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주문이 많은 요리점 <1Q84>
현장 MD가 뽑은 올해의 좋은 책 2009
연말의 묘미는 역시 시상식이다. 영화․음악․드라마․버라이어티에 이르기까지, TV 앞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 한 해가 절로 정리되는 기분이 든다. 때론 공정성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게 되지만, 솔직히 말해보자. 아이돌 그룹이 축하공연을 하는데 공정성 따위에 신경 쓰고 있을 사람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공정성이라니, ‘초신성’도 아니고.
시상식이야 차고 또 넘치지만, 애석하게도 책을 대상으로 한 행사는 찾기 힘들다. 2010년을 코앞에 두고 있건만, 리영희 선생이 평생공로상을 받고 카라가 축하공연을 하는 훈훈한 광경은 요원한 것이다. 출판계가 영세한 탓만은 아니다. 출판연감에 따르면 2008년 출간 도서는 43,099 종이라고 한다. 만화와 참고서․어린이 책을 제외한다고 해도 25,000 종이 넘는다. 드라마나 음반은 말할 것도 없고, 500여 편 내외가 개봉하는 영화와도 사정이 다를 수밖에 없다. 어쩐지 가난한 흥부와 그 자식들이 절로 떠오르지 않는가? (우리 사회의 1인당 평균 독서량이 1년에 10.8권이라고 하니, 2008년 출간된 책을 다 읽을 2300년 쯤 후에는 화려한 시상식을 기대해 볼 수 있을까?)
이런 사정 탓에 가장 이목이 집중되는 것은 인터넷 서점에서 진행하는 ‘올해의 책’ 투표다. 화려하진 않지만 전적으로 독자들의 손에 달려있기 때문에 구경하는 재미는 나름 쏠쏠한 편. 투표가 막바지에 이른 올해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가 1위를 달리고 있다. 일본에서 예약판매 기간 동안 60만부를 팔았다는 뉴스부터 선인세 논란, 속편 소식에 이르기까지. 하루키를 둘러싼 말들이 끊이지 않았던 한 해이지만, 감개가 무량한 건 어쩔 수 없다. 세상에, 하루키라니. 90년대에 태어난 친구들이 아이돌로 데뷔하는 2009년인데?
‘춘천 가는 기차’ 안에서 <상실의 시대>를 읽고 있는 여인에게 “노르웨이의 숲엔 가보셨나요?”라는 멘트를 날리던 핸드폰 CF가 화제를 모았던 게 벌써 10년 전 일이다. 그 사이 “모든 사물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 것. 모든 사물과 나 자신 사이에 적당한 거리를 둘 것”이라며 청춘의 정언명령을 날리던 쿨한 형은 어느덧 예순을 넘긴 할아버지가 되었고, 한때의 청춘남녀들 또한 심드렁한 생활인이 되어 버렸다. 10년이란, 그런 시간이다. 그럴듯한 음식과 음악, 모험과 환상이 있는 <1Q84>는 분명 잘 쓰인 하루키 소설이지만, 2009년의 독자들이 열광한다면 그 이상의 이유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어떤 평자도 이야기하지 않았던 모양이지만, 이 자리에서 진실을 밝히겠다. <1Q84> 흥행의 비밀은 바로 ‘난독증이 있는 문학 미소녀’ 후카에리다. 귀엽고 예쁘지만 어딘지 통념과는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던 기존 하루키의 소녀들과 달리, 후카에리의 외모는 그야말로 전형적. 몇몇 장면들은 걸그룹 팬픽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그런 의미에서 2권 중반에 등장하는 베드씬은 남성 판타지의 총결산이라 할만 하다. 영감님도 참 주책이시지만, ‘올해의 베드씬 상’이라도 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내년에는 범람하는 연말 시상식 자리에 책 관련 행사도 추가 되었으면 좋겠다. 화려하고 의미 있는 행사가. 꼭 <1Q84>와 후카에리 때문은 아니다.
- 무비위크 409호
그러니까 실은, 거창한 제목의 '현장 MD가 뽑은 올해의 좋은 책 2009'는 '올해의 베드씬 상'을 주기 위해 쓰여진 것이다. 물론 영감님이 다 잘하셨다는 건 아니다. 주책이라는 생각이 안드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상을 주고 싶다는 마음이 안드는 것 또한 아니다…. 이런 게 나이를 먹은 건지 아직 젊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이 글에 담긴 일말의 진심에 대해. 지금까지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하루키의 작품은 <상실의 시대>였다. 다른 작품들은 관심의 정도에 따라 읽거나 읽지 않았거나 했겠지. 그리고 이제 그 자리를 <1Q84>가 물려 받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면 두 작품의 공통점은? 정답은 우리 마음 속에… (절대 낚시 아님)
2010년에는 다들 행복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