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 모틸론 풀리 워시드 - 200g, 홀빈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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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에서 커피에 이렇게 만족하리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제품 소개에 나오는 몇 가지 향이 과하지 않으면서 조화롭고 맛 있었다. 다른 종류도 계속 맛 볼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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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아르테미스 - 스페셜 에디션 앤디 위어 우주 3부작
앤디 위어 지음, 남명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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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도 3부작의 다른 두 작품과 마찬가지로 읽는 동안의 재미는 확실했다. 이번에는 기본 sf 설정에 범죄와 스릴이 더해지고, 여성 주인공의 통통 튀는 영리함과 유쾌함이 작품의 매력을 더욱 드높인다. 영화화 된다니 잘 나오면 좋겠지만 소설만이 가진 즐거움은 읽어야만 가질 수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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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화성과 나 - 배명훈 연작소설집
배명훈 지음 / 래빗홀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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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소설들은 화성에 인류가 정착촌을 만드는 초창기 또는 어느 정도 여러 촌락이 만들어진 안정기 즈음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지금부터 얼마 정도의 시간이 흘러야 이 소설들의 시간대인 우주시대가 오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런데 이 작품집의 두드러진 특징은 여기에서 다루는 상황이 아주 가까운 미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점이다. 왜 그렇게 느끼게 되는가 생각해 보았다. 

이 소설들은 우주 전쟁이라든가, 외계 생명체의 등장이라든가, 화성 개척 과정의 목숨 건 모험이라든가가 주된 내용이 아니다. 물론 거주지 바깥은 죽음의 땅이니 인물들은 죽지 않고 다음 날 깨어나는 일을 자신들의 가장 중요한 업적으로 생각하고, 그런 나날이 누적되는 것을 기적처럼 여기기도 한다. 그렇긴 하나 [화성과 나]는 위에 열거한, 다른 sf에서 많이 볼 수 있었던 '모험'과 '액션'을 위주로 해서 미지의 위험을 다루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 소설집의 소설들은 일상에서 발생하는 위험 요소에 대비하는 인물들이 등장하며, 지구에서 실패한 '국가'와 같은 사회 조직을 되풀이하지 않고 새로운 형태의 사회 운영 조직을 시행해 보려는 행정전문가들이 등장해서 자기 분야에서 고민하는 이야기들이 위주가 된다. 다시 말해서 외계 생물같은 위험 요소는 등장시키지 않고 화성의 물질적인 환경만을 배경으로 해서 구성원과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소설들이다. 

실제로 화성에 사람들이 이주해서 살 때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거리들로 내용이 전개되는데, 이때 문제거리라는 것은 범죄, 식욕, 구성원들 사이의 계급차, 인간이 많아지면 필요해지는 규칙과 조직, 그 모든 것들의 우선순위 등등이다. 이런 내용들이 다루어지자면 인간과 사회에 대해 깊이 생각해야 하므로 인문학적인 고민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과학이 바탕이 되는 것은 당연하지만 지구에서의 실패를 피할 수 있는 사회를 조직하려면 인문학, 상상력, 그리고 행정적인 실천이 따른다. 이것을 추진하는 건 현실적인 문제이기도 하면서 무엇보다 인간이 '다시 시도'해 본다는 의미가 크다. 희망을 갖고 해볼 만한 일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아주 먼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것일 텐데도 현재, 국가 단위로 운영되는 지구의 실패를 실시간 보고 있는 우리의 고민에 근접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가까운 장래를 다루는 현실적인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이 소설들이 딱딱한 내용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지만 그렇지 않다. 매 단편이 흥미롭게 읽힌다. 일단은 한 작품 정도를 제외하고 등장인물들이 대단히 우수한 인재들이라 그들의 우수함 자체가 들여다 볼 거리가 된다. 화성에 우선적으로 가는 사람들이 갖춘 전문성과 열정과 의지는 바로 짐작할 수 있는데 거기다가 창의적이고 선량하기까지 하니 평범한 인물이 드물다. 그래서 이것을 문제 제기하는 단편도 하나 있다. '행성탈출속도'라는 소설이 이에 해당하는데 수학에 약한 화성 태생 주인공은 본인이 영재급의 우수한 두뇌가 아니라는 이유로 학창 시절에 왕따를 당하고 성인이 되자 결국 지구행을 선택한다. 화성은 평범한 인물이 설 자리가 너무 부족한 행성인 것이다. 

웃음을 유발하는 장면도 꽤 있었다. 하나만 소개하면 '나의 사랑 레드벨트'라는 단편에는 단어사전에 접속오류가 생긴 인공지능컴퓨터가 등장한다. 그래서 문장은 구성하지만 단어들을 지시어로 채워 전달한다. 예를 들면 '거봐, 그거네, 기분이 영 저기한가 보네' 이런 식으로 말을 거는 건데, 단어 업데이트가 안 되는데 복잡한 사고가 가능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재깍 알아듣는 주인공까지 포함하여 독자를 웃게 하였다. 


