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상단에 국내 유일의 광과속기 연구소가 보인다. 전 세계적으로도 10개 남짓한 연구소이며, 짓는데만도 700억(?)이 들어갔다 한다. 가운데 주황색 지붕의 건물들은 기숙사로 쓰이고 있으며, 기숙사 뒤쪽으로는 결혼한 대학생들이 사는 아파트가 보인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갈대 2004-06-08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가 어딘지? 국립대학 같긴 한데..-_-;;

개척자 2004-06-08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국내 유일의 광가속기가 어디 있는지 알아보십시오.

갈대 2004-06-08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항에 있는 공대 같네요..^^
 

자신의 내면에서 솟아났든, 아니면 과거를 살았던 훌륭한 사람들이 가슴에 품었던 화두이건 간에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은 분명 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거쳐간, 삶에 대한 근원적 질문이 아닐 수가 없다. 아마도 어느 정도 이상의 지능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어떤 형태로든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질문은 가졌으리라 추측한다. 나도 막 중학생이 되었을 때는 시간의 광막함과 자신에 대한 의문들 때문에 밤잠을 설쳤던 적이 있었다. 물론 그 의문들 중에는 성에 대한 호기심과 앞날에 대한 궁금증 등, 사춘기 소년이라면 가질법한 모든 질문들이 뒤섞여 있었음은 사실이다.

내가 이전의 글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사실 그 이유는 그 질문에 대한 명료한 답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답이 없다는 말은 과학적인 답,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명제로서의 답이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 질문은 분명 삶을 살아가는데 중요한 질문이며,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과정에서 삶이 조금 더 윤택해질 수 있다면 한 번쯤은 고찰해볼 필요는 있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 질문의 답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 답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렇다면 누가 그 질문을 나에게 한다면 나는 어쩔것인가. 누가 지금의 나에게 "당신은 누구요?" 라고 질문한다면 나는 잘 준비된 대답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이 때의 질문은 한 개인의 정체성에 관한 철학적 질문이며, 직업이나 성명을 묻는 사무적인 질문은 아닌 것을 밝혀 두고자 한다.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다:

  "나는 조각품이요. 하나님과 내가 빚는 조각품. 또한 나는 시 그 자체요. 나의 삶의 이야기는 하나의 멋있는 시가 되어야 하오. 읽으면 아름다운 맛이 살아나는 시가 되었으면 한단 말이오."

이전에 갈대님의 서재에서 진중권이 TV에 나와서 인생을 예술작품에 빗댄 표현을 했다고 하는 것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 때 나는 낭패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나 스스로가 인생을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느끼고 한창 생각을 가다듬고 있었는데, 진중권씨가 먼저 선수를 치다니.

나는 사실 '나는 왜 살아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려고 시도하면서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구하게 되었다. 아무리 사회생물학적 명제를 들이댄다고 하더라도 나의 삶이 온통 생식에 바쳐질리는 만무하다. 그렇다면 나의 삶의 순간들을 이끌어 가는 동력을 설명하지 않으면 안되는 그러한 순간들은 오게 마련이다. 도대체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은 무엇이란 말이가? 내가 일상을 사는 이유는? 내가 인터넷에 글을 쓰고 공학을 공부하고 책을 읽고 하는 그 근본적인 이유는?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인가? 명예을 얻기를 원하는가? 지식과 철학으로 세상 사람들의 정신을 지배하고픈가? 온갖 좋은 것들을 다 들이대도 나는 이 짦은 생의 동력을 말하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2학년 때의 갑작스런 깨달음은 다음과 같은 통찰을 주었다. 이 통찰은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시작된다:

"공룡은 존엄하였나? 공룡이 성스럽고 도덕적으로 살았다면 그것은 무엇 때문이란 말인가? 예수가 2000년도 더 전에 십자가를 지고간 이유는? 예수와 공룡의 차이는?"

