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토요일, 운명의 수레바퀴은 달리고 있다. 저녁을 먹고서 느긋하게 쇼파에 기대 티비를 보다보면 마주하게 되는 로또 당첨 방송을 보면서 지금의 이 순간에 누군가는 행운의 당첨을 거머지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면서 과연 그런 사람이 있기는 할까? 라고 생각이 들면서도 매주 당첨자가 나오는 것을 보면 억만장자의 탄생이 가능하긴 하나보다. 살다가 한번쯤 그러한 생각들을 해보게 되는 것 같다. 어느 순간 억만장자가 되는 꿈들을 말이다. 그러한 꿈은 도래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막연하게 그렇게 된다면 말이지, 하고 열심히 그 이후의 삶을 그려보게 되는데, 사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돈이 나에게 굴러떨어진다면, 세상 살만하겠다, 싶은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것만 어찌된 일인지 로또에 당첨되어 일확천금을 손에 거머쥔 이들의 최후는 원래의 삶보다도 못한 나락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하니, 그 어마어마한 돈의 무게로도 쉬이 인간의 삶이 결정되지는 않는가 보다. 이 소설 속의 주인공은 '핍'역시도 그야말로 로또와 같은 인생역전의 주인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그에게도 평범했던 시절이 있었으며 주변에서 그를 보았을때는 다분히 평범했던 삶이이라기 보다는 조금 안타까운 시간들의 연속이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것일 게다. 그의 유년시절은 스무살 이상 차이가 나는 조 가리저의 그늘 아래서 움츠려들며 지내야 했던 시간들이었고 무엇을 하든 어디에 있든 누나의 잔소리와 핀잔은 그를 향해 거둬질줄을 모르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핍은 너무도 순수한 눈망울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의 곁에는 누나의 남편인 조가 항상 자리하고 있었다. 거의 쉰이 다 된 나이에 연재를 하기 시작했다는 위대한 유산 속의 핍의 모습들을 보노라면 어쩜 그가 이토록 어린 아이의 심리 표현을 잘 전달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경이로움마저 느끼게 된다. 나 역시도 어린 시절을 분명 지나 지금의 어른이 되었지만 이른바 동심이라는 것이 내안에 있었다는 것도 믿겨지지 않는 요즘인데 그는 그야말로 순수한 핍을 고스란히 문체 속에 담아 놓고 있었고 그렇기에 핍은 활자가 아닌 살아서 내 주변을 맴도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조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 놓아야 한다는 생각은(특히 그가 줄칼을 찾는 모습을 처음 보았을 때 그랬다) 온통 내 마음을 사로 잡았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랬다가 조가 나를 본래의 내 모습보다 더 나쁜 아이로 생각할 거라는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조의 믿음을 잃어버릴지 모른다는 두려움, 그래서 밤에 벽난로 굴뚝 구석 자리에 앉아서 동료이자 친구인 그를 영원히 잃고 그저 쳐다만 보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내 혀를 잡아맸다. -본문 죄인의 협박에 못이겨 줄칼과 음식물을 전해주는 핍의 모습을 보면서도 아직은 때묻지 않은 소년이기에 모든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구나, 라고 생각이 든다. 아마도 지금의 내가 그 안개 속에서 죄인을 마주했더라면 돌아가는 길에 신고를 한다거나 어떻게든 그에게 나의 일부분이라도 드러내지 않고 돌아섰을 터이지만 핍은 그의 모든 것들을 고스란히 일러주고 다음날 그에게 돌아가 약속한 것들을 내어주는 것을 보면서 핍의 여린 모습들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죄인과 마주함에 있어서도 그가 자신이 가져온 음식을 맛있게 먹는 것을 보며 씨익 웃을 줄 알고 대장간의 도제자로서의 삶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있던 순수한 핍에게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 먹은 이후 헐벗은 자신들을 보며 부끄러워 하듯이 자신의 처지에 대해서 정반대의 시각을 갖게 한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미스 햄비셔의 딸 에스텔라를 마주한 순간이다. "얘야, 이 보석은 언젠가는 네 것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걸 잘 쓰게 될 거야. 이 아이와 카드놀이를 하는 모습을 내게 보여주렴." "이런 애하고요! 세상에, 얘는 비천한 노동자 집안 아이라고요!" (중략) "얘가 악당 그림 카드 <네이브>를 <잭>이라고 불러요. 요 꼬마 애가요! 에스텔라가 첫 번째 놀이가 끝나기도 전에 경멸을 표하며 말했다. "손은 왜 저리 거칠까. 반장화는 왜 저리 투박하고." -본문 그저 까탈스러운 한 소녀의 힐난이라 생각하며 한 귀로 듣고 흘릴 수도 있었지만 핍은 그럴 수 없었다. 