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것 같지만 막상 그렇지도 않다. 서울 한 병원의 여성병실에 여자 넷이 누워있다. 편의를 위해 번호를 매긴다. 풍을 맞아 옴짝달싹 못하는 '통나무 노파'①, 남편의 바람기 때문에 제초제를 들이킨 '제초제 여자'②, '당뇨병 여자'③, 그리고 무병(巫病) 내린 '불명열 여자'④. 여기서 ④와 ②는 어릴 적 헤어진 자매고 ②의 시어머니는 옛날 ①의 집에서 식모를 살았다. ①의 남편이 통나무 아내 몰래 결혼하려는 장 여사의 딸과 ③의 유일한 낙인 아들은 연인이 된다. 얘기하자면 길지만 예서 끊는다. 복잡한 것 같지만, 말하려는 바는 명료하다. 세상사, 얽히고 설켜 있다는 거다.
작가 윤영수(54)가 8년 만에 돌아왔다. 단편 여섯 편을 연작 형태로 묶은 '소설 쓰는 밤'(랜덤하우스중앙)을 들고 돌아왔다. 안부를 물었더니 "소설은 꾸준히 발표했어요. 책으로 묶질 않았을 뿐이죠", 남 얘기처럼 덤덤하게 말했다.
10년쯤 전 윤영수는 한국문학의 한 가능성이자 성과였다. 평론가 최원식은 그를 '좋은 작가 윤영수'라고 불렀다. 작가의 대표작 '착한 사람 문성현'(1997년)을 빗댄, 애정 가득한 호명이었다. 독자도 그를 아꼈다. 그는 열렬 매니어를 거느린 인기작가였다. 평론가 류보선도 그중 하나였음이 분명하다. 오죽 반가웠으면 소설에 원고지 225장짜리 해설을 붙였을까.
소설은 독특하다. 앞서 적은 대로 구성이 기발하다. 거듭하는 우연만 있을 뿐이다. 소설에서 우연이 겹치면 리얼리티가 떨어진다. 그러므로 우연의 남발은 금기사항이다. 하나, 이 정도를 모르는 윤영수가 아니다. 그는 '필연이라는 거, 알고 보면 전혀 엉뚱하고 터무니없는 우연이었다'(23쪽)고 말하고 싶었던 게다. 그래서, 작정하고 개연성을 포기한 게다. 마지막 단편에 다다르자 비로소 의중이 드러난다. 뜬금없이 소설가가 등장해 병원을 헤집는다. 오로지 이야깃거리를 찾기 위해서다.
그러나 소설은 우울하다. 등장인물의 처지가 하나같이 처참하다. 겉은 멀쩡해 보여도 속은 너절하다. '인간의 삶은 너무 빤해서 소설도 빤하다고, 살아있는 시간의 대부분은 울고 싶고 또 살아있는 사람의 대부분은 불쌍한 거'(238쪽)라고, 예의 그 존존한 문장으로 작가는 말한다. 작가에 따르면 수천만 년의 전생과 억겁의 후생보다도 더욱 아득하고 고단한 게 짧은 현생의 삶이다. 말하자면 아수라 들끓는 세상이다. 밑줄쳐야 할 문장 많은 소설이고, 좀체 여운 가시지 않는 소설이다. 좋은 작가 윤영수의 귀환. 쌍수 들고 환영한다.
손민호 기자
심영섭, 대한민국에서 여성평론가로 산다는 것. 가끔 텔레비전 교양 프로그램 패널, EBS 영화 프로그램 등에서 봤던 말 잘하는 여자, 심영섭. TV 책을 말하다, 박찬욱 편에서 그녀는 정말 속사포 같이 말하고 박찬욱은 질질 끌려가듯, 어눌하게 말했다. 가끔은 사람의 입이 참 무섭고 무기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골목으로 몰아세우는 듯한 심영섭의 화법이 그닥 맘에 들진 않지만 그녀의 가족은 성공적인 재혼 가정으로 소개된 적 있다. (사생활에 관심있는게 아니다. 설명하기 미묘한 관심...) 변영주 감독의 독립영화 제목을 빌려왔는데, 90년대 중반... 키노가 활개치던 무렵, 그때 저 제목을 흉내내는 온갖 문구들이 범람했었다. 그걸 또 써먹은 이유는... 뭘까?
수키 김, 통역사. 어제 외출하고 돌아오던 길에 마음이 허하여 자주 들르는 서점에 갔다. 언제 바뀌었는제 씨티 문고에서 리브로로 변했더라. 그냥. 씁쓸했다. 카운터에 있던 - 나만 알고 그녀들은 모를테지만 - 직원도, 높은 곳에 꽂혀있던 책을 꺼내주던 직원도... 아무도 없었다. 소문만 듣고 나중에 읽어야지 했는데 그때가 지금쯤일 것 같아 그냥 사버렸다. 아침에 얼핏 읽었는데, 중독되버렸다. 내가 정말 원하던 문장들, 느낌들, 분위기들...
공지영,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최근에 전경린도 '붉은 리본' 이라는 산문집을 출간했다. 나는 요새 공지영 소설에 관심이 많다. 성씨가 다른 세 아이 이야기를 담은 소설을 다음에 발표할 거란다. 혼자였다, 라는 구절이 심상하게 들린다.
야마모토 후미오, 러브홀릭. 연애 중독이라는 소설이 다시 재출간. 연애 중독이란 제목이 더 나은가? 러브홀릭이 나은가? 워커 홀릭의 소피 킨셀라가 쓴 줄 알겠네....쳇. 연애 중독, 이란 제목이 훨씬 더 좋다. 정말 중독된 것 같잖아. 홀릭은 그저 홀린것만 같고...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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