혹자가 보기에는 너무나 엉뚱한 질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당시의 나에게는 심각하고 의미있는 질문이었고, 나에게 조금의 정신적 진전을 가져다준 계기가 되었다. 그 질문을 이렇게 풀어서 생각해 보자: 아주 오래 전에 공룡이라는 생명체가 살았다는 것은 다들 알고 있을 터이다. 그 동물의 삶이 어떠했는지는 잘 알 수가 없지만, 아마도 우리 인간보다 더 낮은 지능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뛰어난 지능이 있어서 존엄과 가치를 생각할 수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그 공룡들 중에서 예수와 같은 특출난 영성과 타인에 대한 사랑을 가진 개체가 있다고 상상해보면 얘기가 재밌어진다. 그 공룡은 왜 그래야 했는가? 다른 공룡들의 대다수가 이기적인데 그 공룡이 이타적인 것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시간의 광막함과 생의 짧음에서 이러한 성찰을 할 수 있었다. 즉 '삶은 짧고, 죽음, 그것으로 나는 끝이다' 라는 너무나 당연한(?) 깨달음이다. 단 한번뿐인 삶이라는 당연한 명제가 내면 깊숙히 들어와 박혀버렸다.

누구나 알고 있을 법한 이러한 앎이 내면에서 스스로 솟아나고 보니, 단 한 순간도, 단 하나의 일도 함부로 할 수 없고, 주위의 모든 것들을 사랑해야 겠다는 박애정신이 갑자기 생겨났다. 물론 순간의 이기심에 가리게 되니 그 깨달음과 실천이 오래가지 않는 다는 것이 문제이기는 하다. 그러더라도 삶에 있어서 가장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삶은 죽음으로 끝나고 완성된다는 것이다. 그 이상은 생각할 수 없다. 그리고 세상은, 그리고 우주는 나 이의정이라는 사람이 예수와 같은 삶을 살았던지 아니면 뉴튼과 같은 삶을 살았던지, 그도 아니면 도시의 유곽에서 몸을 파는 창녀와 같은 삶을 살았던지 상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주와 세상은 상관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무가치하고 내가 어떻게 살든 이 우주에는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 없다는 결론이 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선택이 남아있다. 모든 삶에 대한 선언들이 이데올로기이고, 모든 종교의 교리들과 철학들이 과학적 사실이 아니라면 나는 내 삶의 동력을 선택하고 선언할 수 있다. 저 버러지 같고 빌어먹을 삶이 있는가 하면, 예수나 공자와 같은 뜨겁고 높은 차원의 삶도 있다. 그렇다면 나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을 것이고, 나는 미적으로 아름답고 뜨거운 삶을 살련다. 이건 과학적 사실이 아니다. 나의 뇌는 내 삶의 목표와 목적을 모른다. 내 영혼과 가슴은 그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아름다운 삶을, 뜨거운 삶을, 예술작품이 되는 삶을 살 것이라고 가슴은 선언하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누구라는 정체성의 답을 주었다. 즉 나는 하나님과 내가 빚는 조각품인 것이다. 여기서 하나님이란 기독교에서 말하는 여호와 하나님이 아님을 밝혀 두겠다. 여기서의 하나님은 우주를 운행하고 작동하는 거대한 법칙 체계와 삼라만상 전체를 일컫는 상징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또한 나의 삶의 이야기를 누군가 읽었을 때 하나의 멋진 작품이라 여길 수 있을 정도의 시 작품이 되었으면 한다. 이건 대단히 어렵고 각고의 노력이 요청되는 삶이다. 하지만 조금씩 자신감이 생겨나고 있다. 삶에 대한 이러한 뜨거운 인식이 나의 행동과 사고, 그리하여 삶 전체를 변화시키리라 믿는다.

우리 모두가 받아들여야 할 과학적 사실로서의 '인생의 목적'은 없다(사회생물학의 논쟁을 여기서 하고 싶지는 않으니 독자들은 참으시라). 삶의 목적은 스스로 창조하는 것이며, 그것을 통하여 우리의 죽음은 우리를 완성시킬 것이다. 우리 모두는 예술 작품이고, 나중에는 하나의 인생 이야기가 시 작품이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산다는 것은 그 자체가 목적이며, 우리는 매 순간 조각하고 그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나날들은 너무나 자주 그 사실을 망각함으로 부패하고 있다. 우리의 이야기를, 조각품을 스스로 망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희망이 생겼고, 스스로가 숱하게 던졌던 질문들과 그 질문들을 답하려고 했던 그 노력들이 나의 가슴에서 돌 하나를 걷어내었다. 그 걷어낸 돌 밑에서 샘이 솓아나고 있다. 샘이 솟아나 큰 호수를 이룰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이 호수는 강을 이룰 것이며, 그 강은 우주의 바다에 다다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Man to Man 기본영어 1 - 개정판
장재진 지음 / 맨투맨 / 2004년 1월
평점 :
절판


