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가 나니아의 아이들에게 정본 C. S. 루이스 클래식 16
C. S. 루이스 지음, 라일 W. 도싯 외 엮음, 정인영 옮김 / 홍성사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너에게 편지를 하고 싶다


「반지의 제왕」을 쓴 톨킨은 매년 산타클로스의 이름으로 자녀들에게 편지를 썼다고 합니다. 성탄절 다음날이면, 산타 할아버지와 할머니, 사고뭉치 북극곰과 순록, 그들의 친구인 요정과 눈사람 소식이 담긴 편지가 북극 우표가 붙은 편지봉투에 담겨 네 아이의 손에 전달되었습니다. 편지에는 톨킨이 직접 그린 유쾌한 삽화가 더해져 북국의 소식을 더욱 흥미진진하게 전해 주었습니다. 아이들이 답장을 써서 난로가에 두면 며칠 후 편지는 사라졌고 이듬해 답신이 오곤 했습니다. 사상 유래 없는 산타네 가족과 톨킨네 아이들의 교류는 그렇게 20년간 이어졌습니다. 네 자녀에게 행복한 기억을 심어 주려던 아버지의 색다른 선물이었나 봅니다(「북극에서 온 편지」(씨앗을뿌리는사람 역간)에 이 편지와 그림들이 담겨 있습니다).


(톨킨의 절친이자 문학 동료였던) C. S. 루이스도 평생 많은 사람들과 편지를 주고받은 것으로 유명합니다(나중에 그의 아내가 된 조이 데이빗먼과도 오랫동안 편지로 교우한 사이였지요). 특히 「나니아 연대기」(시공주니어 역간)가 나오면서 어린 독자들로부터 편지가 답지하자, 그는 아이들의 편지에 일일이 답장을 쓰기 시작합니다. 매일 아침 그는 한 시간 이상을 편지를 읽고 답장하는 데 보냈는데, 답장 쓰는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의무라 믿었다고 합니다. 나이가 들면서 편지 쓰기가 힘들어졌지만(그래서 형 워렌의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할 수 있는 한 잉크에 펜을 찍어 직접 아이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20여년에 걸쳐 쓴 많은 편지들 중 선별한 97편의 글이 이 책에 실려 있습니다.


편지의 수신자는 대부분 나니아 연대기를 읽은 어린 독자들입니다. 아이들은 나니아 인물들에 대해, 아슬란의 의미에 대해, 글쓰기에 대해 묻는데, 어른들의 물음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루이스는 답하고, 감사하고, 격려하고, 칭찬하고, 기도를 부탁합니다. 루이스는 단 한 번의 편지에도 답을 했지만, 많은 아이들과 지속적으로 편지를 교환하며 우정을 쌓았습니다. 편지를 시작할 때 꼬마였던 소녀가 어엿한 아가씨가 되어 결혼할 남자를 소개하는 편지에 루이스가 축복으로 답하는 사연을 비롯해, 오랜 우정의 흔적을 곳곳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그에게 편지 쓰기는 신이 주신 의무이자 사랑과 우정을 실천하는 그만의 방식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일까요, 아이들에게 쓴 편지글이 「순전한 기독교」(홍성사 역간)처럼, 「헤아려 본 슬픔」(홍성사 역간)처럼 읽히니 말입니다.


여담 하나. 책이 아주 잘 만들어졌습니다. 엮은이, 옮긴이, 만든이의 애정이 깊이 배어 있습니다. 지금도 루이스는 이처럼 좋은 사람들을 엮어 주고 있나 봅니다. 여담 둘. 편지를 하고 싶어졌습니다. 제가 돌보는 주일학교 아이들, 함께 수고하는 선생님들, 그리고 인생길에서 친구가 되어 준 이들에게 편지로 말하고 싶어졌습니다. 잘 지내냐고, 고맙다고, 힘내라고, 기도해 달라고, 그리고 사랑한다고. 마침, 가을이 가깝습니다.


ㅡ<크리스채너티 투데이> 2012년 7월호에도 실은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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