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본성에 대하여 사이언스 클래식 23
에드워드 윌슨 지음, 이한음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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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지껏 인간의 어떠함, 즉 본성을 논하는 학문은 철학이었다고 할 수 있다. 철학에서는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 논할 때 어떤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논했다기 보다는, 관찰되는 현상과 경험적 판단 그리고 주관적인 가치관과 종교를 그 근거로 삼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사회 생물학이라 불리는, 에드워드 윌슨과 리처드 도킨스 등과 같은 개척적인 생물학자에 의해 비교적 최근에 기초가 놓인 신생 학문은 전혀 다른 방식의 접근과 방법으로 인간을 논하고 있다. 그것은 다름아닌 생물학적 방법이며, 특히 진화생물학과 동물행태학에서 얻어진 일련의 가설들을 그 기본으로 하여 인간의 본성에 관한 탐구에 있어 자연과학적 엄밀성을 부여하고 있다.

윌슨은 이 책의 첫 장에서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은 유전자의 증식이외에는 아무런 내재적인 목표가 없으며, 따라서 인간 사회의 원칙들은 임의로 설정할 수 밖에 없음을 주장하고 있다. 또한 그러한 사회적 약속과 원칙들은 철저히 유전자의 명령에 복속될 수 밖에 없음을 밝히고 있는데, 모든 행동과 원칙들이 일일이 유전자의 명령을 받고 있는것은 아니며 다만 유전자의 명령을 거부할 수는 없다는 것도 말하고 있다.

다음의 여러 장들에서는 인류에게 나타나는 여러 보편적 행태에 대해서 사회생물학적인 해석을 시도하고 있다. 특히 이타주의와 종교를 사회생물학적 시각으로 설명하는 것은 철학이나 신학, 윤리학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놀라운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저자는 생물학적 결정론 또는 유전자 결정론의 시각에서 인간 사회의 많은 현상들을 설명하고 있으며, 우리가 많은 경우에 인간 고유의 것이라 생각하는 몇몇 현상에 대하여 다른 사회성 동물들에게도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생물학적인 현상임을 증명하고 있다. 특히 자신의 유전자 증식에 일견 불리해 보이는 이타주의적 속성에 다한 설명은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이 부분은 리처드 도킨스의 저서 <이기적인 유전자>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기도 한데,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결국 자신과 비슷한 유전자를 가지는 집단의 유전자 증식을 도움으로 또 다른 형태의 이기주의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 속성상 유전자 증식을 꾀할 수 없는 동성애가 어떻게 인간 사회에서 살아남고, 동성애자가 인류에 대하여 가지는 가치를 설명하고 있는 부분은 굉장히 흥미롭다.

생물학은 사회 인문과학에 자연과학적 엄밀성을 부과하는 기초학문으로 자리잡을 것인데, 그것은 사회생물학이라는 새로운 방법을 통해서 일것이다. 마치 수학이 물리학을, 물리학이 화학을, 화학이 생물학의 기초가 되는 학문이듯이 말이다. 그는 다른 책에서 모든 학문이 자연과학적 기초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강변하는데,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인간 사회의 많은 현상을 사회생물학적 기초를 가지고 설명할 수 있다면, 그 근거는 더욱 확고한 것이 될 것이며, 인문 사회과학의 엄밀성과 신뢰성은 증가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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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젊고 자유로워서 상상력의 한계가 없었을 때, 나는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꿈을 가졌었다. 좀더 나이가 들고 지혜를 얻었을 때 나는 세상이 변하지 않으리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내 시야를 약간 좁혀 내가 살고 있는 나라를 변화시키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불가능한 일이었다. 황혼의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마지막 시도로, 나와 가장 가까운 내 가족을 변화시키겠다고 마음을 정했다. 그러나 아무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 누운 자리에서 나는 문득 깨달았다. 가장 먼저 변화시켜야 하는 것은 나 자신이었다는 것을...

   - 웨스트 민스터 대성당의 지하 묘지에 있는 한 영국 성교회 주교의 무덤 앞에 적혀있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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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 서정주 시선집
서정주 지음 / 큰나(시와시학사)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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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나에게 가장 좋아하는 시인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단연코 서정주라 하갰다. 그의 친일, 친독재 경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들을 읽노라면 저절로 감탄과 찬사가 나오게 된다. 또한 가장 좋아하는 시를 두어개 꼽아보라 한다면 서정주의 <밀어>, <석굴암 관세음의 노래>, <꽃밭의 노래>정도를 꼽을 수 있겠다. 더욱이 나는 그의 시를 10편 정도는 통채로 외우고 있을 정도로 그의 시에 매료되어 있다.

