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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류 - 제153회 나오키상 수상작
히가시야마 아키라 지음, 민경욱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2년 7월
평점 :
예치우성이라는 열일곱 살 소년의 성장 소설이자 시대물이다. 공간은 대만, 시간은 1970년대 중반에서 80대 중반 십 년 정도인데 이는 화자인 치우성을 따라가는 시간이고 이 소설을 추리물로 분류하게 하는 중심 사건은 역사적 굴곡을 품은 긴 세월을 배경으로 한다. 국민당 소속으로 중국에서 건너 온 예치우성의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친구들이 살아온 시간은 중일전쟁, 내전, 대만으로 와서 정착하기까지 이어지고 이들 세대의 삶은 주인공의 성장 과정에 그대로 영향을 줄 뿐 아니라 대를 이어 전해지는 핏줄의 유산을 계승하고 있다.
매우 활기차고 박력 있고 에너지가 충만한 소설이었다. 이웃이나 가족 사이에서 오가는 대화인지 다툼인지 경계가 애매한 말들과 흔한 웃옷을 벗어젖히고 배를 내놓은 거리의 아저씨들과 날라리 친구로 인해 엮여서 질주하게 되는 사건들과 번화가 노점상 거리에서의 첫사랑과 데이트, 사람을 피해 날아다니는 닭과 출몰하는 바퀴벌레 등등이 글을 읽는 중에 청각적으로 뭔가 와글와글시끌벅적했다. 지금 나열한 이런 장면들에서 활력이 느껴지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이런 장면들 속에 잔잔히 녹아 있는 폭력성 때문이 아닌가 생각했다. 이런 장면들의 기저에 다 폭력이 깔려 있거나 드러내놓고 폭력이 오가고 있었는데, 그런 바탕에 깔린 긴장이 일상을 부글거리고 과열되게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그냥 일과 중 사소한 실수에도 부모나 선생은 아파야 배움이 따른다며 매질을 하고, 학교 급우들 간에도 눈만 잘못 마주치면 맞짱뜨기를 해야 하고, 군대 가서도 체벌은 기본이다. 소설의 하이라이트 부분에서 주인공은 '우리는 피를 흘리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피를 흘리지 않고 도대체 무엇을 증명할 수 있단 말인가?' 라는 매우 중요한 각오를 하기도 한다. 죽고자(죽이고자) 했더니 제3의 손에 의해 살아났다는 식으로 당사자 둘은 서로에게 직접 피를 내지 않는 식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긴 하는데, 이 소설 전반에서 폭력의 사용은 당연하고 자연스럽다.
위에 쓴 내용들 때문에 현재 나오는 소설과는 다른, 80년대나 90년대의 소설 같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이 소설은 일본에서 2015년에 나왔다고 한다. 개인이 세대로 이어지는 원한을 품고 복수를 한다는 정서도 그렇고 소설 전반에 과잉된 가족 중심 서사는 요즘 소설이 중요하게 여기고 다루는 내용과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대만은 80년대 중반까지 계엄령이 수십 년 계속되었으므로 그 즈음엔 생활 깊이 폭력성이 내면화, 일상화 되어 있었음을 제대로 반영한 것이다.
문장의 주저없음과 위에서 말한 활기와 유머 등이 가독성을 높였다는 것은 중요한 장점이라고 봤다.
중심 사건이 굵직한 역사적 사건과 물려 있다는 점은 작품에 무게감을 주어 호평하게 되는 큰 이유일 듯하다.
그런데 일본 평단의 반응은 조금 과하게 느껴졌다. 70년대 대만이 배경이라 가능했을 혈연의 강조와 폭력적 문제해결이라는 배포 있어 보이고 거침없는 요소들이 최근 시점에서 이 소설을 오히려 신선하게 느낀다거나 보기 드문 소설적 재미가 있다는 평을 얻을 수 있게 한 중요한 이유가 아닐까 생각했다.
소설은 균형을 잘 잡고 중국, 대만, 일본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듯 전개하고 있었다. 중국 내전은 공산당이나 국민당이나 먹을 거 주는 쪽에 붙어서 목숨을 이었다는 것이, 우리 역사 속에서도 익숙한 이야기로(낮에는 경찰, 밤에는 산사람) 많은 비극을 불러왔고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는 것을 수긍할 수 있다. 그런데 일본 침략기에 일본에 협조한 쪽도 같은 무게로 취급하는 것은 의아한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명백한 원인을 지우고 모두 개인사로, 이 역시 개인적인 비극으로 취급하겠다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마지막에 모 인물의 앞뒤 설명을 들으면 오히려 정당성을 주는 느낌도 들었다. '가정을 지키고자 한 아버지'....그러면 역사의 무게는 어디로 가는지. 작가는 대만 출신으로 아버지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는데 '내 경험'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일본인의 입장에서 균형잡힌 이야기라는 생각도 들어서 읽는 동안은 재미있었지만 다 읽고 생각해 보니 찜찜함이 없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