배명훈 작가는 외교부 의뢰로 2년 동안 화성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을 했고 그 연구를 마치며 이 연작을 썼다고 한다. 나는 우리 나라 외교부에서 이런 일도 했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결과적으로는 일회성으로 그친 것 같지만 어디에 쓰려고 그랬을까 궁금하다. 작가의 학교 때 전공(외교학)과 현재 직업을 조화시켜서 화성이 국가가 아닌 새로운 행정시스템을 운용해 볼 수 있지 않을까에 대해,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것과 아직 예측해서는 안 되는 것을 섞어서' 썼고 그 작업의 소설적 결과물이 이 작품집이라고 한다. 

 

작품들을 읽고 중심 인물도 소설도 너무 선량하기만 하다고 느꼈는데 이런 느낌을 가졌다고 쓰자니 그런 것도 문제가 되느냐는, 공연한 까다로움이라는 소리가 들리는 듯도 하다. 선량한 것이 문제가 되진 않지만 인물의 개성이 다양한가, 이야기의 입체감이 충족되는가 하는 면에서는 작품들이 비슷한 분위기로 느껴져 아쉽다는 생각을 조금 한다. 

[화성과 나]는 우리 나라 sf에 과문한 나에게 좋은 경험이 된 독서였다. 화성에 대한 소설을 읽는 중에 지구를 다시 돌아 보았다. 나에게 지구를 본다는 것은 아파트 창밖으로 보이는 나무들과 먼 산에 눈길을 준다는 뜻인데, (여전히)나무가 자라고 숲이 있고 강과 바다가 있는 지구를 새삼 소중하게, 곰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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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졸리니의 길 작가의 삶과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찾아 떠난 길
피에르 아드리앙 지음, 백선희 옮김 / 뮤진트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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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글로 만나 ‘뒤집힘‘을 경험하고 ‘어떻게 하면 이 부재하는 사람 곁에서 살 수 있을까? -나는 그 영혼의 인도자를 찾아 파졸리니의 길 위로 떠났다‘ 라고 고백하고 있다. 정보나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는 책은 아니다. 매혹한 이에게 최선을 다해 접근하려는 젊은 저자의 노력을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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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루이스 레이의 다리
손턴 와일더 지음, 정해영 옮김, 신형철 해제 / 클레이하우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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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가 나면 왜 하필 나의 사람이 거기에서 죽었을까, 우리는 생각한다. 

무의미한 의문이다. 사고가 났을 뿐, 그 사고에서 죽어 합당한 사람이 있을까.

어쩌면 우리가 가져야 할 의문은 왜 사람은 죽는가일 것이다. 

사람은 죽는다. 생명체는 유한한 목숨이란 것이 본질이다. 그러므로 이 의문도 답없는 질문일 뿐이다. 그저 생명체의 조건일 뿐인데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인가.


이런 것을 환기시켜 주었을 때 살아남은 사람들이 '그렇다' 라고 납득을 하면서 멈추었던 일거리를 찾아 들 수 있다면, 또는 한밤의 잠자리에서 숙면에 들 수 있다면, 또는 떠난 이의 사진을 찢어지는 마음없이 볼 수 있다면, 이 소설은 창작되지도 지금까지 읽히지도 않았을 것이다.

사람은 그렇게 생겨먹지 않았다. 사람은 그리워하고 상처입는다. 심지어 자신이 권능자이기라도 한 것처럼 스스로를 탓한다. 내가 그러지 않았으면 그가 죽지 않았을 텐데, 라고.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 그리움과 상처는 때로 자연의 순리와 사고의 재난을 벗어나, 떠난 이의 뒤를 따라가게 만들 정도로 깊고 가혹하다. 사람은 이렇게 생겨먹었다.


이 소설은 자연의 일부이면서 동시에 그리움과 마음의 상처에 지극히 취약한, 사람이라는 생명체에게 건네는 작은 연고와 같다. 

어디에도 완전한 약은 있을 수 없다. 상처는 남는다. 하지만 사람은 서로의 어딘가에 남은 상처를 보면서 서로의 아픔에 눈시울을 붉힐 수 있다. 그것이 사람이 다다를 수 있는 전부가 아닐지. 무력하게 보일지라도 그것이 사람이 가진 전부이고 유일한 의지이자 힘이 아닐지. 이 소설은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소설을 다 읽고 나면 답은 미미하게 느껴지는데 중간에 들어가 있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한없이 커보이는 이상한 느낌이 든다. 답은 미미하고 한 명 한 명 인물들의 삶은 한없이 크다. 그것이 우리의 가슴을 무너지게 하는 한편 깨달음을 주는 핵심이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은 그 반대이다. 한 명 한 명의 삶은 흐릿하고 답들이 아우성치다가 어느 순간 거품처럼 꺼지고 잊혀진다.  


길지 않은 분량의, 거의 완벽해 보이는 단정한 구조를 지닌 이 소설은 먼 시공을 거슬러 이제야 내 책상에 도달했다. 

에스테반은 슬픔을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 흔히 그러듯이 방향을 잃고, 이곳에서 저곳으로 거리를 배회하였다. 나는 에스테반의 외로움에 공명했다. 마음의 위로를 주고 받는다고 생각했다. 나의 위로가 가닿았을지는 모르겠다. 나는 조금 위로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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