자를 향한 원인 모를 경외심도 느껴지고 친근함도 느껴진다. 하지만 사람 자체가 재미있고 좋다, 라는 생각이 든 건 이 부분. "제2의 손열음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이라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한다. "더 큰 사람을 보고 꿈을 꾸세요. 하하" 왠지 호탕한 (또 다른 천재) 김연아 선수가 생각난다.



'음악'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책에서 만나기에 낯설고 당혹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책에서 음악을 들을 수 없을 바에야, 읽고 난 뒤 '음악'으로 인도할 수 있다면 역할은 다 한 것 같기도 하다. 손열음의 음반, 손열음이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 유투브 스타의 영상 등 다양한 '들을 거리'들도 가득 채우고 나면, 그것들을 직접 듣고 싶어질 것이다. 책을 덮고 난 후, 나도 음악을 틀었다. 손열음의 연주 중 건반과 혼연일체가 된 장면이 아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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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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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대해 많은 말을 하고 싶기도 하고, 포기한 채 입을 다물고 싶은 마음도 든다. 쓰다 보면 감정이 과잉될 것 같아 주저하지만,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고 있는 내가 과연, 넘칠 만큼이 아니더라도 감정을 느낄 자격이 있는 것인지 마음 한쪽이 싸해지기도 한다. 부끄럽다. 이 책을 왜 끝까지 외면해왔을까.


 꾹꾹 눌러 넣은 문장 속에 많은 감정이 뒤섞인다. "동호야"라는 가냘프고 애처로운 목소리와 그것과는 반대로 너무나 강한 이야기들이 마음 한쪽을 콕콕 쑤신다. 우리가 흘러가는 이야기로 듣고, 여러 곳에서 읽고 보아왔던 '기억'들이 우리 마음을 강하게 죄어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하지만 문득 그 감정이 간접적으로나마 그것을 경험한 사람 만큼에 비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겪어보지 못한 이들에게 숨 쉴 수 없을 만큼의 아프고 슬픈 감정들은 어느새 일상 속에서 다른 일들 사이로 스르르 사라져버리는 것은 쉬운 일이다. 어쩔 수 없이 금방 잊히는 것이다.


그런데 '한강'작가의 글은 이상하다. 도무지 빠르게 잊어버릴 수가 없다. '너'라는 이인칭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 동호, 정대, 은숙 누나, 어머니, 수많은 사람의 눈을 통해 목격한 영상들 때문일지도 모른다. 작가는 텍스트 너머에 있는 독자들을 아주 조용히, 그곳으로 옮겨 놓는다.


그리고,
인간이 인간성을 버리는 그 순간들,
인간이 순결함과 양심을 지키기 위해 겪어야 했던 모든 고통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늘에서 양지로, 빠져나가야만 하는 애수 어린 과정을, 우리는 똑똑히 보고야 만다.
지켜보고 있는 우리의 눈은 시리다. 하지만 눈을 뗄 수가 없다.


 작가에게도 분명 어려운 시간이었을 것이다. 잔혹하고, 슬픔으로 흠뻑 젖은 시간과 공간을 마주하면서 고통스러운 것은 물론이고, 전달자의 역할로서는 더 많은 고통을 받았을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전해야 하나 고민했을 것이다. "제대로 써야 합니다. 아무도 내 동생을 더이상 모독할 수 없도록" 부담과 좌절감이 상당했을 것이다. 그는 얼마만큼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펜 끝에 모아둔 모든 이야기를 잠시나마 놓을 수 있었을까?

 

하지만 지금, 눈을 뜨고 있는 한, 응시하고 있는 한 끝끝내 우리는......

 

현재의 한국문학에서 그려내고 있는 쓰디쓴 이야기 중에서도, 너무나도 견딜 수 없게 쓰디쓴 이 이야기는, 상처를 온전히 내보이면서도 희망적인 밝은 불빛을 내고 있다. 사실 밝은 빛이란, 어쩌면 어두운 곳에서의 작은 촛불 하나일지도 모르겠지만, 그 촛불 하나의 잔상은 어쩌면 더 먼 곳까지 닿을 수 있기에. 희망을 품어도 되지 않을까. (확신보단 바람이지만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동호야" 라는 가냘픈 목소리를. 소리없는 울음을. 본능적으로 달아날 수밖에 없었던 미련스런 마음을. 그리고, 해야 할 일과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무엇을 응시해야 하는지를.

 

- 담아둔 문장


45쪽,
체머리 떠는 노인의 얼굴을 너는 돌아본다. 손녀따님인가요, 묻지 않고 참을성 있게 그의 말을 기다린다. 용서하지 않을 거다. 이승에서 가장 끔찍한 것을 본 사람처럼 꿈적거리는 노인의 두 눈을 너는 마주 본다.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을 거다. 나 자신까지도.


