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타너스



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
플라타너스
너의 머리는 어느덧 파아란 하늘에 젖어 있다.

너는 사모할 줄 모르나
플라타너스
너는 네게 있는 것으로 그늘을 늘인다.

먼 길에 올 제
호올로 되어 외로울 제
플라타너스
너는 그 길을 나와 같이 걸었다.

이제 너의 뿌리 깊이
나의 영혼을 불어 넣고 가도 좋으련만
플라타너스
나는 너와 함께 신(神)이 아니다!

이제 수고로운 우리의 길이 다하는 오늘
너를 맞아 줄 검은 흙이 먼 곳에 따로이 있느냐?
플라타너스
나는 너를 지켜 오직 이웃이 되고 싶을 뿐
그 곳은 아름다운 별과 나의 사랑하는 창이 열린 길이다.



詩 -김현승(<문예>1953.6)



                                                                                                       



플라타너스의 발견은 대전에 머무는 나날을 풍요롭게 늘려주었다. 여차하면 서울에 가야지 싶은 마음을 플라타너스 때문에 미뤄두었다는 건 억지가 아니다. 도서관 가는길, 엑스포 공원에서부터 대덕 연구단지 초입까지 플라타너스의 길이 펼쳐져있다. 남편에게 이 길에 플라타너스가 멋지다는 걸 알고 있었느냐고 물었다. (남편은 이 길에 있는 고등학교 출신이다)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면 남편을 더 사랑해주었을까.  

플라타너스는 늘 거기에 있었을 터인데. 서울에서도 골백번은 봤을 플라타너스인데, 아니 발길에 채이는 플라타너스 이파리들이 너무 크고 못났다고 무감각하게 밟고 다녔는데... 곱게 곱게 햇빛에 바싹 타들어가는 플라타너스 이파리는 내가 소진한 하루처럼 가벼웁지만 그 튼튼한 나무 밑둥과 기둥은 나를 견디게 해주는 어떤 힘과 닮았다. 집없는 천사처럼 여기 저기 머무르는게 힘들다고 할 때마다 내 안에서 나지막히 속삭이던 어떤 힘. 문득 눈에 띈 플라타너스가 내게 건넨 말도 그것이었다. 고고한 학을, 천년을 버텨온 노송을, 플라타너스도 닮고 싶다고.  

바삭하게.
고소하게.

플라타너스에선 잘 지내온 한 여름의 흔적을 아낌없이 내보이는 에너지가 느껴진다. 떨어뜨리고 거두는 가을 등 뒤에 매달린 그 흔적은 사뭇 경이롭다. 다시 모으기 위해 지금은 이렇게 어딘가로 보내버리는 거라고, 이파리를 폴폴 떨어뜨린다. 커다랗고 울창한 플라타너스의 거리를 만나 마음이 뜨거워졌다. 플라타너스 아래를 걷다보면 고통마저 향기롭다. 플라타너스가 있는 길이라면 걷고 싶다. 지금은 무엇이든 견디어야 하고. 재촉하지 말고,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 오늘의 가을이 '내게' 그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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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07-11-09 2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쉬..플레져님의 시선은 참 따뜻합니다^ㅡ^

플레져 2007-11-10 09:11   좋아요 0 | URL
비연님, 오랜만이네요.
어제 참 좋은 날이었어요.
날씨가 도와줬지요 ^___^

hnine 2007-11-09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동네여요! ^^

플레져 2007-11-10 09:12   좋아요 0 | URL
와. 그러시군요!
이렇게 아름다운 동네에 살고 계시는군요!!
오늘 아침엔 플라타너스가 더 바삭해졌을거에요...흑.

Mephistopheles 2007-11-09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닥에 비친 플레져님 그림자가..."자이언트 로보"같아 보여요...
(과연 자이언트 로보를 아실까나..)
http://image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idetail&rev=4&query=%C0%DA%C0%CC%BE%F0%C6%AE%B7%CE%BA%B8&from=image&ac=-1&sort=0&res_fr=0&res_to=0&merge=0&start=2&a=pho_l&f=nx&r=2&u=http%3A%2F%2Fcafe.naver.com%2Fjabeth%2F199

플레져 2007-11-10 09:13   좋아요 0 | URL
보고왔는데요,,, 모르겠삼!!! ㅋ =3=3
나름대로 플라타너스 추상, 아니 초상화를 연출한거라굽쇼! ㅋ

프레이야 2007-11-09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곰삭은 가을맛을 제대로 즐길 줄 아시는 플레져님^^
사진이 참 맑고 따뜻해요.

플레져 2007-11-10 10:11   좋아요 0 | URL
올해의 좋은 가을 날씨를 이대로 보내기엔...아쉽고 ^^;;
(뭔 유행가 가사 같네요.힝)
플라타너스가 참 키가 커요. 하늘에 곧 도달할 것 처럼.

산사춘 2007-11-10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운 사진, 아름다운 글... 감사합니다.

플레져 2007-11-10 10:12   좋아요 0 | URL
춘님, 오랜만이죠? ^^
아름답게 봐주시고 읽어주셔서 고마워요.

마노아 2007-11-10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과 귀와 마음이 모두 즐거워져요^^

2007-11-14 01: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1-14 11: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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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23 15: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2-23 01: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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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28 15: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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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29 02: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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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01 15: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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