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딩 프라미스 - 아빠와 함께한 3218일간의 독서 마라톤
앨리스 오즈마 지음, 이은선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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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책 읽어줄까?"


약속. 아빠와 아이가 약속을 한다. 책을 읽기로. 매일 밤 10분 동안 아빠가 소리 내서 아홉 살 딸에게 책을 읽어주기로 약속한다. 실은 아이가 더 자라면 책을 읽어주고 싶어도 읽어줄 수 없을 것 같아 한 약속이다. 그렇게 시작된 독서 마라톤은 처음에 정한 100일이 지나서도 한참 동안 계속되어 3218일 동안 이어진다.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밤’, ‘아빠가 딸에게’, ‘소리 내어’, ‘책을 읽어준다’는 약속은 누구나 예상하듯이 쉽지 않다. 다른 일이 생기고 상황이 꼬이게 마련이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하기로 했으니, 함께한 약속이니 난관을 넘어선다. 자정을 넘겨 읽기도 하고, 출장 간 날이면 전화를 걸어 읽어준다. 딸과의 약속이니까. 10분의 책읽기는 30분, 한 시간이 되기도 하고, 자연스레 요즘 무슨 일이 있는지 나눔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아홉 살 꼬마가 대학생이 되어 집을 떠나는 날, 9년간 이어온 독서 마라톤은 끝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나온 한 권의 책은, 책 이야기가 아니라 책을 읽으며 살아온 가족 이야기다. 아빠가 읽어주는 책을 들으며 성장한 딸이 아빠에게 보내는 헌사다.


적용. 나의 이야기. 중년의 나이에 「나니아 연대기」를 읽을 짬은 없지만 아이들에게 읽어준다면 볼 수 있겠다는 이기적인 동기에 책 읽기를 시작한다. 발견한 몇 가지 유익. 우선, 재미있다. 어릴 적, 청년 때에 못 본 책을 읽을 수 있다. 아이들 위한다고 하지만 실은 내가 즐겁다. 게다가 소리 내어 읽다보면 피곤하던 몸에 역설적이게도 힘이 솟는다. ‘묵상’의 어원이 ‘소리 내어 읽는다’ 였던가. 둘, 아이들이 좋아한다. 「나니아 연대기」, 「호빗」, 「새번역 성경」을 이해하겠나 싶던 우려와 달리 유치원생, 초등생 아이들은 재미있게 집중해 듣는다. 나름 이해도 하고 기억은 나보다 잘하며 이따금 깊은 질문도 던진다. 내가 재밌어 하는 만큼 아이들도 좋아하고 있다. 피곤해서 그냥 자려고 하면 난리가 난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일을 해주고 있으니 아빠 역할을 하고 있다는 보람도 솔솔 느껴진다. 셋, 책을 읽어주고 나면 아이들은 곧 잠든다. 이제 그만 자라고 소리칠 일이 없어졌다.


‘저녁 없는 삶’을 사는 우리 사회의 아빠들에게 ‘매일 밤 책 읽어주기’는 먼 나라 이야기, 힘겨운 미션이다. 그럼에도 좋은 아빠, 친구 같은 아빠가 되고 싶으면서도 정작 아이들과 어떻게 놀아야 할지 모르는 아빠들에게, 책 읽어주기는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겠다. 아이들은 (뜻밖에도!) 아빠의 이야기, 아빠의 목소리를 좋아한다. 이 책도 증언하듯, 함께 책 읽기는 즐겁고, 대화를 끌어내며, 행복한 시간임에 분명하다. 하루 10분 기억이 쌓이고, 추억이 많아지기를. 개인의 인생에 남는 것은 기억일진대, 행복한 기억과 경험과 관계가 아이들 인생 굽이굽이에 새겨졌으면 좋겠다. 책 읽어주기는 그 시작일 터. 더 늦기 전에. 책 읽어줄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ㅡ<크리스채너티 투데이> 2012년 6월호에도 실은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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