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에게 세를 주다


아무도 들어오려 하지 않는 단칸집이다
시름시름 기울어가던 처마 끝이다

진흙둥지 되바르며
보수공사에 여념이 없는 제비 한쌍
신접살림을 차렸다

부스스 일어나 올려다보면
밤낮으로 깨소금을 떨어뜨린다

이 허름한 적산가옥에 세를 들러 온 두 내외
덕분에 가난한 나도
이제는 어엿한 집주인이 된 셈인가

관리 한번 제대로 해주지 못하고
방을 빼지나 않을까 전전긍긍
방세 대신 꼬박꼬박 챙겨주는

새울음소리를 염치없이 받아쓰고 있는 나도
이제는 집주인으로서의 그 알량하고 딱한
체면이라는 걸 알게 된 셈인가

달빛이 두루마리 화장지를 들고 와서 하룻밤 묵었다간 뒤다


  詩 손택수 - 시집 <목련전차> 중에서

 

 

 

 

***

한옥집 막내둥이였던 나는 봄이면 제비가 오는 게 반갑지 않았다.
내 소꿉놀이터 처마밑 아래 댓돌위와 제비의 집이 위 아래층을 이루고 있어서였다.
내 푸념에 아랑곳않고 엄마는 제비가 집 지으러 물고 오는 지푸라기가
행여 한 오라기라도 떨어져 있으면 내 살림들 맞은편에 놓고 제비가 주워가길 바랐다.
가끔, 지푸라기를 밟고 지나가며 심술 부리던 나는
제비가 새끼들을 낳는 것 만큼은 환영했었다.

봄이면 오는 제비,
봄이면 당연히 오는 제비가 어느새 서울에선 보기드문 새가 되었다.

지난주 시골 할아버지댁에 갔을 때 나는 제비를 보았다.
내가 알던 제비들은 이미 한줌 흙으로 돌아갔을텐데
어린 시절의 그 제비가 아직도 살아있는 것 마냥 "제비다!"를 외쳤다.

빨랫줄에 잠깐, 돌담위에 잠깐 앉아있던 제비는
날렵하게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버렸다, 속에 내 마음도 버림받은 것처럼, 나는 사진 한 장 못찍어 아쉬웠더랬다.

그 제비가, 맑은 시 한 편에 오롯이 살아났다.
반가워 여기 옮겨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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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6-06-02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짐승이 들어와서 집을 지을 정도면 그집은 좋은 집, 좋은 사람들이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밑에 글은 플레져님 이야기..겠죠..??)

플레져 2006-06-02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린시절 저는 무지 얌전하고 착한 어린이였으니...=3
(빙고~ ^^ )

클리오 2006-06-02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옥 살던 시절 제비가 집을 짓던 기억이 나네요. 그때는 제비도 많고 제비가 집짓는 집도 많았는데.. 지금이라면 사람들이 집 지저분해진다고 싫어하겠죠? ^^

Mephistopheles 2006-06-02 1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 지금은 아니라는 말씀..??=3=3=3=3=3

물만두 2006-06-02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제비며 참새며 못본지가 얼만지 모르겠어요.

플레져 2006-06-02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리오님, 제비가 집 지을때가 없어져서 하늘 맴맴 돌다가
강남에서 영영 안돌아오는 걸에요... 흑.

메피스토님, 못된 어른이고 싶어요.
너무 착한 어른은...=3

만두님, 그러고보니 참새님도 뵌지 오래되었네요...흠.

아영엄마 2006-06-02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 말여요. 제비를 못 본지 한참 된 것 같아요. (참새나 까치는 그래도 종종 보이는데 제비는 왜 안 보일까??)

플레져 2006-06-02 1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비 몰러 나간다는 말도 점점 무색햊져요...

2006-06-02 19: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mong 2006-06-02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비도 플레져님 마음을 알꺼에요...^^

하늘바람 2006-06-02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저도 좋은 시 감상하네요

플레져 2006-06-02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몽님, 어머. 제비가 내 맘을 알다니!!! ㅎㅎ

하늘바람님,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시집 만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