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여름에게 에세이&
최지은 지음 / 창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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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합니다.

여름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

책 속에서 표현되는 여름의

찬란한 배경을 볼 때면 훅 빠져듭니다.

뜨겁게 내리쬐는 햇볕도 아름다워 보입니다.

아마도 찌는 듯한 뜨거움을 잠시 잊어서겠지요.

최지은 시인의 첫 산문집이 나왔습니다.

<봄밤이 끝나가요, 때마침 시는 너무 짧고요>

봄의 싱그러움을 한껏 담은 시집을 냈던,

시인의 신간은 이번엔 여름입니다.

너무너무 좋아하는 시인이라

두근대는 마음을 멈출 수가 없었어요.


시인의 진솔한 고백


한 권의 시집으로 독자들을 놀라게 했던

최지은 시인의 첫 에세이가 정말 반가웠어요.

시집을 처음 읽었을 땐 놀라웠습니다.

그 시집에 담긴 시를 오래도록 곱씹고,

이런 시를 써내는 시인을

계속해서 동경하기도 했던 것 같아요.

꿈결과도 같이 아름답고 슬펐던

시집을 잠깐 놓아두고, 이제는 새롭게 나온

에세이를 계속해서 매만질 수 있게 됐어요.

에세이 <우리의 여름에게>는 시인의

유년 시절의 기억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손녀가 좋아하던 오이지를

더욱 아삭하고 맛있게 만들기 위해

소금물을 끓이다 뒤집어쓴,

사랑하는 할머니의 모습에서 시작되어요.

시인은 할머니의 몸에 남은 상처를

'그 여름의 물방울'이라 칭하면서 말합니다.

"그냥 우리는, 다 사랑이었어요." (18p)

슬프고 고약한 기억들을 사랑으로 덮어낸

과거를, 그리고 현재를 드러냅니다.

이런 과정으로 우리는 살아가는 것 같다고,

시인은 특유의 언어로 아름답게 전해줍니다.


지금도 종종 불안에 시달리곤 하는

시인은 "나의 공기를 찾자(37p)" 되뇌며

천천히 숨을 고르곤 한다고요.

가끔은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지만,

사랑을 떠오르게 하는 장면들을 통해

안전함을 확인하는 시인의 모습을

책 속에서 보게 됩니다.


시인의 문장을 읽으면서 잠시

나의 불안도 떠올리게 되었어요.

두려워하는 것을 만나지 않기 위한

잠깐의 멈칫함, 나의 벽들을 생각했어요.

글을 읽으면서 나를 겹쳐보면서,

시인이 언급하는 '햇빛 냄새(62p)'

천천히 기다려주는 주변인들의

마음과 같은 것들이 나를 밝고

환하게 만들어준다고 다시금 믿게 되었고 -

단번에 사랑을 떠올리게 하는 일들이

그래도 나에게도 틈틈이 찾아오고 있다는

확신을 안겨주었습니다.

'내가 아는 나의 어린이(85p)'라는

시인이 풀어놓은 내밀한 기억과,

시를 쓰는 삶에 대한 깊은 고민이

이 에세이에 실려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언어를 쓰는 사람이지만

시인이 시를 쓰기 시작한 필연은

어두운 기억에서부터 였다고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다하는

이유에 대한 문장들이 가득했어요.

"누군가는 너무 바빠서 지나쳐야

하는 순간을, 꼭 해야 할 일처럼

붙들고 앉아 오래 응시하는"

그런 게 시인이 할 일이라고 믿는.

속도감 넘치는 세상과 다른

이 산문집의 맑고 찬란한 마음을

느낄 수가 있었어요.

그리고 시인은 묻습니다.

"당신의 여름 과일은 무엇인가요?"

참을 수 없이 뜨거우면서도

잊을 수 없는 여름의 맛이

누구에게나 있을 거예요.

아마도 그건 저에게는

시큼하고 아삭한 오이지 같은 맛보다는

뜨겁고 짭조름한 맛이었지만.

이 글을 읽고 나니

시인의 할머니가 좋아했다던

은은하고 달달한 맛이 참을 수 없이 당겨서

호두맛 아이스크림을 사가지고 먹었답니다.


내 마음속 작은 어린이의 기억을

다시금 상기시키고 다정다감한 언어로

치유와 위로를 건네주는

최지은 시인의 에세이 <우리의 여름에게>.

한여름에 딱 어울리는 이 산문집을 만나면

빛나는 순간들을 떠올리게 될 거예요.



이토록 지독한 여름은 다 무엇일까요.
줄곧 그 여름을 나 혼자 묻어두고,
꺼내보고, 또 한겹 덮어두는 동안,
이 무서운 이야기는 저에게 그냥 사랑이었습니다. - P18

때때로 어떤 편지를 읽고 있으면 느리게 눈송이가 내려앉는 것 같다. 홀가분하고 가볍게. 넓고 환하게. 어디서부터 출발한 것인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아주 멀리서부터 내게 온 눈송이를 상상해본다. 단번에, 사랑을 떠올리는 것이다. - P94

오래 품고 있던 시가 나보다 더
많은 말을 하고 더 멀리 나아갈 것 같다.
시를 쓰는 삶에 대한 원망과 미움은
오간 데 없이. 이상하고 아름다운 호혜다. - P136

한번 해보는 거죠. 시작은 매번 어렵지만.
마음껏 기쁘고 기쁘게 돌아오기로.
문득 그렇게 시를 쓰고 싶고요.
돌아온 그 자리에는 처음 문을 열 때와는
완전히 다른 기쁨이 기다릴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 나의 첫 여름 과일 이야기입니다. -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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