서정주의 시를 더 많이 읽고 싶다는 생각을 늘 가져 오다가 본격적으로 접하게 된것이 바로 이 시집이다. 이 책에는 그의 14권의 시집에서 대표작만을 뽑아 그 당시 발표되던 그대로의 문자로 써놓았다. 그래서인지 한자와 연음 그대로 써놓은 시들이 굉장히 많다. 예를 들어 '밤이기퍼도 오지않었다'라고 시집에 적혀 있는데, 이는 그 당시의 맞춤법과 현재의 그것과는 차이가 있어서 그럴 것이다. 또한 시집인 것을 감안하면 책값이 너무 비싼데, 아마도 양장본이라서 그럴것이다.  

서정주의 시들을 평가하는 평론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는 그의 시의 주제를 영원지향성과 떠돌이 정신이라고 한다. 그의 저 유명한 구절 '스믈세햇동안 나를 키운건 팔할이 바람이다'라는 부분에서 보이듯, 그의 떠돌이 정신은 그의 시들의 한 축을 이루고 있으며, 신라 정신이라고 표현되는 그의 영원 지향적인 시들은 나에게 시의 맛을 가르쳐 주었다.

특히 그가 꽃을 소재로 쓴 시들 치고 수작이 아닌것이 없다. <꽃밭의 독백>, <목화>, <밀어>, <꽃> 등등 꽤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거기서의 꽃들의 생명을 은유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또한 그의 첫번째 시집인 <화사집>에 나오는 몇몇 작품들은 인간의 육체적 관능성을 그려내고 있다. 거의 에로 비디오 수준인데, 그래도 그 시집의 작품들도 나름의 성찰을 담고 있는 수작들이다.

서정주의 대표작들을 원형 그대로 읽고 싶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물론 한자 실력이 있어야 읽기가 편하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다. 외울만한 시들이 굉장히 많으며, 운문성이 뛰어나서 외우다 보면 시의 아름다운 맛이 더욱 살아난다.  언젠가 <푸르른 날>이라는 시를 생맥주 피처(pitcher)에다 적어 놓은 일이 있는데, 많은 이들이 읽고 같이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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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멸의 불빛
오세영 지음 / 문학사상사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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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집을 읽기 전에는 항상 논픽션을 위주로 읽어 왔었다. 딱딱한 산문체에다 어려운 용어와 난해한 내용이 있는 인문 사회학 서적들을 말이다. 하지만 학교 서점에서 깔끔한 표지를 보고 산 이 시집은 내가 서정주, 백석, 한하운, 윤동주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시를 감상하는 계기가 되었다.

우선 이 시집은 읽기도 쉬우면서, 이해하기도 대단히 쉽다. 황지우나 황동규 시인의 시집을 읽으며 느꼈던 그런 난해함은 좀처럼 볼 수가 없었다. 어려운 낱말이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평소에 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그러한 소재들을 사용하고 있다.

궂이 시들의 종류를 말하자면 거의가 서정시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삶의 다양한 모습들 그 자체에 천착하면서도 우리들에게 잔잔하 감동을 전달하는, 그러면서도 생에 대해서 조금은 독특한 시각을 열어주는 매우 훌륭한 시들이다. 서정시들이 으레 가질 수 있는 현혹적인 수사나 자극적인 기교는 그리 많지 않으며, 여유있고 수수한 삶에 서 가질 수 있는 성찰, 특히 불교적 성찰이 눈에 띈다.

난해하지 않고 잘 읽히면서도, 풍부한 감성을 전달하는 서정시를 읽기 위한다면, 그러고도 우리의 심층 깊숙이 무언가를 새기고 싶다면 이 시집을 권하고 싶다. 괜찮은 시들은 외우기에도 매우 좋을듯하며, 머리맡에 두고 자기 전에 부담 없이 읽을 수도 있을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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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은 저항을 위한 힘과 지혜가 준비되지 않은 곳에서 힘을 보이고, 제지를 위한 제방이나 둑이 준비되지 않는 곳에서 광포하다.

   - 마키아밸리, <마키아밸리즘으로 읽는 한국 헌정사>(김욱 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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