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시체들을 끌어내라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53
힐러리 맨틀 지음, 김선형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1월
평점 :
[울프홀]을 먼저 읽었다. 분량이 많았고 휙휙 넘어가는 속도감을 가진 소설은 아니어서 후속작인 이 책을 함께 구매했었지만 연이어 읽을 생각이 들지 않았다. 분위기를 바꾸고 싶은 생각이 들어 다른 책부터 읽으려고 일단 뒤로 미루어 두었었다. 하지만 반성은커녕 책임지는 모습 하나 없이 용산에 쳐박혀서 나라를 절단내고 있는 현실 인간을 보면서 [시체들을 끌어내라]라는 너무나 시의적절한 제목에 끌려 연말에 읽게 되었다. 연말엔 역시 장편 소설이 좋은 친구이긴 하다.
앞서 읽은 [울프홀]에서 인물들의 특징과 관계 그리고 느리면서도 내면적인 서술 방식에 적응을 한 후여서인지, 앞의 책을 읽을 때보다 500년 전의 세계에 금방 빠져들어 읽을 수 있었다.
역사 소설을 별로 읽지 않았고 특별히 좋아하지도 않는다. 이 소설을 선택한 것은 작가의 이름을 다른 책을 통해 들은 바가 있어 관심이 있었고 [울프홀]에 이은 두 번의 맨부커상 수상에 대한 호기심도 컸던 차에 문학동네에서 새옷을 입고 나와서였다. 사실 읽기 전에는 극적인 장면들이 흥미롭게 펼쳐지는 빠른 전개를 예상했었다. 소설의 중심에 기구한 운명의 인물인 앤왕비와 문제적 왕인 헨리8세가 있었기 때문이다. 정작 소설을 읽어 보니 역동적이거나 자극적인 재미를 주는 전개 방식은 아니었지만 진중한 재미가 있었다. 영국의 역사에서 널리 알려진 아주 중요한 시대를 다루고 있으니 아무리 실제 일어난 일이 어처구니없고 무섭다 한들 사건들을 제시하는 자체로 흥미를 유발하기는 어렵다.
이 소설의 재미는 주로 토머스 크롬웰이라는 인물의 인격 묘사와 이 인물이 당대 여러 인물과 시대의 흐름 자체를 어떤 식으로 보고 평가하는가 따라가며 읽는 데서 온다. 그리고 결국 소설이 후반으로 가면 독자는 토머스 크롬웰이라는 인물 자체에 놀라게 된다. 독자는 크롬웰과 시선을 일치시켜서 그의 시선을 따라 사건을 보느라 미처 크롬웰 자체에 대한 평가를 등한시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 인물이 자기 앞의 재료들을 얼마나 용의주도하고 가차없이 이용하면서 왕의 욕망과 왕의 명분을 충족시키고 완성시켰는지 마지막에서야 깨닫게 된다.
크롬웰 개인에 대한 자료가 자세하게 남아 있지 않다고 하는데 작가는 그 비어 있는 부분을 공략의 대상으로 삼아 소설의 정체성을 만들어 낸 것으로 보인다. 작가는 역사의 세부와 비어 있는 크롬웰 개인사를 상상하여, 종교적 외교적으로 꼬일대로 꼬여 있던 왕의 결혼 문제를 해결해나간 인물을 만들어냈다. 통제되지 않는 왕의 욕망. 그 욕망에 이어지는 또 다른 욕망은 앞선 욕망을 부정하고 앞선 명분을 뒤집어 엎는다. 새로운 명분을 주기 위해서 새로운 희생은 불가피하다. 크롬웰은 누가 발 밑에 깔려야 무사히 저편으로 건널 수 있을지 교통 정리를 하면서 와중에 자신의 해묵은 빚을 받아낸다.
크롬웰은 권모술수에 능하고 사방을 유심히 살피는 주의력을 지닌 일중독자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거대한 인물로 느껴지는 이유는 피바람의 중심에서 그 자신 역시 머잖아 사라질 수 있음을, 끝이 있음을 자각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점. 그리고 그 끝이 그저 끝이 아닌 하나의 시작일 수 있다는 점을 서류 더미 속에서 문서를 작성하며 생각한다는 점이었다. 소설의 마지막에 나오는 이 부분은 크롬웰에 작가의 내면이 겹쳐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겨울의 긴 밤, 바람 소리를 들으며 이 작품을 읽을 때 소설이 애써 표면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있는 인간에 대한 주된 정서가 찌르듯이 다가왔다. 그 정서는 인간에 대한 '연민'이다. 나는 이 작품에서 강철 심장을 지니고 여러 사람의 처형장을 세심하게 준비한 크롬웰이 앤의 처형장에서 마음 속으로 '팔을 내리라고, 제발 팔을 내리라고' 소리를 외친 부분을 유심히 읽었다. 이런 것이 역사책과 소설의 차이겠거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