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글 바로쓰기 1 오늘의 사상신서 131
이오덕 지음 / 한길사 / 199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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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내 글쓰기 수업에 가장 큰 가르침을 준 사람을 꼽으라면 한 번도 뵌 적 없지만 돌아가신 이오덕 선생을 꼽고 싶다. 잘난 척, 고상한 척 하는 글이 아니라 정직한 글, 쉬운 글이 진짜라는 선생의 지론은 『우리글 바로쓰기』와 『우리 문장 쓰기』라는 책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특히 『우리 문장 쓰기』의 ‘남의 글 고치기’라는 부분에서 선생은 대부분의 잘못은 남의 글을 고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저지른다고 일침을 놓았다.

지난 대선 와중에 소설가 이외수도 남의 글에 잘못 손을 댔다가 곤욕을 치렀다. 고치기는 잘 고쳤는데 고쳤다는 자체가 문제가 된 모양이다. 한글날 자신의 홈페이지에 “한글도 제대로 쓸 줄 모르는 분이 국어와 국사를 영어로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신다”며 이명박 당시 후보가 현충원 방명록에 남긴 “당신들의 희생을 결코 잊지 않겠읍니다. 번영된 조국, 평화통일을 이루는데 모든것을 받치겠읍니다.”란 글귀를 교정을 봐서 올린 것이 발단이었다. 발끈한 이명박 지지자들이 이외수의 외모와 사생활까지 거론하며 인신공격에 나섰고 이외수는 급기야 “내가 영어가 아닌 한글로 써서 제대로 전달이 안 된 모양”이라며 탄식했다. 몇 달이 지나 내가 가끔 기웃거리는 진보넷 블로그에서도 논쟁이 붙었는데, 한 블로거가 이명박이 싫어도 이런 식은 아니라는 글(htt p://blog.jinbo.net/taiji0920/?pid=1345)을 썼고 거기에 찬반 댓글이 마흔 개가 넘게 달린 것이다.

젊어서는 산업역군으로 뛰어다니고 늙어서는 국가발전에 헌신하느라 맞춤법에 소홀한 이명박이 아니라 다 영어로 하자면서 한글 맞춤법을 무시하는 이명박에게 이외수는 화를 낸 것이고, 초딩들과 븅신, 븅딱하며 채팅질하는 소설가 이외수가 아니라 꼰대처럼 맞춤법 틀렸다고 사람 무시한 문인 이외수에게 그 블로거는 화난 것이니 내보기에는 둘 다 그럴 만하다. 오히려 나는 “받치겠읍니다”보다 “모든것”이 눈에 확 들어오면서, 이 성가신 띄어쓰기를 세종대왕님의 창제정신에 맞춰 아예 무시해버리면 지면도 잉크도 절약이지 않은가 하는 생뚱맞은 생각을 해본다.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든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든, 경 제 만 살 리 면 된 다 니 까 말 이 다. 

- 2008년 2월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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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24 10: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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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송어낚시
리차드 브라우티건 지음, 김성곤 옮김 / 비채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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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말>지를 경마잡지로 착각했다는 우스개가 있고, 실제로 내 친구는 『햄버거에 대한 명상』이란 시집을 사오라고 동생에게 시켰더니 요리책 코너에서 한참 헤매다 결국 빈손으로 왔더라는 이야기를 들려준 적도 있다. 1967년 미국에서 나와 68혁명세대에게 경전처럼 읽혔던 리차드 브라우티건(Richard Brautigan)의 소설 『미국의 송어낚시』도 한국에서 처음 출간되었을 때 서점 낚시 코너에 꽂혔다는 ‘전설’을 갖고 있는 책이다. 절판되었던 그의 또 다른 작품 『워터멜론 슈가에서』도 얼마 전에 재출간 되었는데, 물론 이 책도 요리책이 아니다.

당연히 『미국의 송어낚시』는 송어 낚시하는 법을 알려주지 않는다. 화자는 송어를 찾아 여행을 떠나고 우여곡절 끝에 겨우 송어가 뛰놀던 강을 찾지만, 강은 이미 폐선장으로 변해 있다. 화자는 그 강에서 혹이 달린 12인치나 되는 무지개 송어 한 마리를 낚아 저녁 끼니를 때우고 녹색의 끈적거리는 것들과 죽은 물고기가 둥둥 뜬 온천수에서 질외 사정을 한다.

