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경주로 가는 길이 그리 멀 줄은 몰랐다. 수학여행을 다녀왔고 가족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던 경주. 세 번째 방문에서야 나는 경주가 서울에서 얼만큼 떨어져 있는지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언제나 그렇지만 이 기억도 훗날엔 빛바래져 경주와 서울의 거리를 서울과 뉴욕 혹은 정릉에서 혜화동 쯤의 거리로 기억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호텔에 여장을 풀고 바로 석굴암으로 향했다. 경주에 왔으면 석굴암과 불국사를 먼저 봐야 한다는 남편의 지론은 꽤 비장하여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가끔 남편은 그런 식으로 귀엽게 고집 부리곤 하는데 그럭저럭 봐줄만하다.
한여름 뙈약볕인데도 관람객들이 많았다. 다보탑과 석가탑은 열일곱에 보았던 그대로였다. 아무런 감흥없이 바라보았던 그때, 지금처럼 감동과 전율은 없었던 그때.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뒤늦게 시작된 사춘기였으므로 그 어느 것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초콜릿을 들고 졸졸 쫓아다니는 남자애들이 암만 나를 보고 있어도 콧방귀를 뀔 수 있었던 건 가혹한 사춘기 때문 아니었을까. 다시 돌아오라, 보이프렌드여!
경주 시내 거리마다 가로수들과 함께 저 분홍빛의 꽃나무가 말 잘듣는 누이처럼 다소곳 서 있었다. 불국사에서 이름표를 달고 있는 저 꽃나무를 만났을 때 기쁨이란. 꽃나무의 이름은 <배롱나무>
-배롱나무, 지식 검색-
꽃이 오랫동안 피어 있어서 백일홍나무라고 하며, 나무껍질을 손으로 긁으면 잎이 움직인다고 하여 간즈름나무 또는 간지럼나무라고도 한다. 높이 약 5m이다. 나무껍질은 연한 붉은 갈색이며 얇은 조각으로 떨어지면서 흰 무늬가 생긴다. 작은가지는 네모지고 털이 없다. 새가지는 4개의 능선이 있고 잎이 마주난다. 잎은 타원형이거나 달걀을 거꾸로 세워놓은 모양이며 길이 2.5∼7cm, 나비 2∼3cm이다. 겉면에 윤이 나고 뒷면에는 잎맥에 털이 나며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불국사 건너편, 경주 출신의 두 문인 동리 목월 문학관이 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이면 휴관이어서 실내에 들어가보지는 못했다. 아사달 사랑탑이 뜨겁게 불타고 있는 광장, 문학관 입구의 연꽃 늪지들, 쉴틈없이 지저귀는 새들과 빈 벤치들. 문득 여름의 절정을 보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여름은 이렇게 지나고 누군가의 원고지에선 뚝뚝 땀이 흐르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