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첫머리에 오른 책들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면 어떨까. 그건 아마도 이런 모양이 될 것이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바로 탐욕의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마음을 모아 자본주의를 넘어선 상상을 통해 미래를 위한 경제학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면, 그때야 비로소 세상은 치유 될 수 있을 것(힐 더 월드)이다."
사실 오늘 이 페이퍼를 통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저게 다다. 이 다음은 주석일 뿐.
<탐욕의 시대>가 벌써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은 참 기쁜 일이다. 물론 장 지글러의 전작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가 널리 읽히고 있긴 하지만 (<블랙 스완>의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에 의하면) 도서의 '성공 여부'는 '극단의 세계'에 속하는 일이다.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는 말이다. (물론, 이미 팔린 후에는 모두들 분석을 내놓는다. 그게 바로 블랙 스완이다!)
청소년들도 쉽게 읽을 수 있었던 전작에 비해 더 방대하고 깊이 있는 영역을 다루고 있는 <탐욕의 시대>는, 그런 이유에서인지 유럽 현지에서는 훨씬 더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고 한다. 칠십 중반의 나이에도 현장을 떠나지 않는 장 지글러의 열정과 깊이 있는 시선, 현실의 추악한 이면, 그럼에도 존재하는 희망을 모두 만날 수 있다.
<미래를 위한 경제학 : 자본주의를 넘어선 상상>은 "세계의 끝에 놓는 다리 : 자본주의와 환경, 위기에서 벗어나 지속가능한 세계로"란 원제를 참고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번역서 제목에는 '환경'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40년간 환경 운동에 투신해온 저자는 자본주의로 대변되는 오늘날의 정치경제 시스템이 환경 파괴의 주범으로 고발하며, 환경경제학과 환경정치학의 관점에서 자본주의 시스템의 변화를 촉구한다.
물론 자본주의 시스템이 환경 파괴의 주범이라는 제임스 구스타브 스페스의 주장은 전혀 놀라운 이야기가 아니다. 정작 놀라운 것은 그 당연한 사실을 우리 모두 논리적으로 지각하고 있음에도 아무런 의심 없이 살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번역서의 부제는 참 좋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자본주의를 넘어선 상상'이니까.
조금 의미는 다르지만 이런 상상은 어떨까? 우리가 기분전환을 위해 먹는 달콤한 초콜릿이 실은 머나먼 이국 어느 어린 아이의 피와 땀, 나아가 '살'이라면. 불행하게도 이건 어느 몽상가의 기분 나쁜 상상이 아니다. 현실인 것이다.
"그들에게 말해주세요. 당신들이 초콜릿을 먹을 때, 당신들은 초콜릿이 아닌 우리들의 살을 먹고 있다고."
- 코트디부아르공화국에서 노예 노동을 했던 빈센트 (<Heal the World> 본문 52쪽에서)
국제아동돕기연합 UHIC(www.uhic.org)에서 만드는 월간 'UE'의 컨텐츠를 묶은 <힐 더 월드>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바로 이런 현실이다. 우리의 일상적인 삶, 그것을 채우고 있는 일상적인 물건들 뒤안에 있는, 나쁜 꿈인 것도 같고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상상 같기도 한,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는 현실. 마치 <지식 e>를 보듯, 그런 불편한 진실을 감각적으로 전해준다.
이쯤에서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의 노래, 'Heal the World'의 가사를 떠올려 보자. "세상을 치유해요 /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요 / 당신과 나와 '인류전체'를 위한 /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어요 / 당신이 삶을 이미 누리고 있다면 / 이젠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요 / 당신과 나를 위한" (이 가사 중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for you and for me and the entire human race 다)
비록 이 노래를 부른 사람은 자신의 인생조차 구하지 못했을지 모르지만, 그런 사실이 그 노래의 의미까지 망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너'와 '나'를 넘어 '인류 전체'를 상상할 수 있는, 그런 마음 같은 것. (<힐 더 월드>의 수익금은 영구적으로 국제아동돕기연합의 구호활동에 기부된다)
노암 촘스키의 <숙명의 트라이앵글>이 재출간 되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여전히 중요한 저작이지만, 기존 번역본이 '가독성 없는 번역'으로 엄청난 비판을 받았던 것을 생각하면 재출간을 알리는 마음이 반갑다. 책 내용을 다시 말하기 보단 몇 가지 눈에 띄는 변화를 적어 본다 :
* 2권으로 출간 되었던 것이 1권으로 합본 되었다. (무려 1077 페이지다!)
