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작가가 2009년부터 발표한 단편 소설 6편이 묶인 소설집이다.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프랑스어 초급과정」, 「스페인 도둑」, 「T아일랜드의 여름 잔디밭」, 「독일 아이들만 아는 이야기」, 「금성녀」- 작품들의 제목을 써놓고 보니 은희경은 제목조차도 참 잘 내놓는 작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중주」로 등단하던 때부터 작가의 소설을 계속 읽어 오며 어떤 소설은 좀 가볍고 허술하다는 아쉬운 생각을 한 바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 작품들은 이 정도 수준의 읽는 즐거움을 주는 작가에게 존경, 질투(왜?), 소중함의 감정을 두루 갖게 하였다. 특히 「금성녀」가 좋았다. 이 소설만 이야기해 보련다.
아름다웠던 두 자매가 이제 노파가 되었고 그 중 언니인 76세 유리가 자살하며 전개되는 이야기이다. 아들이 이민 간 후 혼자 살아가는 데 있어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없고 책읽기를 좋아하며 조금은 인습에서 벗어난 노파인 마리가 언니의 장례 기간 동안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들여다보는 것이 이야기의 한 축을 이루고 조카손자뻘인 두 청년과 장지로 향해 가는 과정이 또 한 축을 이룬다.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하기 위해 매순간이 최선을 다하려는 안달의 연속이었던 것으로 그려지는 유리와 달리 마리에게는 자신의 삶(결혼 생활)을 평생 ‘남의 인생 바라보듯’하는 태도가 있다. 자신을 매혹시켰던 것으로 인한 일탈의 기억이 가져온 결과일까? 이 노파는 무척 냉정하고 세련되었다. 열정이나 열성이나 악착이 없다. 남편의 죽음에 대해 술회하는 대목을 보라. ‘그 결혼에 마리는 적당한 만큼만 성실했다. (중략) 몇 년 동안 병석을 지키며 성심껏 간호했다. 그리고 그의 죽음과 함께 결혼생활이 끝났을 때 느꼈던 행복에 대해서도 떳떳했다.’
정략적이며, 행복하고자 세운 계획에 따라 자신의 가치관을 타인에게 예사롭게 강요하는 유리라 할지라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고야 마는 삶의 비의(秘意)를 어찌할 수가 없다. 통제되지 않는 삶에 유리와 같은 유형의 사람이 더욱 절망하는 것은 당연하다. 마리의 말대로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유리를 오해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무언가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한 유형의 오해를 펼쳐놓는다는 뜻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