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렌 굴드 - 피아니즘의 황홀경 현대 예술의 거장
피터 F.오스왈드 지음, 한경심 옮김 / 을유문화사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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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선생님 한 분은 누군가에게 선물을 할 때, 상대에게 어떤 것이 좋을지 물어보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걸 선물하신다고 했다. 아마도 그것은 어떤 선물이든 상대가 받고 100% 행복해하리라는 확신에서 오는 자신감으로 비쳐졌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저렴하면서도 감히 물질로는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 책 선물을 선호하게 되었다. 줄 때도 받을 때도 가장 기쁜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얼마 전 나는 책 선물을 받게 되었다. <글렌 굴드 - 피아니즘의 황홀경>. 요즘 피아노에 빠져 있어서 그런지 수수께끼 같은 천재 피아니스트의 평전이 새로 출간되었다고 하니, 자못 궁금했다. 게다가 올해 창립 60년을 맞은 을유문화사에서 나온 책이라기에 귀가 더 솔깃해졌다. 이 책은 표지부터가 범상치 않았다. 이십대 중반에 찍었다던 글렌 굴드의 음반 표지 사진이기도 한 표지 사진은 우수에 찬, 무엇이라 형용할 수 없는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캐나다 태생의 글렌 굴드(1932~1982)는 50해 짧은 인생을 살다간 인물이었다. 부유한 모피상의 외아들로 태어나 유복한 유년시절을 보냈지만, 걱정이 너무 많았던 굴드는 마냥 행복한 삶을 살다 간 인물은 아니었다. 실제로 어딘가 아프기보다는 '건강 염려증'이라는 일종의 마음의 병이 그를 한없이 나약하게 만들었다. 단기적으로는 자신이 복용하는 약들이 효과를 주었겠지만, 결국 그런 약들은 그에게 독이 되었다.

굴드가 그렇게 나약하게 된 건, 어머니의 역할이 가장 컸다. 단적인 예로 굴드의 어머니는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면 병이 옮을 수도 있으니 가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굴드는 유년 시절에도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 노는 모습을 보면서도 행여 손가락이 다칠까 어울려 놀지 못했다고 했다. 한 여름에도 감기에 걸릴 것을 염려하여 두꺼운 외투에 목도리, 장갑까지 착용했다던 굴드. 그런 모습에 당시 사람들은 굴드를 의아하게 여길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건강에 대한 지나친 염려 때문에 오히려 건강을 해치게 된 굴드는 연주회에도 알레르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자신의 음악을 들으러 온 청중을 군중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자신의 음악과 교감하기보다는 자신의 실수나 잘못을 지적하러 온 사람쯤으로 여기기도 했고, 연주회라면 당연히 사람이 많이 모일 것이므로 그것이 싫었던 게다.

실제로 글렌은 청중을 몹시 싫어하는 흔치 않은 예술가였다. 잘못을 찾아내는 비판적인 그의 어머니 상이 연주를 들으러 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과장된 방식으로 투사된 것 같다. 그는 연주회장의 청중이 던지는 무언가 캐는 듯한 눈초리를 항상 느끼게 된다는 사실이 두려웠고, 막 갈가리 찢기려고 하는 순간의 로마 시대의 검투사에 자신을 비유하곤 했다. - 본문 중에서

건강상의 이유로 점점 연주회 수를 줄여가던 굴드는 결국 31세의 나이에는 완전히 연주회를 중단해 버리고, 대신 녹음에 열의를 보이게 되었다. 다음의 글에서 굴드의 생각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연주회장은 미래를 탐구하는 장소라기보다는 과거의 유물이 전시된 박물관 같은 곳이었다. 글렌은 음악을 듣는 장소로서 연주회장은 내리막길을 가고 있는 운명에 처했다고 생각했다. 음악을 듣는 일이라면 집에서 라디오나 음반으로 감상하는 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 본문 중에서

당시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던 바흐의 <골드베르크 연주곡>을 훌륭하게 연주하고 녹음하여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게 한 글렌 굴드. 그가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들을 소상하게 전한 이는 그의 친구이자 팬인 정신과 의사 피터 F. 오스왈드다.

저자는 <글렌 굴드 - 피아니즘의 황홀경>을 탈고하고는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생의 마지막 순간이 임박했음에도 작업을 계속 했던 저자가 얼마나 굴드를 특별하게 여겼을지 가늠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그 어떤 책보다 글렌 굴드를 가장 근접하게 그려냈을 것 같다.

