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있는 동안 빛 가운데로 걸으라 - 톨스토이 단편집 Echo Book 1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조병준 옮김 / 샘솟는기쁨 / 201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톨스토이가 들려주는 예수님 이야기"



영화 ‘톨스토이의 마지막 인생’은 톨스토이 인생의 마지막 시기를 문학적으로 재구성한 원작 소설(<톨스토이의 마지막 정거장>)을 극화한 영화입니다. 톨스토이가 부담스러운 분들에게 이 영화를 권합니다. 톨스토이의 삶을 지근에서 지켜보며 비망록을 기록하는 비서 역으로 매력적인 배우 제임스 맥어보이(!)가 이야기를 들려주니 말입니다. 톨스토이에 대해 무지해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유쾌한 에너지가 넘치는 사랑 영화입니다. 보고 나서 끌린다면, 톨스토이 단편집 하나쯤 집어 보시기를. 톨스토이는 어렵지만, 영화와 단편집은 쉽고 감동적입니다.



<빛이 있는 동안 빛 가운데로 걸으라>는 톨스토이가 남긴 스물네 편의 단편 중 여덟 편을 뽑아 묶은 선집입니다. 비유(이야기)가 아니면 말씀하지 않으신 예수님처럼, 말년의 톨스토이는 러시아 민중이(그리고 21세기의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짧은 이야기로 인생과 신앙에 대해 말을 걸어옵니다. 익히 들어 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랑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계신다’뿐 아니라 이 책에는 빠졌지만 ‘바보 이반’,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같은 단편들은 사실 톨스토이 개인의 신앙뿐 아니라 천 년이 넘은 러시아 정교회 신앙 전통에서 나온 것이라고 합니다. 가난한 자의 모습으로 찾아오시는 예수님, 때로 강도당한 노숙자의 모습으로, 부모 잃은 아이의 모습으로, 심지어 강도의 모습으로 다가오는 하나님의 천사 이야기 말이죠. 톨스토이는 고딕 성당의 제단 위가 아니라 추위를 피해 교회 밖 처마 아래 떨고 있는 거지에게서 예수님을 보고, 하나님의 메시지를 듣습니다. “왜 불쌍하고 천진난만한 아이가 고통을 받아야 하지” 하는 “질책하는 소리가 갑자기 마음속 깊은 곳에서 들렸고” “낯선 남자를 돌아보자 불현듯 연민의 마음이 일었다” 같은 투박한 표현에, “누가 너의 이웃이겠느냐” 하는 분의 음성처럼, 눈길이 머물고 마음이 맺힙니다.



톨스토이는 간디에게까지 영향을 준 평화주의와 공동체주의를 주창했고, 회심 후에는 <고백록>을 썼으며, 귀족 신분과 출판 인세에 따른 집과 농토와 재산을 모두 버리고 떠나 어느 열차 정거장에서 죽었다는 비범한 일화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톨스토이 당대에 톨스토이‘주의자’들이 그를 성인화했듯이, 그의 특별한 신앙 체험과 결단 때문에 오늘날 (신앙을 가진) 우리도 톨스토이를 숭앙하여 거룩하게 읽어야 할 것처럼 생각하기 쉽습니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 보면, 맥어보이가 분한 톨스토이의 비서이자 문학청년인 발렌틴 불가코프는 톨스토이주의자라면 사랑보다 의무를 택해야 하지 않은가 싶어 다가온 사랑조차 붙잡지 못합니다. 정작 노년의 톨스토이 자신은 여전히 사랑을 찬미하면서 “내가 아는 모든 것... 오직 사랑하기 때문에 안다”(<전쟁과 평화>)고 고백하는데 말입니다. 이 작은 책, 무슨 교훈을 얻기 위해, 기독교적 독법으로 읽지 않았으면 합니다. 다만, 해가 지면 더욱 짙어지는 라일락 향기처럼, 톨스토이를 읽으며 “하늘을 향해 미소 짓는 모습”이 당신과 내게서 더욱 발견된다면 좋겠습니다.


ㅡ<크리스채너티 투데이> 6월호에도 실은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