미국사회와 현대문명을 콜라쥬 기법으로 풍자한 이 작품은 당시 충만하던 새로운 세상을 향한 꿈과 이상의 묵시록으로 읽히는데 길지 않은 분량이지만 무수한 미국적 은유와 상징으로 난해하기 그지없다. (오죽하면 ‘미국의 송어낚시 읽는 법’이란 글까지 있겠는가.) 브라우티건의 삶도 녹녹치 않았던 모양이다. 어린 시절 배고픔에 교도소라도 들어가려고 경찰서 유리창에 돌을 던질 만큼 가난했고 결국 1984년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그의 시신은 한참 뒤에야 발견됐다.  

이제 부양가족도 생기고 나이도 한 살 더 먹어 우울한 새해. 왠지 그의 생애와 함께 68혁명의 이상과 꿈도 어쩐지 잘못된 책꽂이에 놓인 책 같아 더 쓸쓸하다.  

- 2008년 1월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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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대한민국은 진실게임 중이다. 신정아, 변양균 사건에, 연예인 커플의 불륜공방에, 삼성의 떡값명단과 BBK 이면계약서까지. 그리고 지난 11월 13일, 1991년 강경대의 죽음으로 시작되어 정원식 총리가 계란을 맞고 밀가루를 뒤집어쓰는 장면으로 끝났던 그해 5월의 유서대필사건에 대해 진실.화해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사법부에 재심을 권고함으로서 길고도 지난한 진실게임 시즌2가 또 시작되었다.

‘우크라이나에서 온 편지’는 이제 그만 좀 우려먹었으면 하는 유태인 학살을 소재로 삼았지만 재기발랄한 유머와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이 잘 버무려진 영화다. 미국에 살고 있는 유태인이자 수집광인 조나단은 “어거스틴과 함께 트라침브로드 1940년”이란 메모가 적힌 사진 한 장을 들고 우크라이나로 온다. 사진 속 주인공은 조나단의 젊은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옛 애인 어거스틴이다. 조나단은 우크라이나에서 “과거는 과거일 뿐”이라는 알렉스와 부인이 죽은 후로는 앞이 안 보인다고 우겨대는 알렉스의 할아버지 도움으로 우여곡절 끝에 어거스틴의 언니를 만나 어거스틴의 죽음에 대해 듣게 된다. “잊어먹을까 봐 너무 두려워서” 자신과 가족의 소지품을 수집하는 조나단과 “사람이 물건을 찾아오는 것”이기에 트라침브로드에서 학살당한 이들의 유품을 알뜰히 챙겨놓은 어거스틴의 언니. “물건이 있기에 여기까지 왔지 않느냐”라는 그녀의 말처럼 그녀의 수집품을 통해 조나단과 알렉스, 그리고 알렉스의 할아버지는 비로소 과거와 화해하고 서로를 위로할 수 있게 된다.

“서류는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던 ‘살인의 추억’ 형사는 영화 내내 미궁 속을 헤매고 조작된 증거를 진실이라 우기는 이들은 과거로부터 단 한 발짝도 못 벗어난다. 서류는 거짓말을 않지만 그렇다고 제 스스로 진실을 말하지도 않는다. 권력형 진실게임 탓에 요 근래 부쩍 입에 오르내리는 실체적 진실이란 것도 그것을 구하는 사람에게만 보이기 마련이다.  

- 200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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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 한 언론사의 ‘한국인은 무엇인가’란 설문조사에서 “가장 한국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은?”이란 묘한 질문이 있었는데 하인즈 워드, 윤수일, 다니엘 헤니, 로버트 할리를 제치고 유승준이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이처럼 한편 웃기면서도 두려운 것이 ‘국익’이고 국익론, 국익 지상주의다.

2002년 월드컵 때 ‘붉은 악마’한테서 신문명의 원형을 봤다는 김지하는 “미국을 덮어놓고 제국주의라고 해서는 안 되고, 한국과 미국이 손잡고 네오 르네상스를 창출”해야 한다지만, 이미 한국은 미국의 뒷자리에 앉아 열심히 국익을 주워 담고 있다.

