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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살롱들 - 지금은 몰락한 여성 문화의 황금기
하이덴-린쉬 지음, 김종대 이기숙 옮김 / 민음사 / 1999년 11월
평점 :
절판
소설이나 유명인(남성)의 일화 속에서 단편적으로 만났던 살롱 여성들과 살롱 문화에 대한 전체적인 정리를 해준 책. 한정된 시대이긴 했지만 여성이 문화에 끼친 영향들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려는게 하이덴-린쉬 의도인 것 같은데...
이 책에 등장하는 여성들과 그녀의 살롱들을 만나면서 내내 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던 것은 과연 진보란 무엇인가란 화두와 부제로 등장한 지금은 몰락한 여성 문화의 황금기란 문장이다.
작가가 말했듯이 라헬 레빈과 같은 총명하고 영리한 여성이 수십년만 늦게 테어났더라면 유대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당시 지성인들에게 찬미의 대상이 됐던 그녀의 지성과 품성은 완전히 무시되고 가스실로 끌려갔을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한 여성들의 얘기를 읽으며, 그녀들은 인정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들은 수천년 여성의 역사에서 시간과 공간면에서 엄청난 행운아들이란 생각을 했다.
여기에 등장한 여성들의 시대는 여성 문화에 대한 압박이 덜했던 절대주의부터 낭만주의까지. 빅토리아 시대의 편협한 가부장제와 숨막히는 남성 중심의 가치관이 사회를 억누르기 전, 그 짧은 순간의 휴지기에 살았던 여성들. 굳이 라헬 레빈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정말 절묘한 타이밍에, 행운의 별 아래 태어났던 사람들이란 생각을 누를수 없다.
외롭지만 자유롭고 거침없이 살다 간 조르쥬 상드가 정말 조금만 늦게 태어났더라면 그녀의 그런 인생은 절대 불가능했을 것이다. 가장 자유롭고 관대했던 프랑스에서 태어났던 까미유 끌로델 마저도 여성을 억누르는 사회 분위기를 이겨내지 못했듯이.
그렇게 보면 낭만주의에서 사실주의로의 변화는 진보라는 단어를 붙여서는 안될 것 같다. 아니 과연... 이 세상에 진보란 존재하는지? 정신과 문화의 성숙은 과학과 문명의 발달과 반대로 점점 뒤로 가는 느낌. 반대로 뒤집어보면 느긋하게 문화와 정치, 사상을 논할 수 있었던 살롱 문화는 무산 계층과 식민지의 희생으로 가능했다는 해석도 나오지만.
그들의 관점에서 보면... 내 눈에 그리고 이 작가의 눈에 긍정적으로 보이는 이 살롱 자체는 그 장점 이상으로 사회에 끼친 해악도 컸다고 할 수 있겠다. 최후의 살롱 여성 테제나가 죽은지 이제 겨우 10년. 그녀 자신과 그 살롱 멤버들이 인정했듯 그녀가 무덤으로 들어갈 때 살롱도 함께 묻혔다.
하이덴-린쉬는 전통적 살롱의 역할을 신문 등 언론 매체가 파괴했고 대신하고 있다고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현대에 살롱을 대체하는 것은 인터넷과 그 안의 커뮤니티인듯.
신문보다도 정보가 빨랐던 살롱. 현대의 인터넷이 바로 그렇다. 그리고 살롱 멤버들에게서 활발하게 벌어지던 갖가지 다양한 주제의 토론 문화. 형태가 조금 다를 뿐이지 인터넷의 커뮤니티 안에서 일어나고 있지 않을까?
살롱 여성들... = 행운의 여성들...
문화사에서 우리나라 여성들은 과연 어떤 장소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했을까? 여성의 역할을 부정하려는 남성 중심의 역사에서 악명이라도 그나마 한줄이라도 이름을 남긴 여성들은 얼마나 심한 투쟁을 했고 갈아 없어진 그녀들의 업적은 얼마나 컸는지 궁금하다. 여성들의 역할을 인정하면서 역사를 쓴다면... 아마 전체를 완전히 새롭게 뒤집어 엎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