* 번역자가 바뀌어 책 전체를 새롭게 번역했다. (기존의 오류를 수정하고 가독성을 높였다고)
* 옮긴이의 글에 촘스키가 최근에 강연한 내용들을 발췌 번역해 실었다.
촘스키 이야기가 나왔으니 미국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겠다. 9.11 이후의 미국을 나치 독일과 피노체트 치하 칠레의 파시즘, 전체주의와 비교한 나오미 울프의 책은 <미국의 종말>이란 다소 자극적인 제목을 달고 있다. 부시 집권 이후 '민주주의의 종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던 미국을 심도 깊게 비판한 이 책이 과연 '오바마 시대'에도 얼마만큼의 유효성을 가지게 될지는 당분간 '괄호 안'에 넣어야 할 문제겠지만, 누구도 확신할 수 없음은 분명하다. (따라서, 여전히 유효하다!)
그렇다면 <식민주의 흑서>를 이쯤에 겹쳐 보는 것이 커다란 비약은 아니겠다. 어쨌거나 '제국'에는 '식민지'가 따라오기 마련이니까. 역사학 잡지 '아날Annales'의 마르크 페로가 책임편집한 책은 '흑서'라는 제목에 걸맞게 아프리카, 아메리카, 아시아에서 벌어진 '식민주의 잔혹사'를 가감 없이 폭로한다.
합리적 문화를 가진 서구에서만 자본주의가 발달할 수 있었다는 '서구예외주의적' 시각, 그에 동반하는 '식민지 근대화론' '식민지 수탈론'을 넘어 '지구촌 역사의 시각'에서 식민 시대를 재해석한 책은 임지현 교수의 말마따나 '식민주의와 식민지 민족운동의 대결 구도'에 갇혀 있는 한국사회에 새로운 시각을 던져 준다. 노파심에서 몇 마디 덧붙이자면 :
* 묵직한 주제와 표지에도 불구, 신문기사 재판문 등의 사료를 효과적으로 배치하여 꽤나 '재미있게' 읽힌다(!).
* 책을 구입하면 검은 표지에 하얀 손얼룩 같은 자국을 볼 수 있는데, 그건 MD의 손때가 아니라 검은 배경에 희미하게 인쇄되어 있는 黑書라는 글자다(;). (웹 이미지에서는 비교적 선명하게 보이는데, 실제로는 굉장히 희미하다)
<서양인의 조선살이 1882~1910>('조서선양살인이의'가 아니다)를 마지막에 끼워 넣은 것은 사실 약간 억지다. 제목 그대로 1882년에서 1910년 사이에 조선을 거쳐갔던 서양인들의 시각으로 바라 본 조선의 풍속을 담고 있는 책이니까. 당시의 사진이나 삽화가 아기자기하게 구성된 책은 에피소드 별로 꽤 재미있게 볼 수 있는 교양역사서다. 하지만 '우월한 서구와 미개한 조선'이 내면화된 그들의 시각이 때론 불편할 때도 있다. 그것이 이 책이 <식민주의 흑서> 다음에 온 이유다.
올 초 출간 되어 많은 논란을 일으켰던 <한국 근.현대사>에서 근대사 부분을 삭제하고 문제가 된 표현들의 수위를 조정해서 새로 나왔다는 교과서포럼의 대안 교과서 <한국 현대사>와 '현대사 전공자들의 공동연구로 진행된 한국 민주화운동사 총정리판'이라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한국민주화운동사>를 같이 놓고 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가 있다. (이런 게 악취미일까?)
