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당한 유언들 밀란 쿤데라 전집 12
밀란 쿤데라 지음, 김병욱 옮김 / 민음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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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지금 읽고 있는 책. 쿤데라가 카프카와 음악을 가지고 하는 문학강연. 카프카나 서양고전음악에 대한 조예가 없어도 책읽는 즐거움과 문학을 이해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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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북소리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윤성원 옮김 / 문학사상사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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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낯선 곳을 구경하는 책은 아니고 낯선 곳에서 사는 이야기라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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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플리 4 : 리플리를 따라간 소년 리플리 4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홍성영 옮김 / 그책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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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의무감으로 몇 자 쓴다.

밑에 리뷰를 쓰신 분들은 아무 지적을 안 하다니 놀랍다. 실수가 이렇게 많이 눈에 띄는 책은 처음인 것 같다. 먼저 읽은 지하의 리플리, 리플리의 게임도 몇 군데 있었는데 방금 읽기를 마친 '리플리 4 : 리플리를 따라간 소년'은 정도가 좀 심했다. 어이가 없어서 발견될 때 생각나면 표시를 했다. 그냥 넘어간 것도 있어서 이보다 더 많지만 몇 군데 예를 들면,

가장 빈번한 실수는 인물 이름 바꿔치기. p66 :7 '앙리'를 '톰'으로,  p221 :밑에서 셋째 줄 '에릭'을 '피터'로. p232 : 4 '톰'을 '에릭'으로. p298 :밑에서 다섯째 줄 '프랭크'를 '톰'으로 p313 :5 '그'라고 해야 할 걸 '그와 프랭크'로(프랭크는 이 장면 바로 앞에 자기 방으로 들어갔고 작별인사함). 이름 표기도 p146 중간 쯤에 앞에 문장은 프랑크, 뒤에 문장엔 프랭크.

'리플리의 게임' 경우도 이름 바꾸기가 많았지만 표시를 안 해 두어서 옮기기 어렵고, 지금 기억 나는 것은 '칼'이라는 운전사가 가방을 들어 주는데 '조나단의 가방은 칼이 들었다'가 되어야 할 것을 '조나단의 가방에는 칼이 들었다'로 웃지 못할 표기를 해 놨다.

리플리 시리즈에 대한 기대를 하는 하이스미스 팬들도 많을 텐데 참 어이없고 안타깝다.

번역자와 출판사 양쪽 모두가 불성실하였다고 생각한다. 두 쪽 중에 어느 쪽이라도 조금만 더 자기 일에 성실성이 있었다면 있을 수 없는 실수들투성이니까.

'번역이 매끄럽지 못해서 상황파악이 안 된다'라는 불평은 원서를 읽지 못하는 독자 입장에서는 억울해도 증거를 댈 수 없는 하소연이 되어버리고 만다.

그러나 위에 지적한 '그책'출판사와 옮긴이 '홍성영'씨의 정신없는 표기들은 부끄러워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만 더 덧붙이자면, 부부 사이에 왜 항상 아내만 남편에게 높임말을 쓰는 번역을 하는지?  이 부분에서 한국 사회는 조금 달라진 것 같은데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지식인? 지식인(번역자)들이 현실을 앞서 내다보기는커녕 반영도 못한다면 문제 있는 것 아닐까요. 뭐 요새는 지식인 운운하는 것 자체가 너무나 구식이긴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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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죄를 등에 업고 사는 인간의 이미지. 그것에 짓눌려 압사당하지 않고 삶을 열어 나가는 인간의 모습. 이 영화에서 이런 것을 보아낸 이상 뭔가를 쓰지 않을 수 없다. 항상 그렇지만 영화 전체에 대한 평가 같은 것은 내 관심이 아니다. 그럴 능력도 안 된다. 나는 나를 낚아채 가는 특정 이미지들에만 집중한다.

몇 개의 극장에서만 개봉한지라 언제 갈까 주저하다 결국 놓치고 디브이디를 샀고, 한 번에 연결해서 보지도 못하고 이틀에 걸쳐서 보았다.   

