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 노트 오에 겐자부로의 평화 공감 르포 2
오에 겐자부로 지음 / 고려원(고려원미디어) / 199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한 사람의 행복은 다른 사람의 슬픔*일수도 있다는 사실을 쉽게 잊고 산다. 8월 15일은 우리에게 광복절이지만 일본에게는 패전일이다. 그러면 8월 6일은?

“정신을 차리고 튀어나와 보니, 경례하는 모습인 채, 전우들이 서 있다. ‘이봐!’ 하고 어께를 두드리자 부슬부슬 전우는 무너져 내렸다.”
“상체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희생자의 다리만 두개, 콘크리트 길바닥에 달라붙어 서 있다.”
“전차 안에서 한 아가씨가 손가방을 꼭 쥔 채 상처 하나 없이, 새까맣게 탄 군인과 머리를 맞대고 죽어 있었습니다.”


일본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가 1963년부터 1965년까지 히로시마를 방문하고 쓴 <히로시마 노트>(김춘미 옮김. 고려원**)에 실린 피폭 생존자들의 증언이다. “겨우 살았다고 기뻐하던” 그들도 “몸 여기저기에 반점이 나타나거나 머리털이 몽땅 빠지거나 하면서 차례차례 죽어갔다.” 오에는 반핵투쟁 열기로 뜨거웠던 당시 히로시마의 현장을 스케치하면서 원폭 당시의 증언과 기록을 모아간다.

1950년 한 미국인 신문기자가 히로시마를 방문해 장님이 된 피폭자에게 이렇게 물었다. “지금 조선에 원폭을 두서너 발 떨어뜨리면 전쟁이 끝나리라고 생각되는데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둔감함이야말로 이미 하나의 퇴폐이다. 그리고 퇴폐의 극단에 핵무기로 인한 인류 최후의 전쟁 가능성 또한 있을 것이다.

그의 경고가 현실화 되어 가는 것은 아닌지. 그는 “피폭자에게는 침묵할 권리가 있다. 만일 그럴 수만 있다면, 그들은 히로시마에 관한 모든 것을 잊어버릴 권리가 있다.”고 썼다. 하지만 그럴 권리는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피폭자 대신 일본정부와 사회가 그 권리를 행사하려는 건 아닌지 심히 걱정스러운 요즘이다. 인간의 존엄을 찾아 히로시마의 비참함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던 오에의 이야기를 다시 듣고 싶어진다. 

- 2006년 8월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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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 웨일즈의 <아리랑> 중 김산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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