이 두 권 사이의 '건널 수 없는 강'을 잇는 다리라면 역시 김기협이 제격이겠다. '보수=수구꼴통, 진보=좌파빨갱이'의 이분법이 지배하는 한국 사회에서 고종석과 함께 '중간 부분을 채우고 있는' 그가 <밖에서 본 한국史>에 이어 출간한 역사 에세이 두번째 책은 제목부터 <뉴라이트 비판>이니, 꽤나 흥미로운 배열이 되었다. (책 말미에 부록으로 실려있는 '<대안 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서평' 제목은 "역사책? 글쎄다, 교과서? 아니다"다. 하하하;)
"뉴라이트 하는 짓을 접하다 보면 '도대체 저 사람들이 왜 저럴까' 의문이 들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고 강연을 부탁하지만 나 또한 진심으로 궁금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때마침 김기협 선생께서 좋은 안내서로 실마리를 풀어주신다. 뉴라이트들, 그리고 그들의 난데없는 발작에 상처 받은 모든 사람들이 함께 읽어야 할 책이다!" - 한홍구
<좌우파가 논쟁하는 대한민국사 62>도 함께 읽으면 좋겠다. 한림대 교수인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 책을 보고 기분 나쁜 사람들이 아마 많을 것이다. 이 책은 좌파에게도 우파에게도, 민족주의자에게도 사대주의자에게도, 그리고 주류에게도 비주류에게도 환영받지 못할 책이다. 하지만 좌파에게도 욕먹고 우파에게도 욕먹는다면, 그것이 바로 이 책이 성공한 증거가 되지 않을까?"
원래는 "자신의 정치적 취향에 맞는 책을 고르세요!"라고 할 작정이었는데 놓고 보니 스펙트럼이 그리 넓지는 않다.
<박정희 정부의 선택>은 평가가 극심하게 엇갈리는 박정희 정부의 정책에 대해 "한.미.일 관계 및 한국 정부 내의 정치 역학, 그리고 이에 대한 사회 반응을 한.미.일의 1차 사료를 바탕으로" 일본인 저자가 분석한 책이다. 아무래도 극단만을 오고가는 내부의 담론 보다는 객관적인 시선을 기대할 수 있다.
<노무현 시대의 좌절>은 "촛불집회로 표출된 시민들의 간절한 소망을 오롯이 담아낼 수 있는 진보의 재구성을 위해, 노무현시대의 구체적인 정책들을 비판적으로 되돌아보고 있는 책"이다. 개인적으로는 '진보'라는 단어는 너무 오.남용 되며, 모두들 '오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어 다른 단어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고. 노무현 시대를 정리한다는 의미에서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책이 아닐까 한다.
<한국의 내일을 말하다>는 추미애 민주당 의원이 "경제와 평화에 관해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미래대전략"이다. <대한민국을 사색하다>는 전 민주노동당 정책위원회 의장이자 현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주대환의 "도발적 사유의 면모가 담겨져 있는 솔직한 정치 시평"이다. '말하는' 것이 좋은지 '사색'이 좋은지는 어쨌거나 취향의 문제다.
(* 노란색 바탕 안에 담긴 부분은 모두 알라딘 책소개를 인용한 것이다)
사회과학 문고 시리즈 2종이 동시에 출간 되었다. 책세상의 '비타 악티바' 시리즈와 삶이보이는창의 '삶창문고'가 그것. (출판계가 어렵다 말도 뒷얘기도 많지만, 그럼에도 멀리 보고 이런 시리즈를 기획, 출간 하는 출판사들이 있다)
'개념사 시리즈'를 표방하는 비타 악티바는 '실천하는 삶'이라는 뜻의 라틴어로, "사회의 역사와 조응해온 개념의 역사를 살펴봄으로써 우리의 주체적인 삶과 실천의 방향을 모색하고자" 기획 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다섯 권과, 그것을 모은 세트(특가세트로 낱권 보다 저렴하다)가 나왔으며 계속해서 나올 예정이다. 국내 저자들이 쉽게 풀어쓴 개념사로 대학초년생부터 성인까지 두루 읽을 만한 좋은 시리즈.