이 영화에 내가 깊이 빠져들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인간은 그가 지은 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 아니다. 이 영화는 그것이 내 영혼의 가장 핵심이 된 것을 보여 주는 방식으로 그것이 내 영혼을 좀먹지 않고 내 영혼에 동참하여 확장시켜나가는 것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내가 죽인 사람에게 어떻게 용서를 구할 것인가, 나는 그를 잊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 마음 가장 깊이 그를 두고 가장 소중한 시간에 그와 함께 한다. 그에게 귀를 기울이고 그와 대화하고 웃고 그와 함께 기념하고 그에게 배운다. 나의 그에 대한 죄의식은 그와 함께 살므로써 굴레나 억압이 아니다. 죄를 기억하는 그 시간은 그에게 항상 평화롭다. 

어떻게 그는 이렇게 할 줄 알았을까? 삶의 무게에 짓눌리는 대신 그가 삶에서 배우며 자기 삶을 주도하는 모습, 중요한 것을 다루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불행해지는 이유는 내가 반드시 주도해야 할 일에서조차 자행된 무분별한 방치와 그 결과를 통해 배우려하지 않음에서 온다는 것을 생각했다. 그는 시련을 거치며 성장하였다. 그는 그가 사랑할만한 것들이 있음을 확인하였을 때 그것들을 얻으려 계획하고, 다가간다.  계획하고 한 발 한 발 그쪽으로 발을 옮기는 것을, 이 영화는 인물에 대한 미화나 과장이나 감상 없이 보여준다.

보고나서 뇌리를 떠나지 않는 영화,  오랜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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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 시칠리아에서 온 편지
김영하 글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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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글은 다 읽었지 싶다. 생각해 보면 배수아, 김영하가 한국문학의 기대주 운운하여 선그라스에 이어링(김영하의 이어링 자욱은 다 사라지고 남을 시간이 흘렀다.)을 하고 함께 찍은 전신사진이 신문에 실릴 때부터 아니 그 이전에 문학동네 작가상을 수상할 때부터 그의 글은 항상 나의 관심권 안이었다.

당대의 대중문화 코드를 문장을 통해 삶에 대한 감수성으로 직역할 줄 아는 능력을 가졌으며, 새로운 매체를 수족부리듯 능수능란하게 다루며 독자와 소통하고, 기존의 작가와 달리 몸을 사리지 않는 쾌활한 자기 표현력을 지닌, 김영하 같은 작가는 어떻게 나이들 것인가, 흥미로웠다.

시간이 흐르면서 장편이 몇 권 나왔고 <퀴즈 쇼>를 조선일보에 연재할 즈음에 그는 대학교수였고 라디오진행자였고 얼핏 들리느니 무슨 영화제를 위해 짧은 영상물도 만들고 있다는 것 같았다. 하이델베르크나 동경을 찍고 만든 책이 나오기도 했다. 그즈음에 김영하는 내게 작가라기보다 문화활동가나 엔터테인먼트 비슷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퀴즈 쇼>가 단행본으로 나온 것을 읽고 나서, 나는 서운했다. 괜찮은 글쟁이를 잃은 심정이었다. 소설은 가볍고 엉성하여 분위기만 잡다가 끝나버리는 영화를 보는 듯 했다.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의 소개글을 통해 그가 주변정리를 했다는 것을 알았다. 작가가 자신을 소설가로 규정짓겠다면 제대로 된 소설을 쓰기위해서 필요한 무언가를 해야 한다. 소설의 자양을 발견할 또한 그것을 퍼올릴 시간도 스스로에게 주지 않으면 자기반복과 얄팍한 소재주의에 머무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그가 <빛의 제국>에서 썼던 인용을 다시 인용하자면 생각한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이 전환점에 서서 독자에게 자신의 심경을 밝히는 편지와도 같은 글이니만큼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그간 작가에게 가졌던 관심의 곡절을 정리하고 싶어졌다. 이 책은 그의 오랜 독자에게는 그런 마음이 들게 하는 책인 것이다. 잘 떠났습니다. 작가여, 그곳이 시칠리아든 캐나다든 한반도의 골짜기 서부전선이든 원주의 텅빈 원형극장이든.

더 멀리, 더 깊이, 더 고통스럽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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