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길이라 부르는 망설임 - 카프카 드로잉 시전집 민음사 세계시인선 리뉴얼판 58
프란츠 카프카 지음, 편영수 옮김 / 민음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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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카프카라는 이름은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의미가 깊은 이름입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소설 <변신>으로 그를 떠올릴 거예요. 어느 날 갑자기 벌레로 변해버렸다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그 소설 말이지요. <변신>은 비교적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지만, 그 외에 남긴 작품들은 쉽지만은 않습니다. 아직도 먼 거리에 있지만 너무나도 알고 싶은 그 이름, 카프카입니다.


세계시인선 시리즈는 이렇게 원문과 함께 페이지가 구성되어 있다는 게 특징입니다. 독일어 원문과 함께 만나보는 프란츠 카프카의 시전집 <우리가 길이라 부르는 망설임>은 국내 최초로 출간된 시집인데요. 한독문학번역상 수상과 한국카프카협회 회장을 역임하신 편영수 명예교수의 번역으로, 무한 신뢰를 갖게 하는 신간도서입니다.

문학 쪽에선 카프카의 이름은 여기저기서 인용되며 불리는, 범접할 수 없는 고유명사와도 같다고 느껴집니다. 저는 카프카의 소설을 몇 권 읽어보긴 했으나 잘 알지 못하는 축에 속하는데요. 이번에 처음 만나게 된 시전집은 정말 새로웠습니다.




책의 중간중간 프란츠 카프카의 드로잉이 수록되어 있고요. 개수를 세보자면 60점 정도로, 그야말로 소장 가치 넘치는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림 자체도 왠지 묘한 인상을 주거든요. 쓱쓱 그린 드로잉은 얼핏 보면 완성되지 않은 것 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느낌 있고 감각적이어서 자꾸만 펼쳐보게 됩니다.


카프카의 시를 처음으로 만나보았습니다. 민음사 세계시인선이나 다른 시인선 등을 통해 외국시를 만나보면, 한국시랑은 조금 다른 느낌이 있는데요. 그런 차이를 두고 봐도 카프카의 시는 독특하며 뭐라 표방할 수 없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가 길이라 부르는 망설임>을 읽어보면 그의 시는 마치 아포리즘처럼 짧게 짧게 구성이 되어 있는 모습인데요. 은유적 표현이 정말 많아서 쉽게 읽히지는 않지만, 왠지 모르게 끌리는 구절들이 등장합니다.


이 책을 번역하신 교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카프카의 시는 산문과 시의 경계가 무의미하다고 합니다. 그러니 이 시전집은 마치 시나 아포리즘처럼 운율이 느껴지는 한 편의 시 같기도 하면서도, 행갈이가 없다면 마치 산문처럼 읽히기도 합니다. 일부만 발췌를 하긴 했지만 인생에 대한 어떤 물음과 카프카의 내면이 만나 특별한 이미지를 형성하는 것 같습니다. 고독과 권태, 실존, 그리고 이 세계에 대한 허무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시들이 많았습니다.





사후 100주년 기념 시전집이기에 작가에 대한 애정이 듬뿍 느껴지는 구성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원래 세계시인선 시리즈 속에 작가의 소개와 사진이 수록되어 있긴 하지만, 특히나 이번 책 속에서는 풍성한 부록이 있었어요. 작가 연보와 각종 사진들을 통해 완독을 한 후에도 진한 여운을 이어갈 수 있었어요.


특히나 해설이 꼼꼼하게 잘 되어 있어서 카프카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카프카의 시는 의외로 주목을 많이 받지 못했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는데요. 호평과 혹평을 번갈아 받기도 했다는 사실. '여기에서 떠나는 것'이라는 구절이 인상 깊어서 계속 궁금했는데, 교수님의 해설 속에서 '지금 여기'란 '이름 붙일 수 있는 모든 것(특정한 장소, 모든 장소, 외견상 정상적인 인간 집단) (238쪽)'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네요. 카프카의 시는 '파편의 시'라는 번역가님의 표현이 제대로라고 느껴집니다. 약간 어렵기는 했으나 값진 경험을 하게 해준 책이었어요.



쳇바퀴에 갇힌 다람쥐처럼,
움직임의 행복,
협소함의 절망. - P53

악이 놀라게 하는 경우들이 있다.
악은 갑자기 몸을 돌려서
이렇게 말한다.
"너는 나를 오해했어."
그런데 이 말은 사실일지도 모른다. - P61

꿈들이 도착했다, /꿈들은 강을 따라서 내려왔다, /꿈들은 사다리를 타고 /부두의 벽을 오른다. /사람들은 서 있다, /꿈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꿈들은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오직, /어디에서 왔는지를 / 모른다. -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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