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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강물처럼 - 우리 곁을 떠난 강,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
송기역 지음, 이상엽 사진 / 레디앙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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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강물처럼>은 지금 현재대로라면 반어적 표현에 가깝다. 지난 추석 연휴를 맞아 4대강 곳곳에 설치된 보가 개방이 되었으니, 물은 스스로 흘러가고자 하는 곳을 따라 흐르지 못하고, 길을 터놓은 곳으로만 흘러가게 됐으니까 그렇다. 정확히 말하면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몰려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몰려가다가 사람이 막아놓은 곳에 갇히는 게 지금의 강물이 아닌가.

 이 책은 낙동강, 금강, 영산강, 한강을 두 발로 걷고 엮은 르포집이다. 그러니 강의 지금 모습을, 강이 품고 있는 숫한 생명들의 현재적 아픔을 고스란히 내보인다. 이명박 정부를 생각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말, 4대강 공사! 어리석은 사람은 생명 살리기라 말하지만, 다수의 착한 민중들은 생명 죽이기라고 읽는다. 환경 단체를 비롯한 제 시민사회단체, 종교 지도자, 노동자, 농민, 학생이 생명을 죽이는 4대강 공사를 중단하라고 외칠 때, 정부는 귀를 막고 예의 포크레인 삽날처럼 날카롭게 우악스럽게 강바닥을 파헤쳤고, 강을 직선화했다. 그 어디서도 이 공사로 인해 생명이 살아났다는 말을 듣지 못했는데, 이 공사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이제 할 말을 잃었다. 사람의 말을 말로 알아주지 않으니 입을 떼는 것도 힘겹다. 대신 안으로 어찌할 수 없는 분노와 절망과 안타까움만 쌓여갈 뿐!

나는 금강, 낙동강, 영산강을 두 발로 걸었다. 어떤 때는 11박 12일, 어떤 때는 5박 6일, 틈틈이 강을 보겠다고, 강에 기대 사는 마을을 둘러보겠다고, 강에 깃들어 사는 온 생명의 숨결을 엿듣겠다고, 강에 조용히 내려앉는 낙조를 보겠다고, 그렇게 걸었다. 아무 것 없는 내가 강을 걸으면서 깨달은 것 하나는 관계를 맺는 것이었다. 숨길로 연결되어 있지는 않지만, 강과 강이 아우르고 있는 모든 것과 나는 함께 넉넉하고 함께 즐거웠으며 같이 아파했다. 그것은 강이 곧 나였고, 강이 곧 모든 생명이었으며, 강이 온 우주와 같았기 때문이리라. 결국, 웬델 베리의 ``우리가 땅에 하는 일은 바로 우리 자신에게 하는 일이다.``는 곧 진리에 가깝다.
 

 강이 죽는 것은 강만 죽는 것이 아니다. 강 삽질에 해오라기만 살 곳을 잃는 것이 아니다. 이 책에서도 말하듯 농부들이 땅을 잃고, 마을이 사라지고, 강물 위에 은은히 내려앉는 낙조의 쉼이 사라지는 것이다. 결국 강의 죽음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의 사라짐이다. 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일인가? 우리 스스로 우리 설 자리를 싹둑 베어버리는 일. 더 나아가 우리의 미래를 사라지게 만드는 일. 이런 폭력과 야만 앞에 댓거리 할 말조차 잃고 있는 상황이 아프기만 하다.

 내가 3년 전 혼례식을 올리면서 작성한 모시는 글에 `흐르는 강물처럼`이라는 글귀가 있다. 멀리 에돌고 에돌아 만난 인연인 만큼 흐르면서 덜커덕거릴 때도 있겠지만, 흐를 수록 깊어지고 넓어지는 강물처럼 살겠다는 뜻을 담았다. 그런데 공사가 완료된 뒤의 강은 흐를 수록 쌓여가고, 흐를 수록 직강화되어버릴 것 같아 마음이 쓰리다.
 

 결국, 우리가 이 책을 읽고 해야 할 일은 일단은 실컷 아파해야 할 일인 것 같다. 강에 바로 잇대 살아가는 물고기와 새의 죽음 앞에, 더 나아가 강의 죽음 앞에 울고 아파해야 한다. 아픔은 곧 새로움을 꿈꾸게 하지 않겠는가. 생명을 파괴하는 정부, 국민을 우롱하는 정부, 삽질로 살려는 정부는 앞으로 단호히 거부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게 이 죽음 앞에 우리가 그나마 당당히 살아갈 수 있는 면죄부 같은 게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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