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책을 준비 중인 레온과 예술학교 준비 중인 펠릭스가 펠릭스 엄마 소유의 별장에 도착하고 거기서 만나게 된 나디아와 인명구조원 데비드와 어울리는 며칠 간의 이야기이다. 

레온을 제외한 인물들은 수영도 하고 집도 고치고 베드민턴도 치고 음식도 돌아가며 하고...서로 어울리고 사귀고 즐기지만  

레온은 다른 인물과 어울리지 않는다. 레온은 언제나 '일(소설쓰기)'이 중요하다는 어필을 하고 다른 행위들은 무시해도 되는, 무시해야 되는 것인 듯 군다. 레온을 제외한 인물들은 타인에 대한 예의를 갖추었으며 유연하고 열린 사고를 갖고 있어 소통에 어려움이 없어 금방 격의 없이 지낸다. 

이들 중에서 좀더 정보가 풍부한 나디아란 인물에 대해 얘기 하자면, 페촐트 감독의 이전 영화 '운디네'에 물의 요정으로 나온 폴라 비어가 연기하는데 내가 보기에 나디아는 마치 인간으로 환생한 물의 요정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완벽한 인간이다. 학위를 준비 중인 문학도이면서 자신을 아이스크림 판매원으로 알고 있는 레온에게 (레온과는 달리)자기 전공에 대해 티를 내지 않는다. 감추는 것도 아니지만 묻지 않았으니 말하지도 않는다. 문학 전공자라는 것이 아이스크림 판매원과 다른 특별한 정체성이라는 식으로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나디아는 주변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고 인생의 순간들을 즐긴다. 뭔가 생명의 꽃같은 존재다. 페촐트 감독에 의하면 부러 헌자전거와 투박한 신을 장착시켰음에도 한 순간에 그것들을 포함해서 나디아를 이루는 모든 것을 우아하게 변모시켰다고 한다.(애초에 폴라 비어에게 맡겼으면서 이런 말은 좀...) 


레온은 이런 인물들 안에 속하지 못하고 '바라보기'만 한다. 처음에는 나는 작가니까 이런 태도가 맞고 쟤들과 달라도 괜찮아라고 생각했겠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며 자신의 작가 정체성이 얼마나 알량한 지를 느끼고 다른 이들의 유연함에 위축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바라봄'마저도 '나는 작가니까'라는 생각 때문에 방해를 받아 부실하기 짝이 없다. 제대로 바라보지 않는다. 작업 중인 형편없는 글을 붙잡고 주변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려고 하지 않고 자기 편의대로 보고 싶은 것만 볼 뿐이다. 다른 이들의 자연스러움에 대한 부러움 같은 것이 더욱 협소한 마음을 고집하게 하는 것 같다. 사람에 대한 관심도 자연에 대한 관심도 기울일 줄 모른다. 사람이 죽고 자연이 죽어나갈 때까지. 

이랬던 레온이 사건의 연속 속에서, 아주 조금 마음의 확장이 일어나고 아주 조금 더 나은 글을 쓰는 작가로 나아가는 결말이었다.

레온은 어리석고 편협한 사람이지만 자신의 안에 있는 그런 결함을 끝내 모르는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런 결함을 지니고 있고 그것을 스스로 알게 된다면, 그런 사람이 좋은 작가가 될 가능성이 더 있다는 생각도 해 본다. 나디아처럼 완벽한 인간은 이 영화의 주인공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여러 가지 결함과 삐죽삐죽한 정서를 지닌 사람으로서 레온의 저 해안에 어울리지 않는 거무튀튀한 복장이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거든.

이 영화는 끝까지 레온이라는 인간을 긍정적으로 볼 여지는 거의 주지 않았으나 마지막 장면에서 형편없었던 그의 원고가 출판이 가능해졌다는 것을 보여 줌으로써 아주 조금 변화에의 기대를 남기는 것 같다.   


영화의 방향과는 좀 다르지만, 작가가 글을 쓰자면 언제 살겠는가? 잘 사는데 시간을 쓴다면 언제 쓰겠는가? 이런 생각도 해 본다. 

하지만 잘 바라보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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