여론조사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략 50%에 가까운 사람들이 이라크 자이툰 부대의 파병연장에 찬성한다. 또 50%를 훨씬 웃도는 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유력 대선주자는 “미래의 에너지 전쟁에서 자이툰 부대의 역할은 중요하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닌다. 파병연장에 반대하는 대선후보들도 그 이유가 “국민과의 약속이 중요하다”(국민이 원하면 더 있을 수 있다?)거나 “더 이상 국익에 보탬이 안 된다”(더 챙길 게 있으면?)는 것이니 국익을 위해서라면 전쟁도 불사할 날이 그리 멀지 않았다.

이런 우울한 시국에 마눌님이 출산을 한다고 덩달아 책 한권, 영화 한편 못 보다가 우연히 주말의 영화로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을 보게 되었다. ‘빵과 장미’로 유명한 좌파 감독 켄 로치의 이 영화는 아일랜드 독립운동을 다루고 있는데, 후반부는 아일랜드 독립군 우파인 형 ‘데디’와 좌파 무장투쟁 노선을 견지한 동생 ‘데미안’의 갈등에 초점을 맞춘다. 이 둘은 좌우파의 대립이 생기기 전까지 함께 아일랜드의 독립을 위해 싸웠고, 형을 대신해 동생 데미안은 조직 내 반역을 했던 친구를 직접 총살하기까지 한다.

“조국이란 이렇게까지 할 가치가 있는 거겠죠?” 동생은 총을 쏘기 직전에 묻는다. 하지만 그는 결국 다른 조국을 꿈꿨다는 이유로 형 앞에서 죽임을 당하며 영화는 끝을 맺는다. 결국 조국이니 국익이니 하는 것들은 그 앞에 ‘어떠한’이란 수식이 없는 한 그저 추상명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이 영화를 굳이 보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미 너무나 많은 피의 대가로 역사를 통해 배우지 않았나.  

- 2007.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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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버트란드 러셀 지음 / 사회평론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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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타 사람들은 거짓말만 한다”고 크레타 사람이 말하면, 그 말은 참말일까 거짓말일까? 일단 참이라고 가정하면 이 말을 하는 사람 역시 크레타 인이므로 거짓말만 할 것이고, 따라서 그의 입에서 나온 이 말은 거짓이 된다. 반대로 거짓이라고 할 경우, 이 말을 하는 크레타 인은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이므로 이 문장은 참이 된다. 말하자면 이 문장은 참말이면서 거짓말이다. 무슨 말장난이냐고 하겠지만 논리학에서는 이를 가리켜 집합론적 역설이라고 한다. 역설은 불합리해보이지만 타당한 논증이다. 좀 어렵게 말해 ‘하나의 진술이 명백히 타당한 추론에 의해 두 개의 모순되는 결론을 낳을 때’ 생기는 게 역설이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에 대해 대체복무를 허용한다는 발표가 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보수적인 집단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반국가적·반사회적 행위로 국민개병제의 근간을 훼손”시킨다는 재향군인회 논평쯤은 예상하던 바이지만, 대선용 아니냐는 <조선일보>의 주장에는 살짝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어쨌거나 눈길을 끄는 건 보수적 개신교의 입장이다. 한국기독교총연합 한 목사는 “특정 종교에게 주는 특혜이므로 불쾌하다”고 반응을 보였다는데 또 한편 “종교를 이유로 대체복무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특정 종교가 종교라는 것인지, 종교가 아니라는 것인지 영 헷갈린다. 단연 압권은 불과 며칠 전에 “봉사하러 아프간에 간 사람을 납치한 것은 어이없는 일”이라던 한국교회언론회의가 “봉사활동을 빌미로 포교할 기회를 줄 수 있다”고 한 논평이다.


형법의 개선, 전쟁 감소, 유색인종에 대한 처우 개선, 노예제도 완화를 포함해 이 세계에서 단 한 걸음이라도 도덕적 발전이 이루어질 때마다 세계적 조직인 교회세력의 끈질긴 반대에 부딪히지 않은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교회로 조직된 기독교는 이 세계의 도덕적 발전에 가장 큰 적이 되어 왔다.


논리학에서의 집합적 역설에 일가를 이룬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이 80년 전에 했던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라는 연설로 같은 제목의 책에 실려 있는 글이다. 왜 러셀이 기독교인이 아닌지 알려고 책까지 사서 보느냐고? 읽어보면 꽤 재미있다.  

- 2007년 10월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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