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바지만 입던 여자 웬일로 치마를 다 입었네
재활원 뒤뜰, 치마폭 밑으로 나온 다리 하나로
목발을 짚고 걷는 여자 치마폭 속 뭉툭한 다리는
뱃속의 아기처럼 발길질을 해대고 민망하게 펼쳐지는
하얀 치마가 폐백받는 자세로 햇볕을 받는다
저도 상처가 있다고, 나무로부터 잘려진 뒤꽁무니를
바짝 쳐들던 낙엽들 이제 둥글게 상처를 말아 묶고
봇짐처럼 부스럭대며 풀숲에 박혀 있다
(상처는 풀어보고 싶지 않은 짐 속의 낯선 물건?)
바지를 입으면 꼭 한쪽 바짓가랑이를 단단히 묶던 여자
그 매듭 풀어버리느라 부러진 손톱 같은
눈물 흘렸나 얼굴에 그어진 빨간 자국들
상처만이 상처를 아파하지 않는다
치마폭 밑으로 나온 다리 하나보다 붉은 복숭아뼈보다
발등의 핏줄보다 파란 풀물이 든 목발 끝자락보다
치마폭 속의 상처가 살아 날뛴다 바람이 불고
상처만이 상처를 만나주는가, 저도 상처가 있다고
치마폭 속으로 뛰어오르는 낙엽들
詩 신기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