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동의 실크로드 스케치기행 1
박재동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4월
평점 :
절판


 박재동 일행은 바리데기를 영화로 만들기 위한 사전 작업으로 실크로드 답사길에 오른다. 장선우 감독도 함께 했다 하니, 진짜 영화로 만들 계획이었던 것 같긴 하다. 이후에 무슨 사정이 생겼었는지 모르지만, 아직 영화로 만들어지지는 않은 모양이다. 장선우 감독과 박재동 화백의 영화상에 대한 논쟁, 환타지적 요소의 강화냐, 사실적 요소의 부각이냐, 하는 논쟁의 결론이 사뭇 궁금한데 말이다.

 

 일행은 `북경-서안-난주-돈황-투르판-쿵나스 임장-나라치-터커쓰-투르판-룬타이-(타클라마칸 사막)-민풍-호탄-카슈가르-카슈쿠르간-훈자-길기트-이슬라마바드-라호르-델리`로 이어지는 실크로드를 답사하게 된다. 익숙한 지명도 몇 있긴 하지만, 다수가 생소하다.

 

 박재동 화백은 답사길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스케치했다. 사진이 대세인 요즘, 풍경을 스케치한 걸 보는 묘미는 좀 색달랐다. 직설적이지 않고 시적이었다고 할까. 흔들리는 차 안에서, 낙타 위에서, 조용히 앉아서, 낮이나 밤이나 새벽이나... 언제 어디서든 그리고 싶은 마음이 일 때, 화백은 그렸다. 대단한 열정이 아닐 수 없다.(최근에 나온 손바닥 아트라는 책에서도 느꼈다. 아주 오랜 시간 이 열정을 간직할 수 있다는 것은 부단한 자기 노력의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데 그의 그림만 시적인 게 아니다. 그의 글이 시보다 더 시적이었다면, 과장일까?

 

 실크로드 하면, 나는 대초원, 호수, 사막을 먼저 떠올린다. 율두스 초원. 어디가 처음이고 어디가 끝인지 가늠할 수 없을 것 같은 공간. 주먹만한 별들이 하늘을 빼곡히 채우고 있을 것만 같은 곳. 새는 날고 말은 뛰고 사람은 걷는, 삶의 건강함이 살아 있을 것만 같은 곳. 그런데... 화백이 본 율두스 초원은 쫄아들고 있었다. 아마도 몽골도 살기 위해, 세계화라는 이름 아래, 세계 자본의 투기바람 속에 황폐화되어가고 있는 모양이다. 우리가 6,70년대 그랬던 것처럼, 개발의 과정에 놓여 있겠지. 하지만 사람이 살기 위해 선택한 것이라면 존중되어야 마땅하다. 초원의 훼손이 먼 타국인인 나에게는 아쉬운 일이지만, 그 지역의 사람에게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의 결과 아니겠는가. 다만, 바라는 건, 시간이 흐른 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을 안타까워하며 아쉬워하는 것처럼, 몽골인, 유목민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음 좋겠다는 거다. 어째튼 어려움을 지혜롭게 헤쳐나가길 바란다.

 

 바양 블라크 호수. 사실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됐다. 이 바양 블라크 호수는, 실은 호수가 아니다. 강이 곧바로 흐르지 않고 열여덟 번이나 구비치며 맴돌아 아예 호수라고 부르는 곳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설산을 배경 삼아 넓게 구비치는 강 호수의 모습이 아름답다. 저녁 노을이 반사되어 비친다면, 그게 곧 바리데기와 무장승이 행복하게 사는 천국이 아니겠는가.

 

 사막은 언젠가 꼭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 있다. 아마도 삶의 기운이 빠졌을 때였겠지. 시인 유치환도 `생명의 서`에서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 사막으로 가자`고 노래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똑같은 모래 풍경을 보며 여행한다는 것은 좀 지겨울 것 같기도 하다. 다만, 그곳에서의 밤만큼은 황홀하겠지.

 

 하나 기억해두고 싶은 내용이 있다. 일행이 옥의 나라 호탄에 이르게 되는데, 이 호탄이란 곳이 우리 나라와 인연이 있다. 전남 해남 미황사 창건 설화와 관련되는데,

 

  아주 아주 옛날, 남도의 바닷가에 낯선 배 한 척이 도착했다. 그 배에는 금으로 반든 사람과 불경이 실려 있었다. 사람들은 그것들을 내려 황소의 등에 조심스럽게 실어 운반했는데, 가는 도중에 황소가 더 이상 가지 않고 한 자리에 누워버렸다. 황소가 누운 자라에 절을 세웠는데, 그 절이 바로 미황사다. 그리고 그 배는 멀리 우전국에서 왔다 한다. 

 

 여기 우전국이 바로 호탄인 것이다. 이 이야기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는 아주 오래 전부터 중동과 교역이 활발했다. 우리가 국사 교과서에서 얼핏 봤던 `색목인`도 중동인을 가리킨다. 그리고 경주 석상 가운데 중동인의 모습을 한 것도 제법 있다. 이런 정황을 봐서, 우리 민족이 단일 민족인 것만은 아닐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거꾸러 거슬러 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바양 블라크, 율두스 초원을 여행할 때는 우리의 5,60년대의 정서가 환기가 되었고, 타클라마칸을 건너 호탄과 이슬람권을 여행할 때에는 저 시간의 끝을 탐사하는 것 같았다. 여행의 끝에서는 `우리의 시작은 어디였지?`하는 어리둥절함이 잠깐 남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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