영어 학습의 기본은 역시 Man-to-Man 기본 영어인것 같다. 영어 과외를 몇 번 했는데, 언제나 나는 맨투맨으로 가르치고는 했다. 개정판이 나오기 전에는 조잡한 편집과 한자의 과다한 사용으로 좋지 않은 인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개정판 이후에는 깔끔한 편집, 읽기 쉬운 활자 크기, 체계적인 문법 정리로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언제나 권하는 편이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 학원을 다니면서 성문 기본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여러 면에서 성문보다는 맨투맨이 더 낳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다양한 예문이 있고 쉬운 설명, 체계적인 정리, 좋은 예시문제들이 있기 때문이다. 고등학생들의 영어 문법은 맨투맨으로 다지는 것이 아무래도 좋을 듯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소설로 그린 자화상 2
박완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199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소설은 박완서 작가의 어릴적에 대한 회고를 담고 있는 소설이다. 그녀의 많은 소설들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한 자전적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작가 자신의 어릴적 경험 중에서도 특히 광복을 전후한 국민학교 이전 시절부터 서울대 문리대를 다닐 때까지를 소설로 그려내고 있다.

  나는 박완서씨의 단편 소설 <엄마의 말뚝> 1편과 2편을 읽었는데, 이 소설과 겹치는 부분이 대단히 많다고 느꼈다. 대단히 많은 정도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엄마의 말뚝을 풀어서 조금 고쳐서 쓴 소설이 이 소설이 아닌가 판단되는 것이다. 그러한 의구심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당시 광복을 전후한 한국의 실상과 시대 상황을 잘 그려내고 있는 수작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작가의 과거뿐만이 아니라 작가의 삶에 녹아 있는 우리 민족의 역사를 동시에 읽을 수 있는 것이다.

  광복의 직전에는 '신여성'이라는 말이 자주 사용되었는데, 소설의 주인공인 박완서의 어머니는 작가를 신여성으로 만들겠다며 서울로 데려가서 국민학교를 다니게 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다. 또한 대동아 전쟁의 와중에 자신의 오빠가 일제에 징용될 뻔 한 이야기와 경기고녀와 서울대를 입학하는 에피소드, 6.25 전쟁을 맞은 일 등을 그리고 있다. 특히 자신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어머니와 오빠를 자세히 묘사한 것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사실 <엄마의 말뚝>에서는 이 소설과는 달리 자신의 어머니를 중점으로 그리고 있는데, 이 소설에서도 어머니의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읽어낼 수 있다.

  나 자신의 시각이 너무 정치와 역사에 굳어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이 책을 읽고난 지금 드는 생각이다. 작가의 일대기를 읽으면서도 우리의 아픈 역사를 떠올리고 있으니 말이다. 그 당시의 급박한 정세를 거치면서 성장했던 한 인간의 일대기가 이다지도 간절히 가슴에 박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작가의 의도는 자기 자신의 삶을 단순히 나열하여 우리에게 전달하려는 것이 아닐 것이라 나는 믿고 있다. 자신과 어머니, 그리고 오빠가 등장하는 가족사를 통하여 우리의 근현대 민족사, 나아가 우리가 형성한 지금의 현실의 바탕을 말하려는 것이라 생각한다.

  작가는 언제든지 삶과 현실, 사회와 인간의 내면을 말하지 않으면 아니된다. 독자들도 이 소설을 그러한 바탕위에서 읽어야 할 터이며, 한 사람이 말하는 가족사를 통하여 우리 민족이 거쳐야만 수난과 아픔의 역사를 읽지 않으면 아니되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출처 : icaru > 프랑스 고졸 자격 시험 문제

1장 인간(Human)

질문1-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행복이 가능한가?
질문2-꿈은 필요한가?
질문3-과거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우리는 자유로운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질문4-지금의 나는 내 과거의 총합인가?
질문5-관용의 정신에도 비관용이 내포되어 있는가?
질문6-사랑이 의무일 수 있는가?
질문7-행복은 단지 한순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인가?
질문8-타인을 존경한다는 것은 일체의 열정을 배제한다는 것을 뜻하는가?
질문9-죽음은 인간에게서 일체의 존재 의미를 박탈해 가는가?
질문10-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수 있나?
질문11-행복은 인간에게 도달 불가능한 것인가?

