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자동차에서는 요즘 이 노래가 흐른다. 환희와 브라이언의 음색이 깊어졌다. 하지만 비슷한 노래 분위기는 어쩔 수 없을까. 조용필이 위대한 건 모든 노래의 분위기가 다 다르기 때문인가? 환희의 우악스러울 정도의 고음과 브라이언의 새침한 중성의 목소리. 어울릴 것 같지 않은데 잘 어울린다. 유리상자처럼 천상 듀엣이구만 하는 느낌은 없는데 이들이 함께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제법 완곡해졌다고 할까.
처음엔 소년들을 데려다놓고 쉬운 음악 벌릴 것 같아 시큰둥했었다. 그들의 이름을 봐라. 환희, 브라이언을 합쳐 플라이, 투, 더 스카이다. 플라이로 했다간 파리로도 불려질테고, 스카이로 했다간 너무나 다양한 이미지들 때문에 외려 밋밋해진다. 그래, 환희와 브라이언으로 하지 않은 게 천만 다행.
그들의 음악을 듣게 된 지 얼마되지 않았다. 두번째 트랙의 '피' 는 브라이언의 생크림같은 부드러운 목소리가 절정이다.
은미희, 만두 빚는 여자. 만두와 여자를 동의어로 두는 것 같아 괜한 시비를 걸어본다. 벽돌 쌓는 여자라고 하면 고독하게 소통을 단절하는 이미지가 떠오르고. 여자는 왜 만두같은 것만 빚으며 한없이 자신을 나약한 여성 이미지로 꿇어앉히게 하나 싶은 아쉬운 제목. 이래저래 '여자' 가 들어가면 감성적 이미지가 떠올라 괜히 약오른다. (이게 다 정희진의 '페미니즘의 도전' 탓이다) 읽지 않았으니 더는 얘기할 수 없다. 다음 주문 목록 첫번째다.
강석경의 경주산책. 강석경이란 이름과 경주란 지명은 닮았다. 경주의 공기가 강석경을 사로잡았다고 한다. 역시 다음 주문 목록 첫번째다.
이순원, 수색, 그 물빛 무늬. 이순원의 소설은 곱고 깊다. 순원이란 이름 탓일까? 순하고 원근감이 있는 소설. (얄팍한 이행시~ ^^;;)
파리의 노트르담. 요새 나를 몸살나게 하는 뮤지컬. 책으로 대신 읽어야할까? 노트르담의 파리, 라고 했을땐 별 감흥이 없었다. 겨우 순서만 바뀌었을 뿐인데 읽고 싶은 욕망을 일으키다니...
음악으로 심심한 위안을 하는 게 나을까?
클로드 퐁티, 나의 계곡. 슬픈 동화가 그리워지는 겨울의 끝자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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