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에 대하여
존 스튜어트 밀 지음, 이주명 옮김 / 필맥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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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아고라에서 여론조작을 했다고 수사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유는 한 가지다. 반정부적 행위라는 것. 또한 국방부가 불온서적을 지정한 것에 대해 헌법소원을 한 법무관 2명을 파면시켰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그야말로 표현의 자유, 사상, 양심의 자유가 절멸되는 듯하다.

책장에서 몇 달 전에 읽은 '자유에 대하여'(존 스튜어트 밀, 필맥)를 끄집어냈다. 한번쯤은 들어봤지만 읽어본 사람은 드문 책. 당췌 1800년대에 써졌다고 믿기지 않는 책.  

존 스튜어트 밀은 "이른바 의지의 자유가 아니라 시민적 자유 또는 사회적 자유"에 대해 말하고자 이 책을 썼다. 이는 "개인에 대해 사회가 정당하게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의 성격과 한계"라고 그는 말한다.(책 11p) 다시 말해 그는 권력에 한계를 설정하는 것이 이 책의 목표이고 이 한계설정이 바로 '자유'라는 것이다.   

그는 또 말한다. "신에 대한 도발은 신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마찬가지로 인터넷에서의 도발은 인터넷이 알아서 할 일이고 네티즌의 도발은 네티즌들이 알아서 할 일 아닌가.  

이 정부와 그 지지자들이 그토록 신봉하는 자유민주주의의 사상적 토대가 된,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의 발끝만이라도 그들이 따라간다면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일들이 너무 많이, 너무 자주 일어나고 있다. 

끝으로 이 책에 따르면 자유의 암흑기였던 중세, 가장 관용적이지 않은 가톨릭 교회에서도 '악마의 대변자'라는 사람을 임명하여 성인을 인정할 때 성인이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주장하게 했다고 한다. 이 정부에게 그조차 기대할 수 없다. 하지만 '악마의 대변자'는 언제나, 그리고 지금 더더욱 필요하다.   
참고로 밑줄 그어 놓은 몇 군데를 옮겨본다.(강조는 내가!) 

- 인민의 의지라는 것의 실제 의미는 인민 가운데 가장 수가 많거나 가장 적극적인 부분의 의지, 다시 말해 다수파 또는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들을 다수파로 받아들이게 하는 데 성공한 사람들의 의지였다.(16p) 

- 오직 한 사람 말고는 인류 모두가 똑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다고 할 때 그 한 사람이 인류를 침묵하게 만들 권력을 갖고 있다고 해도 그렇게 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는 만큼이나 인류가 그 한 사람을 침묵하게 만드는 것도 정당화될 수 없을 것이다. (...) 만약 그 의견이 올바른 것이라면 그들은 오류를 진리로 바꿀 기회를 박탈당하게 된다. 반대로 그 의견이 그릇된 것이라면 그들은 오류를 진리로 바꾸는 것과 거의 같은 정도로 커다란 이익이 되는 것, 즉 진리와 오류의 충돌을 통해 셩겨나는, 진리에 대한 보다 분명한 인식과 보다 생생한 인상을 얻지 못하게 된다. (37p)  

- 어떤 문제를 자기의 입장에서만 알고 있는 사람은 그 문제에 대해 아무것도 알고 있지 못하다.(71p) 

- 삶이 하나의 유형으로 획일화될 때까지도 저항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 유형으로부터 이탈하는 것은 모두 다 불경하고 비도덕적인 것으로, 더 나아가 극악무도하고 자연에 반하는 것으로 여겨지게 될 것이다. (139p) 

- 해악은 정부가 개인이나 집단의 활동과 힘을 불러일으키는 대신에 자신의 활동으로 그들의 활동을 대체할 때, 그리고 정부가 그들에게 정보를 주고 조언을 하고 때로는 반박을 하는 대신에 그들로 하여금 속박속에서 일을 하게 하거나 그들에게 비켜서라는 명령을 내리고 그들의 일을 대신 나서서 할 때 시작된다. (20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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