"'지금-이곳'에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이들과 함께 대안의 상상력을 통해 노동 문제와 인문학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기획된" 삶창문고는<한국 노동 운동사 1, 2>와 <노동법> 이라는 출간 목록에서 확인되듯 좀 더 묵직한 주제를 다룬다. 하지만 역시 일반인들이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도록 쉽게 쓰여졌다. (<노동법>에서는 그동안 몰랐던 많은 사실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은 '원숭이도 이해할수 있을' 제목에서 보여지듯 자본론을 쉽게 풀어쓴 책이다. 마르크스를 닮은 세 명의 학생이 원숭이 선생의 지도로 '자본론'을 배운다는 구성이 재미있다. 책 뒤에 실린 김수행 교수의 추천사를 옮겨 본다.
"이 작은 책이 3000쪽에 달하는 <자본론> 세 권을 모두 다룰 뿐 아니라 독점과 제국주의, 그리고 새로운 세상까지 다룰 수 있게 된 것은, 필자의 설명이 매우 짧으면서도 핵심을 찌르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는 여러 곳에서 수많은 강의를 한 것 같고 청중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에서 <자본론>과 현대 자본주의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를 터득한 것 같다. 매우 훌륭한 입문서임에 틀림없다." - 김수행 (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현 성공회대 석좌교수, <자본론> 번역)
얼마 전 도서팀 워크숍을 다녀 오는 길에 속초 해수욕장에 들른 일이 있다. 백사장에는 군사 작전 지역이라는 팻말과 함께 "여러 분의 아들, 형제가 근무하고 있습니다"라며 이런저런 경고문구가 적혀 있었다. <돌아오지 않는 내 아들>은 바로 그런 우리의 아들, 형제를 돌아올 수 없게 만든 '군의문사'에 관한 책이다. 유족들의 입으로 듣는 그 사연들에 한 번 가슴 아프고,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올해를 마지막으로 사라진다는 사실에 두 번 가슴 아프게 하는 책이다.
<사랑받지 않을 용기>는 알리슨 슈바르처 여사의 책이다. <아주 작은 차이> 이후 30년, 알리스 슈바르처는 이렇게 묻는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외적인 해방이 성큼성큼 돌진한 반면, 내적 해방이 여전히 총총걸음을 하고 있기 때문일까?" 그 대답은 물론 이 책을 읽는 우리들의 몫이다.
오늘 마지막으로 소개할 책은 댄 길모어의 <우리가 미디어다>이다. 인터넷의 발달로 거대 언론은 뉴스에 대한 독점력을 잃어가는 상황에서, 이제 '풀뿌리 저널리스트'들이 직접 뉴스를 생산한다는 이 책의 전제를 이미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진중권의 "왜 때려요? 왜 때립니까?"가 어떻게 아프리카를 통해 실시간 중계 되었는지를 생각해 보자)
하지만 책은 단지 그런 현상을 소개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저자는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발달, 즉 누구라도 뉴스를 만들 수 있는 기술과 여건이 풀뿌리 민주주의를 이룰 잠재성을 갖고 있다고 말하지만, 이러한 민주주의가 저절로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한다. 개인용 테크놀로지가 갖는 긍정적인 잠재력과 그것의 실현을 가로막을 수 있는 수많은 장애물에 대해 설명하며 결국 독자에게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직접행동에 나서기를 촉구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제목은 의미 심장하다. 언론 장악, 방송 장악 ('시도' 혹은 '의혹'이라는 접미사를 붙이는 것을 잊었다) 등 일련의 사태들 속에서 "우리가 미디어다"는 말은 어떤 선언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결국 여기에서도 필요한 것은 '상상력'이다.
* 오늘은 사회과학 특집이 되어 버렸네요. (역사도 있지만;) 정작 '전공'인 인문서는 눈물을 머금고 다음주로… ㅜㅜ
* 지난 주에 "스트레스 특집"을 쓰고 한의원에 갔더니 "스트레스로 인한 피로 누적, 체력 고갈, 만성 피로 증후군"이란 진단을 받아온 1人… 앞으로는 약 꼬박꼬박 먹으면서 일과시간에 배를 보낼 예정입니다! ;;;
* 고맙습니다. 이번 주도 만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