청중 앞에 나서기를 두려워 한 천재 피아니스트, 수수께끼 같은 베일에 겹겹이 싸인 글렌 굴드와 만나는 일은 기실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이었다. 평생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연주를 할 때만은 세상 누구보다도 행복했던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 어쩌면 대비되는 삶 때문에 그의 연주가 더 빛났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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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나 - 동화 작가 박기범이 쓴 어머니들 이야기
박기범 지음 / 보리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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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저자가 2000년 전태일 문학상을 받은 글을 엮은 것이라 한다. 서두에는 '훌륭한 일기글의 한 본보기'라는 제목으로 심사를 맡으신 이오덕 선생의 추천사가 실려있었는데, 벌써부터 마음은 감동으로 일렁이기 시작했다.

<엄마와 나>라는 제목으로 미루어 알 수 있듯 이 책은 '서울 어머니 학교'에서 자원 교사로 일했던 저자와 어머니 학교에서 글을 배우는 어머니들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었다.

엄마는 ... 내가 글짓기 할 일이 어디 있냐고, 그런 글 쓸 일도 없다 한다. 그저 어디 가서 글씨나 안 틀리면 된다는 거다. 못 배운 티를 넘자는 게 무엇보다도 절실하니까. 이제는 어느 정도 기본 글자들은 쉽게 쓸 줄 아는데도, 엄마는 여전히 글자 하나하나에 갇혀 있다. 보통 정도 교육받은 사람들이 틀리게 쓰거나 하면 '어, 그런가?'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갈 것도, 엄마가 그러면 그건 못 배운 티로 여기신다.

무식한 티인거고, 아직 글을 다 깨치지 못했다는 증거라고 생각하시는 거다. 어떻게 해야 엄마를 글자에서 자유롭게 해 드릴 수 있을까. 엄마가 기본으로 읽고 쓰는 이 정도면, 초등학교 검정고시부터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작은 학력부터 인정받으면 그런 열등 의식을 넘게 되실까? - 본문 중에서

평생 고생만 하신 어머니를 생각하는 저자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거짓없이 순수하고 착한 마음이 그대로 스며드는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가슴이 뭉클해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버스 안이든 친구를 기다리는 찻집에서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눈물은 왈칵 쏟아지려 했다.

코끝이 시큰해질 만큼 감동적인 이야기가 곳곳에 피어나고 있었는데, 글을 읽으면 누구나 어머니에 대한 자식된 도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스스로를 탓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 같다.

같이 연필을 깎고 공책을 펴고서 하루 몇 시간씩 곁에 앉았다는 것만도 가슴 벅찬데 그동안 나는 엄마가 가슴 속에 묵히고 살아온 이야기들을 절절히 들어 왔다. 그러면서 나는 어느 새 엄마한테 아주 다른 아들이 된 것 같다.

그전에 언제 내가 엄마 얘기를 들어주기라도 했나. 학교 다닐 나이 되면서부터는 책가방만 던지고 나가 놀기 바빴고, 머리가 좀더 커서는 내 방문 꼭 걸어닫고 처박혀 있기만 했지. ... 밥상 앞에서도 엄마가 무슨 얘기라도 시작하면, 말을 뚝뚝 끊기가 일쑤였다. 잠깐이라도 들어드리려 하지 않았다. 저 잘났다고 엄마를 가르치려고나 들고.

스물다섯 넘기면서 조금 달라지긴 했지만, 엄마한테는거기가 거기였을 거다. 그러니 지금은 얼마나 달라졌나. 지금은 엄마도 나도 서로에게 가장 좋은 벗이다. 옆에서 지내는 시간만 봐도 그렇고, 마음 통하면서 형 모르게 사소한 비밀들을 갖는 게 그렇다. 그런 데다가 엄마는 글자 좀 봐 달라고 일기를 보여 주니, 엄마가 하는 하루하루 걱정들을 그대로 안다. 하숙생들 밥 차려 주면서 드는 마음까지. 시장에 가서 찬거리 준비하는 마음까지. - 본문 중에서

위의 글을 읽고 보니 내 이야기 같아서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했다. 무심코 내뱉은 말과 행동으로 어머니에게 상처를 드린 건 아닌가 하고 '아차'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곧 후회하게 되지만, 후회는 늘 일을 저지르고 난 다음에 번쩍 들고야 만다. 어머니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내가 엄마가 되고나서야 정녕 가능한 것일까.

<유지나의 여성영화산책>에서 유지나는 '하나님은 모든 곳에 있기 힘들어서 어머니를 창조했다는 칼릴 지브란의 혜안은 옳다'고 이야기한다. 자식들에게 어머니는 그야말로 하나님과 같은 존재다. 온갖 궂은 일로 하루하루가 고단한 몸이지만 용기를 내어 학교 문을 두드린 어머니들은 앎의 기쁨로 하루하루가 행복한 표정들이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봉사하는 선생님들의 모습도 너무 눈부시고, 예순이 넘는 연세에도 한글을 배우려 노력하시는 어머니들의 모습도 참으로 눈부셨다. 방학을 해서 여느 때보다 시간이 많은 우리 청소년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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