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타르인의 사막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3
디노 부차티 지음, 한리나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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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이 필요할까. 이것은 막막함에 대한 이야기이다. 인간 행위의 무의미한 반복 속에서 시간의 무심함과 가차없음, 고독과 이어서 찾아오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이다.

 

드로고는 산악 지대의 고립된 국경 요새에 발령 받았다. 인생에서 기대할 아무 즐거움도 기쁨도 없어 보이는 오래된 요새의 분위기에 질려 가능한 빨리 이동하고자 마음먹는다.

넉 달 후 나가려던 것이 사 년이 지났지만 일은 꼬이고 다시 요새에 머물게 된다. 드로고의 꿈, 선의, 성실함, 선량함은 다른 상관들이나 동료들에게 아무 특별한 인상을 남기지 않는다. 정해진 일과대로 국경 경비 임무를 하면서 그들은 그들의 시간을 보내고 때로는 그들의 목적에 드로고를 이용하기만 할뿐이다. 타타르인들과의 전투가 언젠가 시작될 것이라는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부질없는 희망과 전투에서 활약하는 영광을 기대하며 끊임없이 전방의 사막을 주시하는 임무를 매일, 수십 개월, 수십 년 계속하고 있다.

 

시간은 믿기지 않을 만큼 빨리 지나간다. 여름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눈이 내리는가 의아해하다가 달력을 보면 11월 끝자락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식이다. 시간이 가고 나이가 들며 성향이 다른 동료들과는 더욱더 서로에게 무관심해지고, 그나마 진심을 얘기할 수 있던 상관 오르티츠도 정년을 맞아 떠난다. 어머니는 죽고 형제들은 고향을 떠나고 그밖의 도시에서의 인연들은 잊혀지고 도시의 삶은 까마득하고 어색할 뿐이다. 드로고를 기억할 사람은 없다. 드로고의 삶은 요새에 있다. 하지만 아직도 좋은 시간이 저 앞에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드로고는 더이상 계단을 두 단씩 뛰어 오르지 않게 되었음과 말타기가 귀찮아졌음을 깨닫는다. 드로고는 어느덧 늙어 있다.

 

어느 날 드로고에게 병이 찾아온다. 살이 많이 빠지고 얼굴은 누렇게 변하고 서 있으면 어지럼증을 느낀다. 조금 쉬면 나을거라고 요새의 의사는 얘기하지만 몸은 회복되지 않는다. 와병 중에 적이 드디어 침략해 내려온다. 인생의 목적이라 할 수 있는, 그렇게도 기다리던 전투에 임박하여 드로고는 다른 지역에서 투입된 장교들을 위해 방을 비워 줘야 한다. 사실 드로고는 서 있기도 힘든 몸이 되어 전투에 자신의 쓸모를 끝까지 주장할 수 없었다. 자존심도 버리고 남아 있게 해달라고 애원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동기였으나 이제는 요새의 지휘관이 된 자에게 삼십 년 동안 쓰던 방에서 쫓겨나 하산하게 된다.

 

도중에 하룻밤을 보내기 위해 산기슭의 여관에 머문다. 부관은 식당으로 내려가고 드로고 혼자 점차 어두워지는 방에 앉아 맑고 달콤한 저녁 공기를 호흡한다. 여관의 식당에서 누군가가 노래하는 소리가 들리는 아름다운 저녁이다. 문득 드로고는 죽음을 대면할 시간임을 알게 된다. ‘이 세상에 내가 존재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있을까?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나 외에 아무도 없다...달을 보게 될까..’

드로고에게는 아무도 없다. 가족도 친구도. 하지만 죽음은 누구나 혼자 맞이한다. 이것은 일생일대의 특별한 싸움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아무도 보는 이 없지만 제대로 보여주고자 한다. 그는 온힘을 내어 죽음을 잘 맞이하려 마음먹는다.

 

인간의 삶에서 모든 장식적이고 풍속적인 관계를 걷어내고 뼈대만 남긴다면 이렇지 않을까. 내일에 대한 헛된 희망과 막연한 기대로 잠자리에 들면서 뭉텅뭉텅 사라져가는 시간.

살아온 날이 살아갈 날보다 많은 독자라면 이 소설을 읽으며 공포를 느낄 것이다마음에 사막이 하나 자리잡는 느낌이다. 시간의 사막. 그리고 이 소설은 그곳을 자꾸 들여다 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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