2장 인문학(Humanities)

질문1-우리가 하고 있는 말에는 우리 자신이 의식하고있는 것만이 담기는가?
질문2-철학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질문3-철학자는 과학자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
질문4-역사가는 객관적일 수 있는가?
질문5-역사학자가 기억력만 의존해도 좋은가?
질문6-역사는 인간에게 오는 것인가 아니면 인간에 의해 오는 것인가?
질문7-감각을 믿을 수 있는가?
질문8-재화만이 교환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질문9-인문학은 인간을 예견 가능한 존재로 파악하는가?
질문10-인류가 한 가지 언어만을 말하는 것은 바람직한가?

3장 예술(Arts)

질문1-예술 작품은 반드시 아름다운가?
질문2-예술없이 아름다움에 대하여 말할 수 있는가?
질문3-예술 작품의 복재는 그 작품에 해를 끼치는 일인가?
질문4-예술 작품은 모두 인간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가?
질문5-예술이 인간과 현실과의 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가?

4장 과학(Sciences)

질문1-생물학적 지식은 일체의 유기체를 기계로만 여기기를 요구하는가?
질문2=우리는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만을 진리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질문3-계산, 그것은 사유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인가?
질문4-무의식에 대한 과학은 가능한가?
질문5-오류는 진리를 발견하는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
질문6-이론의 가치는 실제적 효용가치에 따라 가늠되는가?
질문7-과학의 용도는 어디에 있는가?
질문8-현실이 수학적 법칙에 따른다고 할 수 있는가?
질문9-기술이 인간조건을 바꿀 수 있는가?
질문10-지식은 종교적인 것이든 비종교적인 것이든 일체의 믿음을 배제하는가?
질문11-자연을 모델로 삼는 것이 어느 분야에서 가장 적합한가?

5장 정치와 권리(Politics&Rights)

질문1-권리를 수호한다는 것과 이익을 옹호한다는 것은 같은 뜻인가?
질문2-자유는 주어지는 것인가 아니면 싸워서 획득해야 하는 것인가?
질문3-법에 복종하지 않는 행동도 이성적인 행동일 수 있을까?
질문4-여론이 정권을 이끌 수 있는가?
질문5-의무를 다하지 않고도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가?
질문6-노동은 욕구 충족의 수단에 불구한가?
질문7- 정의의 요구와 자유의 요구는 구별될 수 있는가?
질문8-노동은 도덕적 가치를 지니는가?
질문9-자유를 두려워해야 하나?
질문10-유토피아는 한낱 꿈일 뿐인가?
질문11-국가는 개인의 적인가?
질문12-어디에서 정신의 자유를 알아차릴 수 있나?
질문13-권력 남용은 불가피한 것인가?
질문14-다름은 곧 불평등을 의미하는 것인가?
질문15-노동은 종속적일 따름인가?
질문16-평화와 불의가 함께 갈 수 있나?

6장 윤리(Ethics)

질문1-도덕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반드시 자신의 욕망과 싸운다는 것을 뜻하는가?
질문2-우리는 좋다고 하는 것만을 바라는가?
질문3-의무를 다하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질문4-무엇을 비인간적인 행위라고 하는가?
질문5-일시적이고 순간적인 것에도 가치가 존재하는가?
질문6-무엇이 내 안에서 어떤 행동을 해야 할 지를 말해 주는가?
질문7-우리는 정념을 찬양할 수 있는가?
질문8-종교적 믿음을 가지는 것은 이성을 포기한다는 것을 뜻하는가?
질문9-정열은 우리의 의무 이행을 방해하는가?
질문10-진실에 저항할 수 있는가?
질문11-진리가 우리 마음을 불편하게 할 때 진리 대신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 환상을 좇아도 좋은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