이미 에스텔라는 핍의 마음 속에 자리하게 되었으며 이전에는 그러한 느낌들을 경험해본 적이 없는 그로서는 에스텔라를 통해서 비쳐지는 자신의 모습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을, 그것은 마치 자신이 미스 햄비셔의 모습을 발견했을 때의 것과 비슷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집으로 돌아가서도 그곳에서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전하고 있었으며 이미 에스텔라를 통해서 자신의 삶이 깨어진 순간, 핍은 자신이 있었던 공간 안에서 오롯이 함께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언젠가는 에스텔라와 함께하는 삶을 그려보고 있던 그에게 우연치 않은 기회가 찾아오게 된다. 그것은 바로 이름을 밝히지 않은 사람이 그의 후원자가 되어 엄청난 유산을 전해주는 것이었는데 단 하나의 조건은 바로 핍이 '신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작은 마을에 살고 있던 그에게 신사가 되기만 한다면 일확천금을 받을 수 있다는 그 제안은 벗어날 수 없는 달콤한 제의였고 그리하여 영국으로 떠나는 핍을 바라보면서 그의 여정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당시 영국은 산업화의 중심에 있는 때로서 태양이 지지 않는 나라로 불리고 있었다. 오늘날의 신사라고 하면 예의바르고 중후한 느낌의 남자들이라면 당시의 신사는 갑작스럽게 부를 창출하여 사회적으로 하나의 지위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중상층이 만들어 낸 계급으로서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신분이 아닌 자신의 능력, 그러니까 얼마만큼의 돈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부의 축적으로서 신분상승이 이뤄지고 있는 시대였으며 그리하여 핍에서 '신사'를 요구하는 것은 그의 순수함따위는 철저히 배제시키고 자본 속에 속박되어 가는 핍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너 그때는 아직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지 않았을 때지?" 하버트 포켓이 말했다. "그래" 내가 말했다. "그럴 거야."그가 동의했다. "나도 최근에야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 그때는 <나도> 그런 막대한 유산의 행운이 내게 찾아오지 않을까 예의 주시했어." "정말?" "그래, 내가 마음에 드는지 보려고 미스 해비셤이 사람을 보내 나를 불렀던 거였어. 하지만 그녀는 나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어." -본문 신사가 되기 위해서 점점 변해져가는 핍을 보면서도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의 삶을 동경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핍은 자본의 굴레 속에 점점 빠져들면 들수록 자신의 영혼의 스승인 조는 물론이거니와 비디마저도 부끄럽게 생각하게 되었고 그러면 그럴수록 스스로도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핍을 미워할 수 많은 없었다. 나 역시도 하버트 같은 마음을 여전히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그가 신사로의 궤도에 들어서면 설수록 핍 자신은 이전의 부족했던 시간들을 그리워하고 있다. 경제적으로나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이전과는 다르게 높아졌지만 그 자신은 사람들이 자신이 거칠게 있었던 그 시절 속에 있는 자신을 그리는 시간들이 많아지게 된 것이다. 나의 신사가 길거리 진창에 발을 내디디는 일은 절대로 두고보지 않을 거다. <그의> 구두에는 진흙 같은 게 묻어선 절대로 안 되지. 나의 신사에겐 반드시 말이 있어야 한다, 핍. 직접 탈 말, 마차용으로 부릴 말, 그리고 그의 하인이 탈 말과 하인의 마차용으로 부릴 말까지 말이다. 식민지 주민 ㄷ놈들도 말을 갖고 있는데 (제기랄, 놈들이 원한다면 순종 말이라고 해두자) 나의 신사가 런던에서 왜 못갖겠느냐? 안되지, 안 되고 말고. 놈들에게 전혀 다른 양상을 보여주자, 핍. 안그러냐? -본문 미스 햄비셔가 아닌 그의 후원자가 누구인지에 대해 밝혀지고 그러면서 오랜 동안 그의 곁에 있을 것만 같았던 위대했던 유산들이 사그러지게 되면서 그는 다시 이전에 자신이 있었던 그곳을 향해 자리하게 된다. 내가 생각했던 위대한 유산은 핍에게 전해는 어마어마한 후원금이라고 생각했다. 그야말로 위대한 것으로 그것으로 인해 그의 인생이 달라질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핍이 변해가는 모습들과 그 안에서 사람들의 관계는 물론 그 스스로가 잠식되어 가는 것을 보면서 과연 그 후원금이라는것이 핍에게 전해진 후원금이었을까, 라는 반문을 해보게 된다. 이제 그에 대한 혐오감은 이미 다 녹아 사라지고 없었다. 내 손을 자기 손 안에 꼭 쥐고 있는, 쫓기고 부상당하고 쇠고랑이 채워진 그에게서 나는 오직 내 은인이 되고자 했던 사람의 모습과 긴 세월 동안 늘 한결같은 애정을 갖고 고마워하며 나를 아낌없이 너그럽게만 대해 주었던 사람의 모습을 모았을 뿐이다 그저 내가 조에게 보여 주었던 모습보다 훨씬 더 고귀한 인간의 모습을 보았을 뿐이다. -본문 신사, 라는 이름 안에 신분상승을 꿈꾸던 당시의 시대는 물론 지금의 사회 속에서도 우리는 그야말로 물질적인 유산들을 꿈꾸며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다. 남들보다 조금 더 높은 곳으로 오르고 싶다는 욕망과 결합된 이 유산이 과연 한 인간을 어떻게 내몰고 있는지에 대해 마주하다보면 한 때 모든 것을 다 가졌던 핍의 삶이 아닌 다시 조의 삶에 초점을 맞춰 바라보게 된다. 우리에게 전해지는 진실한 유산은 무엇인지, 그들의 이야기를 주목하며 나의 삶의 방향을 어디로 초점을 맞춰 가야 하는지에 대해 배우게 된다. |