79쪽,
거칠게 꿰매어진 문장들, 문단째로 검게 지워진 자리들, 우연히 형상을 드러낸 단어들을 그녀는 생각한다. 당신을. 나는. 그것은. 아마도. 바로. 우리들의. 모든 것이. 당신은. 어째서. 바라봅니다. 당신의 눈은. 가까이에서 멀리에서. 그것은. 또렷이. 지금. 좀더. 희미하게. 왜 당신은. 기억했습니까. 숯이 된 문장과 문장들 사이에서 그녀는 숨을 몰아쉰다. 어떻게 분수대에서 물이 나옵니까. 무슨 축제라고 물이 나옵니까.


115쪽,
모든 사람이 기적처럼 자신의 껍데기 밖으로 걸어나와 연한 맨살을 맞댄 것 같던 그 순간들 사이로,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이. 부서져 피 흘렸던 그 심장이 다시 온전해져 맥박 치는 걸 느꼈습니다. 나를 사로잡은 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선생은 압니까, 자신이 완전하게 깨끗하고 선한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이 얼마나 강렬한 것인지. 양심이라는 눈부시게 깨끗한 보석이 내 이마에 들어와 박힌 것 같은 순간의 광휘를.


134쪽,
그러니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뿐입니까? 우리는 존엄하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겁니까? 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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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백한 잠 밀리언셀러 클럽 145
가노 료이치 지음, 엄정윤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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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추리 혹은 스릴러 소설이라면, 비밀을 찾아가는 과정의 쫄깃한 기분과 두근거림이 일품입니다. 그것을 좋아하는 독자들은 일부러라도 이런 책들을 찾아 나서서 그 기분을 오래도록 느끼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저는 그 정도는 아니지만, 아주 가끔 숨막히는 속도감을 즐겨보려 하는 편인데요. 간혹, "이 작품 또 쫄깃하겠구나"하는 와중에, 독특한 기분을 느낄 때가 있어요. 바로, 스릴러 속의 '감성'이죠. 이런 작품들은 작가의 관점에서 특히나 더 풀어내기 어렵다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합니다. 스릴러나 추리 쪽에서는 자칫하면 좀 지루해질 수도 있거든요.

 

통곡하던 남자의 모습이 머릿속 어딘가에서 떠나지 않았다. 탐정 일을 하던 시절에 가장 싫었던 일이 피해자의 가족과 만나 그들의 슬픔을 직접 봐야 하는 것이었다. (24쪽)

 

이 작품이 작가와의 첫 인연은 아니고, 전에 『환상의 여자』라는 작품을 만나본 적이 있습니다. 『창백한 잠』만큼 분량이 많았고, 그때도 묵직한 이야기 속에 세세한 감정선이 드러나 있어 미묘한 기분으로 읽었었죠. 이번 작품 또한 감성적인 부분이 크게 도드라진 느낌입니다. 끔찍한 살인사건에 너무 자세히 집중하지 않고, 그것과 관계된 사람들의 심리적 관계와 사회적 분위기에 집중하는 편이지요. 흡인력은 좋지만, 속도감은 '추리소설'치고는 약간 잔잔하게 느껴집니다. (이 느낌이 나쁘진 않고 좋았어요. 독자에 따라 다를 것 같습니다) 주인공의 독백과 상황 묘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설은 폐허가 된 작은 어촌 마을을 묘사하면서, 그곳을 둘러싼 공항 건설계획에 대한 두 입장을 초반부터 드러냅니다. 공공개발과 자연파괴. 각각의 입장에 선 마을 사람들의 논쟁을 살인사건 이면에 다루고 있지요. 하지만 그것의 옳고 그름을 가리진 않으면서, 관련된 다른 사건으로 중심을 옮겨갑니다. 일종의 함정이자 반전인데, 저는 사회 비판 쪽으로 더 흘러갔으면 해서 살짝 아쉬운 마음은 있었습니다. 이야기 구성 면에서 뭔가 뚝뚝 끊기는 느낌이 들기도 했고요.

 

우리는 부두 끝에 나란히 섰다. 항구의 콘크리트 슬로프에 양륙되어 늘어선 어선 중 몇 척은 선체가 녹슬고 낡아서 마치 난파선 같았다. 그 뒤편에는 키가 작은 집들이 납죽 엎드린 것처럼 띄엄띄엄 서 있었다. "뭘까요, 다쓰미 씨. 소중한 것들이 매일 조금씩 사라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요." (267쪽)

 

하지만 폐허가 된 마을의 을씨년스러운 잿빛 풍경과, 그것에 몰입한 주인공의 모습이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전직 탐정답게 살인사건을 만나자 (마음은 밀어내지만 머리로는) 홀린 듯 빠져들어 가는 모습이 흥미롭기도 했고요. 왠지 작가가 이 작품에서는 살인사건보다 전체적인 분위기와 주인공의 심리에 많은 공을 들인 느낌이었습니다.

 

여러 추리소설이 그러하듯이, 결말은 '인간'의 욕망과 이기심으로 귀결됩니다. 그러기에 마지막까지 씁쓸함과 여운이 길게 남습니다. "군청색의 세계 속에 오도카니 홀로 실루엣을 드러내고 있는 폐허"를 다룬 남다른 분위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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