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쩍하는 황홀한 순간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1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 = 번쩍하는 순간 + 황홀한 순간.

번쩍하고 오감이 눈을 뜨는 순간이 있다. 영감의 순간이라고도 할 수 있다. 혹은 깨달음의 찰나라고도. 그런 영감과 깨달음은 존재의 깊은 곳에서부터 울려오는 기쁨을 동반한다. 그것은 가이 황홀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번쩍하는 순간과 황홀한 순간은 한 단어로 모여져서 어색할 것이 없고, 오히려 둘을 나누어 버린다면 의미가 반감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영감은 불연듯 예기지 못한 순간에 번쩍하며 다가오고 그 깨달음의 정서적 반응은 활홀함이다.


2

저자가 후기에 적기를, 그의 인생은 여러 순간들이 모여 이뤄진 성곽과도 같은데, 그 순간 중에는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도 있고 기억하고 싶지도 않는 순간도 있다고 했다. 내가 성석제의 새 소설집 제목을 듣고 연상한 의미와 성 재담꾼이 애초에 의도한 의미 사이에는 이만큼의 의미 간격이 있었다. 하지만 두 의미에 같다(=)는 기호를 삽입해도 은유로서의 의미는 무리가 없을 듯도 싶었다.


3

아내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었던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성석제의 말맛 때문이다. 성 씨의 글은 정말로 읽기 편하고 재미있다. 그의 글은 소리를 내어 읽어보면 그 맛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작년엔가 요즘 각광받는 김영하의 소설을 읽었는데, 그의 글은 읽기 어렵다. 특히 소리 내어 읽으려면 좀체 읽히지가 않는다. 의미 전달은 되는데 말 자체에 음악성이나 재미가 없다. 나는 이 책의 단편 몇 편을 그 자리에서 아내에게 읽어 주었는데, 한 편에 10분이면 충분히 낭독할 수 있었다, 글의 내용을 떠나서도 읽어내는 맛이 있었다. 아내에게 이 책을 선물한 두 번째 이유는 책 제목 때문이다. 책 표지에 모처럼 글을 적어 선물했는데, 글을 쓰며 인생을 살아가는 아내에게, 내가 처음 책 제목에서 느꼈던 것과 같은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이 많기를 바라며, 이 사람의 글이 아내의 글쓰기에 도움 되기를 소망하는 심정에서였다.


4

그가 전에 엽편소설이라 했던가. 원고지 2~10장 분량으로, 원하는 소재를 원하는 만큼 자유롭게 써내는 글. 서양에서는 콩트라고 하던가. 이번 책에서는 소설(小說)이라 했다. 어찌 보면 기이한 소재이지만, 글을 풀어내는 방식 때문인지 동네 사람들 얘기처럼 들린다. 32가지 얘기 중, 유독 기억에 남는 건 내가 아내에게 읽어 준 두 편, 즉 "말을 말하는 말"과 "찬양" 그리고 혼자 읽은 "도선생네 개"다. 앞의 두 편은, 공교롭게도, 전체 작품 중에서 가장 뼈있고 재미있는 농담이었고, "도선생네 개" 또한 말장난 같은 웃음 아닌 통쾌함을 자아내는 웃음을 선사했다.


5

성석제의 소설에는 어떤 경향과 사상을 찾기란 좀 모호하다. 그는 우선 재담꾼이란 생각이 든다. 얘기를 재미있게 풀어내는 사람. 그래서인지 그의 글은 우선 읽고 듣는 맛이 먼저다. 내용과 사상은 그 다음에야 생각해야 한다. 이전 그의 소설, <아빠, 오 불쌍한 우리 아빠>,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에서도 그랬던 것 같다. 허나 방향은 감지된다. 나는 그가 지향하는 방향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어느 방향이냐고 묻는다면, 지금 딱히 설명해 주기에는 아직 내 정리가 미진하다.


6

그는 '소설은 직격이 아니라 은유'라고 한다. 나이가 들수록 고지식해지는 자신과 싸워야 한다고 했다. 그에게는 은유가 세상에 말하는 방법이자 길이자 전략이다.


7

글 잘 쓰는 사람이 드문 시대에 입담 좋은 소설가다. 파고들기가 무조건 의미 있다고, 그래서 작은 취미를 묘사하고 취미에 몰두하는 심경을 그려만 내도 가치 있다고 추켜세우는 시대에, 그보다는 한 겹 벗어난 시각에서 말하고 그려내는 그의 글을 나는 한동안 계속 읽게 될 듯싶다.


8

내게도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 많아지기를, 내가 그 제목을 감잡은 의미에서 그러하기를. 또 비슷하게, 하늘이 열리는 경험 많기를 소망하며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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