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에 대한 세 가지 기억. 

 

우선 그의 책은 소재와 제목이 독특해서, 그리고 국내서 장정도 괜찮은 편이어서, 그의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국내에 소개된 그의 책을 한번은 다 살펴보았고, 몇 권은 가지고 있다. 그리고 한번도 읽어 본 적 없는 그의 얼굴을 나는 알고 있다. 독자에게 소구할 만한 내용을 잘 잡아내는  감각 있는 에세이스트? 나는 그를 이 정도로 알고 있었다. 

 

둘째, 그의 열혈팬인 내 친구(아, 난 그가 보통의 팬인 줄은 그때 처음 알았다)가 런던에서 잠시 유학하던 중 작은 서점에서 열린 독자와의 만남에서 보통을 만난 얘기를 해 주던, 흥분에 달뜬 억양과 그 이야기를 하며 얼굴 가득 번지던 미소가 기억난다. 내 친구는 보통의 사인을 받고 그와 사진도 찍었다. 유서 깊은 작은 서점에서 열린, 서양에서는 오랜 전통과 문화가 된, 저자와의 만남. 내 친구의 소중한 기억이 내게 보통에 대한 상당히 긍정적인 인상을 심어 주었다. 

 

셋째, 아내가 그의 '불안'을 읽다가 내게 소리 내어 읽어 준 몇 단락. 아니, 그는 말랑말랑한 작가가 아니었네?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 정도 수준에서 그를 생각했었는데, '불안'은 웬만한 교양 인문서로도 손색이 없었다. 무엇보다 글솜씨가 빼어났다. 아내는 말했다. "이 사람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네. 사람이 권력을 얻으려는 것은 조건 없이 사랑받기 위해서라고." 내가 운전하는 동안 드문드문 읽어 준 아내의 인용문 때문에, 나는 이제야 보통의 글이 읽고 싶어졌다. 

 

이번 신간은 '일'을 다룬다. 비로소 그의 책을 읽게 될 듯싶다. 아래는 그의 신간에 대한 기사다.   

      

 

 

 

 

   

 

 

 

 

 

아름다움과 두려움의 세계... '일'의 재발견 

《일의 기쁨과 슬픔》 펴낸 알랭 드 보통 인터뷰

 

알랭 드 보통(40)은 환한 웃음으로 손님을 맞았다. 벗겨진 머리 탓에 나이가 들어 보였으나,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밝게 웃을 땐 소년 같은 맑은 기운을 풍겼다. 20여개 언어로 번역·출간되어 세계 각국에서 수십만 부씩 팔리는 베스트셀러 작가치곤 아주 소박해 보이기까지 했다.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나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수학한 그는 독창적인 방식으로 문학·철학과 역사를 아우르며 현대 사회의 풍경과 일상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비롯한 연애소설 3부작으로 주목받기 시작, 《여행의 기술》 《불안》 《행복의 건축》 등 일련의 작품으로 유럽의 특급 작가로 인정받고 있다. 이번 인터뷰는 신작 《일의 기쁨과 슬픔》(원제 The Pleasures and Sorrows of Work·이레 발간)과 관련해 런던 글레닐라 로드에 있는 그의 집무실에서 진행됐다.

 

―초기에 주로 사랑과 인간관계에 대해 다루다가 직업과 불안 등 사회적 이슈로 관심이 옮아가는 듯하다. 
 

"새로운 도전을 좋아하고, 항상 새로운 아이템과 스타일을 생각한다. 내가 가진 것을 반복하는 것을 싫어한다. 우리가 대부분의 시간을 투자하고 있는 건 '일'일 텐데, 의외로 일 자체를 표현한 예술을 찾기 어렵다. 일하는 세계의 아름다움, 기쁨, 권태 그리고 가끔씩 느껴지는 공포를 보여주는 글을 쓰고 싶었다."

 

―책은 화물선 관찰하기, 물류, 회계, 항공 산업 등 10개의 챕터로 나뉘어 있다. 전작들과 달리 다양한 현장 취재를 다니며 발품을 많이 팔았는데. 
 

"거대 물류 단지, 영국 최대의 비스킷 공장, 참치잡이 어선, 인공위성 발사현장 등을 오가며 취재를 했다. 이번 책은 에세이면서 동시에 포토 르포르타주인 셈이다." 《일의 기쁨과 슬픔》에는 풍부한 스토리를 담은, 전문 사진작가의 흑백 사진 130여장이 실려 현대 사회의 산업 세계를 조감하는 알랭 드 보통의 시선에 입체감을 더하고 있다.

 

―'좋은' 직업을 정의한다면? 
 

"내 삶을 변화시키고, 삶을 더 풍요롭게 할 수 있는 직업이다. 그러나 책에 썼듯이 모든 '일'은 우리에게 뭔가를 정복했다는 느낌을 주고, 품위 있는 피로를 안겨준다. 무엇보다 일은 식탁에 먹을 것을 올려놓아 주고, 우리를 더 큰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그래도 사람들은 '의미 있는' 일을 찾지 않는가. 
 

"우리가 하는 일이 다른 사람들의 기쁨을 자아내거나 고통을 줄여줄 때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의 의미'를 너무 거창하게 여길 필요는 없다. 사람들에게 추앙받지 않으면서도 다수에게 보탬이 되는 일을 우리는 얼마든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일상의 철학자(philosopher of everyday life)'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당신의 일상은 어떠한가. 
 

"2세, 4세인 아이들을 아침에 돌보고 9시까지 이곳 사무실로 나온다. 저녁 7시30분까지 집필하고 귀가한다. 두 가지 이상 작업을 병행하지 않는다. 자료 조사 기간까지 포함, 2~3년에 걸쳐 한 번에 한 책을 쓴다."

 

―한국에 '알랭 드 보통 마니아'라 불리는 열혈 독자들이 많다. 
 

"이메일도 많이 받는다. 한국 남성들이 뭘 생각하는지를 한국 여성들이 알고 싶어하는 것 같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고. 한국 사회에서는 커뮤니케이션 또는 대화 방식에 어려움이 많은 듯하다. 또 도시생활을 하면서 고독을 심하게 타는 듯하고. 내 책이 혼자임을 느끼는 그들에게 위안을 주는 게 아닐까."

 

―일의 스트레스는 인간관계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싫어하는 인간 유형은? 
 

"마초 스타일.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여성적 남성도 있고 남성적 여성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본다. 나는 또 운동하는 것과 술 마시는 것을 싫어한다. 생각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런던=신용관 기자] 

조선일보 2009.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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